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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우상숭배
20: 1-6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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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은 추석 연휴 기간이고 다음 주일은 추석날입니다. 염려가 되는 것은 우리 교우들 중에 다음 주일에 성수주일을 못하는 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니 됩니다. 1부 예배라도 참석하시고, 고향에 가시는 분들은 가까운 교회에 가서라도 반드시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염려스러운 것은 이번 명절에 우리 교우들 중에 우상숭배 죄를 범하는 분이 혹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추석은 명절 중의 으뜸으로 여겨 왔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 높고 푸른 하늘, 들판에 무르익은 풍요로운 곡식과 탐스러운 과일들, 온 산야의 찬란한 색조들, 저녁이면 동산에 둥글게 떠오르는 달, 어느 모로 보나 일년 중 가장 좋은 때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추석 혹은 가배일(嘉俳日), 중추절(中秋節), 한가위 등, 이름도 많은 명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귀한 명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 신자들이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데 그것은 제사 문제 때문입니다. 온 집안이 믿는 경우에는 추도 예배를 드리면 되지만, 남편이 믿지 않거나 시부모가 믿지 않는 경우에는 대단히 어려움을 만나고, 심한 경우에는 친척들에게서 비난과 핍박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신자들은 이러한 질문하기가 일쑤입니다.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 왜 죄가 됩니까? 나를 낳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에게 존경을 표하는 마음에서 절하는 것이지 무슨 신에게 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이 우상 숭배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럴 듯싶은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마귀의 미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끼는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나 그 안에는 날카로운 낚시 바늘이 숨기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유혹할 때에 아주 하찮은 것으로 시작합니다.
‘딱 한 잔만 하라고’ ‘이 정도의 돈이 무슨 부정인가? 한국 사람들이 흔히 주고받는 정표로 알게.’ ‘이 순진한 사람아, 해외 나와서나 한번 오입을 해보지 언제 해보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한 미끼를 던지어 쉽게 물면 그 때부터 자기가 원하는 범죄의 소굴로 깊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석을 맞으면서 제사지내는 것, 돌아가신 분의 시신(屍身)에게나 성묘를 가서 절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l. 제사는 우상 숭배이기에 잘못된 것입니다.
좀 전에 질문대로 “돌아가신 분에게 절하는 것은 존경의 표시이지, 무슨 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성경에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했지, 죽은 분에게 제사하는 것을 금했다는 말이 어디 있는가?”라는 말에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들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제사는 분명히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나라 제사법에 의하면 죽은 사람을 위해서 신주(神主)로 모시거나 지방을 써 붙일 때 생전 벼슬을 못한 분에게 ‘현고학생부군 신위(神位)’라고 쓰고 여자인 경우에는 ‘현고학생 씨 신위’라고 쓴 후에 절을 합니다. 여기 엄연히 귀신 신자로 ‘신위(神位)’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제사에 보면 참신하고 강신의 순서가 있습니다. 즉 분향재배하되 초헌, 독축, 아헌, 종헌의 순으로 제사를 진행합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온다고 믿고 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또한 추석날이 되면 아침 일찍이 일어나 새 옷으로 갈아입고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과 술과 갖가지 햇과일로 마련한 음식들을 제사상에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그 중심은 조상들이 복을 내려 주셔서 이렇게 일년 농사를 잘 짓게 되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에서도 사회자들이 풍년이 든 것이 조상들 때문인 것으로 곧잘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얼마나 진노하실 일이겠습니까? 일년 동안 비와 햇빛 주시고 기후를 알맞게 하여 풍년들게 하였더니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하기는커녕 죽어서 이제 뼈도 다 썩어 없어진 조상이 복과 은혜를 주어서 풍년 들게 했다고 감사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닙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자녀를 위해 일생 동안 고생하며 공부시켜서 성공을 시켰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마을 입구에 있는 서낭당 신에게 감사기도 하면서 매일같이 학교 다니면서 돌 하나씩 놓으면서 기도했더니 이렇게 성공할 수 있도록 도아주었다고 말한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풍년을 주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조상들이 풍년을 주었다고 감사하면서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보면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썩어질 피조물에게 감사하며 더 복을 달라고 기원하는 우상숭배자들에게 단호하게 벌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가장 큰 죄는 무슨 돈을 마음대로 썼다거나, 혹은 욕하거나 때린 것보다도 부부 외에 다른 남자나 여자와 불륜의 관계를 가진 배신행위 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지은 죄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슨 살인이나 간음보다도 무슨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신이라 부르면서 복을 달라고 비는 우상숭배 죄인 것입니다.
이러한 죄가 얼마나 큰지 후손들에게까지 대를 물려가며 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우상숭배는 어찌든지 거부해야 합니다. 이런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어느 믿는 처녀가 어쩌다 보니 믿지 않은 집의 맏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시부모님과 많은 시동생, 시누이의 치다꺼리를 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수가 있었는데 가장 힘든 것이 제사준비였습니다.
얼마나 제사가 자주 돌아오는지 정말로 견딜 수 없더랍니다. 무엇보다도 제사가 우상숭배요, 이로 인해 가정에 화가 임한다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그 일을 준비한다는 것은 너무 힘에 겨워 가출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맏며느리니 피할 길이 없습니다. 견디다 못해 어느 날부터 온 시댁 식구들이 구원받게 해달라고, 그리고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리는 날을 달라고 제사를 준비하면서 제사용 그릇들을 닦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속으로 불타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제사를 가장 중시여기는 시아버님이 중병에 걸리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며느리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줄 알고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는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됨으로 제사 대신에 추도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교회 집사님들이 되셨고, 며느리의 아들 중에 목회자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 중에 어쩔 수 없어서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이 있다면 제사를 준비하면서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시는 날이 올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제사가 잘못된 이유는 제사에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자기 조상이 돌아가신 뒤에 그 영혼이 여기저기 떠다니다가 제삿날이나 무슨 명절날에 와서 음식을 먹는다는 사상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세상에 있는 식구나 친척들과 가까운 곳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방황하지 않게 가까이 모신다는 생각으로 돌아가신 후에 신주(神主)로 모시고 일정 기간 상청이나 제청을 만들어 마루에 놓아두거나 윗방 구석에 둡니다. 그러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당(祠堂)으로 신주를 옮겨 놓고 집을 출입할 때마다 사당에 가서 고하고, 또 벼슬을 오르내리거나 자녀들 혼사를 정하고 파할 때마다 가서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의 신이 도와줄 것을 빌었던 것입니다.
그처럼 제삿날이나 명절날에 조상의 영혼이 온다는 생각 때문에 수저도 올리고 술도 따르는 시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죽으면 가야 할 곳으로 가고 맙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영혼들은 천국의 예비 처소인 낙원으로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영혼들은 지옥의 예비처가 되는 음부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조상의 영혼을 위하거든 제삿날이나 명절날 하나님께 추도 예배드리면서 인간의 온 영혼을 주관하시고 천국과 지옥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조선 후기 천주교가 제사문제로 한참 박해를 받을 때 이호영이라는 천주교인이 문초를 받게 되었습니다. “너는 부모께 제사를 왜 지내지 않는가? 누가 보든지 조상에게 제사를 안 지내는 자들은 개나 돼지만도 못한 것이니 이런 자들은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
재판 관원이 호되게 꾸짖자 이호영은 대답하기를 “그 제사라는 것은 헛되고 무익한 것입니다. 잠드신 부모님께 음식을 차려다 드리고 잠이 드신 채 그것을 잡수시리라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음식을 잡수실 줄로 아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영혼은 저 갈 데로 가고 육체는 무력한 송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영혼은 신령체이므로 물질적 음식을 먹고살지 못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관원은 “이놈아,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헛되다고. 그렇다면 천주(天 主)의 그림 앞에 무릎을 꿇는 것도 헛되고 무익한 일이 아니냐?”라고 호통을 치자, 다시 대답하기를 “천주는 전능하시고 무한히 선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천주교에서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립니다. 죽은 이를 위한 특별 기도문이 있습니다.”고 대답할 때 더 할말이 없어진 재판 관원은 그를 몹시 매질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인 1838년 11월 25일 36세 나이로 순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순교 당하면서까지 제사를 반대하던 천주교가 최근에 와서는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인간은 죽으면 구원받은 성도는 기쁨과 위로의 처소인 낙원으로 가고, 믿지 않던 영혼들은 고통의 처소인 음부로 내려가 고통을 받으면서 대심판 날까지 기다리는 줄 알고 공연히 무익한 우상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제사를 지냄으로 조상을 귀신으로 만드는 불효가 됩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죽으면 임종 즉시, 고복(皐復)이라는 것을 합니다. 평소에 입던 웃옷 즉, 저고리나 두루마기를 가지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휘두르면서 몸을 떠난 혼백을 불러들이는 초혼식을 행합니다. 이는 부모를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또 임종 직후에는 밥상에 밥 세 그릇과 술 석 잔, 백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약간의 동전과 촛불을 켜서 뜰아래 차려 놓는데 이것을 사잣밥이라고 합니다.
소위 염라대왕이 사자를 시켜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것이라 믿었기에 죽음의 사자들을 잘 대접함으로 평안히 모셔 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실제로 죽었다가 산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죽는 순간, 시커멓고 무섭게 생긴 세 놈이 와서 한 놈은 앞에서 끌고 두 놈은 양쪽 팔을 잡고 끌고 감으로 대단히 무서웠었다고 합니다. 이와 달리 예수님을 잘 믿던 분들은 흰 옷을 입은 천사 같은 이들이 호위하여 가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믿지 않다가 죽는 분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벌벌 떨지만, 우리 성도들은 죽는 순간에 기쁨의 얼굴을 나타내게 되는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효도는 어찌든지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믿도록 도와 드려서 천국 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분은 사람이 죽어서 떠다니다가 제삿날에 온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무당이 굿을 할 때에 죽은 자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당이 굿을 통해서 죽은 영혼과 대화하는 것은 조상의 영혼을 빙자한 귀신의 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지낸다는 노릇이 오히려 조상을 빙자한 귀신들이 와서 판을 치게 만들므로 조상을 귀신으로 만드는 불효를 저지르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분은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서 ‘내가 배가 고파서 죽겠구나’라는 안타까운 말을 했다고 하면서 열심히 제사를 지냅니다.
그렇다면 음식을 매일 드려야지, 왜 명절 때나 제사 때만 드립니까? 인간이 똑똑한 것 같아도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분들이 프로 야구를 시작할 때나 영화를 다 촬영하고 상영하기 전에 고사를 지내면서 돼지 대가리 앞에서 넙죽이 절하면서 복을 달라고 하는 모습은 너무나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진정 사랑하거든 살아생전에 효도하십시오.
돌아가신 후에 소 잡아 닭 잡아 상이 휘도록 제사상을 차려서 귀신이나 먹고 가도록 만들지 말고 살아생전에 잘 봉양하고 동시에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잘 믿게 도와 드리심으로 어찌든지 천국 가시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성결교단지인「활천」지 1923년도 7월호에는 이런 예화가 기재 되어 있습니다. 1923년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교회의 주일 학생인 김성숙 학생은 부흥회 때 많은 은혜를 받고 어머니가 믿는 우상을 밤에 몰래 가지고 나가서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매우 노여워하면서 자기 딸을 매우 때렸습니다. 그러나 김성숙은 아주 공손한 말로 “어머니, 사랑하는 딸을 때리시기에 얼마나 애처러우십니까? 그 우상을 없앤 것은 어머니를 불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헛된 우상을 섬기시면 지옥에 가실 줄 제가 확실히 알기 때문에 그랬습니다.”라면서 눈물로 호소할 때에 부모는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제사를 지냄으로 큰 불효를 저지르지 마시고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해 드림으로 천국 가는 복을 받도록 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4.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이 아니라 화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사를 잘 지내고 조상을 잘 섬기려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어느 의미에서 복을 받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어느 장례식 때, 어느 성도님의 선산에 가서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관식 시간이 있어서 미리 갔더라도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묘지를 판 것이나 하관을 내릴 때에 마음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분들은 누구나 보지 못하게 합니다. 지관(地官)이 오늘은 무슨 띠를 가진 사람은 무덤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명령합니다. 또한 관을 내리면 이번에는 정시 정방향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속으로 ‘'이미 다 상한 몸인데, 똑바로 놓으면 어떻고 비뚜로 놓으면 어떠랴, 다만 정성껏 모시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하면서 혼자 웃습니다. 특히 공동묘지에 가면 차례도록 매장하는데 그런 곳에 가서까지 ‘방향 옳으니 그르니’ 따지는 것을 보면 너무나 한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조상을 잘 모심으로 후손이 복을 받으려는 심사가 담기어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 민간 사상 중의 하나인 풍수지리설에 젖어서 묏자리를 잘 쓰고 장례를 화려하게 하고 제사를 잘 지내면 자기들이 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깊이 젖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부모님 생전에는 불효하면서 속만 태우더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울고불고하고 장례식은 요란스럽게 하려 합니다.
빚을 내서라도 제사상을 뻑적지근 차립니다. 관이나 수의도 최고품으로 합니다. 아마 벌 받을까 봐서인지, 아니면 복 받으려는 욕심 탓인지 그렇게 합니다. 지금 파고다공원에 가면 수많은 노인들이 점심 한 끼 먹을 돈이 없어서인지, 어느 단체가 주는 점심을 타 먹으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아마, 그런 노인이 돌아가시면 그 자녀들이 똑같이 화려한 장례식과 제사상을 차릴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됩니다. 살아생전에 잘 해드려야지 돌아가신 후에 아무리 잘 해도 부모님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죽은 자의 종교가 아니고 산 자의 종교입니다. 죽은 후에는 이미 모든 것이 결말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살아생전에 부모에게 효도할 것과 그런 자들에게 복이 임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비해서 대부분의 종교는 죽의 자의 종교입니다.
죽은 자에게 잘 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좋은 묏자리를 쓰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입니다. 그러다가 집안이 잘 안되면 묏자리를 잘못 쓴 탓인 줄 생각하고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이장(移葬)하는 등 법석을 떱니다.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자기들이 복을 받고 대대손손 복을 받으려는 노릇이 역으로 벌을 받고 화를 자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5절을 보십시오. “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이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질투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엘 카나’입니다. 그 뜻은 자기 백성들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진노의 신이란 뜻입니다.
즉 자기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사탄에게 내어 주지 않는 의미에서 질투란 용어를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희생시키실 정도까지 열렬히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거절하고 다른 신에게 마음을 줄 때는 맹렬히 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랑이 있다고 하면서 질투의 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없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에게 마음을 두고 숭배하는 자를 자기를 미워하는 자로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에게 진노하시어 징벌하시되 그런 자들 뿐 아니라 그 후손 3대, 4대까지 벌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많이 받기 위해 우상을 많이 섬기는 가정, 제사를 많이 지내는 가정의 자손은, 복을 받기는커녕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6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지라, 벌은 3-4대까지 주시지만, 복은 천대까지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벌에 비해 복은 30배를 더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역사 속에서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우상을 많이 섬기던 나라들을 보십시오. 인도나 중국, 이집트나 동남아시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수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지만 지금은 얼마나 못사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그러나 과거에는 야만족이요, 해적의 조상들이었으나 일찍이 하나님을 받아들인 나라들, 즉 유럽이나 영국, 미국 등은 얼마나 복 받은 후손들이 되었습니까? 성경의 약속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언제도 말씀드린 예화입니다. 한 인류학자가 미국의 네델란드계 주정뱅이 가문으로 유명한 마구쓰 가족의 78대(代) 1,250명의 후손을 조사해 보았더니 살인자 7명, 상습적인 도둑 60명, 전과자 130명, 허약자 300명, 불구자 400명, 성병 경험자 440명, 행려병자 310명 등이었다고 합니다.
더 한심한 것은 정당한 직업 종사자가 20명뿐이 더 없더랍니다. 이와 반대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신앙적으로 온전히 살았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후손 78대 1,400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총장 13명, 교수 100명, 학교 설립자 14명, 의사 60명, 목회자 100명, 군인 75명, 문학자 60명, 판검사 및 변호사 180명, 관리 80명, 그 밖에 부통령, 시장, 대사, 상하원의원 등이 있었고, 그들이 남긴 저서가 135종, 잡지가 18종이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진정 여러분들과 후손들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번 추석 명절에는 우상 숭배를 과감히 버리고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기를 기뻐하는 자들이 되므로 여러분은 물론이고 자자손손까지 다 복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