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물을 가지고 있고 지나가는 사람이 목말라하고 있다면 나는 그에게 물을 건네 마시게 할 것입니다. 그건 우리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 사람이 물을 마시고 고맙게 생각할 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제가 끼어드는 차량에 대해서 100% 양보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바빠서 먼저 가고 싶은 마음이든, 그 길이 처음이라 미리 예상을 못하고 나중에야 차선을 바꾸려는 상황이든) 끼어드려고 하는 사람에게 저는 100% 양보합니다. 그 사람이 고맙게 생각할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전 끼어드는 다른 차에게 양보를 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로 사람을 평가하곤 합니다. 현재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옳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너그러운 마음이 없다면 제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마 주님도 그렇게 보실 겁니다. 주님은 결코 남들에게 인색했고 율법을 철저히 지킨 바리새인들을 칭찬하신 적이 없으시니까요.
사실 저도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남들을 제치고 먼저 차지해야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게 성공해야 박수받는다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굶은 말든, 다른 사람이야 목이 마르든 말든, 내가 먼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기는 게 지혜롭고 현명한 일이라고 배웠으니까 말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렇게 전제하고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시각이 완전히 변한 것은 미국에 유학을 하면서입니다.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거꾸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든 콘웰 신학교에서 나는 신학교란 이런 곳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로 경쟁하듯이 먼저 가려고 하지 않고, 내게 먼저 양보해준 후에 여유롭게 가는 다른 운전자들을 만나면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양보는 손해가 아니라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