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을 용(龍)으로 감싸고 싸움을 일삼던 어떤 청년이 예수를 믿고 회심한 후에 그 문신을 지우기 위해 다리미로 살을 태우기까지 했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미친 개 오태식도 교도소에서 개과천선하고 출소한 후에 가장 먼저 옛 사람의 흔적인 문신을 지우고 싶었습니다. 어둠에서 양아치로 살 때는 자랑스러운 훈장 같았던 이 문신이 빛으로 나오자 배설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죽어서 썩는 것 말고는 살아서 지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문신을 지우려고 했던 것은 옛 사람은 흔적까지도 벗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리미로 자기의 살을 지졌던 청년이나 오태식은 옛 사람의 흔적을 다 지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라도 감당하려 했습니다. 천국은 이런 간절함으로 예수를 찾고 붙잡아 새 사람으로 살고 싶은 죄인들이 들어갑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5~46).
우리가 옛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은 육신이 쪼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요16:8).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말씀으로 벌거벗겨져 용(龍)이 드러나야 옛 사람을 버릴 수 있습니다(갈5:24).
십자가의 복음은 자신에게는 일말의 소망도 없음을 아는 삭개오들에게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눅19:1~10). 죽는 것 말고는 용서받을 길이 없는 죄인이 나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런 나에게 그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주시려고 나를 대신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갈망하는 죄인들만이(요3:16) 새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갈2:20). 그래서 저 청년이나 오태식 같이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마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