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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燧石)
이 기 영
나는 출근 시간이 늦어지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이불을 덮고 그냥 누워 있었다. 물론 잠이 들진 않았으나 일부러 눈을 감고 자는 시늉을 했다.
나의 이런 속을 아내가 알 턱 없다. 그는 아침상을 보다가 초조한 듯이 다시 방문 앞으로 와서 소리를 질러본다.
“혜경아 아버지 그저 안 일어나셨니?”
“아―니.”
혜경이가 때꼰한 목소리로 마주 외친다.
“어서 일어나셔서 세수하시래라. 오늘은 웬 늦잠이 드셨다니, 참 별 일두 다 보겠네.”
그러니까,
“아버지 어서 일어나시래요 네?”
하고, 혜경이가 가는 목청을 지른다. 아까보다 약간 성난 음성이다. 나는 어린 딸이 중간에 끼여서 대끼는 꼴이 액색¹해 보였으나 짐짓 못 들은 척하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나는 속으로 궁리해본다. 그들이 불쌍해서라도 고만 일어날까? 그러나 일어나면 또 어제처럼 가고야 말 것이다. 새끼에 매달린 돌멩이 격으로 또 질질 끌려가서 머리를 숙여 박다니? 더구나 어제는 노랑수염하고 말다툼까지 하지 않았는가. 나는 정말 인제는 그 노릇은 더 못 하겠다. 그래 오냐! 되는대로 되거라, 설마 굶어야 죽겠니. 이렇게 다시 마음을 도슬러 먹었다. 미구에 풍파가 날 것을 한편으로 송구히 여기면서.
아니나 다를까. 종시 내가 아무 기척이 없으니까, 아내는 벌떡 화증이 난 모양이다. 다짜고짜로 방문을 열어붙인다. 그리고 퉁망스럽게
“아니 그저 안 일어났수? 오늘은 웬일이래여…… 시간이 늦는구먼.”
“글쎄 안 간대두 그래!”
나도 공연히 화가 났다. 나는 아내의 안달하는 꼴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내 소리에 아내는 기가 질렸던지 잠시 목묵히 있더니만
“안 가다께…… 왜 어디가 아프시우?”
금방 그의 목소리는 여간 부드럽지가 않다.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아프지도 않으면 왜 안 가신다는 게유.”
아내는 빤히 나를 쳐다보더니, 권토중래²의 기세로 다시 대든다.
“잔소리두 퍽은 한다, 그전부터 가기 싫다지 않었어! 안 가겠다는데 왜 이리 떠드는 게야.”
나는 더 누웠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며 이불을 밀치고 나앉았다. 나는 그냥 있기가 무미해서 재떨이에 담긴 마코 꽁지를 주워들고 성냥불을 댕겨 물었다.
아내는 내 눈치를 보고 금시로 낯빛이 달라진다. 평시에는 그다지도 온순한 인상을 주던 그가 독살이 나면 찬바람이 획획 돈다. 그는 지금도 독기가 가득 찬 눈을, 마치 성난 율모기가 대가리를 꼰주들고 노려보듯 한다. 나는 아내가 성내는 꼴을 날마다 보거니와, 전기보다도 더 빠른 그런 성미가 대체 어디서 생기는지 모르겠다. 이 역시 악에 받친 강심살이가 그렇게 만들었다면, 불쌍하기 짝이 없으나 나는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약한 내 마음을 꾸짖었다.
아내는 무슨 큰일이나 당한 것처럼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입술을 발발 떨며
“정말 고만둘 작정이오? 정말!”
하고 덤빈다.
“그렇대두 그래.”
나는 속으로 켕겼으나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기위 서던 판이니, 앞일은 어찌 되든지 간에, 인제는 내뻗어야 하겠기에.
“아이구, 이 일을 어째야 옳담! 아이 지겨워…… 이눔의 꼴을 언제나 안t보게 된담, 내가 어서 죽어야지.”
아내는 별안간 방 안으로 들어와 털썩 주저앉는다. 그는 제 분을 삭이지 못해서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부르르 떤다. 금방 무슨 일이 날 것 같다. 나는 미리 그럴 줄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 대꾸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다만 쓰디쓴 감정을 담배 연기에 섞어가며 푸푸 내뿜고 얼없이 천장을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아무 말을 않으니까 아내는 더욱 답답한 모양이다. 그럴 줄 알았지만 언제와 같은 사설이 나온다. 나는 고만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당신은 어쩌자구 거기를 고만둔다는 게요. 어디 속이나 시원하게 말 좀 해봅시다. 정히 그러시다면 그까짓 것 소꿉질 같은 살림을 파산하면 고만이지 뭐! 남들은 취직을 못 해서 걱정인데, 일껀 붙잡은 직업을 불과 두 달이 못 돼서 그만둔다니…… 박선생은 무슨 낯으로 볼라남!”
“뭐, 박선생?…… 그 사람이 누구를 위해서 한 일인데?”
나는 박선생이란 말에 열이 벌컥 나서 아내를 흘겨보았다.
“당신을 위한 게지 누구를 위한 게야. 나중엔 별소릴 다 하는구려!”
“듣기 싫여…… 그까짓 직업 아니면 굶어 죽을까 봐 걱정야.”
“아따, 당신두 희떠운³ 소리 좀 작작 해요, 당신 주제에 직업을 가릴 건덕지가 뭐 있수. 아무게나 닥치는 대루 하는 게지 개백정질이 아닌 담엔.”
아내는 비양하듯이 입술을 내밀며 비죽거린다.
“뭐? 개백정이면 외려 낫겠다.”
나는 아내의 말이 마치 모닥불을 끼얹는 것 같아서,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꽹과리 짝 같은 것을 소리는 낼 수 없고 분을 참으려니 벌떡증만 난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
“그럼 지금 다니는 데가 그만 못해서 하는 말인감! 핑계는 좋지! 당신두 인젠 철을 좀 차려요! 나이 생각을 해서라두. 쥐뿔두 해논 것은 없이 큰소리만 치면 뭐 하는 게야. 애들 문자루 뻥이지.”
“큰소린 누가 큰소리야, 제가 지금 큰소리지.”
“아이그, 난 모르겠수. 댕기든지 말든지 나 혼자 못 살까 봐 걱정인가 뭐…… 그 웬수놈의 자식들이 불쌍해서 차마 떼칠 수가 없어 그랬지만…… 나 혼저 몸뚱이야 어디를 가기루 못 살라구…….”
아내는 “흥!” 하고 치마끈으로 코를 풀며 훌쩍인다. 눈물이 텀벙텀벙 쏟아진다.
“그런데 웬 걱정야.”
“걱정은 무슨 걱정. 어디 나 없어두 얼마나 잘들 사나 꼴 좀 볼 걸! 이년아 저리 좀 못 비켜!”
아내는 애꿎은 혜경이에게 트집을 잡으려 든다. 혜경이는 저의 모친의 서두는 품에 어쩔 줄을 모르고 놀란 고슴도치 떨듯 구석으로 피하며 옴츠러든다. 나는 큰 애들 둘이 학교에 간 것을 속으로 다행히 여겼다. 그들이 지금 집에 있었더면 또 지청구를 얼마나 먹었으랴 싶어서. 아내는 경대 앞으로 앉더니, 아침상을 보다말고 머리를 끄른다. 그는 어디로 나갈 모양이다. 그것은 언제와
같은, 내게 대한 시위운동이다. 나는 아내의 그런 버릇을 잘 알기 때문에 별로 놀랄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꼴이 보기가 싫어서 내가 먼저 의관을 차리고 나섰다. 물론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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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도 그들을 따라서 집행을 나갔었다.
○○동 개떼들은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 자지러지게 짖었다. 우리는 들어가는 집마다 값나갈 세간에 봉인을 붙였다. 집행을 당하는 주인은 마치 죄인처럼 떨고 한구석에 붙어 섰었다. 봉인은 솥단지까지 붙인 집도 있었다.
그 집주인은 나한테도 빌었다. 내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 비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은 내가 제일 순순해 뵈기 때문에 그랬겠지. 인제는 살 수 없다고 여인네들은 목을 놓고 울어드켰다.
나는 날마다 이런 광경을 목도한다. 아니, 목도가 무엇이냐 바로 내 손으로 집행한다. 그러니 인제는 심상하다 할까? 아니다, 차라리 그렇기나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 마음이 괴로울 것도 없겠지.
하긴 직업이 무슨 상관이냐고 나는 돌려 생각해보기도 했다. 기계적으로 사무를 처리하기는 다른 월급쟁이와 일반이 아니냐고 나는 오랫동안 자신을 변호해왔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내 편을 들어서 생각해본대야 사실이 그렇지 않은 것을 어찌하랴.
고리대금업자! 그것은 내가 그전에 가장 미워하던 대상이 아니던가. 대중을 못살게 구는 극악한 인간으로 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지금, 그들의 수하에서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 남의 생명 재산을 차압하는 하수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새삼스레 내 얼굴이 쳐다보인다. 내가 쓸개 빠진 사람이지, 당초에 왜 그럴 줄을 몰랐던가. 그러나 결국 따져본다면 소위 체면이란 것이 나의 사람 꼴을 그렇게 망친 것이었다.
그래도 양복때기를 걸치고 턱없는 돈을 벌어보겠다는 점잔 쳇 것이 그 속으로 머리를 디밀게 하지 않았던가? 하나 나는 지금도 그 마음을 고치기 전에는 백번 다른 결심이 소용없다. 설사 거기를 고만둔다 하기로 무슨 좋은 직업이 있어 나를 기다릴 것이냐. 나는 지금도 공연히 기분에만 날뛸 것이 아니다. 아주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단판씨름을 해야겠다. 그렇다! 나는 우선 더러운 체면부터 내버려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니, 자기의 과거가 물어 찢고 싶도록 아프고 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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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달 전에 박군의 소개로 그가 다니는 금융회사에 수금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집에 돌아와서, 아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뒤로부터 신병은 차차 쾌차해졌다. 나의 건강이 회복되어가는 것을 누구보다도 제일 기뻐하기는 아내였다. 그는 나의 병이 낫는 기쁨도 물론 크겠지만 그보다도 병이 낫기만 하면 어떻게든지 생활의 근거를 잡아주리라는 그 기대가 더 컸던 모양 같았다.
아내는 늘 말한다. 나보다 먼저 나온 박군은 금융회사에 취직을 해서 지금은 알토란처럼 오붓하게 잘산다고. ……같이 일하던 그런 이도 취직을 했은즉 설마 당신인들 못 할 게 뭐 있겠소. 정히 할 수 없다면 그이한테 떼를 써서라도 한 자리를 구해달라면 설마 안 될라구 하며 서두는 품이, 실상은 내가 병상에 누웠을 적부터 그들은 나의 취직 문제로 오고 간 말이 있었던 모양 같다. 그래, 아내는 박군을 꾀어서 틈나는 대로 종종 놀러 오게 하고 그럴 때마다 박군은 나의 마음을 돌리도록 권고하지 않았던가? 혹은 그들끼리 나 몰래 무슨 계획을 세웠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내는 박군의 살림을 부러워할밖에. 어쩌다 그 집에를 가보면 세간살이가 가볼 적마다 붇는다는 것이었다. 요전에는 뒤주를 사놓았더니 그다음에 갔을 때는 거울을 해 박은 새 양복장이 놓였더라던가.
그전에는 그 집도 우리 집과 같이 방세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다. 그것은 나 역시 잘 안다. 그런데 박군은 거기서 나온 뒤에 지금 다니는 금융회사로 취직을 하면서부터 차차 셈평⁴이 펴기 시작해서 그렇게 세간살이를 장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형세가 늘면 신수도 멀끔해지는 게라고 그때 아내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씨부렁거렸다.
그 댁 (박군의 부인)도 그전에는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에 주근깨가 닥지닥지 돋고, 궁상이 께―흘러서 주제가 꾀죄죄하더니만 인제는 것기가 훌렁 벗은 것이 이마에 잡혔던 주름살까지 활짝 펴지고 아주 딴 몰골이 돋아났다고……
“없던 괘종이 뚜벅뚜벅 벽에서 걸어가구, 윤이 번지르 나는 의걸이⁵와 반닫이⁶는 파리가 앉다가 낙상을 하겠더라! 마루에는 찬장과 뒤주가 근감하게 자리를 차지하구…… 그 집 엔 언제 가보아두 사는 것 같더구먼…… 원, 늬 집은 언제나 그렇게 살어본단 말이냐. 나갔다 들어오면 난 공연히 심사가 나서 못 견디겠드라!”
하고, 아내는 으레 그런 말을 하던 끝에는 마음이 언짢아서 철모르는 아이들에 게까지 심청을 부린다.
“그 댁은 언제 가보아도 벙글벙글 웃으며 어찌두 좋아하는지 몰라, 그리구 밤낮 그 양반 칭찬이지. 내년쯤은 새집을 사든지 짓든지 한다던가, 사람이 한세상을 살다가는 그런 시원한 꼴을 좀 보아야지, 이건 밤낮…… 아이그, 지겨운 놈의 신세두 보지.”
아내는 이렇게 저 혼자 언짢아서 한숨을 치쉬고, 내리쉬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나보고 들어보란 말이다.
*
어느 날이던가. 내 병이 우선할 무렵에 박군이 찾아와서 또 언제와 같이 변천된 시대 의식을 강조하고 간 뒤였다. 나는 그때 묵연히 앉았다가
“박군두 그전보다 퍽 달러졌군.”
하고, 혼잣알처럼 무두무미⁷ 중얼거렸다. 그것을 아내는 내 말이 마치 박군을 타박하는 눈치로 알았던지 금시에 실쭉해지면서
“그러기에 사람의 맘이란 먹기에 달린 게라우. 박선생두 인제는 그전 맘을 버리구 착실해졌기 때문에 지금 저렇게 셈평이 펴지 않었수.”
하고, 예의 설교가 또 나온다. 아내는 언제든지 박군의 말만 나오면 신이 나게 그 편을 들어서 말하는 것이 대단 불쾌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말을 일일이 타내다가는 한시도 빤할 틈이 없이 다투어야 한다. 그래 나는 말 같지 않은 것은 차라리 가릴 것 없이 참기로 하였다.
그러자 며칠 후에 박군이 분주히 찾아와서 다짜고짜로 이런 말을 꺼내었다.
“자네 내가 다니는 회사에 좀 같이 있어볼 생각이 없는가. 만일 의향이 있다면 주선해보겠네.”
내가 미처 대답할 새도 없이 아내가 얼른 나선다.
“박선생님! 아 그러실 수만 있거든 제발 좀 한 자리 징궈주셔요. 그라잖어두 뭐든지 해야 할 판인데, 그러면 작히나 좋겠어요…… 인젠 병환두 쾌차하시니까, 일간이라도 다니실 수 있을 텐데요 뭘…….”
“그럼 힘써보지요. 월급은 그리 많진 못하겠지요. 당분간은 수금원으로 들어가게 될 테니까.”
“뭐든지 첫술에 배부를 수야 있겠어요. 그래두 한 삼십 원은 되겠지요?”
“네. 잘하면 한 사십 원까지는 되겠지요.”
“아, 그만하면 우선 살구말구요. 지금은 어디 단 십 원이나마 제대루 생기는 데가 있답니까? 박선생님두 잘 아시지마는…….”
“네 그야 그렇지요마는…….”
박군은 슬쩍 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도 내 눈치를 슬슬 본다. 나는 끝까지 아무 대꾸도 없이 그들의 수작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박군이 다니는 회사란 데는 몇몇 사람이 대금업을 하는 금융기관이라는 것 이었다. 박군도 처음에는 수금원으로 들어갔었는데, 사무에 성실하기 때문에 들어간 지 몇 달 안 되어서 사무원으로 승차했다는 말은 그전부터 아내에게서 늘 들어왔다.
그래 그들은, 나도 수금원으로 들어가서 신용을 얻게 되면 역시 얼마 안 가서 사무원으로 승차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해놓고 권고하는 말이었다.
박군은 내가 한 말로 거절을 않는 데서 용기를 얻었던지 어디까지 나의 동의를 구하려고 설명한다.
“자네는 혹시 수금원이라니까, 창피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하긴 나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네마는 뭐 별게 아니거든, 일정한 규정에 따라서 세음조를 수봉하는 것뿐이야!”
“그럼, 창피할 게 뭐 있어요, 지금 세상에서·…… 무슨 짓이든지 난, 돈만 생긴다면 다 하겠어요. 사람이 굶는 것보다 더 창피한 노릇이 없지 않어요.”
“허허. 그렇지만 워낙 창피한 일이야, 설혹 굶기로서니 할 수 있습니까.”
박군은 내 대신으로 아내가 대답하는 말에, 만족을 느끼는 모양이다. 연해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담배를 퍽퍽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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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생각하면 박군이 그때 나의 취직을 위해서 진력한 것은 제따로 까닭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남까지 끌고 들어가는 심사라 할까?
나 역시 그런 눈치를 못 챈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는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그것은 아내가 나의 병을 지성껏 간호해준 은공을 생각하므로 그렇다거나, 또는 내가 없는 동안에 어린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기에 지지리 고생을 시키던 생각으로 미안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보다도 절박한 사정은 당장 호구지책이 막연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굶든지 먹든지 그전대로 맡겨버리겠지만, 인제는 육신이 멀쩡한 바에야 어떻게 모른 척하고 생활의 책임을 아내에게만 지울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러니 비록 수금원일망정 취직자리라고 구해놓고 다니라는데 덮어놓고 못 하겠다고만은 내뻗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 나는, 옴치도 뛰지도 못하게 만들어놓고, 함정에 빠트리게 만든 그들의 책동이 가증하면서도 할 수 없이 취직하기를 승낙하였던 것이다.
하나 나는 아주 나의 행동을 그들의 의사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당장에 거절을 했다가는 집안에 풍파를 일으켜서 그 결과로 또 어떤 비극이 생길 것을 두려워했음이다. 더구나 박군이 다니는 데를 내가 못 다니겠다면 아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좌우간 다녀보다가 여차직하면 고만두겠다는 나 혼자 작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쾌히 승낙을 하니까, 그때 그들의 좋아하는 꼴이라니! 마치 그들은 개선장군같이 기세를 올리었다. 때마침 점심 참이 되자 박군은 지갑을 있는 대로 털어낸다.
“아주머니 점심 좀 사다 먹을까요…… 돈 예 있습니다.”
“점심은 집에서 대접해야 할 텐데, 오실 때마다 돈을 내셔서 아이 참, 이를 어째!”
아내는 미안해하면서도 박군이 내주는 일 원짜리 지폐를 할 수없이 받으며, 내 눈치를 다시 보고는 서구픈 웃음을 웃는다.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인젠, 김군두 취직을 할 테니까 그때 많이 대접을 받지요. 허허허.”
“그럼 그러셔요. 호호호.”
그날 박군이 다녀간 후, 그 이튿날 바로 통지가 나왔다. 나의 취직은 갈데없이 된 모양 같다. 박군은 미리 다 주선해놓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취직 통지를 받던 날 아내는 마치 진사 급제나 한 것처럼 좋아서 야단이었다. 그는 어린애가 떠들기만 해도,
“쉬! 아버지가 걱정하신다, 조용조용하지 좀 못하니.”
하고, 질색을 해서 금하는 것이었다. 별안간 아이들은 웬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할라치면
“저런 맹추 좀 보지, 아버지가 오늘부터 일 다니시는 줄 몰라?”
하고, 핀잔을 한다.
“일 다니면 떠들지두 못하나 뭐!”
“그럼, 아버지가 속상해서 돈 안 벌어오시면 어떻게 살 테냐 응?”
“그전에는 왜, 떠들어두 가만두었수!”
“그전에는 아버지두 노셨으니깐 괜찮었지. 노는 사람이야 떠들지 않어 무슨 짓을 하기로 상관있나.”
“……”
경옥이 형제는 어머니의 말이 이상스레 들리었다. 참으로 돈이란 것이 이렇게도 좋은 것인가? 하룻밤 동안에 아내는 내게 대하는 태도가 천양지판⁸으로 달라졌다. 어제까지도 아내는 나의 언동에 대하여 심상하였을뿐더러, 어떤 때는 도리어 아이들 편을 들어서 나를 핀잔주고 은연중 멸시하는 태도까지도 나타내 보이던 그가 내가 취직 통지를 받고 나니까, 그는 금시로 입 안의 혀와 같이 싹싹하고 다정한 품이 어떻다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는 나한테 더 잘하지 못해서 애를 쓰는 꼴이 가관이었다. 내가 아이들과 겸상을 해서 밥을 먹을 때는 맛난 반찬을 내 앞으로 놓으며
“늬들은 고만 좀 먹어라! 아버지는 뭘 해서 잡수라구 그러니. 애들이 반찬속을 너무 밝히면 살이 안 찌는 법이야.”
하고 눈을 흘긴다. 그러면 젓갈이 찌개 그릇으로 가던 아이들은 어머니의 눈치를 보다가 김치 그릇으로 옮긴다. 내가 잠을 잘 때에도 그렇다. 아내는 마치 갓난이를 재운 때처럼 쉬쉬하고 야단이다.
“아버지가 주무시는데 왜 그리 떠드는 게냐, 조용히 좀 못 있어!”
“어머니는 밤낮 아버지만 위해! 뭐 우리들은 사람 아닌가.”
하루는 경옥이가 이런 말을 하며 퉁망을 부렸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주먹 을 쥐고 달려들며 주장질하기를
“그럼 이 집에서 누가 어른이냐? 아버지가 돈 벌어서 늬들을 멕여 살리지 않니.”
나는 아내의 돌변한 태도가 우스워 못 보겠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는 이와 같이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간 대신 회사에 나가서는 그 반대로 인금이 뚝 떨어지게 된 것은 웬일일까?
회사에서는 모든 사람이 내 위에 있는 것 같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난쟁이가 된 것 같다. 나는 모든 사람을 쳐다보게 되고, 모든 사람은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우선 박군부터 내 머리 위에 서서 나를 눈 아래로 깔보고 있지 않는가?
나는 우리 집에서는 내가 제일 위함을 받고 있는데 나가서는 제일 천대를 받게 된 것이 무슨 까닭인가 의심했다. 나는 이 세상이 번연히 그런 줄을 알았지만, 어쩐지 그것이 새삼스레 이상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보는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는 황금의 마술에 번롱(馝弄)⁹을 당하는 셈이다. 하긴 그게 어디 나 하나뿐이랴. 온 세상 사람이 모두 다 그렇다 하겠지만.
아내도 황금의 신(神)이 씌어서 나를 별안간 떠받들게 되었다. 나도 황금 앞에 머리를 숙이기 때문에 그 반대로 인금이 떨어진 것 아닌가?
나는 떨어지기 위해서 올라간 자신을 다시금 슬퍼하였다. 그것은 마치 공중으로 팔매를 친 돌멩이가 다시 땅 위로 대가리를 처박고 떨어진 셈이었다.
그날 나는 소위 취직 사령장을 받으러 갔을 때의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껏 낯이 뜨뜻해서 못 견디겠다.
일개 쪼그만 무명 회사가 제가 무엇이라고 그리 버티는가. 기껏가야 고리대금의 영리 기관밖에 안 되는 것을! 그런데 테이블과 의자의 차별은 물론, 언어 행동에까지 계급을 따지는 것이 심해서, 마치 사닥다리와 같이 상하지별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들의 신분은 돈의 다과(多寡)로 계급을 따지는 것 같았다.
소위 사장이란 자는 나에게 사령장을 주면서 반말을 섞어가며 훈시를 하던 꼴이라니.
“에, 우리 회사는 규칙이 엄중하니까, 첫째 사규(社規)를 잘 지켜야 할 것. 그리고 복무심득(服務心得)에 의해서 자기의 맡은 바 직책을 충실 각근하게 근무할 …… 와갓다네?”¹⁰
그다음에는 지배인한테로 가서, 또 그와 비슷한 말씀을 듣고 또 그다음에는 서무부로 가서, 사무의 지시를 받고, 사령장을 들고 돌아다니며 인사를 치른다. 그리고 사무의 인계를 받는다 하기에 한동안을 이방 저방으로 박군에게 끌려 다녔다.
박군은 나를 소개한 만큼, 나를 위해서 자초지종 수고를 많이 하였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박군의 민첩하고 영리한 행동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계급 사회의 본색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볼 수 있어서 이 쪼그마한 일개 영리 기관에 있어서도 관료식의 색채는 가위 무르녹았다 할 만큼, 잘되어먹었다. 그만큼 박군은―그가 수금원으로 있은 지 불과 몇 달 안 되어 사무원으로 승차한 만큼―이 회사의 화형 (花形)이라 할까? 승상접하하는 품이 가위 능소능대(能小能大)해서 어디 하나 막힐 데가 없고 거친 데가 없다. 그것은 아내가 자기에게 하는 이상으로 하인이 주인에게 하는 충성을 다하는 것이 참으로 놀랄 만하다.
그날 사무를 파하고 박군과 같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음식점으로 끌어들인다. 중국요리점 대관원이었다.
보이가 차를 가져오자, 나는 아무 말 없이 더운 차를 마시고 있자니까,
“그래 어떻던가? 첫날 인상이…….”
하고 박군은 열적은 웃음을 웃으며 나의 얼굴을 의미있게 쳐다본다.
“뭐 어떨 것 있나 그렇지!”
나는 마주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처음 보니까 매우 우습지 않던가? 나 역시 당해보았으니 말일세마는……그렇지만 별수 있는가. 기위 전향을 한 바에는…… 무슨 일이고 간에 나는 철저하게 하는 것이 옳을 줄 아네.”
박군은 마치 어려운 말을 할 때처럼 내 눈치를 보아가며 주저하다가 용단을 해서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내가 자기의 행동을 어찌 보는지 몰라서, 나를 양해시킬 겸, 어떻게 이런 좌석에서 생활을 합리화시켜보자는 외교적 수단이 포함된 것 같은 구구한 변명으로 들린다.
나는 그의 말이 장히 아니꼬웠다. 제나 내나 할 수 없이 먹기 위해서 들어갔으면 끽소리 말고 맡은 일이나 할 것이지, 주제넘게 거기다 이론을 붙일 것이 뭐 있는가. 제 얼굴이 빤히 쳐다보이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실천에 옮기지 못할 이론은 아무리 늘어놓아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나는 박군과 똑같은 처지에 있지 않은가.
나는 끝까지 불유쾌한 기분으로 앉았다가 거기를 나왔다. 박군이 돈을 아끼지 않고 사서 권하는 음식도 어쩐지 아무 맛이 없었다.
나는 그때 박군과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도 변하기 쉬운 것 인가? 그것은 처음에는 박군한테 대한 의심이었으나 나중에는 내 자신한테까지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뒤미처 깨달았다. 그것은 마음이 달라진 게 아니라, 생활이 달라진 까닭이다. 만일 나 자신도 지금 박군의 생활에 완전히 융화할 수 있다면 그와 나 사이에 아무런 간격이 없을 것 아닌가? 나는 아직 박군의 경지(境地)에까지는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그를 아직 의심하게 된다. 그렇다니 말이지 몇 해 전에 그와 손을 맞잡고, 한 일자리에서 뒹굴 적에 어느 때는 배가 고파서 호떡 한 개를 가지고도 서로 노나 먹었지만 그것이 더 맛있었고, 그 생활이 더 재미있게 생각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일에 대한 정열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하긴, 나도 박군처럼 돈에 대한 정열이 생긴다면 모르겠다. 하나 나는 아무래도 박군과는 체질이 다른 것 같다. 나는 박군처럼 돈에 대한 소화력이 강하지 못하다. 만일 무리로 돈을 탐냈다가는 금방 체증이 날 지경인 걸 할 수 있나.
그 점은 아내도 나를 잘못 보았다. 아내는 나를 박군처럼 보고, 나도 박군과 같이 되란 것이나, 워낙 성격이 틀린 것을 어찌하랴. 그것은 배워서도 안 되겠지만, 나는 구태여 배우려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뒤로부터 오늘날까지 무려 두 달이나 가깝게 거기를 다니고 있다. 나는 날이 거듭할수록 다니기가 싫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금방 도로 나올 수도 없어서 한 달이나 채우고 고만두자 한 것이, 지금까지 질질 끌려 내려왔다. 나는 기위 들어간 김이니 얼마 동안 다녀보자고 뼈물어보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그들의 분위기에 싸이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공연히 화가 나서 못 견디겠는데 어제는 회계를 보는 최서기가 나를 빈정빈정 놀리겠지. 그는 노랑수염이란 별명을 가졌다.
나는 들어가던 날부터 오늘까지 사무실에는 별로 있지 않고 밖으로 수금을 다녔지만 어쩌다 그 안에서 일을 볼 때에는 아무한테나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 맡은 일만 할 뿐이었다. 나는 군국과도 그렇게 지냈다. 나는 워낙 입이 뜸해서 그런데다가 마음이 안 당기는 일을 하고 있자니 자연 심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나는 맡은 일만 하면 고만 나와버렸다.
그들은 나의 이런 속은 모르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모양이다. 나를 벙어리 같다는 둥 무미한 사람이라는 등,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대체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사느냐는 등 별별 소리가 다 들리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노랑수염은 차차 말버릇이 없어갔다. 어제만 해도
“여보! 긴상, 사람이 왜 그렇소?”
하고 다짜고짜로 책망 비슷하게 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사람이 어떻단 말씀이오?”
나는 무두무미에 그런 말을 들으니 고만 불툭해져서, 쏘아붙였다.
“사람이 왜 그리 무미하냐 말야. ……우리 회사로 말하면, 자사장 이하로 규지¹¹나 고쓰까이¹²까지 무여 한집 안 식구처럼 친밀하게 지내야 하겠는데 긴상으로 말하면 인젠 들어온 지가 두 달 가까이 되었은즉 뭐 서름서름할 것두 없지 않소? 그런데 도무지 누구하구든지, 다정하게 말하는 것을 못 보겠고, 늘 골난 사람처럼 뚱하니 있다가, 시간만 되면 홱 달어나고 마니 어디 그래서야 같이 있는 본정이 있느냐 말이지요. 다시는 그러지 마시우, 안 그렇소? 내 말이…… 복상두 생각해보시우.”
하고 그는 박군에게 동의를 구하며 쳐다본다. 나는 노랑수염의 간사한 말이 아니꼽게 들렸다. 나도 저와 같이 윗사람에게는 아첨하고 아랫사람한테는 거만을 빼지 않는대서 하는 말인가?
“본시 성미가 그런 것을 어찌할 수 있소.”
나는 그대로 있기는 모멸을 당하는 것 같아서 한마디를 대꾸했다.
“성미가 그렇더래도 고치면 되겠지.”
노랑수염은 마땅치 못한 듯이 윗수염을 손으로 비틀며 노려본다. 그리고 반말이다.
“난 고칠 수 없소!”
“뭣이 어째?”
그는 별안간 성이 파르르 나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도 곧 주먹이 들먹인다.
“어짜긴 뭘 어째! 공연히 건방지게 남의 참견은 말구 내 앞가림이나 잘하소!”
“아니 저 사람이 뮐 잘했다구 쇠는 게야 응! 쇠기를……”
노랑수염은 됩 다 화를 내며 콩팔칠팔한다.
“당신은 뭘 잘했다구 쇠는 게요. 달려들면 누구를 어짤 테야.”
나 역시 화가 나서 마주 대들었다.
“아니 왜들 이래요,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지구 고만들 둬요.”
그동안 박군은 뉘 편을 들 수도 없어서 불안을 띠고 있다가 우리들의 형세가 곱지 않은 것을 보자 두 틈을 뻐개고 만류한다.
“글쎄 복상! 내가 지금 저 사람에게 무슨 해로운 소리를 했기에 저라는 게요. 충언이 역이나 이어행(忠言逆耳利於行)¹³이라구, 자기한테 이로운 말을 했으면 했지!”
“저 사람은 뭐야? 건방진 자식 같으니.”
나는 그와 더 말하기가 싫어서 고만 문을 탁 닫치고 나와버렸다. 다행히 중역들은 다 나가고 사무실 안에는 박군과 노랑수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먼저 나온 까닭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누구를 원망하랴. 우렁을 잡으려다 수렁에 빠진 것을.
*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며 지향 없이 집을 나섰다. 나 역시 갈 곳이 없다. 그전 같으면 이런 때에는 박군을 찾아갔겠지만, 지금은 그러고도 싶지 않다. 나는 아무도 통사정을 할 곳이 없는 나의 고독함을 스스로 애달파할 뿐이었다. 욱하는 생각으로 하면 어디고 정처 없이 떠나고 싶었으나 그것은 나 한 몸을 위하는 것 같아서 못 하겠다. 나는 지금 다니는 데는 단연코 고만둘 작정이다.
더구나 노랑수염과 다투기까지 하였은즉 도저히 더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두루 궁리한 끝에 촌 선생밖에는 내게 차례 올 직업이 없을 것을 단정했다. 그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었다. 중학은 졸업 했으니 그만한 자격은 있을 것 같다.
나는 진즉 왜 그런 생각이 안 났던가 하고 후회하였다. 그렇다! 학원 선생으로나 가자!
그것은 내가 아는 친구 중에도 지금 학원에 가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안군이다. 나는 안군 생각이 나자 그한테 부탁해두면 혹여 자리를 구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 나는 그길로 이십 리 상거 되는 역말로 안군을 찾아갔다. 나는 안군을 만나보자 다짜고짜로 찾아온 뜻을 말했다.
“응 그래, 누군데?”
안군은 내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묻는다. 그는 내가 그 길로 나설 줄은 생각도 못 하는 모양 같다.
“누군 누구야. 바로 내가 희망잘세.”
“뭐! 자네가?”
안군은 한참 동안 벌린 입을 닫치지 못하였다. 그는 곧이가 안 들리는 것처럼
“아니 자네는 어디 취직 했다면서…… 금융회사라던가.”
“거기는 고만두었네 .”
“언제 그랬나?”
“오늘.”
안군은 더 묻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이 수긍되는 점이 있는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가 그런 생각이 있다면, 자리야 있구말구…… 그라지 않어도 요 너머 있는 ○○학원에 선생이 비어서 지금 구하는 중이라데. 아마 아직 못 구했을걸.”
“아 그런가. 그러면 거기 나 좀 있게 해주랴나.”
나는 귀가 번쩍 띄어서 안군 앞으로 바짝 대들었다.
“그야 어렴잖지. 자네가 의향만 있다면 이따가략도 물어봄세. 그러나 자네두 짐작하겠지만 돈을 생각한다면 아여 못 할 것이니.”
하고 안군은 나의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그야 물론 나두 돈을 벌라고야 촌 선생을 바라겠나. 명색 취직이라고 해보니까 도무지 마음에 맞갖지가 않어서. 나 같은 놈은 윌급쟁이두 못 되겠데…… 거기는 딴세상이야.”
“그렇지. 자네나 내나 돈하구는 인연이 멀 겔세…… 그러면 곧 올 수 있겠는가?”
안군은 갑자기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정색하고 묻는다.
“내일이라두 와야겠네. 우선 당장 살어야지.”
“자네가 모두 몇 식구지.”
“아이들 셋하구 다섯 식굴세.”
“다섯 식구라!…… 잘하면 호구는 할 수 있네. 아이들이 한 육십 명 된다니까 이럭저럭 한 삼십여 원 턱은 되겠지. 그렇지만 나두 그 짓을 하네마는 한푼 두푼 가져오는 소위 월사금이란 것은 술 먹는 사람은 술값두 못 되느니…… 그러니 아주 그런 줄 알구 올 테면 오게. 고생할 셈 잡구…….”
하고, 안군은 뒤를 다진다.
“그런 부탁은 더 할 것 없네.”
나는 아주 다짐을 두고 내일 다시 나오기로 약속하였다.
*
안군에게서 점심을 먹고 나는 저녁 때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안군과 상약하기를 내일 학원 당국자를 만나보고 모레부터라도 교편을 잡기로 하였다. 그것은 통학하는 아이들 때문에 우선 나 혼자만 나오기로 한 것이다. 어디다 밥을 붙여 먹고 남는 돈을 집으로 보낼 작정이다. 안군은 나의 그런 성산을 주저했으나 술 담배를 안 먹는 줄 아는 만큼, 존절히 규모를 차리면 한 달에 이십 원 쯤은 보낼 수 있다고 나중에 말한다. 좌우간 그렇게 있다가 내년 봄에 이사를 하든지 어쩌든지 해보기로 나는 결심하였다.
나는 이렇게라도 직업을 작정하니 마음이 거뜬하다. 비록 생기는 것은 적다 할망정 천진난만한 어린애들을 상대해서 날 것을 생각하니 거기에서 새로운 정열이 붙잡힐 것 같기도 하다. 성냥 대신 부싯돌을 치듯이, 교육자의 정열! 그것은 시정배의 돈벌이와는 다르지 않은가? 나는 그전에 선생질을 하찮게 보던, 자신을 꾸짖었다.
‘촌구석에서 콧물 흘리는 어린애들과 저 짓을 하구 살다니!’
안군을 작년에 만났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였으나, 물론 시대가 달라지기도 하였지만 나는 턱 없이 도회에서 그전처럼 뽐내보려는 생각이 남아 있어서 선생질을 할 생각은 염두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오니까 아내는 당황해하는 품이 나를 몹시 기다렸던 모양 같다.
“아니 어디 갔다 오시우?”
그는 나의 눈치를 보며 다급히 묻는다.
“아무 데 갔다 왔으면.”
나는 퉁망스럽게 내뱉고 의관을 벗었다. 아침에 당한 분이 그저 덜 풀린 때문이다.
“회사에 안 가셨수?”
“거기는 안 간대두 그래.”
“아, 그럼 잘되었군! 난 또…….”
아내는 무슨 일인지 저 혼자 좋아한다.
“뭬 잘됐다는 거야?”
나는 웬 영문을 모르겠다.
아내는 비로소 안심하는 기색을 띠며 화롯불을 부젓갈로 헤치면서
“당신이 아침에 그러고 나간 뒤에 나두 화증이 나서 박선생 집에를 가보지 않었겠수. 아, 그랬더니 그 댁이 그러는데 당신이 누구랑 어제 싸웠다는구려. 그래서 나두 비로소 당신이 가기 싫다는 속을 알었지 뭐요!”
아내는 말끝을 톡 쏘는 것이 왜 그럼 자기를 속였느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서로 의논을 했으면 일이 잘 펴일 수가 있는 것을―하는 어훈¹⁴이 내보인다.
“그런데 어짜란 말야!”
나는 아내의 말이 아무 흥미도 없게 들렸다.
“그래서 나두 아침에 내외간에 말다툼을 하구 지금 나오는 길인데 인제 보니까 그래서 회사를 안 간댔구먼 그럼 저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한걱정을 했더니만, 그 댁 말이 좋은 수가 있다구 하며 그러겠지. 그 양반이―당신 말야. 그러구 나가셨으면 정녕 회사에는 안 들어갔을 터이니까 이 길로 바로 최서기 댁을 찾어가서, 그 부인한테 빌어보라구. 그러면 그 댁이 워낙 사람이 좋으니까 사정이 딱해서라두 오늘 밤에 자기 남편을 삶어넘길 테니. 예전부터 베갯머리 공사가 무섭다구, 그런 거북스러운 일에는 여자의 입김이 들어가야 제일 쉬웁닌다 그러겠지. 생각해보니 딴은 그럴 상싶어서, 아니 그길로 삼청동 최서기 집을 찾어가보지 않었어요. 과약기언¹⁵입디다. 내가 좋은 말로 사과를 했더니만, 그까짓 거 걱정 말라구 아주 장담을 하겠지요. 참 구 댁두 사람이 무척 좋더구먼…… 그림 뭐 잘되지 않었수.”
아내는 아주 제 딴은 잘한 성싶게 되잖은 애교까지 피우며 늘어놓는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 번 웃었다.
“아니 뭣이 어째! 누가 너보구 빌러 다니랬니?”
“그럼 어짜란 말이야? 당신이 빌기는 창피할 터기에 내가 대신 빌었지. 일만 무사하게 됐으면 고만 아니우.”
“무사하면 고만이라구? 아니 누가 그대로 다닐 텐데. 주책없는 계집 같으니…….”
나는 인제는 아내가 또 나간다고 시위운동을 한대도 겁날 것이 없기 때문에 조금도 기를 꺾일 것 없었다. 나는 그길로 사직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내 눈치만 보고 있다가 종시 내가 개구¹⁶를 않으니까 답답한 듯이 묻는다.
“그게 뭐요! 쓰는 게?”
“사직원이지 뭐야!”
“뭐 사직원……”
아내는 사직원이란 말을 듣더니 고만 간질하는 사람처럼 기함을 하며 놀란다. 그러자 그는 내 앞으로 왈칵 달려들며 글씨 쓰는 종이를 두 손으로 뺏으려 덤빈다. 그리고 애걸복걸한다.
“여보! 내가 잘못했수.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할 테니, 이번만 참으시우…… 제발, 이 치운 겨울에 직업이 떨어지면 어떻게 살라구…… 네! 어서 그 종이를 찢읍시다…….”
“아니 이거 못 놔!”
나는 아내가 붙잡는 소매를 홱 뿌리쳤다.
“나를 죽일라거든…… 제발…… 당신이 정말 고만둔다면 나두 그까짓 것 자식들을 죄다 양잿물을 퍼 먹이구 한강에 가 빠져 죽지…… 뭐, 누구는 겁날 줄 알구.”
하며 아내도 식식하고 마주 대든다.
“고만두람, 이거 아니면 말로는 못 한다더냐.”
나는 고만 쓰던 종이를 짝짝 찢어 내버렸다. 그리고 일변 다시 의관을 떼어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길로 박군을 찾아갔다. 아내는 나의 강경한 태도에 불안을 느끼는 모양이었으나 그래도 내가 사직원을 찢고 나가는 것을 보고 은근히 믿는 눈치가 보인다.
“옜다, 숯 좀 사 오너라. 찌개 데울 불두 없이 꺼졌구나. 아버지가 이따 오셔서 저녁을 잡수실는지 모르니.”
나는 등 뒤에서 아내의 이런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이게 도무지 무슨 희비극인가 싶었다.
-끝-
2016년 6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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