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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행복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카 6,20-26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어렸을 때,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하늘 높이 날던 제비가 땅에 가깝게 비행하는 것을 보게 되면, 곧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제비가 날씨를 예측하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재주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곤충 때문이지요.
제비는 곤충을 잡아 먹기 위해 날아다니는데, 비가 오기 전에 습도가 높아지면 곤충의 날개도 습기 때문에 무거워져 높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낮게 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곤충을 잡으려는 제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곤충이 많은 땅에 가깝게 비행해야 할까요? 아니면 곤충이 전혀 없는 하늘 높이 날아야 할까요?
비가 오기 전, 습한 날에 땅 가깝게 비행하는 이유는 이렇게 ‘곤충’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단지 곤충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제비가 날씨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고 착각할 뿐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는 종종 사람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합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우리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지 않았다면 그런 능력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자기의 힘만으로 얻었다는 착각 속에,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행복과 불행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4가지 행복은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 박해받는 사람입니다. 뒤이어 오는 불행은 4가지 행복을 뒤집은 것으로, 부유한 사람,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이를 듣고 어떻게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 박해받는 사람이 행복할까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무조건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 그리고 박해받는 사람이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 것보다 주님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가난할 수 있고, 굶주릴 수 있고, 울 수 있으며, 세상의 반대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 능력과 재주보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덕분에 이루어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서 먼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기준과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주님의 기준과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따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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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김복례 할머니 이야기.」
몇 년 전 대구에 사는 한 할머니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44세에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되어 홀로 국수 장사를 하며 딸 다섯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그 뒤 69세부터 할머니께서는 중학교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갈 정도로 열정이 넘쳤습니다.
이렇게 학구열을 불태워 2년 만에 중등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친김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역시 2년 만에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도 2년 만에 졸업해서 학사모를 썼다는 기사였습니다. 이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만학도가 워낙 많으므로 여기까지는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특별함은 그 뒤에 어떤 기자가 물었던 할머니의 꿈이었습니다. 꿈을 묻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듬해 합격을 목표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공부를 마치고서는 사회봉사에 여생을 보내는 것이 제 꿈입니다.”
할머니께서 처음부터 ‘미국 유학’이 꿈이었을까요? 아니지요. 처음에는 중학교 입학이... 다음은 고등학교 입학이... 다음은 대학교 입학과 졸업이 꿈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미국 유학과 함께 사회봉사에 대한 꿈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루어나가면서 꿈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의 공통점은 이룬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루었어도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꿈은 커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는 나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노자).>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가 6,20-26)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
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ものである。」
(ルカ6・20-26)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Luke 6:20-26)
年間第23水曜日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カナナン サラムドラ、 ノヒヌン ヘンボッカダ。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ハヌニム ナラガ ノヒエ コシダ。"
(루가 6,20-26)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
마즈시이 히토비토와 사이와이데 아루
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ものである。」
카미노 쿠니와 아나타가타노 모노데 아루
(ルカ6・20-26)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Luke 6:20-26)
Wednesday of the Twenty-third Week in Ordinary Time
Luke 6:20-26
Raising his eyes toward his disciples Jesus said: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Blessed are you who are now hungry,
for you will be satisfied.
Blessed are you who are now weeping,
for you will laugh.
Blessed are you when people hate you,
and when they exclude and insult you,
and denounce your name as evil
on account of the Son of Man.
Rejoice and leap for joy on that day!
Behold, your reward will be great in heaven.
For their ancestors treated the prophets
in the same way.
But woe to you who are rich,
for you have received your consolation.
But woe to you who are filled now,
for you will be hungry.
Woe to you who laugh now,
for you will grieve and weep.
Woe to you when all speak well of you,
for their ancestors treated the false
prophets in this way.”
2026-09-09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しかし、富んでいる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3水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御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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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しかし、富んでいる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そのとき、6・20イエスは目を上げ弟子たちを見て言われた。
「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
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ものである。
21今飢えている人々は、幸いである、
あなたがたは満たされる。
今泣いている人々は、幸いである、
あなたがたは笑うようになる。
22人々に憎まれるとき、また、人の子のために追い出され、ののしられ、汚名を着せられるとき、あなたがたは幸いである。23その日には、喜び踊りなさい。天には大きな報いがある。この人々の先祖も、預言者たちに同じことをしたのである。
24しかし、富んでいる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あなたがたはもう慰めを受けている。
25今満腹している人々、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
あなたがたは飢えるようになる。
今笑っている人々は、不幸である、
あなたがたは悲しみ泣くようになる。
26すべての人にほめられるとき、あなたがたは不幸である。この人々の先祖も、偽預言者たちに同じことをしたのである。」
(ルカ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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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子どもの頃、「ツバメが低く飛ぶと雨が降る」という話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実際に、空高く飛んでいたツバメが地面近くを飛んでいると、まもなく雨が降りました。そこで私は、ツバメには天気を予測する特別な能力があるのだと思っていました。しかし、本当にそのような能力があるのでしょうか。そうではありません。実は、昆虫が関係しているのです。
ツバメは昆虫を捕まえて食べるために飛び回ります。雨が降る前に湿度が高くなると、昆虫の羽も湿気を含んで重くなり、高く飛ぶことができず、低いところを飛ぶようになります。それでは、その昆虫を捕まえようとするツバメはどうするでしょうか。昆虫が多くいる地面近くを飛ぶでしょうか。それとも、昆虫がまったくいない空高くを飛ぶでしょうか。
雨が降る前の湿った日にツバメが地面近くを飛ぶのは、このように「昆虫」が原因だったのです。ツバメに特別な能力があるのではありません。昆虫が人の目には見えにくいため、ツバメには天気を予測する力があると錯覚してしまうだけなのです。
私たち人間の能力も、これと同じ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たちはしばしば、人間の能力を過大評価します。しかし、その能力の背後には、私たちの目には直接見えない神様の恵みと愛があります。そもそも神様が私たちを創造してくださらなかったなら、どうして私たちは自分の能力を発揮す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問題は、すべてを自分の力だけで得たと思い込み、いつも共にいてくださる神様の恵みと愛に気づかないことです。
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幸いと不幸についてお語りになります。四つの幸いとは、貧しい人、飢えている人、泣いている人、そして迫害される人です。それに続く四つの不幸は、その反対で、富んでいる人、満腹している人、笑っている人、そして人々から褒められる人です。
この御言葉を聞いて、どうして貧しい人、飢えている人、泣いている人、迫害される人が幸いなのだろうか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ただ貧しく、飢え、泣いている人が無条件に幸いだ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主に従うために貧しくなり、飢え、涙を流し、迫害を受ける人は幸いである」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です。
このような人にとっては、世のものよりも主が第一です。だからこそ、貧しさも、飢えも、涙も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世の反対さえも恐れません。すべては自分の能力や才能によるのではなく、神様の恵みと愛によって成し遂げられる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からです。
どのようなときにも、主が第一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りません。世の基準や判断は、それほど重要ではありません。それよりも、主の基準と判断こそが最も大切です。その基準に従って生きる人こそ、真に幸いな人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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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の福音を読み、すべてが神様の恵みと愛によるものであることに気づき、いつも主を第一にして生き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

첫댓글
그때에 눈을 들어 보시며 말씀하셨다ᆢ
불행하다고 느꼈을때라. 음~~~
가난이 창피해 친구를 집에 못 오게 할때.
물지게 지고 달동네 언덕에 올라 갈때.
구멍 난 신발 꿰메어 신고 학교 갈 그때가 불행한 때 인가요!
불행한 그때
물 가득 담긴 것 보시고 기뻐하신 어머님이 계셨고
손수 만든신 칼국수 먹었을때
바로 이때가 제일 행복한 때 였습니다. 좋네요 ㅎㅎ.
제법 큰집에서
웃고, 즐기며 편안함.
나쁘지 않은 평판으로 소소한
그 행복이
불행하다고 말씀 하시니
마음 아프게 불편합니다.
저의 모습이 보여져서
눈을 들어 말씀 하셨군요.
불행과 행복의 기준이
세상이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다 라고
주의를 주는 오늘의 복음말씀 이시네요.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협상 하려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것을 참 행복의 기준으로 말씀 주신 귀한 나눔에 감사드립니다.
부유한 자들이 불행하다하심을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아니러니하게도 전
물질로
세상적 가치로
매일 매일 위로받고 삽니다.
그러면서도 불행함을 모릅니다.
하지만 참행복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세상이 주는 것에서가 아니라
웃고 감사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만
위로 받고 칭찬받고
없어지지 않는
안정과 평화감이
참 행복임을 압니다.
주님은
세상적 가치 안에서도
저와 늘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전 말씀안에서 참 행복합니다.
아멘.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