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몸 색신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에 메시지 불이 깜빡깜빡! 다초점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안경을 거의 벗지 않는 까닭에 웬만한 글은 곧바로 읽습니다
병원에서 온 메시지였습니다 진료 예약 날짜와 시간이 찍혔는데 어느 병원 어느 병동 몇 층 몇 호실에 담당 의사가 누군가까지 간략하면서도 상세한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게 어느새 스무 해를 훌쩍 넘긴 듯 싶습니다 40대 초에 노안老眼이라며 안경 쓰길 권유받았으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음이 제동을 걸고 있었습니다
심리적으로 노안의 <노老>를 인정하기 싫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자연스레 잘 받아들입니다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색신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칙을 아주 철저히 잘 따르고 있으니까요
동안童顔이니 또는 피부가 곱니 어쩌니 해도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공간의 점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몸이 점차 늙어가고 피부가 자글자글해지는 현상을 결코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별볼일 없는 색신을 우리 부처님께서는 갖고 계실까요
당연히 부처님께서는 이런 색신을 지니고 계십니다 색신을 다른 말로는 육신이지요 부처님은 색신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몸도 지니고 계십니다 색신 밖의 몸이라면 어떠어떠한 몸을 일컬을까요
신들이 지닌 하늘의 몸 아라한이 지닌 지혜의 몸 보살마하살이 지닌 법의 몸 부처님만이 지닌 부처의 몸까지 여래께서는 모두 지니셨습니다 일체동관분에서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등 다섯 가지 눈을 다 지니신 분이 곧 부처님이셨듯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온갖 집착을 다 떠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시공간을 점유한 색신은 끊임없는 무상의 변화 속에서 생겨나고 유지되고 무너져가고 특이점特異點Singularity까지 갔다가 그 특이점에서 다시 생겨나고 유지되고 무너집니다
그리고 다시 공空의 세계로 돌아가 뭐라 표기할 수 없는 특이점까지 가는 현상들을 계속 되풀이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곧 완전한 깨달음을 통하여 이와 같은 제법의 실상을 누구보다도 바르게 깨달으신 우리 부처님께서 집착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심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색신을 갖추셨다고는 하나 실은 색신을 갖추신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서 이처럼 색신에 대한 집착을 온전히 놓아버릴 때 비로소 색신을 갖추었다 하겠지요
우리절 2층 내 차실茶室에는 1994년 6월 수필집으로 26번 째 낸 내 책《마음을 비우게 자네가 부처야》를 출판할 때 찍은 사진 그림이 다실 한 녘에 다소곳이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 거창하게 시공간이냐고요 오랜 시간 거기 그렇게 있었으니까요
새까만 수염이 지금도 인상적이나 지금은 까만 수염이 없습니다 색신은 이처럼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천하고 변화합니다 때로 아프기도 하고 때로 다치기도 합니다
교통사고나 자연재해를 당하기도 하거니와 크고 작은 사고를 겪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론의 역사가 아니라 사건의 역사이기에 그때 그때 계속해서 바뀝니다
육신으로 이루어진 이 몸 색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의 속성은 흐름이고 공간의 속성은 팽창입니다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파웰 허블(1889~1953)이 발견한 우주팽창설 때문이 아닙니다 공간은 끊임없이 팽창하며 팽창하는 그 갈피 갈피마다 시간이 쐐기로 박혀 수축하려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색신도 우주와 같아 팽창하는 것을 속성으로 하지요 가령 1기압인 지구에서는 기압의 무게가 몸의 팽창을 막지만 만일 기압이 전혀 없는 우주 한가운데 놓였다고 가정하면 몸은 바로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지구가 갖는 기압의 무게와 그에 길들여진 색신 덕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지구환경에게 언제 어디서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지요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한가 색신을 갖추신 분으로 부처님을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색신을 갖추신 분으로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색신을 갖추었다 하심은 곧 색신을 갖추신 게 아니기에 비로소 색신을 갖추셨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전《금강경》에서는 서른 두 가지 상을 말씀하시나 나는 우리 부처님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오감만족상五感滿足相입니다 다섯 가지 감관을 고르게 다 갖추신 상이시지요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한가? 여러 가지 상을 갖춘 분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가지 상을 갖춘 분으로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여러 가지 상을 갖추셨다 하심은 곧 갖추신 게 아니기에 바야흐로 말씀하시되 여러 가지 상을 갖추셨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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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시여 존경하는 님이시여 당신은 한 마디로 멋진 분이십니다 당신에게는 있음에서 없음에로의 회귀를 일깨우는 힘이 있으십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욕망과 질투와 노여움을 조용히 잠재우는 힘이 있으십니다
님이시여 존경하는 님이시여 당신에게는 없음에서 있음에로의 창조를 일궈내는 힘이 있으십니다 신심을 불러일으키고 창의력이 돋게 하시며 일할 마음을 내게 하십니다 님이시여 특유하게도 당신께서는 다섯 가지 감관을 고르게 만족시키고 계십니다
님이시여 거룩한 님이시여 당신에게서는 노을이 보입니다 아침 노을Sun-rise이 보이고 저녁 노을Sun-set이 보이십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당신의 빛깔은 다크Dark입니다 따라서 진한 거피에서도 나는 당신을 봅니다
님이시여 거룩한 님이시여 당신에게서는 화성이 들립니다 강한 듯 약한 소리 더딘 듯 빠른 소리 낮은 듯 높은 소리 가릉빈가 화음和音이 징명하게 날아와 귓전을 때립니다
님이시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당신은 향기를 지니셨습니다 처음이나 끝이나 여일하게 느껴지는 미소 당신과 내가 하나되어 느끼는 시종일향始終一向의 기쁨 그 환희로움이 있습니다
님이시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당신에게서는 맛이 느껴집니다 생로병사의 단계에서 함께 부대끼며 함께 고민하신 당신의 맛은 청량고추인 듯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그러나 항상 달콤쌉쌀합니다
님이시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그거 알고 계시나이까 당신의 피부는 백합입니다 어떠한 인위적 빛깔도 순수자연의 빛깔인 백합의 순수를 흉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백합의 순수함과 연꽃의 성품을 지니셨기에 어떠한 것으로도 당신의 피부를 물들이지 못합니다
님이시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당신은 위대한 이들에게서나 나타나는 서른 두 가지 독특한 모습만을 갖추신 것이 결코 아니셨습니다 서른 두 가지 모습 외에도 서른 두 가지 음성을 지니셨습니다
님이시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서른두 가지 진리의 향기와 서른두 가지 감로의 맛과 서른두 가지 행동의 뉘앙스를 저희로 하여금 느끼게 하십니다
어디 서른두 가지 뿐이겠습니까 삼천 가지 거동과 팔만 가지 섬세한 손길과 천백억 가지Species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당신이십니다
연못 위에 살포시 핀 뾰줌뾰줌한 수련에서도 작은 실바람에도 몸을 맡기는 민들레 꽃에서도 느껴지시는 당신이십니다
체온을 몸으로 느끼며 어두컴컴한 마루 밑에서도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에게서 파란 하늘 하얀 구름사이로 햇살을 불러들어 나락을 말리는 고추잠자리의 날갯짓에서 우리는 당신을 느낍니다
아, 님이시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당신의 숨결을 나는 언제나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의 향기를 나는 어디서나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땅이고 당신은 하늘이고 당신은 우주이십니다 아으, 당신은 시간이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당신에게서는 어떠한 체면도 찾아볼 수 없기에 갖춤이라는 고의성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빛깔을 떠나고 모습을 떠나셨습니다 시간을 떠나고 공간을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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