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3. 05;00
지난주 3월 18일엔 폭설이 내렸다.
폭설이 겨울과 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더니
그 눈이 녹자마자 겨울은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카메라를 메고 늘 다니던 곳에 올라
'미선나무'를 살짝 만져보았다.
미선나무 꽃눈은 여전히 잠자고, 꽃봉오리가
언제 열릴지 미동을 하지 않는다.
작년엔 3월 12일 만개를 했었다.
금년은 3월 23일인데도 혼돈의 인간세상이
싫은 건지 겨울잠에서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뜰안의 산수유는 만개를 하였고,
청매화 가지에 딱 한송이 매화가 피었다.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오후에 남서풍이
많이 부는데 오늘따라 새벽부터 바람이
많이 불어 카메라 초점을 맞출 수가 없다.
10;00
믹스 커피를 탄 머그잔을 들고 따뜻한 봄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커피 향을
음미한다.
LISZT의 'Hungarian Rhapsody'가
끝나고 손빈아가 부른 배호의 '마지막
잎새'가 흘러나온다.
배호가 현신한 듯 손빈아의 낮게 깔리는
중저음과 품격 높은 고음의 노래에 빠져
든다.
[ " ♬ 그 시절 부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참았던 눈물인가, 흐느끼며 길 떠나는
마지막 잎새~~♬ ]
많은 사람들이 1971년 11월 사망한 가수
배호를 사랑했고, 배호가 마지막 무대에서
부른 '마지막 잎새'라는 노래를 매우 의미
있는 곡으로 여긴다.
2002년 방배서지점 지점장으로 재직 시,
방송인 고 백남봉 형님과 함께 배호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 '배사모'에 여러 번
참여를 했고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
2005년 2월 광명 철산지점장으로 부임을
하고, 지점장실 밖 화단에 심은 담쟁이
2 포기가 성장이 빨라 지점장실 유리창과
외벽을 완전히 감싸 고풍스러운 사무실이
되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 선고,
그리고 그해 5월 뇌종양 수술을 받기 전날
유리창을 덮은 담쟁이를 바라보는 내 심정은
결코 무심하지 않았다.
저 담쟁이 잎은 내가 이승에서 바라보는
'배호의 마지막 잎새'가 될까,
아니면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깊은 고뇌에
빠졌었지.
손빈아의 노래를 들으며 절망에 빠졌던
그 당시가 기억이 나고 엉엉 울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어서
손태진의 타인 '하필이면 당신과 나~',
양지은의 서글픈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전영랑의 '엄마손은 약손 아가배는 똥배',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나훈아의 '♬붉은 산 노을 업고~여보게
쉬었다 가세♪'~~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하는 추억은 감수성이
예민해졌는지 젊을 때와 다르게 느껴진다.
지금 듣는 노래의 가사는 하나하나
한 소절 매소절마다 한 편의 시(詩) 같은
깊이와 여운을 가졌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게 만드는
봄바람과 따사한 햇볕은 메마른 마음과
가슴을 열리게 한다.
다시 소리꾼 장사익의 애환이 서린
"♪연분홍 치마가~ 봄날은 간다♬"가 흘러
나온다.
이 노래들은 그냥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아름다운 시(詩)를
들으며 머그잔에 남은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다.
2025. 3. 23.
석천 흥만 졸필
카페 게시글
느림의 미학 (석천 흥만)
느림의 미학 879 마지막 잎새
신동
추천 0
조회 29
25.03.23 20:41
댓글 2
다음검색
첫댓글 친구의 글을 읽느라면
눈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가슴이 찡하다
좋은 글 잘 읽었다
좀 더 건강하게 잘 지냅시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