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자가격리와 인간이 되기 위한 비밀 의례
얼마 전 남편과 아들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나는 음성이지만 밀접 접촉자로 2주간 자가 격리되었다. 말이 자가격리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강제 격리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재난 음식이 택배로 도착했고 코로나 지원금도 나왔지만, 집 밖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보통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할 필요가 없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를 때는 두 가지 양상을 보였다. 첫째, 고대 로마 시대에,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로마 시민들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노동은 전쟁에서 끌려온 노예가 했다. 로마 시민들은 무한히 주어진 자유 시간에, 콜로세움에서 사람과 동물을 죽이는 게임을 구경하거나 사우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로마의 국경을 지키던 용병인 게르만족이 로마를 무너뜨렸다.
요즘 전세계 넷플릭스 1위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대사와 로마의 무료함이 오버랩되었다. ‘오징어 게임’에서 사람 죽이는 게임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극빈층과 극부층의 공통점 은 둘 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 너무 가난해도 힘들어서 재미없고 너무 많이 가져도 지루해서 재미없단다.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로마의 콜로세움 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 우리는 보았다.
둘째,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요셉은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며 때를 기다렸다. 유배지에서 정약용 은 자신의 500여 권의 책 중 대부분을 18년 유배 생활 중에 썼다.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팔딱팔딱 뛰 물고기에 대한 글을 쓰며 사물의 도에서 길을 찾고자 했다. 토마스 머튼은 인정받던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봉쇄 수도원에서 진리를 찾았다. 신영복 은 감옥에서 고전을 곱씹었다. K 기업의 K 부장은 군대 시절 거꾸로 가는 국방부 시계를 보며 한숨 짓다가 주체 못할 답답함을 한자와 영어를 마스터 하는데 활용했다.
인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한 단계 더 성장하거나, 심지어 간헐적 한계 상황을 스스로 만들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어른이 되는 비밀 의식들이 그랬다. 동굴이나 숲 속에서 일정 기간 홀로 지내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나라는 단군신화에서 100일간의 자가격리로 이미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이 되는 비밀 의식으로 고요히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행동하여 다른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장자』 ‘추수편’에서 보면, 북해약이 하백에게 말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에 집착하기에 바다 를 모르고, 여름 벌레는 여름에 집착하기에 얼음을 모르며, 한 가지 사상에 집착하는 선비는 진리를 모른다고. 그러니 작은 바다에서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이에게는 큰 이치를 말해 주겠다고. 우물에 갇혀 있어도 작은 우물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으면 누구나 큰 바다를 볼 수 있다. 갇힌 것도 없고 열린 것도 없다.
갇혀 지내지만 자유로이 진리를 찾는 이들도 있고, 열려 지내지만 좁은 생각에 갇힌 이들도 있다. 2주간의 격리 기간, 더 큰 문을 열기 위해 진정한 인간이 되는 비밀 의례를 치르며 생각한다. 인생이 하나의 게임이라면 하느님께 나를 맡기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김미현 에스텔 원당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