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장손입니다
“장손(長孫)”은 한 집안에서 맏이가 되는 (친)손자를 말하는데 부모의 형제들 입장에선 장조카(맏형의 맏아들)로 불리기도 합니다.
집안 성씨를 이어간다는 가부장적 개념과 직결되어 있어 친손녀나 외손은 손주들(당사자 입장에서는 사촌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거나 큰아이의 큰아이거나 해도 통상 제외됩니다.
우리나라의 장손은 명절 때만 되면 정말 울고 싶을 겁니다. 저도 장손입니다. 그런데 장손보다 몇 배 더 어려운 종손도 있습니다.
“종손(宗孫)”은 종가의 대를 이을 ‘맏손자’로 사손(祀孫)이라고도 하는데, 손자가 여자와 남자 둘 다 이를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남자 손자만을 말합니다. ‘종손’은 그 집안의 종통(宗統)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뼈대 있는 가문(家門)’의 종손은 윗대로부터 받는 것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임도 엄청나서 그 가문의 흥망성쇠에 대해 늘 무거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방송에 나와서 떠드는 사람들 중에 종손은 본 적이 없고 겨우 장손인 사람들이 마치 세상의 일을 다 책임지는 거처럼 말들 하는데 보기에 좋지가 않습니다.
조선 양반, 특히 지방 양반은 평생 하는 일이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보면 제사가 가장 많았던 가문은 연 23회였다고 하니 그 가문의 종손은 1년 내내 제사 지내는 것이 일이었을 겁니다.
요즘 보통 집에서는 제사를 2대 정도 모시고 명절 차례 모신다면 연 6회뿐입니다. 저도 그만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증조부모님 제사도 모셨는데 아들이 결혼한 뒤로 부모님, 조부모님 제사만 모십니다.
장손을 사표 낼 수 있다고 해도 저는 사표를 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장손인 것은 타고난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제사 없애고, 장손 사표 냈습니다.”
지난해 인터넷상에는 이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매년 돌아오는 명절 때마다 제사 음식을 차리느라 ‘파김치’가 되는 어머니와 아내를 보면서 속상했다는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손 사표’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후 명절 때마다 평화로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훈훈한 결말도 전했다.
이 게시물은 지난해 설 연휴 기간이 끝난 직후 올라왔지만, 명절을 앞두고 최근 또다시 회자됐다. 게시자는 “명절에는 우리 집(큰집)이 식당인가 싶다” “친척들은 빈손으로 와서 손님 행세하다 집에 갈 때는 (음식을) 탈탈 털어 싸들고 갔다” 등 그간 쌓인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그는 친인척에게 “저는 장손 사표를 쓸 테니 앞으로 작은아버지 장남이 장손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게시 글을 본 누리꾼들은 크게 공감하며 통쾌해했다. “고생한 게 보인다.” “아직도 ‘장손’이라는 이유로 집안 대소사를 떠넘기는 친척들을 보면 환멸을 느낀다.” “장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장손이 뭔 죄라고…나도 사표내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일각에서는 ‘주작’(조작된 글)을 의심했지만, 현실은 더 ‘막장’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과거에는 며느리 등 여성이 제사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음식을 차리고 손님을 치러야 하는 몫이 오로지 여성의 노동으로만 인식된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성들, 특히 제사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장손이 되레 반기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명절을 앞두고 차례를 짊어진 이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40대 남성 A 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제사랑 명절 차례를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며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매번 우리 집에 친척들이 다 모일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내한테도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장손들은 아버지를 이어받아 제사를 가져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티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남성 B 씨는 “제사를 가져오지 않을 생각”이라며 “어머니가 힘드실 때가 되면 부모, 친척 등 합의하에 제사와 차례를 다 없앨 생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남성 C 씨는 “아직 멀었지만 곧 내 고민이 될 것 같다. (제사를 가져올)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현행 법령도 문제다. 현재 건전가정의례준칙에 따른 관련 법령 예시에는 △기제사의 대상은 제주부터 2대조까지로 한다 △기제사는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에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 △차례는 매년 명절의 아침에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 등이 쓰여 있다. 장손의 집에서 차례를 지내야 한다 등의 구체적인 방법을 명시하면서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그맨 장동민 씨는 최근 S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온가족 앞에서 제사금지령을 선포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집안의 장손이라고 밝힌 그는 “제사가 1년에 12번 있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봤을 때 (맏며느리인) 어머니가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 그는 친척들을 다 불러 모은 뒤 “산 사람이 죽겠다. 제시 지내지 말자. (조상들은) 내가 마음으로 기리겠다”며 제사를 없앴다고 밝혔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30대 남성 D 씨는 “본가 책꽂이에는 족보가 가득 꽂혀있고, 작은 아버지들은 항상 나에게 제사 모시는 것과 선산 관리 등에 대해 강조하셨다”며 “나이가 들수록 장손이란 것과 제사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만 커졌다. 결국 나는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둔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제사를 가져오더라도 1년에 1회 정도로 간소화하고 다른 친척들은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사는 농촌 사회에 걸맞은 문화였고,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맞지 않다”며 “(30~40대가) 자유로운 세대이기도 하고, 과거에는 부모 세대가 가진 권위와 재산 상속 이점 등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자식이 동등하게 물려받지 않나. 개인적·문화적·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한다고 해도 바로 윗세대만 추모하는 모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동아일보.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제가 서울에 처음 와서 3년 정도는 명절이면 고향에서 손님이 열 분이 훨씬 넘게 왔습니다. 작은 집에 제 식구와 열다섯 명이 넘는 손님이 잘 자리가 없어 앉아서 밤을 새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손님이 줄어서 이젠 아우네 식구 네 사람만 옵니다.
다른 때도 만나지만 제사 때와 명절 차례에 아우네 식구와 우리 식구가 함께 합니다. 다 해야 여덟이었다가 한 사람이 새로 들어와서 아홉입니다. 그렇게 만나는 일도 항상은 아닙니다. 딸들이 시집가면 제사와 명절 차례에 참석하지 못할 겁니다. 예전에는 스무 명이 넘게 차례를 함께 지내고 같이 밥을 먹었지만 이젠 정말 단출해져서 누가 군에 가거나 하면 텅 빈 느낌이 드는 것은 저 혼자의 생각이 아닙니다.
제사 지내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말, 납득은 가지만 장손의 일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조상들의 묘소 관리, 친척들의 대소사 참석하기……
저는 고모 여섯 분과 당숙 다섯 분, 당고모 일곱 분이 계십니다. 고모, 고모부는 이제 다 돌아가셨습니다. 90세가 되시는 당숙, 당숙모님 네 분이 계십니다. 다른 분들도 다 80대의 연세가 되십니다. 이제는 7촌 조카들의 결혼식이 줄을 이을 것 같습니다. 이런 대소사를 일일이 챙겨야하는 장손인데 이를 어떻게 사표를 낼 수가 있겠습니까?
남들 말처럼 그냥 모르는 체하고 넘어가면 아무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나이 먹어서 성묘를 다니느냐, 제사를 왜 다 모시느냐, 무슨 6촌까지 다니느냐……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장손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