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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3장 1-23절 말씀을 듣는 마음에 대한 비유
예수님께서 많은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시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도 보고 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자 따라다녔습니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같은 믿음으로 듣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믿음이 다릅니다. 그에 따라 듣는 자세도 역시 다르고 맺는 열매도 역시 다르게 됩니다. 그러니 결과도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듣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듣는 자세는 영적이며 내적인 갈망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왔던 그날,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가족은 그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그날 말씀을 가르치시던 집에서 나가셔서 바닷가에 앉으셨습니다. 큰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장소를 옮기셔서 배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배 위에 앉아계셨고 사람들은 모두가 바닷가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그들에게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들의 첫 번째가 바로 씨가 뿌려지는 밭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가서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길가에 뿌리려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뿌리다보면 어떤 씨앗들은 길가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씨가 길가에 떨어진지 얼마 안있다가 어디에서 날아온 새들인지 곡식을 다 먹어버렸습니다. 사실 밭에는 항상 새들이 먹이를 찾아 헤메고 있기에 밭 가장 자리 길에 떨어진 씨앗은 모두 새들의 먹이가 됩니다.
이 사람은 천국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밭의 바깥에 있는 단단하게 굳어진 길입니다. 그래서 좀처럼 씨앗이 흙속에 묻히지 못하는 것처럼 말씀을 귀로는 듣지만 마음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도 은혜를 받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은혜와 진리가 그에게는 아무 감동이나 감화가 되지 못합니다. 그냘 교회에 왔다가 아무 일 없이 그냥 돌아갈 뿐 하나님과의 만남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악한 자가 와서 다 빼앗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19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예수님이 뿌리시는 씨앗은 천국말씀입니다. 이 천국말씀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 악한 자의 정체를 마가복음에서는 사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15절입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사람의 마음에 떨어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 사탄의 활동입니다.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머무르지 못하게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악한 자에게 빼앗기는 이유를 천국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듣고 쉽게 전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영의 사람이 아니라 땅의 사람이요 육신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 들은 말씀이나 읽은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으로 흙이 얇은 돌밭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길가보다는 많은 흙들이 표면을 덮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들리면 흙이 깊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싹이 나옵니다. 5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6절입니다.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싹이 나와서 좋아했더니 곧 실망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그 씨앗 밑에 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싹이 나오기는 금방 나왔는데 해가 떠오르자 얼마 견디지도 못하고 금방 말라죽은 것입니다. 싹은 나왔는데 뿌리가 나오기도 전에 뜨거운 햇볕에 말라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뜻을 20-21절에 말씀하십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나오자 그 뿌리가 나오기도 전에 나온 싹이 타서 금방 마른 것처럼 환난이나 박해가 오자 잠시 견디다가 곧 넘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잠깐은 말씀을 붙들고 견디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난이나 박해가 왔을 때 뿌리가 없는 신앙인처럼 오래 견디지 못하고 넘어진 것입니다.
다음으로 가시떨기로 가득한 밭이 있습니다. 처음에 가시떨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밭에 있는 가시들을 뽑아주었기 때문입니다. 7절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그런 밭에 씨를 뿌리자 씨들이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들과 같은 때에 싹을 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밭에서 죽지 않고 있던 가시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자라서 곡식들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로인해 곡식 줄기는 많이 자랐는데 양분을 다 빼앗겨서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2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여기 가시로 인해 열매맺지 못하는 마음의 그 가시가 무엇인지를 예수님은 두 가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세상의 염려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이유들을 만들어 냅니다. 마음에 걱정거리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염려는 알지도 못하는 미래를 끌어 당겨서 미리 걱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5-28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너희와 함께 하시며 너희의 삶을 다 책임지고 계시는데 는 데 왜 염려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결국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공급하실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사람일수록 염려를 적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염려가 많습니다.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으로 할 때 이 땅의 것들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많지만 하나님의 일은 이룰 수가 없습니다.
땅의 일을 하는 사람도 자기 일을 할 때는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역시 자기 힘으로 하는 사람은 걱정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면 염려할 수밖에 없고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많은 가시들이 하고자 하는 일의 앞을 막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자 하는 것일지라도 세상의 염려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막습니다.
다음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막는 가시는 재물의 유혹입니다. 염려가 일어날 미래의 것을 끌어 당기면서 걱정하는 것이라면 재물의 유혹은 현재적이며 미래적입니다. 현재적인 이유는 지금 눈 앞에 있는 재물이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때문이고, 미래적인 이유는 자기가 얼마의 재산을 모아야겠다고 마음에 정해놓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가 없습니다. 돈에 마음이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돈 없이도 살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명기 8장 18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재물얻을 능을 자신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우리 나라 연예인들을보면 기부를 엄청나게 많이 하는 기독교연예인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재물얻을 능력을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을 돈을 버는 것이나 돈을 모으는 것으로 삼는 사람, 사람들의 생명보다 돈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 또 돈의 힘을 이 세상의 제일로 놓는 사람은 다 이 재물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다단계같은 회사를 운영하는 사기꾼들이 자꾸만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돈의 유혹을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일거리를 분별해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일거리라면 그것의 보수가 많든지 적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최대한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재물을 모으게 하시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일도 같이 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욕심과 재물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먖지 못함으로 나중에는 베어서 불사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옥토밭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옥토는 한마디로 농사가 잘되는 기름진 땅입니다. 이런 땅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땅입니다. 예수님은 이 옥토에 대하여 8절에 말씀하십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옥토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도 기쁨으로 받지만 인내로써 결실을 합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을 보면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옥토같은 마음은 첫째로 착합니다. 둘째는 말씀을 받을 때 좋은 마음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마음입니다. 셋째는 인내로써 결실을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3장 23절을 보면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하고 말씀하시는 데 여기서는 첫째로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입니다. 이는 성령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 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인내로써 결실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굳게 붙드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인내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약속의 말씀하실 때 대부분이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들은지 25년이 지나서야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을 기다린 후에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20년동안을 외삼촌에게 속으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외삼촌의 양떼를 목양해야만 했습니다. 요셉도 역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을 꾸고나서 13년이상을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인내해야만 했습니다.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은 즉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왕으로써의 역량을 기르게 하시기 위해 다윗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고난의 광야를 몇 년동안이나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보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오랜 인내의 시간을 가졌던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돌밭처럼 해의 위험을 만나기도 하고 가시밭처럼 세상의 욕심과 재물의 유혹에 대한 시험을 받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심으로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석해주시기 전에 말씀하십니다. 9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실상은 자신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하신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씀하시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을 텐데 예수님이 어째서 이 말씀을 비유로 하시는지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비유의 뜻을 알기를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13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있는 자는 더 많이 받아서 넉넉하게 되지만 없는 사람은 그 있는 것도 역시 빼앗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을 예수님이 하시리라고 이미 구약의 이사야선지가 예언을 했었습니다. 14절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또 깨닫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15절에 나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들의 마음에 걸림이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욕심과 재물의 유혹을 받아서 많은 재물을 모으고 떵떵거리면서 살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죄를 회개하고 부유한 자로써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돈을 열심히 벌되 벌으면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사용하기를 원하시지만 사람들은 욕심에 사로잡혀서 오로지 자기들만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니다.
돈을 버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큰 부자가 되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자꾸만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합니다. 또 장애인들을 돌보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돌보려면 가지고 있는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손에 얹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에 그 재물을 쓰기를 원하시는 지를 여쭈어 보고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벌기도 잘 벌지만 사용하기도 역시 잘 사용할 것이고 그런데 사용하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음은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많은 선지자들이나 의인들이 이 일로 엄청나게 부러워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고, 만나서 그 말씀을 듣고 싶어 했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과 계시가 아닌 직접 만났을 뿐 아니라 이렇게 친절하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주심을 듣고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길가는 아닙니까? 돌밭은 아닙니까? 아니면 옥토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셔서 깨닫고 인내하면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