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박성우
한 이십 년, 가깝게 지냈던 후배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딱히 해줄 게 없던 나는
야생화농장을 하는 지인을 찾아가
벌개미취와 구절초 모종을 구했다
이거는 심어놓기만 하면 잘 살아요,
이 년 생인지 삼 년 생인지 하는
모종을 차에 싣고 후배 집으로 간 날은
아직 날이 찬, 봄이었다
어때, 적응은 좀 했어?
후배가 터를 옮긴 곳은 도심 근교였고
앞마당도 뒷마당도 제법 넓어 보였다
후배와 나는 도란도란 꽃모종을 했고
제법 정리가 된 집에서 고기도 구웠다
더 자주 연락하자고,
비록 멀리 떨어지게 되었지만
더 가깝게 지내자고,
우리는 몇 번이나 말을 주고받았던가
나는 곧 후배를 잊고 지냈고
후배도 별다른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형, 벌개미취꽃이 피었어요
형, 구절초꽃도 곧 필 거예요,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은 연락하는 사이로
지낼 수 있게 되었고
후배도 제법 단단한 뿌리를 내린 눈치였다
---애지, 2021년 가을호에서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이 있고, 공자의 이 말은 학문의 기쁨과 우정의 즐거움을 역설한 동서고금의 명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공자야말로 학문의 기쁨과 우정의 즐거움을 알고 있었던 어진 현자였으며, 공자는 그의 친구들과 이처럼 시를 논하며 전인류의 스승이 되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높이 높이 끌어올리는 것이고, 수많은 친구들과 시를 논하며 그 이상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들이 사는 곳은 좋은 땅이어야 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이 깊고 인자해야 한다. 친구와 친구의 사이는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이어야 하고, 그들의 말은 무한한 믿음과 신뢰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자의 유교사상과 노자의 무위사상은 서로간에 화해할 수 없을 만큼 적대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처럼 모든 사상은 행복론이며,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성우 시인의 [안부]는 시인과 “한 이십 년, 가깝게 지냈던 후배”와의 우정을 노래한 시이며, 그 우정이 서로간의 사랑과 믿음의 화신인 벌개미취와 구절초로 피어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한 이십 년 가깝게 지냈던 후배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갔고, 딱히 해줄 게 없었던 시인은 야생화 농장을 찾아가 벌개미취와 구절초 모종을 구해 갔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심어 놓기만 하면 아무 곳에서나 잘 살았기 때문이다. 벌개미취와 구절초는 대한민국의 야생화이고, 그 끈질긴 생명력은 그의 후배에 대한 섬세하고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가 있다. 이사는 뿌리가 뽑히는 것이며, 정든 땅을 떠나서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수없이 죽었다가 되풀이 살아나야만 하는 고통과 그 적응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년 생인지 삼 년 생인지 하는/ 모종을 차에 싣고 후배 집으로 간 날은/ 아직 날이 찬, 봄이었”고, “어때, 적응은 좀 했어?/ 후배가 터를 옮긴 곳은 도심 근교였고/ 앞마당도 뒷마당도 제법 넓어 보였다/ 후배와 나는 도란도란 꽃모종을 했고/ 제법 정리가 된 집에서 고기도” 굽고 정담을 나누었던 것이다.
“더 자주 연락하자고/ 비록 멀리 떨어지게 되었지만/ 더 가깝게 지내자고/ 우리는 몇 번이나 말을 주고받았”지만, 그러나 “나는 곧 후배를 잊고 지냈고/ 후배도 별다른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형, 벌개미취꽃이 피었어요/ 형, 구절초꽃도 곧 필 거예요”라고, 후배가 연락을 해왔고,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은 연락하는 사이로/ 지낼 수 있게 되었고/ 후배도 제법 단단한 뿌리를 내린 눈치”였던 것이다.
박성우 시인과 후배 사이에는 대한민국의 야생화인 벌개미취와 구절초가 있었고, 벌개미취와 구절초는 사랑과 믿음의 화신이며, 그 목표는 이 세상을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박성우 시인의 [안부]는 사랑과 믿음과 존경이 각인된 [안부]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애의 꽃’으로서 핀 우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무사思無邪.
시는 사상의 꽃이고, 사상은 시의 열매이다. 시에는 사악한 생각이 하나도 없고, 이 더없이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간의 ‘안부’를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벌개미취꽃이 핀다. 구절초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