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카약과 캠핑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free board) 스크랩 07가을 자전거여행기
봉공진 추천 0 조회 198 08.06.17 21:55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어제밤 설천의 한 피씨방에서 졸린눈을 부벼가며 장장 한시간반동안

여행기를 올렸는데 실수로 모두 날리고 오늘 다시 올립니다-

 

금년 가을 자전거여행을 떠났습니다.

 

그저께 아침, 자동차에 카약과 자전거를 싣고 상주로 내려 왔습니다.

상주에는 절친한 친구가 있어서...

이곳 상주...작년에도 지났었지요. 물론 자전거로...

예전에는 경상도에서 경주 다음으로 번성했던 고을입니다.

그래서 경상도라는 말이 경주의 '경'자와 상주의 '상'자를 합해서 된것이지요.

마치 전라도의 전주와 나주와도 같습니다.

 

예로부터 상주는 '삼백의 고장'이라 불리웠습니다.

세가지 흰색 산물, 즉 쌀, 누에고치, 곶감입니다.

물론 지금은 곶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맨 감나무이고 감 가공공장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들렀던 곶감공장에서 감 껍질을 깍는 모습

 

어제 오후 친구집에 도착하여 꼬맹이를 데리고 근처의 저수지로 갔습니다.

비록 작기만 아담한 호수에서 카약을 좀 타고...정말 깜깜한 시골집에서

하루를 자고...아침엔 안개에 잠긴 동네를 산책하며 떨어진 감을 줏어 먹었습니다.

간밤엔 가끔씩 뻥..뻥 허길래 물어보니 맷돼지를 ?기위한 공포탄 소리라고...

 

아침도 거르고 8시전에 자전거를 타고 나왔습니다.

안개는 자욱하고 아주 쌀쌀했지요.

3번 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옥산에서 우측으로 꺽어졌습니다.

'모동'가는 길입니다.

'모동'들어 보셨나요?

몇해전 포도로 히트를 친 마을입니다.

첫번째 고개, '큰재'를 넘었습니다.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주위는 포도밭아니면 사과밭이었습니다.

 

큰재 정상에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폐교가 하나있어 사진을 한장.

이곳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이라 양쪽으로 등산 안내 리본들이

울긋불긋 어지러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수분재...즉, 물길이 갈리는 곳입니다.

비가 떨어져 그 물이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고

서쪽으로 흐르면 금강이 됩니다. 이러한 곳은 우리나라에 많이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첫날 올랐던 첫번째 고개 '큰재'입니다.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

 

고개를 지나 상판저수지옆 휴게소에서 쉬면서 음료수를 하나 사 마셨습니다.

그러자 젊은 아낙이 '더운물이 좋다'며 뜨거운 물을 한대접 들고 나와

호호 불어가며 언 얼굴을 녹였습니다.

아직도 가끔 이런 인정이 남아있어 여행을 한층 즐겁게 합니다.

 

모동마을 포도 집하장엔 포도 상자가 꽤 싸여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깨 물으니 저온창고에 넣었다 11월까지 출하를 한다고...

아..참 그게 있었지 했습니다.

 

다시 고개를 올랐습니다. '오도치'. 경북과 충북의 경계입니다.

오르며 사과 과수원 울타리에 떨어져있는 낙과를 한개 집어

소매로 쓰윽 닦고 먹었습니다. 덥고 갈증나던 터라 얼마나 맛있던지....

작년 여름 여행때에는 사과며 복숭아며 어찌나 아주머니들이 많이

주시던지...나중에 먹으라고 아예 봉지에 담아주시기도 했지요.

정상에서 쉬며 간식 먹고 사진찍고...

 

고개를 내려와  '황간'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황간....이번 여행의 주목적지입니다.

한참전에 돌아가신 제 어머님의 고향입니다.

어머님이 처녀시절 친구들과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이 앨범에 있습니다.

사진밑에 써있습니다...월류봉....

언제부턴가 이곳을 한번 가봐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월류봉을 ?았습니다. 물이 차다는 한천(냉천)강가의 정자입니다.

그림같은 곳이었습니다...한적하고....

정말로 달님이 머물다 갈 정도이었습니다. 이름그대로....

우암 송시열선생님이 낙향하여 처음 머무신곳...어머님 생각도 나고....

월류봉앞에서 기도원을 운영하시는 도사같은 분을 만나 이것저것

설명도 듣고...멋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 주셨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사진 찍으셨던 황간의 월류봉입니다.

 

황간도 전에는 제법 컸던 고을이지요.

그래 향교도 있었고 '원'도 있었고 봉화대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주보다도 작은 시골 마을 그대로입니다.

황간은 한천에서 잡히는 올갱이가 유명하다여 역앞에 있는 식당을

?았지요. 지명이름이 들어간...

올갱이 해장국을 시켰습니다. 올갱이 보다도 배추국이 그만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모동에서 내려온 49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 갔습니다.

상촌서 내려온 큰개울을 따라서...

이물은 덕유산옆의 민주지산, 삼도봉(충북,전북,경북 3도가 만나다는 뜻)에서

발원한 것으로 수량이 비교적 풍부합니다.

여기서부터 이번 여행의 두번째 목적지인 '도마령'까지는 계속 오르막입니다.

약 30키로 정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상촌에서 '도마령'을 향하여....저 앞 첩첩 산속에 도마령이 있습니다.

 

 

길옆의 가로수도 모두 감나무..주황색 큼직한 감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감을 따시는 부부께 물으니 관리는 군에서 하지만 따먹기는 전답임자가 한다고...

하두 크고 실해서 먹고 싶지만 떫어서...포기. 

대신에 포도밭에 남아있는 머루포도들을 따 먹었습니다.

가을에 여행을 하니 참 좋습니다. 먹을게 많아서...감, 사과, 포도 등등

 

부근에는 물과 연관된 지명들이 많습니다.

수동리, 노천리(원래는 느리게흐르는 물임), 어촌, 수원, 버드실 등등

이곳의 유명한 피서지 '물한계곡'도 물이 많은 계곡이라는 뜻입니다.

상촌면까지는 그런대로 완만한 오르막이라 괜찮았습니다만

상촌서 부터는 계속 계곡을 끼고 인적없는 산길을 올랐습니다. 

 

여기도 물론 감나무가 많지만 그 못지않게 호두나무가 많았습니다.

호두는 천안이 유명하지요. 그래서 천안 호두과자가 유명하고...

처음 심은곳은 천안의 광덕사라는 절 주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는 곳은 이 근처 영동입니다.

영동도 호두, 곶감, 포도가 유명합니다.

 

도마령으로 올라가면서 집짓는 공사장에서 쉬며 집구경하고 인부들과 한담...

밭에서 야콘캐는 모녀와 사진 찍고 얘기 나누고...

정말 어렵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올랐습니다.

이곳 도마령은 김훈씨의 '자전거여행'책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눈 덮힌 꼬불꼬불한 비포장길을 보고는 뿅- 갔었지요. 그래서 별러 별러 왔는데...

길은 몇년전에 포장을 했답니다.  아...실망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도마령 올라가는 길 - 소설가 '김훈'씨는 비포장 눈덮힌 길을 올라갔는데...

 

햇살이 황금빛으로 능선을 비출때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반쯤 죽어서...

해발...800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쉬고 사진 한 컷...

내려가는 길은 허망했습니다.

올라갈때는 몇시간을 헉헉거렸는데...내려갈 땐 휘익하니...

일,이십분밖에 안걸리니까요....그래도 제한 속도 60키로는 지켰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세번째 고개인 도마령을 거의 반 죽어서 올라감

 

내려서서 첫번째 마을. 조동리....

길 바로 옆에 그림같은 같은 폐교...너무 좋았습니다.

곁에는 맑은 계곡...운동장 주위엔 노랗고 빨간 아름드리 나무들...단아한 건물..

저런곳에 공방이나 하나 차릴까도 했습니다.

나중에 한번 알아보렵니다.

 

다시 계속 계곡을 내려가 무주군 설천면 남대천에 도착했습니다.

남대천...눈녹은 물이 흐른다는 설천의 큰개울입니다.

물이 맑아 다슬기가 많고 그래서 반디불이 많다는...

근처에 반디공원도 있습니다.

누구는 그러대요...별로 없다고...그럼 우리 청계산보다도 못하잖아...?

 

6시가 가까워와서 더 이상가는걸 포기하고 설천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여관도 없어..민박집에...

설천은 예전의 설천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번화해 졌습니다.

소위 말하는 '발전(?)'....

빨래, 샤워하고 ?아간 밥집은 진부령 황태집.

맛있었습니다. 황태집으론 지금까지 제일...

비록 구석의 황태박스에는 '러시아산'이라고 쓰여있었지만...

구이도 구이지만 뽀오얗게 펄펄끓인 황태무우국...끝내 줬습니다.

 

피곤해서 눈비비고 피씨방을 ?았습니다.

전에는 여행하면 매일저녁에 학교 홈피에 올렸었지요.

그럼, 교장 교감 아이들이 벌때처럼 댓글달고 응원해 주고 했었는데...

그점이 하나 섭섭하군요...

한시간반 동안을 컴컴하고 담배 냄새나는 피씨방에서 글을 올렸는데

어찌된 영문인지..모두 날라가 버렸습니다.

그래 오늘 다시 어제것을 올립니다.

 

 

 

간밤의 민박집은 여엉 아니었습니다.

심야전기 보일러라 9시부터 난방이 된다고 하더니만

잠들때까지도 냉고래였고 아침에야 따듯해졌으니....

 

아침 대신에 빵과 우유로 대신하고 일찍 나셨습니다.

오늘 목적지는 '성주', 대략 8,9십 키로 정도 될겁니다.

3번 국도를 타고 동남쪽으로 달렸습니다.

제일 먼저 도달한 곳은 그 유명한 '나제통문'입니다.

예전에 백제와 신라가 교통하던 좁은 턴널이지요. 나도 사진 한장...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교통로 '나제통문'입니다.

 

계속 남대천을 끼고 상류로 상류로 완만하게 길을 올랐습니다.

아침 역광에 가로수의 단풍이 더욱 빛났고....신선했습니다.

처음 도착한 '무풍' 역시 오래된 고을입니다.

첫고개까지는 가게가 별로 없을것 같아 간식과 음료수를 샀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덕산재를 향해 오르는 계곡길의 아침 풍경

 

 

마을 끄트머리에서 아주 아담한 오래된 목조 일본식집을 보았습니다.

근처에서 고구마를 캐던 아주머님께 물으니 자기가 산 집이라고

일제때 연초조합 건물이었다고 하시며 그 집과 관련된 여러 얘길 나누었습니다.

문득, 저런집이 시내에 있어 일식집을 하나 내면 끝내 줄텐데..했습니다.

초소한 79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아름답고 단아합니다.

 

맑고 깨끗한 계곡을 따라 언덕이 계속되었습니다.

지칠때쯤되어 오늘의 첫번째 고개, 덕산재에 도착하였습니다.

해발은 대략 600여 미터, 여기도 백두대간이라 안내판과 함께 울긋불긋...

다시 내리막길을 총알처럼 내려왔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덕산재 정상(해발 약 650미터) - 여기도 백두대간 입니다.

 

연화리...이름처럼 아름다운 마을 정자공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본것중 가장 아름다운....너무 이뻐 사진을 연신 눌렀지요.

그앞에는 아담한 보건지소와 물리치료실...

아십니까?  요즘 시골에는 제일좋은 건물이 보건진료소이고 거기엔 꼭

물리치료실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시골에 살어도 괜찮겠지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덕산재 아래 연화리의 너무도 아름다운 마을 공원

 

이어 도착한 곳은 관기리...관터입니다.

무슨 관이 있었는지는 주민들도 잘 모르더군요.

지난번에도 진주가면서 하루밤 자고 간 동네입니다. 밤이 늦어 할수 없이...

묵었던 민박집을 지났습니다.

얼마나 엉성한지 샤워장도 없고, 방에는 싸구려 장판에 달랑 전등 한개...

주인의 배려로 그집 부엌에서 몸을 씻었으니까요.

옆에는 근처 양계장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왁자지껄하고...

정말로 장판 깔린 축사와 다름 없었습니다.

 

4거리에서 바로 보이는 언덕길로 들어 섰습니다.

계속 30번 도로. 이길로 가면 청암사가 나오고 결국 성주가 나옵니다.

허걱거리고 오르니 아스라이 저 멀리 내가 넘어야 할 고개마루가 보였습니다.

여-휴..저걸 또 어떻게 넘나..하면서 힘을 주어 패달을 밟았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또 고개...저 멀리 뿌연 능선의 가운데에 역사다리꼴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 가릇재 정상입니다.

 

목이 말라 포도를 또 따 먹으려고 내려서 ?아보니

말라 비틀어진것 뿐이었습니다. 실망을 하고는 사과밭을 ?았지만

멀리만 있더군요.  그래 할 수없이 풀섶의 감나무 아래를 뒤져서

떨어진 감을 물에 씻어 먹었습니다.

맛이 없었습니다.

모든 과일은(산밤도 물론) 관리를 하지않으면 맛이 없어 못 먹습니다.

 

죽을똥 살똥 고개를 올랐습니다.

정상 이름은 가릇재...원래는 찬바람이 분다는 추령이었지요.

이것이 변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김천에서 버섯따러 산보겸 오셨다는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힘들지 않냐, 자식은 어떻게 두었느냐등등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니 등뒤에서 아주머니가 길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고개를 내려갈 채비를 했습니다.

윈드자켓을 꺼내 입는 것이지요. 바람이 너무 차니까요.

올라갈때는 벗고 흠뻑 땀 흘리고....내려갈때는 차갑게 식고...

휭하니 달려 내려와 청암사입구에 도착했습니다.

 

30여년전 대학때, 그림 그리러 두어번 온 적이 있는 곳입니다.

물론 그때는 이길도 없었지요. 비포장 산길을 버스로 터덜거리고 들어와

다시 4,5십분을 걸어서 올라 왔는데...

절로 들어 갔습니다.

많은것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숲이 무성해졌고....

따라서 계곡이 아주 깊어졌습니다.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절집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때는 절집이라고 해봐야 2,3채 밖에는 없었는데...지금은 무슨

'비구니 승가대학'이라나가 들어서 건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젊은 스님들도 많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30년만에 다시 ?아간 청암사...옛날엔 저 다리 아래에서 텐트를 치고 일주일씩 그림을 그렸는데....

 

전에 텐트쳤던 절마당앞 개울가도 살펴보고, 아침에 감 줍던 언덕도 올라보고..

내가 이젤 펼치고 그림 그리던 장소도 ?아보고...

참...그때 스님들 몰래 땅콩을 캐서 삶아먹고 했었는데...

 

입구의 식당에선 순두부에 동동주를 한 대접 주문했습니다.

동동주는 마치 식혜 같았습니다. 어찌나 밥풀이 많던지....

그리고 하두 독해서 반잔도 못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오후내내 술이 취해 알딸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절 입구 식당의 순두부 백반에 동동주...식혜같이 밥풀이 많았고 너무 독해 오후 내내 알딸딸 했음.

 

 

증산에서는 카센터에 들러 길을 물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유성리라고 전에 버드나무가 많았던 곳입니다.

지금은 버드나무라곤 흔적도 없지만...

그냥 개울따라 주욱 내려가면 너무 싱거울것 같아 옆의 계곡으로 돌아가려고...

그러면 성주까지 한 110키로 정도 될것 같고 시간도 얼추 맞을것 같아서

그랬더니 주인 왈, 그 길은 사람이 안 다닌지 오래되어 아예 없어졌다고...

큰일 날뻔 했습니다. 그길로 들어 갔더라면....

그렇지만 그 안에는 예전에 유황을 캐던 '황점'마을도 있고 마고할미가 산다는

'마고실'도 있고 돌이 많다는 '석항령'도 넘을수 있는데....

 

그래 결국 내를 따라 내려 왔습니다.

물이 아주 맑고 곳곳에 기암절벽 , 그리고 정자, 경치가 아주 그만입니다.

이름 그대로 '가천'입니다. 고장 이름도 걸맞게 금수면이고...

중간 중간 쉬면서 구경하고 사진 ?고....술도 취했겠다...

제가 자주가는 정선의 소금강과 아주 흡사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주호까지 계속되는 '가천' 풍경-굽이굽이 이런 곳이 많음

 

한참을 내려와 성주호에 다달았습니다.

호반 휴계소에서 할아버님과 한담....자기네도 비싼 자전거가 있다고...

석양에 반짝이는 은파를 배경삼아 호수 사진도 찍고

다시 언덕을 몇개 넘어(작은) 드디어 이곳 성주에 도착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주호 풍경 - 여기서부터 작은 고개를 서너개 넘어 성주에 도착함.

 

성주...전에도 한번 지나친적이 있습니다.

물론 참외로 유명하지요.

이곳은 논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참외 비닐하우스입니다.

마침 내년 농사 준비철이라선지 아주 번잡하고 지저분했습니다.

길가에 쌓아둔 유기질비료에서는 분뇨냄새가 진동을 하고

비닐과 스레기가 날리고...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연기...

아주 안 좋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 정취와는 전혀 상반되는...

 

제일 낫다는 모텔에 짐을 풀고 물론 빨래, 샤워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와 또 택시기사에게 물었지요.

돼지고기 두루치기백반. 1인분은 안된다는걸 눈짓으로 해결하고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반도 못 먹어 죄송했지만....

여기는 방에 컴퓨터가 있어 좋습니다.

 

아..정말 피곤합니다.

내일은 구미에서 친구 만나고 낙동강을 따라 올라갈 겁니다.

전화를 했더니 여기까지 와서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가냐고 서운해 합니다.

오늘은 이만 하렵니다.

자 그럼 다음에... 

 

 

10.25.(성주에서 다시 상주로)

 

아침 일찍 자전거를 끌고 나오니 안개가 자욱합니다.

간밤에 모텔에서는 여관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옅은 안개와 함께 들판에서 폐비닐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들어와 할

수없이 창문을 닫았었습니다.

 

아침 안개속에 시가지를 벗어나 구미가는 도로를 ?았습니다.

이곳 성주는 옛날 성주가야의 도읍이 있었던 곳입니다.그래서 아직도

마을 한켠에는 몇몇 고분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물론 도굴당했지요.

지금은 참외가 유명하지만 그 전에는 수박이 유명했습니다.

속성 재배하여 다른곳보다 일찍 시장에 나와 아주 비싼값에 거래되던...

그러다가 지금은 척박한 토질에서도 잘 되는 참외로 바뀐것입니다.

 

구미로 해서 김천으로 가는 새로 놓인 4차선 도로가 있지만 구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새로 뚫린 4차선 도로는 훨씬 주행하기가 편

합니다. 언덕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경사가 아주 완만하며 거의 직

선도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로는 시간당 25키로로 주행할 수 있

습니다만 재미가 없습니다.

 

길옆으로는 철재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주변과 완전히 격리될 뿐

만 아니라 사람이던 짐승이던 그 어느것도 들어오고 나갈수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굉음을 울리며 차량들만이 미친듯이 질주하는, 단지 목적

지까지 단시간에 이르게 해주는 기계장치와도 같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여행은 만남이며 교류라고..그래서 루쏘는 여행은 걸어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도로를 차를 타고 가는것은 절대로 여행이 아닙니다.단순한 이동

입니다.이런 단순한 이동에는 사람이든 자연 또는 그 어떤것과의 만남

도 교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도로로 접어 들었습니다.

모든 차들이 새길로 다니니 이런 도로는 더욱 한적하여 자연과 교감하

고 사색하기에 훨씬 좋습니다.

뽀오얀 아침 안개속 가로수에는 새들이 어찌나 조잘대고..길가의 이슬

머금은 꽃들과 들풀들은 얼마나 수줍은지...정말 정말 좋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 안개길(가로수의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너무 좋았슴)

 

한시간 남짓, 꼬불꼬불한 낮은 고개를 두어개 넘어 친구의 공장 부근

에서 녀석을 만났습니다. 합성섬유 가공공장을 하는 친구(중,고, 대학

동창)는 낮은 환율과 인건비등으로 경영이 어렵다고 했으며 우리는

간단히 식구들 안부를 묻고는 헤어졌습니다. 녀석은 계속 ‘너 아주 미

쳤구나...이렇게 밥도 한끼 안먹고 가느냐?‘고 서운해 했습니다.

 

한시간을 더 울라가 낙동강 철교가 보이는 강가에 다달았습니다,

왼편으로는 ‘구미’시이고 강 건너 오른쪽은 ‘왜관’입니다.

주유소 매점에서는 더운김이 모락모락나는 어묵을 팔고 있어 따끈한

국물에 어묵에 하나 먹었더니 몸이 아주 훈훈해지고...500원의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한적한 강가를 달리고 싶어 강을 건넜습니다. 강가에서

낙동강철교 사진도 찍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안개속의 낙동강 철교(왜관쪽에서 구미방향으로 )

 

여기는 아시다시피 6.25전쟁때 최후의 방어선으로 치열한 격전이 있

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인근에는 전쟁기념관도 있습니다.

 

아뿔사....강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주행의 꿈은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강가에서 모래를 운반하는 대형 덤프트럭들이 얼마나 많이 다니는지...

강물은 아예 뵈지도 않고... 이번 여행에서 이렇게 끔찍한 도로는 처

음이었습니다.

끔찍한 도로를 한시간 정도 달리자 이번에는 구미공단...매케한 냄새...

여기도 역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전 자전거 여행때 항상 대도시는 되도록 경유하지 않습니다.

 

구미시...

60년대말까지만 해도 인구 만명이 채 안되었다는 그야말로 시골 마

을이 지금은 경상북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급성장한 곳입니다.

지금은 구미시에 편입된 상모동에서 태어난 박대통령의 후광때문이

었지요. 처음엔 섬유공단 그리고 70년대에 전자공단...

그렇게 지금은 제4공단까지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어 있습니다.

 

제가 대학때 이곳에 있는 구미공고로 방학중에 ?주간 실습을 나왔

었습니다.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이곳의 구미공고는 당시 국내의 어느대학, 어느기업 보다도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박대통령이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기능

인 양성을 위한 전진기지로 최고의 시설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학교의 실습장 한쪽에서는 포탄을 제조하고 있었으니까요...

 

구미시를 벗어나서 부터는 강을 끼고 달렸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왼편 언덕에 고색창연한 기와집들이 보여 점심도

먹을겸해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점심을 주문하니 시간이 좀 걸린다하여 마을구경을 나섰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멋진 고택들...

 

풍산 ‘류’씨(류성룡 후손)집성촌으로 원래는 임하댐 밑에 살다가 댐

으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집단 이주를 한것이라고..

도에서 지정하고 보호를 받는 문화재급 고택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저기 골목을 기웃기웃하며 집들을 구경했습니다. 주렁주렁 매달

린 감들과 어울려 경치가 아주 그만이었습니다.

늘 그러지요...저런집 한 채 지어놓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누마루'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감나무와 고택

 

다시 오늘의 주 목적지 ‘낙동나루’를 향해 1시간정도 더 달렸습니다.

길바닦엔 차에 치인 뱀들의 주검이 많았습니다.

무심코 숫자를 세어 봤더니 근 20여 마리...어떤것은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죽은것도 있었습니다.크고 작은걸 보니 아마도 한가족인듯.

논에서 살다가 겨울잠을 자러 길옆의 언덕으로 가던중 변을 당한것

같습니다.

 

구름이 잔뜩 끼었더니만 기어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급해 더욱 힘주어 빨리 패달을 밟았지요.

 

드디어 오늘의 주 목적지인 낙동나루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나루가 없지요. 대신에 새로 세운 낙단교를 건넜습니다.

 

이곳의 지명이 ‘낙동’입니다. 낙동강의 이름이 유래된...

상주의 옛이름인 '낙양'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낙동입니다.

옛날에 이곳에는 경상도로 가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큰 ‘낙동나루’가

있었고 나루터 옆에는 이곳을 지났던 시인, 묵객, 선비들이 올라 풍

광을 감상했던 ‘관수루’가 있습니다. 강물을 구경한다는...

‘낙동강 700리’라는 말도 이곳에서 부산까지를 이르는 말이지요.

 

지금의 관수루는 근래에 다시 세운 것으로 원래는 강 반대편에 있었

는데 자주 홍수의 피해를 입어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합니다.

다시 돌아서 옛날 다리를 되건너 관수루에 올랐습니다.

이름도 유명한.. 이규보, 김종직, 김일손, 이황 같은 분들의 글들이

2층 누각에 걸려 있었습니다.

또 한심했습니다. 한자를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런 글들을 읊조리며 비오는 낙동강을 감상해야 하는데...

나도 길 떠난 선비처럼 한양하늘을 바라보며 잠시동안 님 생각을

하였지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오는 관수루에 올라 한양하늘을 바라보며 님생각에 빠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까막눈을 한탄하며...

 

 

자전거타고 정말 고개를 많이 올랐습니다. 나루터도 몇군데....

고개와 나루에서 가만히 생각하면 정말 좋습니다.

그 옛날 고개를 넘고 나루를 건너던 과객, 부임차 길 떠난 선비, 장

사치들, 배웅나온 가족이나 연인들...

근처에는 반드시 주막이 있었을테고.....아....이런 구구절절한 사연

들이 영화의 장면들 같이 그려집니다.

 

제가 자전거로 많은 고개를 넘고 다시 카약을 산것도 이런 나루들을

배로 유유자작 들러 보기 위해서입니다.

실은 그리고나서 ‘고개와 나루’에 대한 책이나 한권 내볼까 했더니..

벌써 누가 썼습니다. 그래서 ‘아하...세상엔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구나‘했지요.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하늘은 시커먼게 빨리 상주로 가야합니다.

서둘러 다시 상주로 가는 길로 들어 섰습니다.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합니다.

 

처음 고개는 산촌마을로 가는 고개였습니다. 길 입구에 ‘하늘 아래

첫동내‘라고 하여 속으로 웃었더니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헉헉거리고 올랐습니다.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물도 준비

안 했는데...고개 마루에는 꽤 넓은 농경지가 있었고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마침 마을회관 앞에선 천막을 치고 잔치 같은게 열리고

있었습니다

?아갔더니 어느 회사에서 마을주민들에게 가스렌지 무상으로 증정

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 길손으로 막거리를 거푸 몇잔을 얻어마시고 고기와 음료수도..

 

고개를 내려오자마자 다시 고개...

이번것은 좀 낮았습니다. 유유자작 술김에 노래도 부르며 아주 쉬엄

쉬엄 올랐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노래를 부른것 같았습니다.

정상에서는 아주 퍼질게 앉아서 감정잡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다가

내려와 얼마후 출발했던 친구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틀간 신세진 봄부터 수리중인 친구네 집(제 카약과 자전거가 보임)

 

원래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자고 다시 북쪽, 예천, 안동지방으로 한

이틀 더 돌아다니려 했었는데 밤새로록 비가 내리고 아침에도 오락

가락.....비구름은 골짜기마다 자욱해서 더 이상의 여행을 포기하고

올라왔습니다.

 

다음날 올라오면서 아주 운좋게 햇 반건시를 살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12월이나 되어야 곶감이 나오는데...

 

이번 자전거여행은 일자도 짧고 거리도 그리 많이 타지 않았습니다.

이번이 9번째 여행이었는데 보통은 5-6일, 거리는 하루에 100키로

기준으로 다녔지요. 생각해보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봅니다.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만항재(1340)도 거뜬히 넘었고...

하루에 150-160키로도 타고...

지리산 정령치와 성삼재를 하루저녁에 넘기도 했었는데....미쳤지요.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여행긴데 읽어주셔서 땡큐...

자 그럼 잘들 지내세요.T

 

 
다음검색
댓글
  • 08.06.18 10:34

    첫댓글 봉선생님을 뵈면 언제나 드는 생각은 닮고싶은 인생선배님이시다..입니다.근래에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는것은 역할모델을 할 선배들이 없다라는 신문기사가 생각납니다..잘 지내시죠? 언젠간 물위에서 뵙겠죠~~~~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선생님..

  • 08.06.18 19:46

    정말 대단하십니다. 맞습니다. 젊은이들이 자연과의 도전에 나서서 거기서 인간의 능력과 용기 그리고 개척정신을 느낀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대학생도 단란주점에서 놀고 아버지도 단란주점에서 놀고 세상 잘 돌아갑니다. 돌다돌다 미처버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08.06.19 11:42

    감사합니다.

  • 08.07.08 11:31

    좋은 글과 사진 퍼갑니다.감사합니다.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