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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婦人 傳
금선(金鮮) 현종(玄宗)때 일이다. 이때 조정이 파당(派黨)이 둘로 갈라져 밤낮없이 싸울때라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특히 국경지대 방비가 허술해져있었다. 거란,여진,말갈등은 오래전부터 우리 인근 국경지대를 약탈해왔는데 금선(金鮮)이 들어서고 나서는 이름있는 무장들을 계속 북도(北道)의 관찰사로 보내니 이때부터 오랑캐의 약탈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현종때에 이르러 나라가 다시 어지러워지니 오랑캐가 다시 국경에서 기승을 부렸다.
부인(婦人)의 어릴적 이름은 자희(慈姬)라고 했다. 부친 오승환(吳承煥)은 지역에서 향리로 지내면서 중앙에는 벼슬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선대(先代)는 정승을 지낸바 있어 다들 이 일을 기이하게 여겼다. 주변의 동료들이 뜻을 물으면 ‘공연히 중앙정치에 뛰어들어 파당에 휘말리면 결국 간신배의 모함이나 탄핵에 시달려 죽게될것이니 다만 그런 나변을 겪고싶지 않을뿐이다.’ 답하였다. 늦은나이에 장가들었는데 부인 배씨(裵氏)가 꿈을 꾸었는데 강철로 된 꽃이 하늘에서 수도없이 쏟아져 내리는것올 보고 놀라 달아나다 그만 깨어나보이 꿈이었고 알머안가 회임을 했다. 승환이 본래 선비라서 무인(巫人)을 불러들이지 않고 다만 옛 문헌을 첨조하고 태몽의 곡절을 알아보려 했다. ‘꽃은 예부터 계집을 상징하는테 하필 철로 된 꽃이 떨어진다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일이로다.’ 도저히 꿈의 징조를 알아낼길이 없어 탄식하였다.
열달후 배씨가 비로소 출산을 하였는데 딸이었다. 낳아보니 그 용모가 여느 계집아이 못지않게 곱고 다만 밤에도 울지않고 조용해 ‘참으로 순종적인 계집으로 자랄 징조로세’ 하며 오승환이 기뻐하였다. 아이가 자라서 열두살이 될 때까진 별 문제가 없이 여염집 규수처럼 자랐는데 열다섯살부터 몰래 병서를 들여 무예를 익혔고 또한 남몰래 칼을 다루는 스승을 찾아가 배우기를 청했다. 처음 승환이 곡절을 몰라 의아해하다 뒤늦게 알고는 놀라 자희를 불러 꾸짖기를 ‘네 계집아이로서 되려 사내들이 배워야할 병서를 읽고 또 손수 칼싸움 하는 것을 배운다니 대체 어찌된 일이야 ?’ 하였다. 이에 자희가 부친앞에 정중히 무뤂꿇고 아뢰기를 ‘시절이 어수선하여 변방의 오랑캐가 침탈이 잦은데 조정에선 나라일을 제대로 돌아볼생각을 안고 파당싸움에만 여념이 잆으니 이곳 길주(吉州)땅은 예부터 도성에선 멀로 오랑캐와는 가까워 그 방비가 허술해서는 아니되는데도 여전히 조정이 돌아볼 생각을 안하니 한낱 계집의 몸이라 하나 작게는 제 한몸을 지키고 그게는 무고한 백성들이 오랑캐에게 몹쓸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어찌 돌보지 않겠습니까. 부친께선 무릇 저의 뜻을 헤어려주소서.’ 하였다.
이때 국경지대 나변은 길주뿐만 아니라 인근 성천(成川),나진(羅鎭),온성(溫成),종성(宗成,명천(明川)등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희가 이때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대를 돌아보더니 ‘조정이 이토록 국경지대가 허술함에도 방비를 하지 않고 있으니 뜻있는 우리끼리라도 힘을 모아 마음을 합하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큰 봉변을 당할일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때 자희와 함께 무리지어 따르는이들은 대략 10여인 정도가 되었는데 역시 함께 사태를 돌아보며 앞날을 방비함에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승환이 점점 딸의 일이 심상치 않아짐을 보고 다시 꾸짖어 말하기를 ‘대체 어린 계집아이가 무엇 때문에 계속 병서를 익히고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더나. 오랑캐를 방비하는 일이라면 조정에서 알아서 할 일이니 너는 공연한 일을 자꾸 벌이지 말라.’ 하였다. 이에 오히려 자희는 반박하며 ‘조정이 국경의 일을 돌아보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천한 계집들이 손수 칼을 들고 나섰겠습니까. 다 작게는 저희 스스로를 지키고 크게는 고을과 지역을 지켜 결국 나라에 봉사하고자 함이니 너무 심려마소서.’ 하였다. 승환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제야 강철로 된 꽃비가 내리는 태몽의 뜻을 알것같도다.’ 말할 따름이었다.
자희는 이때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을 늘 데리고 다니며 이름은 ‘선명단(宣明團)’이라 명명(命名)하였다. 지수(知洙),화연(華蓮),경서(景瑞),미연(美淵),옥희(玉喜)등이 이를 주로 따라다니며 선명단의 일을 주도했는데 처음에는 7-8명 정도에서 15명 가까운 무리였다가 나중에 세력이 늘어났을때는 삼십명도 더 되었다. 이들은 자희의 주도하에 은밀히 병서를 읽고 무예를 배우며 그렇게 비상시의 전술과 기술을 터득할수 있게 되었다.
한번은 여진 오랑캐의 무리가 국경을 약탈하며 특히 죄없는 처자 십여인을 납치해갔다. 이에 자희는 무리를 불러모아 ‘지금 우리가 1:1로 적을 소탕할 수는 없으니 다만 계책으로서 일을 꾸며야만 성사될수 있다.’ 하여 처음 지수,화연등이 의아해서 말하기를 ‘큰 성님게선 어떤 계책이 있으십니까 ?’ 하였다. 이에 자희는 무리중 날래고 잽싼 이 3-4명 정도를 선발하여 인근 여진세력중 가장 세력이 큰 흑수적(黑收賊) 의 무리 진지를 급습하게 했다. 이때 흑수적 추장에게 외동딸이 하나 있는 것을 알았기에 자희가 무리를 시켜 그 딸을 납치해오게 하고 이후 딸은 별도의 집채에 은거하게 한뒤 ‘우리는 너를 해칠생각이 없다. 다만 너희 여진 오랑캐들이 무도하여 죄없는 우리 금선의 처자 십여인을 납치해갔으니 이를 구해오는데 협상의 인질로 삼고자 한다. 만약 네가 우리뜻에 순종하고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너를 살려보내겠으나 경망히 달아나거나 우리의 지시에 불응할시 그 자리에서 목숨이 끊어질줄 알아라.’ 엄중 경고하니 추장의 딸은 두려워서 고개를 끄덕이며 다만 순종한 것을 맹서하였다.
마침내 흑수적 추장과 협상이 이루어져 약조대로 먼저 납치한 조선인 십여인을 돌려보내주면 추장의 딸도 살려보내주기로 했다. 약속장소에 납치된 조선여인 십여인이 나타나니 이윽고 가족에게 인도되어 다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약조대로 흑수적 추장의 딸은 돌려보네주고 ‘두번다시 국경을 약탈하는일이 없을 것’을 약조받았다. 딸과 누이를 돌려받을수 있게된 가족들이 앞을 다투어 자희와 그 무리들에게 사례하였다.
이때 거란이나 여진,말갈등에서 죄를짓고 도망친 일부가 자신들의 세력을 만들고 정두산(貞斗山),백운산(白雲山) 및 그 인근지역을 은거지로 삼아 세력을 일구고 있었다. 세력은 어느덧 커져 그 무리가 백여인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금선에 투항하지도 않고 거란,여진 어느쪽에도 속하려들지 않으니 그 관할과 책임이 애매해졌다. 자희가 이때 선명단을 조직한지 1년이 좀 지났을 무렵인데 다시 무리를 끌어모아 대책을 의논하였다. ‘지금 거란,여진등에서 죄를짓고 도망쳐 달아난이들이 인근 백운산등을 은거지로 삼고자 한다니 지금은 별것 아닐지 몰라도 장차 큰 화근이 될 것이다. 일이 더 커지기전에 일찍 정벌하지 아니함만 못하다.’ 하였다. 이에 다시 화연,경서등이 ‘큰성님께서 어찌 좋은 계책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포로와 인질 몇몇을 교환하는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하였다. 다만 자희는 웃으면서 ‘내가 병서를 익히며 깨달은것들이 있으니 너무 근심치말라.’ 하였다.
처음 자희는 선명단에 새로 들어온 말단 두서너 무리를 은근히 백운산,정두산 근처를 배회하게 하며 소란과 소음을 내게 했다. 처음 이들은 그저 할 일없는 나이어린 여자애들이 인근에 유람을 하려왔나보다. 하고 개의치 않았으나 점점 그 소란이 잦아드니 결국 신경쓰지 않을수가 없었다. 무리중 부장(副將)급쯤 되는이들이 몇몇 다가와서 ‘대체 뭐하는 계집아이들인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번번히 이곳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느냐. 이곳은 어르신네들이 계시는곳이니 더는 소란을 피우지 말고 썩 물러가도록 하라.’ 하니 무리중 몇몇이 되려 반발하며 ‘이곳은 금선의 땅도 아니오 거란,여진에 속하는곳도 아닌데 한낱 산적떼들이 어디서 버릇없이 함부로 주인행세를 하려드느냐 ? 우리에게도 우리가 살고자 하난 터전을 만들려는것뿐이니 간섭하지 말고 썩 물러가라 !!!’ 하고는 오히려 화살 몇발을 쏘며 위협하였다. 처음 철없는 어린아이들 장난으로 여겼던 도적의 무리들이 ‘안되겠다’ 싶어 병사를 이끌고 추격하니 이들은 놀라 달아나는척 했다. 하지만 몇 번을 달아나는척하다 다시 활을쏘고 하여 무리를 약올려 어떤 창고있는곳 인근까지 끌어들였다. 무리가 아무것도 모르는채 창고안으로 들어가니 자희가 이때 앞에서 직접 철문을 굳게 잠궈 닫아버렸다. 안에서 난리가 났으나 자희가 즉접 무리를 시켜 ‘불을 질러라’ 하였다. 사실 안에 갇힌이들이 너무 많아 자칫 일이 너무 커질까 우려했는데 자희가 오히려 호통을 치며 ‘우리가 지금 저들을 징벌하지 않으면 언젠간 또 사랑하는 이웃의 처자들이 죄없이 저런 도적떼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그래도 살려둬야겠느냐 ?’ 거듭 재촉하니 하는수없이 수하들이 창고에 불을 질렀다. 창고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은이가 70여인에 달했다.
자희의 일이 갈수록 커져가니 집안은 물론 주변에서도 근심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 길주는 현감이 공석인지라 주요 송사는 인근 명천(明川)이나 성진(成鎭)의 군수들이 대신 봐주곤 했는데 부친 오승환이 하는수없이 명천의 군수에게 대신 딸의 일을 처결해달라 했다. 군수가 직접 송사를 받아들고는 ‘비록 오랑캐를 무찌른일은 가상하다 하나 죄없는 생령을 70여인이나 죽인일은 그냥 넘어갈수 없다. 생각보다 사안이 복잡하나 특별히 낭자의 사려깊음과 은덕을 생각하여 ’장 70대‘로 죄를 대신하게 하고’ 다만 별도로 자희의 부모에게는 엄중 경고성 서한을 별도로 내리니 ‘낭자가 오늘날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계속 괄괄한일을 벌이는 것은 집안에 낭자를 바로 잡을이가 없음으로 사료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낭자의 부모는 3년이내에 딸의 혼사를 책임지고 해결하여 다시는 자희의 경거망동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승환이 사또의 친서를 엄중히 받았으나 다만 부인 배씨와는 고민하며 한숨쉬기를 ‘사또께서 이리 친히 서찰을 내리셨으나 우리 딸의 성정이 여간 괄괄한 것이 아니니 대체 누가 혼사를 받아들이겠나 ?’ 하였다. 배씨도 함께 탄식하며 말하기를 ‘자희의 나이 어느덧 열일곱이니 혼사를 치러 적절치 못할것이 없으니 마침 군수어른의 엄명도 있고하니 해결을 보도록 하십시다.’ 하여 딸의 혼사를 같이 추진해보기로 했다.
먼저 지역유지 이인택(李寅澤)에게 아들이 셋있는데 막내가 아직 혼사를 치르지 못했음을 알고 중간에 매파를 넣어 청을 해보도록 하였다. 허나 인택이 서찰을 받아들고 역정을 내어 ‘저희의 성정이 괄괄하여 그동안 치른 크고작은 사고가 적지 않으니 어찌 그런 아이를 집안에 며느리로 들인단말인가. 있을수 없는 일이로다.’ 하였고 그 막내 아들 또한 손사래를 치며 ‘내 비록 지금껏 그리 건실하지 못하여 주위 눈총을 종종 받아온게 사실이오나 아무리 그렇기로 그런 불한당같은 처자를 어찌 부인으로 맞는단 말이나. 나와 우리집안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고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이어 비슷한 연령의 향리인 현승주(玄承珠)라는 이에게 다시 뜻을 청해보았다. 승주는 자식복이 많아 세명의 부인과의 사이에 열한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직 혼사를 치르지 못한 아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자희의 일은 손사래를 쳐 비록 자손은 많았으나 마땅한 배필을 구해질수가 없었다. 승환이 다시 배씨와 탄식하며 ‘사또께서 이미 엄중한 서한까지 내리셨는데 이미 3년의 시간중 반 이상이 지났는데도 이 문제를 쳐결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좋단말인가. 만약 약조를 어겼을시 큰 문책을 당할까 우려되는도다.’ 하였다.
이때 길주에 결국 새 현감이 들어왔는데 이름이 우국일(禹局逸)이라고 했다. 길주에 새 현감이 들어온 것은 공석이 된지 실로 삼년만이었다. 국일이 본래 사람됨이 성실해 3년만에 부임해온 고을에 크고작은 문제를 먼저 처리하며 현황을 파악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희란 낭자의 일을 알고 근심과 의아함을 섞어 말하기를 ‘고을에 삼년동안 새 현감이 부임해오지 않아 그간 오랑캐의 놀이터가 되다시피 했으니 나라의 책임이 크도다. 다만 그동안 마을백성들을 대신 도와주고 지킨이가 있으니 마땅히 상을주고 칭찬함이 마땅하다. 허나 그로인해 저지른일 또한 많다하니 이 문제를 어찌 처결하는게 좋겠는가.’ 특근과 향리를 모두 불러 근심하기를 몇날이었다.
이때 국일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을 성하(誠夏)라 하였다. 마침 나이 십칠세로 자희와 동갑이었는데, 스스로 나서서 ‘제가 이 일을 한번 해결해 보도록 하겠다.’ 하였다. 이에 국일이 오히려 근심을 섞어 말하기를 ‘네가 무슨 재주가 있어 이 일을 해결하겠느냐 ?’ 탄식만 할뿐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에 성하가 자신감에 차서 말하기를 ‘일단 듣기로 명천의 사또께서 길주의 일을 그간 봐주시며 자희를 삼년안에 혼사를 치르면 모든 것을 없었던일로 하겠다’ 하셨으니 제가 한번 그 낭자를 배필로 맞이하곘나이다. 웬지 저와 잘 맞을듯하니 제게 주시면 반드시 낭자를 철들게 만들겠나이다.‘ 하였다.
성하가 기어이 자희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 의사를 밝히니 다들 어이없어하고 의아해 하였다. 한 친우가 묻기를 ’그 여인이 비록 스스로 민단(民團)을 조직하여 오랑캐와 도적떼에 맞서싸운 공이 있다하나 그로인해 빚어진 말썽도 한둘이 아니라는데 어찌 하필 그런 여인을 맞이하곘다 하는가.‘ 하였다. 또 한 벗님은 말하기를 ’그 여인이 천성 또한 보통 괄괄하기 이를데 없어 웬만한 사내들은 함부로 가까이도 못한다 들었는데 그런자를 배필로 맞아도 후회가 없겠는가 ?‘ 하였다. 다들 우려하는 목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성하는 씨익 웃으며 ’나는 오히려 그런 여인의 성정이 흥미롭도다. 또 스스로 무리를 조직 도적과 오랑캐에 맞서싸울 정도라면 그런 강단있는 여인을 품에안아 평생을 함께 하는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법도대로 결국 혼사를 치르고 오씨를 신방에 들였다. 첫날밤 초야를 치르는데 성하가 먼저 부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소. 부인이 바깥일을 하는데 내가 굳이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기왕 나의 배필이 되었고 우리 또한 손귀한 가문이라 내가 삼대독자인데 자손을 창성케하는 여인네의 본분만은 소홀함이 없었으면 좋겠소.‘ 하였다. 부인은 성하의 이와같은 말을 듣고 미소만 지을뿐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인근에 마침 경치좋은 냇가가 있고 마침 날씨기 따듯할때라 성하는 종종 오씨를 데리고 가 개울물에 손수 발을 씻겨주고 주물러주며 말하기를 ’부인이 바깥일에 너무 치중하지 않고 나를 지성으로 섬기면 나 또한 평생동안 부인의 발을 씻겨주며 이와같이 살 용의가 있소. 이제 고을에 제대로 된 현감도 들어왔으니 도적과 오랑캐의 일은 나라에 맞기고 나와 함께 일평생을 함께함이 어떻겠소 ?‘ 하니 부인은 여전히 씁쓸히 미소지을뿐 대답하지 않았다.
오씨가 혼사를 치루었으나 ’선명단(宣明團)‘은 여전히 해체된 것이 아니라 지수,화연,경서등의 옛 동료들이 은밀히 찾아와 이와같이 말했다. ’우리가 근래에 선명단을 해체하지 않고 인근의 치안과 질서를 살피며 돌아다녔는데 아무래도 반역을 꾀하는 무리가 있는 듯 하오이다.‘ 하였다. 이에 오씨가 놀라 ’이제 고을에 3년만에 현감이 부임해 마침내 질서가 잡히는 듯 한데 어디 그런 무리가 있단말이냐 ?‘ 하니 화연과 경서등이 말하기를 ’석무동(錫務洞)에 예전 오남매가 함께 부모와 살았으나 흉년에 가족들이 모두 죽고 빈집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알 수 없는 무리가 드나들고 있소이다. 보아하니 그중 몇몇은 파직된 무관이고 또 어떤이는 도망친 노비이고 또 몇몇은 가짜중인 듯 한데 이들이 모여서 불궤룰 도모하기를 ‘지금 조정은 파당싸움으로 여념이 없어 이 먼 국경지대일은 손을뗀지 오래라 도적과 오랑캐가 들끓고 조정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새로운 현감이 부임했다 하나 이 역시 믿을만한 자가 못되니 더 늦기전에 우리가 한번 일을 도모해보자.’ 이런 논의를 하고있더이다.‘ 이와같이 전했다.
오씨가 이 말을 듣고 격분 바로 일망타진의 뜻이 있었으나 다만 남편의 지극한 당부가 있었던터라 쉬이 나서지 못했다. 측근들을 이쯤에서 먼저 돌아가라 한뒤 나름 꾀를내어 하루는 술을 대접하며 ’소녀가 어린 나이에 뜻깊은 낭군을 만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보답함이 별로 없어 미안할 따름인데, 이제 없는 실력으로 손수빚은 술이 좀 있어 나으리께 바치고자 하니 한잔 들어주시오서.‘ 하였다. 성하가 처음 별 의심없이 오씨의 손과 머리를 매만져보며 ’부인답지 않게 이런 재주가 있었는지는 몰랏구라.‘ 하고 감사히 받았다. 허나 술에는 본래 미리 타놓은 약이 있어 성하는 바로 잠이 들어버렸고 부인은 바로 남장과 두건을 한 채로 집을 나섰다.
이후 불측한 무리들이 모인다는 빈집에 선명단과 미리 잠복하여 기회를 엿보다 마침내 무리가 모이는 것을 보고 전부 사로잡아 일망타진하였다. 관아에 넘기려 하였으나 다만 지금 오씨의 남편이 현감의 아들이라 망설이니 ’주모(主母)깨선 공연히 나서실 팔요가 없습니다. 저희가 직접 관아에 넘기고 주모는 모르시는일로 할터이니 심려마소서.‘ 하여 지수,화연,경서가 이들 무리를 손수 이끌어 관아에 넘기고 오씨는 남장을 한 모습으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뒷간애서 몰래 옷을 갈아입은뒤 신방으로 돌아갔다.
성하가 뒤늦게 선명단이 다시 나서 반란을 도모하는 무리를 잡았음을 알고 부인을 책망헀다. 오씨가 처음 부인했으나 ‘내가 선명단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데 어찌 나까지 속이려 하는가. 이제 하다하나 남편까지 속일참인가.’ 하니 결국 오씨가 모든 것을 실토하는수밖에 없었다. 이에 성하가 탄식하며 ‘불궤한 무리를 관아에 고변하였으니 이를 탓할수도 없거니와 다만 이후에도 또다시 선명단의 일을 주도할 경우 더 이상 묵과할수 없도다.’ 하였다. 사사로이는 성하가 사또의 아들이니 더는 두고만 볼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때 거란과 여진에서 죄를 짓고 달아난 무리나 도망친 노비의 일부가 국경지대에서 세력을 또다시 구축했으니 이번엔 지난번처럼 세력이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어느덧 또다시 20-30여인이 이른다 하였다. 이번엔 거란,여진뿐만 아니라 몽골은 물론 흉노에서 온이까지 있다하니 사태가 이전에 비해 더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화연,경서등이 다시 무리를 모아 대책을 의논하니 미연,옥희등은 ‘다시 자희 성님께 일을 의논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하니 화연,경서는 난감한 듯 ‘아우들의 뜻을 모르는바 아니나 성님은 이미 혼사를 치른후 그 남편의 단속이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도다.’ 하였다. 화연과 경서가 자희의 집 출입을 삼가고 있는데 미연과 옥희가 답답한 가운데 먼저 찾아뵈었다. 이에 자희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 언제 한낱 서방의 눈치나 보는 사람이던가’ 하고 웃을뿐이었다.
이때 성하는 자희가 또다시 밤에 몰라 내가 선명단의 일을 보지 않게하기 위해 작은 노끈으로 밤에 발목을 묶어 데리고 잤다. 하지만 자희가 미리 준비해온 가위로 끈을 끊어버리고 달아나버리니 성하는 뒤늦게 이 일을 알고 탄식할 뿐이었다. 이때 거란,여진등의 무리은 이전의 백운산에서 북서로 50여리 더 떨이진 몽진산(蒙珍山)이란곳에 기거하였는데 다만 세력이 아직 크지 않았다. 화연과 경서가 먼저 정찰을 하고 돌아와 말하기를 ‘무리가 산채를 짓고 있는 것은 확실하나 이전의 세력에 비해 많이 허술하고 또한 국경에서도 멀리 떨어져있어 약탈의 우려가 크지 않습니다. 공연한 경거망동이 화를 부르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하였다. 허니 자희가 되려 반박하며 말하기를 ‘도적이나 반역의 무리가 언제 처음부터 큰 세력으로 약탈을 하던가. 지금은 세력이 작고 거리가 멀다 방심했다 놓아두면 언젠가 큰 세력으로 성장 반드시 우리 백성을 침탈할것이야.’ 하였다.
이후 다시 꾀를 냈는데 까마귀를 비롯한 온갖 잡새들을 풀어 무리가 사는 인근의 좌우 양쪽에 풀었다. 이에 거란,여진의 무리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할 때 선명단의 일부가 도적처럼 위장하여 진채 이곳저곳을 들락날락하다 수상하게 여긴 거란,여진인들이 뒤를 쫏자 달아났다. 하지만 이내 곧 인근 낭떠러지로 유인한뒤 미리 매복하고 있던 단원(團員)들이 일제히 불화살을 쏘니 거란과 여전인 20-30인이 일제히 섬멸되었다. 개중에는 거란,여진뿐만 아니라 흉노나 몽골 심지어 멀리 중원에서까지 온 이도 있었다.
길주의 사또가 결국 사태를 보고받고 크게 탄식하였다. 공적으로는 조정의 일이오 사적으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간의 일이니 불러서 엄히 꾸짖을 수밖에 없었다. ‘네 본래부터 조정의 행정이 미치지 않을 때 어린 아이들과 아녀자들의 일을 걱정하여 스스로 보호단을 조직한 뜻을 모르는바는 아니나 지금은 엄연히 조정의 기강이 섰고 또 국경에 특별히 해를 끼친바 없는 무리에까지 이런일을 벌이며 어쩌자는것이냐. 도적이라 해도 앞서 70여 무리를 창고에 가둬 해한일도 큰데 이번에 또 거란과 여진등의 죄없는 무리들을 30여인이나 해쳤으니 이를 항차 어찌할참이더냐.’ 하였다. 허나 오씨가 거듭 반박하며 ‘허면 아버님께선 만약 외적(外敵)의 무리 백만대군을 해한 장수(將帥)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그르다 할것입니까.’ 하였다. 사또가 거듭 답답하여 ‘이게 어찌 외적을 무찌른 장수의 일과 동일하다 할수 있겠느냐. 부디 부탁컨대 더 이상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하였다. 또한 성하에게도 엄히 꾸짖기를 ‘아내의 행실은 결국 남편에게 달린것이니 앞으로 내 안사람들 더 엄히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에 국경지대에 다시 이상징후가 나타났는데 거란의 수문창(水門倉)과 흥난두루(興亂豆樓)란 장수가 적잖은 병사들을 데리고 나와 진지를 쌓고 있었다. 척후병들이 가서 보고를 하니 병사의 수가 5천에서 1만에는 이른 것 같아 심상치 않은 조짐이라 경계하였다. 이때엔 이미 고을의 사또와 관찰사가 모두 정상적으로 부임해와 직접 국경에 나가 상황을 살피고 심상치 않음을 조정에 보고했다. 길주뿐만 아니라 인근 명천,성진,나진등에서도 심상찮은 정황이 포착되었다. 조정에 바로 장계를 올리니 이때 실세 신태진(申泰眞)의 측근 우원상(禹元相)이라는 이가 직접 찾아와서는 ‘조정에서 이미 거란과 소통을 하였는데 조정의 뜻이 아닌 듯 하고 내부 군부의 알력과 관련이 있는듯하다. 수문창,흥난두루등은 거란에서도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하급장수에 불과하니 너무 염려치말라.’ 하였다.
이때 오씨가 장계를 받아 읽어보고는 ‘이는 북방 오랑캐가 전형적으로 우리를 기만하는 술책이다’ 하고 내던져버렸다. 측근 경서와 화사가 놀라 찢어질뻔한 장계를 주워 수십해야핲판이다. 오씨가 다시 선명단 측근들을 불러 일을 꾸밀 것을 의논하니 이번만큼은 측근들도 두려워서 ‘조정에서 이미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지시를 내렸는데 조정의 뜻에 반해 정규군도 아닌 민간인인 우리가 함부로 움직이다 큰 화를 당하지 않겠소이까 ?’ 하니 ‘이는 조정의 뜻이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일이다’라며 오히려 단원들을 다독였다.
마침내 오씨가 밤에 몰래 복면을 쓰고 측근,무리들과 함께 국경지대로 나가보았다. 경서,화연,소희등에게 명하고 장수들이 드나드는 길목에 폭약을 지하에 몰래 설치하게 하고 소란을 피웠다. 놀란 장수 수문창과 흥난두루가 나와 살펴보내 매복해있던 선명단의 무리는 도적떼인양 앞에서 성가시게 굴다 두 장수에게 들키니 달아나버렸다. 수상하게 여긴 수문창과 흥난두루가 추격을 하다 그만 폭약이 묻혀있는 지역일 자나다 폭새했고 몇몇 병사들도 중상을 입을 지경이었다.
전과(戰果)을 올린 선명단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다만 부인은 남편과 시댁식구들이 알 것을 두려워하여 다시 복면을 쓰고 집으로 들어오려 하였다. 헌데 마침 주의를 살피던 성하에게 들키고 말았다. 성하가 복면쓴이를 보고 말하기를 ‘요사이 사람을 해치는 요괴가 출몰한다더니 혹시 네가 아닌가 싶구나. 만약 요괴면 이 자리에서 베어버릴것이나 만약 사람이거나 우리집안 식구이거든 모습을 드러내거라.’ 하였다. 오씨가 이미 남편이 정체를 알고 그러는 것을 눈치채고 어이없이 피식웃은뒤 복면을 벗어 내던지고는 ‘다 알면서 뭘 그리 굳이 물어보시나이까 ?’하였다.
성하가 싫다하는 오씨를 한사코 설득하여 방으로 불러들여 따졌다. ‘부인이 지금까지 벌인일들이 비록 백성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다하나 지금은 엄연히 고을의 사또가 부임하여 일을 보고 있고 군사체계도 이전처럼 정상화되고 있거늘 어찌 일을 일이 경거망동하시오. 심지어 적의 병사들을 상하게했으니 이로인해 외교마찰이 빚어지면 그땐 어찌하시려 이러시오이까.’ 하였다. 이에 오히려 오씨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한낱 오랑캐에게 빌빌거리며 우리 백성들을 상하게 하는 그런 못난 조정이라면 차라리 없는게 더 낫소이다. 정히 이런식으로 나오면 제가 낭군곁을 떠나 저 스스로 단독으로 활동할터이니 연을 끊으시오소서.’ 하였다. 이에 성하가 거듭 오씨의 손을 부여잡으며 설득하며 말하기를 ‘내가 지금껏 부인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껴준 뜻을 알면서 어찌 이와같이 나오시오. 모두 부인을 걱정하여 이러는것인데 어찌 이리 내 마음을 몰라주시는가.’ 하니 오씨도 심경 복잡한 가운데 탄식하며 말하기를 ‘낭군께서 신혼초부터 손수 저의 발을 씻겨주세며 저의 사소한 티끌하나 지극히 아끼고 사랑해주시는걸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한 남자의 아내이자 시댁에 얽매인 몸이라도 그전까지 돌보던 고을 백성들의 안위를 더는 외면할수 없는 저의 마음도 조금은 헤아려주소서.’ 하였다. 오씨가 눈물까지 흘리며 간곡히 나오자 성하도 탄식과 걱정이 앞서는 가운데 아내를 몸소 품에 안아주며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오씨의 일이 조정에 알려지니 발칵 뒤집혀질 수밖에 없었다. 조정이 이미 ‘거란,여진과 국경에서 공연히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는데 한낱 길주의 여인이 거란 장수를 상하게 했으니 보통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씨기 이미 사사로이 길주 사또의 며느리가 되었으니 그 책임또한 피할수 없었다. 이에 부인이 남편과 함께 대책을 의논하다 부인이 먼저 계책을 내놓았다. ‘이미 용렬한 소녀의 일로 조정에 반(反)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면책을 피할길은 없나이다. 다만 연좌(連坐)는 피할길이 있을 듯 하니 들어주소서.’ 하였다. 성하가 답답한 듯 ‘이 판국에 대체 무슨 방도가 있단 말이오 ?’ 하니 부인이 먼저 자신이 평상시 즐겨입던 옷과 선명단때 쓰던 복면등을 내놓으며 먼저 단도로 스스로 손가락을 베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으리께선 몸소 저를 해쳐 조정에 반한죄를 물었다 하십시오. 그리고 저는 소리없이 천만리 달아날터이니 저는 조정의 면책을 피할수 있고 나으리와 아버님은 연좌의 길을 면할수 잇을터이니 이로서 함께 사는 길이 될것입니다. 부디 제 계책을 따라주시오소서.’ 하였다. 이에 오히려 성하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미 백년의 가약을 맺어 그 언약을 쉬이 끊을수 없는데 부인 스스로를 상하게 하여 나를 살릴길을 찾겠다니 그 무슨 당치않은 말씀이오. 죽더라도 함께 죽도록 합시다.’ 오씨의 손을 잡고 당치않다 거듭 말하였다.
이에 부인이 손을 내저으며 ‘이미 용렬한 소녀로 인해 나라와 가문애 죄를 지었으니 제가 벌을 받는 것은 피할수 없으나 누구 한사람이라도 살 방도는 찾아야 합니다. 부디 저의 뜻을 따라 주십시오.’ 하였다. 사또 또한 결국 며느리의 말을 듣고는 옳다여겨 ‘일단 며늘아이의 계책을 따르도록 하자.’ 하였다. 그리고 평상시 쓰는 장검을 가져와 스스로 오씨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베었다. 이후 피가나니 이것을 오씨의 평소 쓰던 옷과 복면에 묻히니 오히려 지혈이 될 판이었다. 이제 오씨가 달아날일만 남았으니 먼저 성하와 국일 부자에게 크게 절하며 ‘이 댁 또한 손귀한 삼대독자집안인데 천한 여식의 몸으로 가문의 대를 이을 소임조차 다하지 못해 실로 그 죄 더할나위 없나이다. 무릇 제가 떠나더라도 서방님께선 새로 어진신부를 맞이하시여 백년의 대를 잇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이에 오히려 성하가 오씨의 다친발을 부둥켜안고 울고 ‘오히려 못난 우리 부자가 부인을 보내고 살길을 찾으니 후대에도 비웃음이 될것이도. 부디 몸성히 잘잇기 바라오.’ 하였다. 국일이 지체할 시간이 없다하여 손수 귀한말 하나를 몰래 내주고 ‘이 말을 훔쳐서 달아났다 하면 될 것이다.’ 하여 오씨가 국일의 뜻을 알고 거듭 감사의 절을 올린뒤 집을 떠났다.
오씨가 떠나기전에 선명단의 일도 해산을 선언하며 단원들을 모아 말했다. ‘이미 우리가 이전에 고을을 해치는 도적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자 자경(自警)의 길을 택했으나, 이제 조정에 반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 더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만 사라질터이니 너희도 이제 그만 선명(宣明)의 일을 그만두고 각자의 살 방도를 찾도록 하라.’ 하였다. 지수,화연,경서,미연등 그간 오씨를 따르던 십여인이 모여 울며 말하기를 ‘우리가 처음 선명을 결성할 때 이미 함께 죽고 함께 살자 맹서했거늘 어찌 성님을 보내고 혼자 살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함께 죽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오히려 오씨가 무리를 거듭 설득하며 ‘조정에 반역하는 일은 이 정도로 되었다. 이전에는 조정에서 고을의 일을 직접 봐주지 않아 우리가 직접 나섰으나 이제 지금은 이미 조정의 기강이 섰음에도 우리가 그 길을 거슬렀으니 더는 일을 도모할 수가 없다. 부디 공연한짓들을 하지말고 각자의 생령을 보존토록하라.’ 하고 그동안 모은 재물을 약간씩 나눠주어 무리를 모두 떠나보내게 했다.
마침내 오씨는 말을 달려 북동으로 천리도 멀리 달아나고 말았으니 이후 부인의 행방은 찾을수 없다. 다만 한 무명시인(無名詩人)이 이런 글귀를 남겨 탄식하였으니 그 내용이 이와 같다. ‘조정이 어리석어 어린 백성과 여인들이 몹쓸 도적에게 일을 당하매 스스로 일어섰으니 가상한 일인데, 오히려 조정의 기강이 서고나서 나라를 해치는 도적들을 앞서 내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공(功)있는 여인을 죄있다 내쳤으니 실로 용렬함의 극치로구나. 천지자연의 이치가 대체 어찌 이럴수 있단말이냐. 자연(自然)아 !!! 자연(自然)아 !!! 어찌 이럴수가 있단말이냐.’
오부인(吳婦人)의 일은 ‘송천야록(松川野錄),’등무록(等務錄)‘,’금원잡록(禁願雜錄)‘등에 간간히 그 이야기가 보인다. 실록(實錄)과 기술(記述)에는 그와같은 이야기가 보이지 않고 몇몇 관찰사의 장계(狀啓)에 그 엇비슷한 이야기가 나올뿐이다. 또한 함주지리(咸州)地理)에 간간이 이 무렵의 전설이나 설화가 수록되어있는데 여기 약간의 유사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고 이름난 문사(文士)들의 문집(文集)에는 또한 보이지 아니한다. 따라서 여중군자록(女中君子錄)을 집대성(集大成)할시 근거가 희박하다하여 수록되지 아니하였다.
일설(一說)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거란땅에서 전해지는 이야긴데 이때 일부 죄지은 무리와 도망친 노예들이 나라 인근 국경지대에서 저마다 무리를 지으며 도적떼를 형성하고 약탈을 일상화 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때 검은 복면을 쓴 여인이 나타나 도적떼를 혼내고 약탈한 재물이나 함부로 납치한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돌려보내주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씨(吳氏)의 일과 한편으론 유사하고 한편으론 맡지않아 채록하기 난감하였다. 의문의 검은복면 여인은 항상 검은색 상하의에 검은색 버선을 신고 다녔다 전해지고 또 혹자는 스님의 복장과 유사하다고 하나 역시 확실하게 고찰하기는 쉽지 않다.
여진땅에 전해지는 일설(一說)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때에 혼자 힘으로 바위 다섯 개를 날르고 쌀섬 열 개도 넘게 손으로 드는 장사가 있으나 성정이 흉포하여 함부로 저자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해쳤다. 헌데 역시 검은 복면의 여인이 나타나 장사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와 팔씨름을 해 만일 질 경우 날 평생 어머니로 섬기며 두 번다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을 약조하라‘ 하였다. 이에 거한(巨漢)이라 가당치도 않다하며 되려 대결을 거부하고 짐을 챙겨 떠나벼렸다. 거인이 떠나자 여인 역시 말을 타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는데 이후 거한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백성들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현자(賢者)로다 하거 복면여인이 사라진곳을 향해 스스로 술을 따리고 떡을 바치며 절을 올렸다고 한다. 이 역시 오씨(吳氏)의 일과 일치하는지는 확인할길이 없다.
또 일설(一說)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런 것이 있다. 반도와 대륙에 다만 사악한 무리들이 계속 나타나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해치는 일이 계속 있으니 하얀복면을 쓴 여인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무리를 모아서는 ‘우리는 이곳에서 살기 어렵다. 동남방으로 천리를 나아가면 무수한 섬나라가 있는데 그곳인 여인과 어린이를 차별하지 않는다하니 그곳에서 낙원을 일구로록하자’ 하니 여인과 이이들이 기뻐하여 곧 일천인의 무리가 모여 큰 배를 지어 타고 천리 떨어진 동남방 왜국(倭國)으로 갔다하나 이 역시 오씨(吳氏)의 일인지는 고찰할길이 없다.
결국 부인의 일은 ‘여중군자록’에 수록하기에 근거가 희박하여 수록할수 없게 되었다. ‘단양 우씨(丹陽禹氏)의 족보를 확인해보니 이십칠대(二十七代)에 가서 조정에 하급벼슬한 우동창(禹動倉)이란 이름이 보이는데 위로 누이가 넷이나 다만 아들이 없는 1남4녀중 막내라 독자(獨子)라 했다. 그 아들 국일은 아예 다른 여형제도 없는 무녀독남 외아들이며 국일의 유일한 하들 이름이 성하인데 마찬가지로 독자(獨子)라고 했다. 다만 그 부인으로는 지씨(池氏)라는 현숙한 여인을 들여 두 사람 사이에 아들 다섯을 낳아 비로소 자손을 번창케 하였다하니 다만 오씨(吳氏)의 기록이 보이지 않아 역시 고찰을 포기하게 되었다. 오씨의 행적으로 고찰할수 있는 부분이 다만 여기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