狎鷗亭(압구정)
기대승(奇大升:1527~1572)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 · 존재(存齋).
조선전기 성균관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이다.
이황(李滉)과 12년에 걸쳐 서신을 교환하며, 그 가운데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 동안에 이루어진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유학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논평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학행(學行)이 겸비된 선비로서 학문에서는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에서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고, 행동에서는 지치주의적(至治主義的)인 탁견을 왕에게 아뢰었다.
저서로는 『논사록』·『왕복서(往復書)』·『주자문록(朱子文錄)』·『고봉집(高峯集)』 등이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거친 잡목숲에 덩굴풀이 높은 언덕을 덮어버리고
荒榛蔓草蔽高丘 황진만초폐고구
아득히 이곳에서 놀던 그때를 생각해 보네
緬想當時辦勝遊 면상당시판승유
사람의 일 어찌 백년을 기약할 수 있으랴
人事百年能幾許 인사백년능기허
강에 자욱한 안개를 보며 머리를 긁어본다
滿江煙景入搔頭 만강연경입소두
*
압구정(狎鷗亭)은 정자(亭子) 이름인 동시에
한명회(韓明澮)의 호(號)이다.
한명회가 명나라 문인 예겸에게 부탁해서 얻은 이름이다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 뜻으로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자신의 호(號)를 삼았다.
지금의 서울 압구정동이 옛날에는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서
그 당시 고관대작, 세도가들이 앞다투어 절벽 위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한명회의 정자는 얼마나 화려했겠는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듯이
하루아침에 잡은 권세가 얼마나 가겠는가?
사람이 떠나가면 집도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기대승이 압구정을 찾아갔을 때는
빼어난 경관도 정자도 잡목과 우거진 풀 속에
사라지고 없었다.
은근히 한명회를 우회적으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름다운 한강변을 개발을 한다고
산을 파괴하고 아파트를 짓고
강을 따라서 도로를 만들고
정말 볼품없이 한강을 직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는 옛 그림에 남아 있는 한강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