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옴에도 유다 백성은 그러한 위기에 대해서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심판을 외쳐도 귓등으로 들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곡(哭)하는 부녀와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와서 애곡(哀哭)하게 합니다(17절, 18절). 곡하는 부녀는 그 당시 누군가의 집에 초상이 났을 경우에 전문적으로 초상집에 와서 슬퍼하며 애곡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여인들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부녀는 공동번역 성경에서 “넋두리 잘하는 여자들”이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성경은 “장송곡(葬送曲)을 부를 여인들”이라고 번역했는데, 지혜로운 부녀들도 초상집에 와서 슬픔을 노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여인들을 의미하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왜 이런 여인들을 불러오라고 했냐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유다 백성이 멸절될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애곡하는 소리를 들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위기를 느끼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직업적으로 애곡하는 자들을 불러서 애곡하는 소리를 듣게 하여 지금 매우 슬퍼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라는 말씀입니다(18절, 19절).
그리고 곡하는 여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고,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애곡하고, 슬픈 노래를 만들어 가르쳐서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20절). 그리고 애곡하며 슬퍼하는 노래의 내용은 21절과 2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게 임하여 사망이 임박해오고, 자녀들과 청년들이 살육(殺戮)되고, 거리와 장터에 그러한 시체들이 널려있을 것임을 노래하게 합니다(21절, 22절). 이런 애곡의 소리를 듣고, 슬픈 노래를 들은 후에야 “우리가 아주 망했구나. 우리가 큰 수치를 당하게 되었구나. 우리가 이 땅을 떠나 흩어질 수밖에 없도록 모든 거처가 무참히 헐렸구나”라고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9절).
영적으로 둔감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에 닥쳤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자기 고집대로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애곡하는 여인들을 불러서라도 현실을 제대로 깨닫게 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독촉하시는 모습입니다. 영적인 귀가 닫히고, 영적인 눈이 감기면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고, 죄악을 낙(樂)으로 여기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이 임하여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회개할 기회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영적으로 둔감한 그들을 깨우도록 촉구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딘 자들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외치고 전해야 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진정으로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자의 지혜, 용사의 용맹, 부자의 부유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23절). 물론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지혜와 용맹과 부유함은 매우 필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지혜롭다 여기며, 세상에서 용맹스럽다 여기며, 세상에서 부요(富饒)하여 부족함이 없다 여기면서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지혜와 용맹과 부유함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분이심을 깨닫고, 이런 일을 기뻐하는 자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진정한 자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24절). 사랑(lovingkindness)은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입니다. 은혜와 자비, 인자하심, 사랑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정의(正義, judgment)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מִשְׁפָּט)인데, 이 단어는 율례(律例), 법도(法道), 공의(公義), 정의(正義) 등으로 번역되는데, 지켜야 할 참된 도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공의(公義, righteousness)는 히브리어로 “체다카”(צְדָקָה)라는 단어인데, 의(義), 공평(公平), 옳음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미쉬파트나 체다카는 서로 교차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아 아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을 자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지식적(정보)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도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면서 이 세상의 지혜, 용맹, 부유함만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이 땅에서의 지혜와 용맹과 부유함에 주목하며, 그것을 자랑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헛된 자랑에만 몰두했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진멸되는 징벌을 받게 되는데, 할례받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이 할례받지 못한 이방 민족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25절). 26절을 보면 유다는 애굽, 에돔, 암몬, 모압, 살쩍을 깎은 자들 등과 똑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살쩍은 머리 옆면에 있는 관자놀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옆머리를 깎은 자들이란 말인데, 이방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 옆머리를 짧게 자르는 풍습을 빗대어 하는 표현이기에 이방신들을 섬기는 이방 민족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방 민족은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고,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은 몸에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26절). 그러니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 민족과 다를 바 없다는 말씀입니다. 몸에는 할례를 받았어도, 그 마음의 태도는 할례를 받지 않고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 민족과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함으로 구별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외형적으로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가짜입니다.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진짜입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지혜와 용맹과 부유함을 따라 살면서 그것을 자랑하려는 자는 가짜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자가 진짜입니다. 나는 오늘도 무엇을 주목하며 하루를 살아가려고 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주목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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