박창하목사님께.docx

주뜻교인 일동 .

제가 목회를 준비하고 또 개척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었고, 그 교회는 바로 성경적으로 합당한 교회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의 대부분의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모든 모습이 성경적으로 합당한가? 그래서 저는 신학을 하는 내내 성경에만 몰두했습니다.
다른 신학적 학문을 할 때에도 성경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더욱 심취했습니다. 그래서 기존 교회의 모습을 다 내려놓고 하나 하나 성경적으로 합당한 교회의 모습을 찾아냈을 때에는 개척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교회의 모습으로는 제가 확인한 성경적 교회의 모델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존 교회를 점차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릭워렌 목사님께서 쓰신 [새들백교회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기존 교회를 바꾸어 가는 것보다 새로이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쉽고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개척에 대한 마음만 품고 있던 저에게 참된교회를 통해서 개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생각하는 성경적 교회의 모델이 무엇인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제 목회 방식이 왜 이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지금부터 말씀 드리는 모든 내용은 다른 목회자들을 비난하거나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세워진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어디 까지나 저의 소신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 설명 드리는 것이므로 더욱이 저 같이 젊은 목회자가 평생을 목회에 전념하신 목사님께 가르치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전제부터 말씀 드리면 교회는 어떠한 전통이나 관습에 의해서가 아닌 성경적 근거에 의해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설교
제가 본 성경적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지는 곳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목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제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설교시간에 가르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가르쳐야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설교방식을 따르지 않고 성경을 많이 읽어주는 방식으로 설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성경공부와 설교의 차이를 말하고 있지만 제가 연구한 결과로는 설교든 성경공부든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고 살아내도록 적용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예배 시간 외에 따로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서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공부를 따로 가지려면 또 시간을 내서 교회에 와야 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갈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처음 교회에 등록하는 신자 외에는 따로 성경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2. 예배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와 삶의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문제는 이 예배가 너무 흔해져서 성도들이 예배를 우습게 여기는 데에 있습니다. 또한 예배를 비롯해서 교회에서의 모임이 너무 많은 관계로 오히려 그것이 짐이 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 속에서 살아갈 시간과 여유를 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교회에는 많이 오고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지만 정작 세상 속에서는 살아내지 못하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낼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세상 속에서 살아낼 수 있도록 여건을 허락하기 위해서 예배와 교회에서의 모임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것만 남기려 하다 보니 주일 예배 한 번만 남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배의 횟수가 줄어든다고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내기에 방해가 될 정도로 교회에 많이 불러들이는 것을 줄이기 위해 교회에서의 공적인 모임은 가능한 줄이게 되었습니다.
주일 오후 예배는 한국 기독교 초창기에 성도들이 주일날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즐거움으로 함께 모여 있다가 그냥 집에 가기보다 다시 한 번 예배를 드리고 가자고 한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자 함에는 그 횟수가 중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이것이 공 예배라 는 이름으로 형식화 되어버렸습니다. 주일의 유래는 안식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도록 하신 하나님의 안식의 법칙에 준하여 저는 주일을 기쁨으로 예배 드리고 모두가 즐겁게 쉬는 날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는 한 번만 드립니다. 물론 성도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장소가 허락지 않으면 나눠 드려야 하니까 1부, 2부, 3부로 예배가 나눠질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수요예배나 금요철야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요일이나 금요일 교회에 오느라 가정에 소홀한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일 주일에 한 번 신령과진정으로 드리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것도 그 한 번으로 족하다 보여집니다.
더구나 새벽기도회는 예배가 아닌 기도회가 분명합니다. 기도회는 기도하기 위한 모임일 뿐,설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성도들이 기도를 하는 데에 기도의 줄을 잡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으로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도록 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예전의 한국 기독교는 농경문화로서 모든 사람들이 논이나 밭에 일을 나가기 전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려는 의도에서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목사로서, 혹은 성도로서 반드시 새벽기도를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는 새벽에 할 수도 있고, 낮에 할 수도 있고 밤에 할 수도 있고, 장소 또한 어디든 상관이 없다 보여 집니다. 오늘날은 예전과 같이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기가 모든 가정에 들어가서 밤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취침 시간은 점점 늦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공식적인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바로 가르치는 것이고,
스스로 기도를 비롯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고 보여집니다.
3. 봉사
봉사는 교회 내에서의 봉사 보다 세상 속에서의 봉사가 진정한 봉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의 일들이 너무 많아서 세상 속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할 시간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쉬어야 할 주일에도 너무나 많은 교회 내에서의 봉사로 인해 성도들은 지쳐있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교회 내에서 할 수 있는 봉사는 없애기로 했습니다.
성도들은 기쁨으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눔으로 인해 충분히 쉬고 재충전을 함으로 인해 또 한 주간의 삶을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의도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저희 교회는 성도들이 교회 내에서 봉사하는 것들을 최소화 하려고 했습니다. 교회 규모도 작기에 청소는 제가 하고, 성도들이 먹고 치우는 것은 제 아내가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기쁘고 즐겁게 지내고 돌아가서 세상 속에서 이웃에게 봉사하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에게 가능한 한 교회에 자주 오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교회에 오기 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라고 말입니다.
4. 전도
전도는 성도들에게 철저히 관계전도를 권면합니다.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 전할 지라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듣는자 에게만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듣지 않을 때에는 발을 떨어 버리고 그 마을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억지로 전할 것도 아니요, 몸을 낮추어 제발 한 번 교회에 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은 값진 것이기에 선물을 주면서 오라고 할 것도 아니고, 머리를 숙일 필요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원칙입니다. 바울도 철저히 복음을 듣는 자들의 입장에서 전했지만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교회의 인원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복음을 전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교회의 부흥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정 복음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함께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에 지금껏 이렇게 전도를 해 왔습니다.
교인들에게는 철저히 관계전도를 가르쳤고, 그들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준비되도록 성경으로 철저히 가르쳐왔습니다.
물론 저 혼자 대학과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팻말을 세워놓고 그 문구를 새긴 스티커를 제작해서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해도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부끄러움은 당할 수 있다 여기고 이 일을 감당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자는 운동을 계속 하고 있지만 지나가는 기독교인들 은 대부분 외면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오늘날의 현실을 만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입으로만 믿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부분이 설명되어야 하겠지만 저 나름대로 이렇게 저의 목회 소신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목회에 전념하고 계신 목사님께서 보시기에 젊은 목사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여 집니다.
혹여 성경적으로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고 충고해 주실 때 겸허히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제가 하고 있는 목회를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지금 하고 있는 모습으로 계속 목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개척을 한 것도 아니고, 남들이 하는 대로 목회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철저히 성경적으로 바른 목회를 하겠다고 작정했기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하고 개척을 준비했습니다.
또한 개척 후 지금껏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목회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게을러서, 혹은 귀찮아서 예배의 횟수를 줄이거나 할 일을 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목회 철학을 진작에 말씀 드리지 못하고 이제야 말씀 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지금까지 해 온 목회 방식으로 목회를 계속 할 것입니다. 절대 목회를 중단하는 일은 없습니다.
교회 전반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목사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10년 9월 9일 이용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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