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주 예수를 아는 이들
대표기도 이성실 집사 (다음 주 김복순 권사)
성경 말씀 베드로후서 1:3~7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동백이 되고 싶다.
찬송 200 주의 피로 이룬 샘물
헌금 기도 농협 3010178504011 연세소망교회
광고 종합검진 협조에 감사, 미용 봉사 (박명숙, 이정숙 선생) 감사
가족 방문 황막례 권사 가족, 이균자 권사 가족(딸), 김점례 성도 가족
임성례 권사 동생, 이정석 집사 아들
찬송 209 주의 말씀받은 그날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겨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국화 옆에서, 서정주
3절입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아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절,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절,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인생이 이런 겁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운 것처럼.
한 송이 국화꽃이 쓰러지듯 황망히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드라마 전원일기, 일용이 엄니가,
구수한 욕지거리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김수미 씨가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원인이 고혈당 심정지입니다.
목사님 어머니도 고혈당 합병증으로 30년 전, 하늘나라 가셨습니다.
우리 임성례 권사도 고혈당 때문에 임플란트 못하고
시력에까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목사님도 200명이 넘게 장례를 치러봤지만
이렇듯 황망히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 5분 후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럼에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거만을 떠는
대통령, 국회의원, 시정잡배들을 보면 꼴값들 합니다.
목사님도
엊그제 익산시 정헌율 시장님과 시장실에서 차담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동안 소심 timid 했던 일들까지 허심탄회하게 나눴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의미가 무어겠습니까?
국가가 국민에 대한 폭력에 항거하는 역사적 트라우마입니다.
작금 21세기 벌건 대낮인데도
윤석열 검찰 독재, 깡패 정권의 무도함 때문에
우리 국민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또한, 지방자치 단체에서도 시민의 재산권 보호는커녕
교묘히 법 기술을 부려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사적 재산권마저 강탈해 가기도 합니다.
정말 눈뜨고 코 베어 간다더니
이런 깡패 정권, 시정잡배들 때문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지 자식에게
깡패 사기 짓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3절입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던 시기가
312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입니다.
그리고 321년에 일요일을 로마 제국 공휴일로 공포되었습니다.
이후로 신약성경 27권이 정경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AD 363년)
그럼에도 신약성경 27권 정경화 과정에서 채택되지 못했던 책들도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유다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데살로니가후서입니다.
당시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판단과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도 베드로가 집필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목사님이 묵언 수행하기 위해서
나 홀로 바닷가 트레킹 tracking을 자주 갑니다.
우리나라 3대 트레킹 코스가 장자도 건너편에 있는 방축도라 합니다.
방축도 트레킹을 하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목사님도 꼭 가고 싶은 트레킹 코스입니다.
방축도가 바라보이는 장자도 대장봉, 할매 바위가 있습니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간 남편을 15년여 동안 대장봉에 서서 기다리다,
남편이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따라오는 시종을 보고 아내를 얻어 오는 줄 오해하고
순간 슬피 뒤돌아서다 돌이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이렇듯 작은 오해 때문에 살인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베드로의 오늘 말씀은 빛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질이 무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대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이고 우리 사람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어제도 묵언수행을 위해
목사님 홀로 바닷가 트레킹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홀가분히 요양원에 도착하니
우리 석 권사님, 김복순 권사, 백춘자 권사, 김점례 성도께서
휠체어에 앉아 가을 햇살을 쬐고 계셨습니다.
우리 석 권사님은 목사님과 2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석 권사님 며느님도 얼마나 천사인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요즘 감감무소식에 걱정이 됩니다.
석 권사님 큰 아드님이 치매라더니? 혹시?
그래서 미안하고 너무나 힘들어서
목사님께 전화조차 못 하시는 건지?
우리 석 권사님 건강하실 적에
어쩌다 가족과 외식이라도 하면
우리 석 권사님을 반드시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딸 아들이
불편하게 왜? 석 권사님을 모시고 왔느냐?
작은 눈짓도 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목사님이 노숙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석 권사님도 응당 우리 가족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백 권사님, 김 권사님도 목사님과 10년을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응당 우리 가족입니다.
이렇듯 목사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요양원이 대한민국 최고라 소문도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박명숙 집사께서도
우리 요양원이 자긍심이고 자랑입니다.
그래서 잘 알고 있는 환자를 우리 요양원에 모시기를 청원합니다.
이것이 우리 선생님들의 가족애입니다.
그러니 이제 곧 3.4십대 요양보호사들이 넘쳐 날 것입니다.
지금도 5십대
박이순 팀장님, 이순양 선생님(겸 간호사), 권선희 선생님, 손유심 선생님,
박명숙 선생님(겸 간호사), 박숙희 간호사님이 엘리트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천사처럼 딱 버티며 섬김의 도를 실천하시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러니 바라만 보아도 우리 요양원의 자랑입니다.
다 함께 큰소리로 합창해 봅니다.
우리가 가족이다.
우리가 천사다.
그래서 목사님이 사람인 것입니다.
거룩하신 우리 권사님들이
목사님의 어머니이고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김정수 권사께서 대표 기도하실 때마다
조마조마 눈물이 납니다.
우리 조용림 권사님 대표기도 하실 때에도 횡설수설하지는 않을까?
가슴 조이며 눈물이 납니다.
그렇지만 큰 교회 어느 목사 장로보다도 더 기도를 잘하지 않습니까?
온몸이 쑤시고 헐 떡 헐 떡 기도하실 적에
거기에 치매인데도
우리 몸의 100조 개의 세포 속에서
헐 떡 헐 떡 뱉어내는 하나님 사랑의 소리가 흘러나올 때 그 짜릿함에
몸서리치곤 합니다.
바로 이것이 경건입니다.
4절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거룩하기만 한 우리 권사님들 앞에서.
비록 똥 기저귀를 차고
비록 지린내 가득 풍기며 예배를 드릴지라도
이보다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녀들에게까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교우들이여!
다시 깨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건물만 크다고 성전이겠습니까?
그런 큰 건물에 교인 수만 많다고 성전이겠습니까?
마치 대형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자 부스러기들처럼 앉아서
목에 힘줄이 터지도록 설교하는 목사님 원맨쇼 구경만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직언하고 있습니다.
~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노래 함께 부르겠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어릴 적에
나무 살대에 비닐로 덧씌워 만든 우산을 추억하시겠습니까?
정말 가난했던 시절입니다.
검정 고무신도 신어 보셨잖습니까?
좀 잘살면 운동화를 신기도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 천둥번개에
비가 우당탕탕 쏟아지기라도 하면
이 가난한 비닐우산이 이리저리 찢기어 온몸이 흠뻑 젖어버립니다.
그러면 진흙탕물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면서
초가집 방문을 열고 아랫목에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벌써 육십을 넘고 넘어서 추억하니 눈물이 납니다.
그 어릴 때 흠뻑 맞아 보았던 소낙비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고 겪었던 고통의 서막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참 좋으신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우리 어릴 적부터
미리 경험케 하셨는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잘 익은 대추 한 알에
천 개의 천둥 벼락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절,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절,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세월을 깊이 경험해 가는 것도.
인생을 깊이 체험해 가는 것도.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도
고해 苦海 this world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다는 비에 젖지 않습니다.
The ocean does not get wet by rain.
이렇듯 목사님도
비를 흠뻑 맞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눈물인들 비에 젖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그 누군가의 손가락질에 질겁하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쓰라린 빗물이 가슴에까지 흠뻑 젖어질지라도
밤이 새도록 걷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생명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동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생명까지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모자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습니까?
그분께서 지금 이렇게 살라 하십니다.
5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절,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절,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감사합니다.
묵상, 인애하신 주님, 동백이 되기까지 주님께서는 그 모진 핍박을 견디시지 않았습니까?
그러고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사랑이라면
그래서 우리도 당신처럼 살라하신다면
우리도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처럼
성도라는 이름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런 진실함으로
이런 솔직함으로
오늘도 주님 앞에 머리 숙여 조아립니다.
한 생명을 사랑하기까지
나 자신을 죽이고 죽여지게 하옵소서.
이런 믿음과 순종함으로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주님, 어떻게 하면 주님처럼 살겠습니까?
나약하고 옹졸하고 비겁한 우리들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잖습니까?
그럼에도 동백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동백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오니 매일 매 순간마다 나누고 베풀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주님, 사르밧 과부가 드릴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엘리야를 대접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권사님들도 똥 기저귀를 찼을지라도 꾸깃꾸깃 쌈짓돈 천 원일지라도
주일 헌금을 드립니다.
주정 헌금을 드립니다.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십일조를 드립니다.
주님, 눈물 나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헌금이잖습니까?
이러하오니 한량없는 은혜로 위로하여 주시옵고 한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썩어빠진 구습을 벗어버리고 주님 성품에 참예하고자 하는 우리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 가정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