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이시니
사람의 머릿속에는 기실 ‘무에서 유의 창조 개념’이 매우 희박합니다. 우주 만물이 생기기 이전에는 ‘원시적인 혼돈’의 상태였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광대무변한 공간이 있고, 허허벌판 같은 혼돈상태(caos)에서 대단한 능력자가 나타나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정리하고 필요한 것 정도를 새롭게 만든 것을 ‘창조’로 인식합니다. 이는 무에서의 유의 창조가 아닙니다. 유에서 유의 창조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그렇고, 세계 모든 종교의 창조 설화가 그렇습니다. 심지어 성경까지도 그렇다는 해석과 주의주장이 AD 4세기에 이르도록 당연시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천지창조 역시 원시적 혼돈의 상태에서 빛을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로 나누어 질서(cosmos)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점(AD 4세기)에서 하나님은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전능자이심을 계시합니다. 다름 아닌 ‘삼위일체 논쟁’을 통해서입니다. 서기 325년 무렵 교회 안팎에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해석 논쟁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주요 쟁점은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입니다. 성자 예수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니 성부와 동일한 제일자(第一者)일 수 없다는 주장에 성자 예수 역시 성부와 같이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주장이 맞섰습니다.
이 논쟁의 바탕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만들어진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함의를 갖습니다. 이 함의에는 하나님만이 무에서 유로 계신 분이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예수님이 성부와 동일하다면 ‘무에서 유로 계신 분’이라는 뜻이고, 성부와 같지 않다면 그리스도는 ‘유에서 유로 계신 분’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 논쟁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깊은 성찰의 산물을 을 인류가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으나 신의 행위를 통해 신을 알 수 있다.” -바실리우스(Basil the Great 튀르키예 가이사랴의 주교 329~379)-/ “신은 인간에게 파악 불가능한 하나의 본질(우시아 ousia)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를 알게 하는 세 가지 표현 형태(휘포스타세스 hypostases)를 갖고 있다.” “신은 세 개의 휘포스타시스 안에 거하는 하나의 우시아이다”-아타나시우스-/ “인간은 성자의 계시 없이 성부를 알 수 없고, 성령의 임재 없이 성자를 알 수 없다.” -어거스틴-
참으로 주옥같은 성찰입니다.
이로써 4세기 삼위일체 논쟁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부 성자 성령은 “세 위격 한 본체”로서 결말이 났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가 ‘무에서 유의 창조’라는 해석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