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영토 / 미셀 우엘벡 / 정소미 / 문학동네
대부분의 책은 읽고 나서 그냥 덮고 책장에 넣는 것으로 독서행위를 마친다. 어떤 책은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특이점을 찾아보기도 한다. 누구는 평가를 위해 읽기도 한다.
학문하는 자세를 논할 때,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이 많지만, 나는 다상량(多商量)을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많이 읽고, 내 생각으로 정리해서 많이 적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많이 나눠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학문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글을 읽는 행위는, 그 사람의 생각을 읽는 행위이고, 소설은 소설 속의 이야기에 들어있는 어쩌면 작가도 깨우치지 못한 가르침을 끄집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담긴 가르침이란,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제일일 것이다. 어떤 이는 웃지만, 어떤 이에게는 웃음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고, 웃음이지만 다 똑같은 웃음일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소설 [지도와 영토]의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야기 전개가 다소 뜬금없기는 하나,작가는 이런 방법으로 자기 생각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 본다. 그럼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가? 그리고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 이 생각을 나눌 기회가 있다면 나누는 것, 이것이 책을 읽은 한 과정일 것이다.
본질과 드러냄
실제와 그것의 표현이라고 바꾸어도 좋을성싶다. 책의 주된 소재는 예술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그것이고, 그것에 많은 지면을 할당했다. 생경한 어휘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 작품, 사조 그리고 역사,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눈과 입을 힘들게 했다. 이해하려고 특별한 수고는 하지 않았다.
본질, 실제는 자연 그대로 존재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없다. 아무리 잘 찍은 사진도 대상을 100% 표현할 수 없다. 사진 역시 작가의 생각이 포함된다. 주인공은 어째서인지 사진에서 그림으로 표현 방식을 바꾼다. 대상도 무생물에서 사람으로, 단순한 사람이 아닌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이전의 사진도 일반 사진이 아닌 목적을 가진 대상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다시 사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아닌 겹친 사진, 시간과 대상을 함께 표현하려 했다.
인위적으로 한 대상을 드러내 표현하고 그것이 바로 그 본질이라고 정의할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대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인공, 마르텡은 이름하여 예술이라는 장르에 속한 자이고 등장인물의 한 사람, 우엘벡은 문학으로 대상을 표현하려 했다.
자연과 모조품
사람은 원하는 것, 모두를 소유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런데 갖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 어떻게 하지? 실제를 가질 수 없으니, 그것을 표현한 것, 모조품(이라 표현하자)이라도 소장하기를 원한다. 의식주에 해당하는 것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갖고 싶은 것,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있고,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고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경제력, 부의 축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연과 모조품 그리고 모조품을 담는 기구로 이루어진다. 옷, 밥 그리고 거처는 자연이기도 하고 모조품의 영역의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기본 의식주인 의복, 식사, 집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결국 자연에 속한 것이 아닌 소유하고자 하는, 소유할 수 있는 어떤 제품, 모조품 집합으로 분류될 수 있다.
모조품, 자연의 모조품은 예술, 작품 등으로 불린다. 소설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주로 다루는 듯 보이나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모조품들도 있다. 사람의 생각, 내 생각을 100% 정확하게 담아낼 방법은 없다. 따라서 가장 비슷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문학이 아닐까?
제드가 자연과 인간을 표현한 모조품을 사람들은 소유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그가 표현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다. 그것은 "흥미"롭기 때문이다. 흥미를 유발하는 자도 못지않게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흥미興味[흥:-] 1.흥을 느끼는 재미 2. 『심리』 어떤 대상에 마음이 끌린다는 감정을 수반하는 관심.
정리하다 보니, 내가 적어 놓은 메모들이 "흥미"로 수렴된다.
소설에는 여러 종류의 "죽음"이 등장한다. 자살(어머니)/안락사(아버지)/자연사(병사)/피살(우렐벡)이 그것이다. 어떤 죽음이 가장 흥미로운가. 살해당한 우엘벡의 죽음일것이다. 이 죽음이 가능한 것은 살인자의 흥미로 기인한 것 같다. 프티소의 곤충에 대한 흥미, 인간에 대한 삐뚤어진 흥미, 돈에 대한 흥미, 제드의 그림이 흥미롭지 않았다면 살인자는 우엘벡을 대상으로 삼았을 리 없지 않은가. 죽음에 이르는 길을 작가는 한 소설에서 모두 보여준다. 어느 죽음이 가장 흥미로운가? 나에게 또는 타인에게.
그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 죽음 후의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한 경찰은 주검을 통한 명상, 부정관(不淨觀,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육신의 덧없음을 깨우치고 탐욕을 없애는 수행법) 수행을 했다.
흥미와 돈
돈의 사용 방법도 흥미롭다. 쌓인 돈을 자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부(富)라 부르기도 한다. 지나가는 말로 부의 척도는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베푸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부는 기본적으로 집안(宀)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내용을 어찌 알겠는가? 제드의 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소설에서는 살짝 지나간다. 그런 자본으로 인하여 지형이 바뀌고 주민들이 바뀐다. 흥을 위해서 그는 영토를 넓히고 구별한다.
모든 흥미도 돈 앞에서는 잠잠하다. 섹스, 성은 순수한 쾌락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드와 함께 했던 주느비에브는 그녀의 매력을 팔아 일주일에 만유로까지 벌어들였으나 그는 그녀의 행위를 인정한다. 그녀는 결국 돈을 제공하는 변호사와 살림을 차린다. 제드를 사랑했다고 보이는 매력 만점의 아가씨 올가는 돈을 위해 러시아로 떠나고 그는 쫓아가지 않는다. 흥미가 없어진 것일까? 돈은 부를 경험했던 사람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듯이 성(섹스)도 같은 맥락으로 작가는 이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경찰 자슬랭도 모든 범죄의 동기는 돈과 섹스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그중에 "돈"을 으뜸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 우엘벡 초상화가 판매된 후, 그의 통장에는 육백만 유로(약 88억 원)가 입금되었다.
제드는 그의 재산을 여러 동물보호협회에 기부하는 유서를 남긴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세상은 사라진다. 전멸이다. 다만 남은 것은 "오직 바람에 풀들만이 하늘거릴 뿐. 식물의 압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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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일종의 부활이거나 복수다. 22
이렇게 해서 제드는 오로지 세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겠다는 목적으로 예술가의 길에 뛰어 들었다. 51
오로지 직업적, 상업적 목적으로만 사진을 찍다보니, 사물을 바라보는 갖가지 창조적 시각을 상실해버린 것 같았다. 51
사랑은 드문 겁니다. 모르세요? 135
한 인간을 규정짓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누군가에 대해 정보를 얻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할 때, 맨 처음 뭘 묻게 될까요? 161
극단적인 예술적 변화가 받아들여지기는 몹시 힘들거든요. 161
어쨌거나 우리는 시장에서의 성공이 모든 걸 정당화하고 가능하게 하며 모든 이론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211
부는 유복함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어린 시절부터 유복함에 단련되어 있는 사람들만을 행복하게 한다. 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