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일시; 2014. 7. 19.
2.산행개요
만약에 영화 ‘점퍼’의
주인공처럼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순간 이동할 수 있다면, 무박산행이 심리적으로 훨씬 쉽게 다가올 지
모른다. 좁은 차에 많은 인원이라는 이중고를 각오하고 무박산행에 나서는 것은 벌써 그 자체가 예삿일은
아니다. 십자가 없이는 왕관도 없다. No cross, no
crown. 다들 대단하다고 칭찬해 줘도 될 것이다.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 ‘예수의 수난’의 원제는 ‘Passion
of christ’ 이다. Passion은 보통 정열 혹은 열정으로 번역되지만 고통, 수난, 수난곡 이라는 뜻도 있다.
바하의 마태 수난곡도 영어로는 St. Mattew’s Passion이다. 어떤 일이 열정없이 이루어졌을까. 그 열정에 고통과 수난을 동반하지
않는 성취가 또 어디있을까. 열정과 고통과 수난을 한 단어에 밀어넣은 심오함에는 실로 감탄할 만한 바가
있다 하겠다.
경남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신계마을. 톨케이트를 빠져나와서도 하염없이
가는 느낌이다. 4시40분 도착, 바로 산행 시작이다. 마을 뒷산이니 동네 사람들 산책로가 있으려니
생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오산이었다. 등산로를 찾다가 포기하고 삼거리에서 무대뽀로 올라선 가이버와 짜임새를
따라 올라섰지만 바로 위 무덤가에서 인적이 끊겼다. 배낭카버를 씌운다는 핑계로 상석위에 배낭을 올려놓고
밍기적 거리는 두 사람을 향해 한바탕 툴툴대고 메아리 대장을 따라 옻나무 범벅의 까칠한 사면을 갈지자로 진행한다.
예상과는 달리 시루봉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배낭하나 벗어놓을 공간이 없는 찌질한 봉우리다. 선
채로 물한모금 마시고 그대로 진행한다. 밝아오는 하늘은 오늘 하루 맑을 듯한 기대를 주지만 비 온 뒤끝인지
눅눅한 습기 때문인지 천지에 미만한 잡풀과 관목이 모두 젖어 실제로는 물속을 유영하는 기분이다.
바람부는 곳을 잡아 아침을 먹은 뒤, 외고지산을 지나 등로상에 있는
크고 넓적한 바위 위에 올라 운해를 감상하나 – 지난 번 한우산 때만은 못하다고 평점을 메긴다. 대체로 운해는 장쾌하고 일망무제의 느낌을 주어야 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고도와 사방팔방으로의 조망, 구름의 밀도와 분포, 그리고
그 위로 어우러지는 봉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미묘한 조화가 살아있어야 한다. 예술의 예자도 몰라도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라는 표현이 저절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구름의 질과 양에는 문제없지만
산의 높이가 낮아 내려다 보는 맛도 없고 화폭이 너무 작다. 무언가 그리다 만 것 같은 미진함이 있다. 멋진 그림도 자주 보면 그 가치가 떨어질 테니 납득할 만한 섭리라 하겠다. 미련없이
발길을 돌린다. 성운산 – 만지산 갈림길에 이르러 메대장과
드류님은 성운산을 찍고 온다고 왼쪽으로 가고 나머지는 만지산으로 향한다. 기억에 없는 번듯하게 생긴
임도를 잠시 걷다가 다시 등로에 들어선다. 메대장이 없으니 선두로 갈 사람을 구해도 다들 못들은 척하면서
때아닌 임도가의 야생화를 들여다 보던가 지도공부를 한다. 앞장서서 옻나무를 치고 가지 않겠다는 계산인데, 이런 범의 장다리 같은 장정들도 격에 안맞는 애교를 부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옻이 호환, 마마, 야동 보다 무서운 줄 알겠다.
만지산은 삼각점과 표지판 이외에는 조금 있다 올라야 할 국사봉과 그 앞의 마을이 내려다 보일 뿐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봉우리이다. 햇볕이 벌써 무지 따가워져 봉우리를 약간 벗어난 그늘에서 잠깐 쉰다. 그리고 가이버를 앞세워 1부 1차
하산 작업에 들어간다. 길은 비교적 뚜렷하다. 계곡을 넘나들며
난 길을 따라 마을에 내려서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커다란
축사건물이 만들어낸 그늘에서 자리를 편다. 오가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착실하게 인사를 하니, 하필이면 냄새가 나는 축사옆에서 쉬느냐고 한마디씩 걱정해 주신다. 요즘 소고기가 비싸 소똥냄새라도 맡으려 한다고 농담처럼 말씀드리니 껄껄 웃으신다. 곧이어 드류님과 메아리 대장도 내려온다. 아주머니 한 분이 밭에서
일하다 돌아오는지 축사 앞집으로 들어가면서 어디서 왔느냐 어디를 가느냐 관심을 나타낸다. 서울서 왔는데
국사봉을 올라가는 길이 어디 있냐는 등등의 문답이 잠시 이어지고, 아주머니는 자기도 등산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방금 채취해온 무공해 상추를 한바구니 그것도 쌈장까지 곁들여 건네주신다. 이거
점심때 무지 맛있게 먹었다. 현실에 일관되게 비관적인 견해를 나타내야 머리 속에 뭐 좀 든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런 분들 때문에 결론이 자꾸 흔들리게 된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에서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 지옥으로 드리워진 양파 한뿌리를 희망으로 삼을 수 있는 순수함과 선량함은 서푼짜리
지식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사봉을 오른다. 오늘의 산행은 이거 때문에 그 가치가 배가된다. 이런 난제를 풀어 줘야 어디 가서 오지 어쩌구 하면서 구라 칠 꺼리가 생길 것이다. 600m 정도된다. 만지산쪽에 비하면 거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땀이 줄줄 난다. 온몸의 수분을 완전히
‘기리까이’ 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각자의 걸음으로 간다. 정상은 다 온 듯 다 온 듯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마침내 의령군에서 1997년 세운 국사봉 정상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넓은 공터에 제법 멋지게 자란 한그루 잣나무? 밑에
의자를 펴고 아침과는 달리 잔뜩 흐려진 하늘아래 불어오는 바람을 즐긴다. 정상석 옆으로는 몇 사람이
앉을 만한 꽤 넓은 바위가 있고 또 그 옆으로 경주 단석산의 단석만한 바위가 있다. 앞에는 이례적으로
흔들바위라는 제대로 된 크기의 정식 비석을 세워놓았는데, 흥미가 일어 가이버에게 바위를 흔들어 보라고
하니, 바위는 안 흔들리고 몸이 흔들린다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준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모두 모였을 때 온내님 바지가 단연 화제가 된다. 땀 좀 흘리는 사람은
봤어도 저렇게 많이 흘리는 사람은 세상에 처음 봤다. 아예 물에 빠졌다 나왔다면 바지가 차라리 저것보다는
훨씬 바짝 말라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뒤꿈치까지 완전히 젖었다. 신기하다. 아마도 그날 본전 제대로 뽑은 사람은 온내님 아닌가 생각된다.
천황산을 가려던 계획은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진행도중 적당한 지점에서 왼쪽으로 떨어지기로 한다. 대신 미타산과 천황산을 눈으로 등반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675봉
전위봉에서 길흔적을 따라 내려선다. 처음에는 밧줄도 매어있고 제대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이내 족적은 사라지고 밀림을 마구잡이로 내려가는 모양새가 된다. 너덜
피하고, 바위 우회하고, 잡풀과 잡목을 무찌르며 계곡 이
사면, 저 사면으로 왕복, 횡단한 끝에 도로에 내려선다. 손바닥만한 그늘이 있기는 하지만, 바람도 안 불고 어쩐지 자리깔기가
마음 안 내킨다. 때마침 올라온 두메님 차를 타고 고개마루로 올라가서 한 켠 나무그늘에 밥상을 펴고
자연님이 공수해온 오디주를 반주로, 사계님이 싸온 계란후라이를 고기반찬으로, 한계령님이 가져온 빵으로 디저트를 삼아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
전반에는 소매가 없는 검은 색 민소매 티를 입고 군 특수부대원 같은 야성미를 보여주었던 짜임새가 후반에는 산뜻한
붉은 티로 갈아입고 앙증맞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후에는 태백산, 무월봉, 대암산을 지나 아천리에 이르는 경로이다. 봉우리마다 명자(名字)가
있어 소위 봉우리 헌터 혹은 봉따먹기 선수들에게는 환영받을 코스이긴 하지만 그와같이 야산자락에 봉봉마다 명칭을 붙인 이유도 태백이나 무월 혹은
대암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모르겠다(무월은 춤추는 달, 대암은
큰바위? 뭔 상관이랴). 하여간 오전에 비하면 평지라 해도
좋을 만큼 순한 능선이다. 잡풀이 우거지긴 했으나, 겨울이었다면
등로가 뚜렷했을 것이다. 아무런 특이점도 없는 태백산은 엉겁결에 지나고 무월봉 가는 길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사실 봉이라 봐야 약 100m 정도 올랐다가 내리는
것에 불과한데도 왠지 요철이 심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지치기도 했거니와 무언가 등로의 모양새와 구조가 재미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밀림을 방불케 하는 여름철 야산자락은 여럿이 가니까 가지(사실 선두는
메대장이 거의 전적으로 수고한다), 혼자 가려면 풀무더기를 뚫는 무의미한 몸놀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홀로 해야 하니 보람없고 어이없으며 헛힘만 드는 고행길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유명한 독행객들이 대단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찌푸린 하늘이 드디어 한숨을 내쉬며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다. 언젠가
산행중의 겨울 비에 대해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름 비에 관해서는 별도의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에서 안성기와 박중훈이 장쾌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서로의 볼따구를 향해 한주먹씩 교환하는 장면이나 이걸 모방했다고 알려진 매트릭스의 네오와 스미스의 우중격투 씬 같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다소 성급하게 일반화하자면 장대 같은 비를 맞고 걸어보는 것이 이 불임의 시대, 해소할 길 없는 불만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의 로망이 아닐까. 목놓아
울고 싶기도 하고, 하늘 끝을 향해 나의 존재를, 나의 절규를
들려주고 싶을 때, 그럴 때, 아무 눈치도 안보고 빗속을
걷을 수 있다면 벌써 목적의 반은 달성한 것이다. 영화 속의 비는 시각적 이미지에 그칠 뿐, 비의 진짜 효능은 얼굴에 쏟아지는 물방울의 감각에 있다. 공중에서
자유낙하하는 빗방울의 질감을 직접 느껴야 비로소 힐링의 참다운 의미가 내 몸으로 만져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데 요즘 같이 남들의 이목이 무서운 시절에 등산이 아니라면 어디서 이와 같이 맨몸으로 비를 맞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영화속의 비오는 장면에 집착하는 것은 허기를 그림자 밥으로 채우려는 시도와 같을 뿐이다.
그러나 또 한여름 소나기처럼 싱거운 것은 없다. 올 때와 같이 갈
때도 덧없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자리에 다시 7월의 뙤약볕만
불같이 내려쬔다. 등산화와 빤스가 속까지 젖어 질퍼덕거리고 후덥지근한 게 차라리 안온 것만 못하다. 행글라이더 활공장인 대암산의 주차장 시설과 시멘트도로를 걸어 올라가려니 정수리가 따끈따끈한 게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잡풀과 옻나무도 여전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마음이
급한 들 한걸음 한걸음이 아니면 어찌 목적지에 도달하랴. 게다가 야산지대 독도는 더 신경 쓰인다. 그러나 누구인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242.1봉에서 땀
범벅인 온내님을 기다리며 모두 모여 다 털어먹고 하산 길로 들어선다. 산 넘어 살구 밭을 그리며 갈증을
있었듯 폭염에 거역했던 육신이 목욕탕 찬물에 푹 담겨있는 상상을 하며 무덤가를 지나 마을로 내려선다. 오늘의
하이파이브는 스스로도 대견하다. 남들이 보면 이 더위에 뭐 하는 짓이냐고 할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천리 마을 정자앞에서 만난 아이들은 신기한 생물체를 보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첫댓글 어릴적 장대비 맞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내 몸은 물론 영혼까지 깨끗히 씻겨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평소에 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께서 옷을 벗겨서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시던 느낌이 너무도 포근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에 취해 밖을 보니 훤해서
아침인 줄 알고 헐레벌떡 학교가는 준비를 했는데...
그게 저녁때 하늘이 화창하게 개인 것이였었지요.
하늘에는 하늘잠자리가 온통 옥수수밭을 뒤덮어서 활공을 하고
어느새 산자락에 노란 노을이 지던....그 어릴적 생각이 납니다.
우리도 산행끝나고 안성기, 박중훈처럼 목욕탕에서 볼따구 때리기 한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