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심은 실상이니 본존불은 곧 나 자신이라
종석스님
다라니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흔히 ‘진언(眞言)’이라 하지만
총기(聰氣)’가 더 좋습니다.
즉,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총기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하면
드리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하나는 달마(達磨), 다른 하나는 다라니입니다.
같은 형제지간입니다.
다라니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달마를 알아야 합니다.
달마는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dharma)’의 음역원으로
흔히 ‘법(法)’, 진리로 번역됩니다.
지금부터 달마를 4가지로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법이라는 달마는 원리입니다. 무슨 원리냐.
사바세계 및 불국토의 원리입니다.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처음 말씀하신 것이 사성제(四聖諦)입니다.
4가지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부처님의 되는 가르침으로
사바세계를 알려면 고성제와 집성제를,
극락세계를 알려면 멸성제와 도성제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팔정도에서 정견(正見)은 삿되게 보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여시(餘時)하게 보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올바른 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달마의 두 번째 뜻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즉, 삿된 것을 깨고 올바름을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번뇌를 깨고 해탈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무명을 깨고 보리를 내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삿된 것을 하는데 이것을 바로 깨는 것입니다.
암을 도려내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통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삿된 것에서부터입니다.
불법을 믿으면 파사현정하고 이고득락하게 됩니다.
달마가 갖은 큰 에너지입니다.
달마의 세 번째는 합리적입니다.
뜬구름 잡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 달마는 공성(空性)에 기초를 하고 있습니다.
법화경도, 반야경도 공을 밑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마는 어디까지나 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했듯이
공의 개념은 실체가 없습니다.
일체법(一切法) 무자성(無自性)’ 즉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무상(無常)이나 무아(無我)나 같은 개념입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시시각각 머물지 않고 변한다는 것입니다.
육체도 잠시 빌려 쓸 뿐 다시 흙으로 돌아가듯 말입니다.
공즉시색은 ‘공 상태에 변한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일시적인 것입니다.
다라니는 달마가 지닌 4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달마가 있는 곳이 바로 법당입니다.
다라니는 달마가 지니고 있는 공덕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진리를 깨우친
모든 부처님은 반야에 의해 궁극적인 지혜를 얻었다고 설한 후
경전은 ‘…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라고 설합니다.
부처님의 기쁨의 세계,
밝음의 세계, 무상정등정각의 세계입니다.
지난 1년 동안 다라니를 독송하셨습니다.
진언은 진실된 말입니다.
다라니를 일러서 성스러운 소리라고 합니다.
이제 ‘옴(aum)’자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고통이 없고,
기쁨이 나에게 오는 성음(聲音)입니다.
태초의 소리,
우주의 모든 진동을 응축한 기본음으로 보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자세를 상징합니다.
옴은 ‘a+u+m’로 구성돼 있는데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하는 말이 ‘아’입니다.
한글, 영어, 인도 등 모든 첫소리가 ‘아’입니다.
이 소리는 우주가 개벽하는 소리입니다.
m은 입이 닫히는 소리로 폐성입니다.
처음과 끝은 열고 닫힘이고 가운데는 u는 지속성입니다.
옴은 법신, 보신,
화신을 거쳐 최고의 ‘옴’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옴에는 다섯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귀의하는 뜻으로
지심귀명례’의 명(命)자는
목숨 명(命)으로 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옴에는 예배의 뜻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공양을 드린다이며,
넷째는 경각(頃刻)으로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항복(降伏)의 뜻이 있습니다.
무엇에다 귀명을 해야 하는가.
부처님한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부처님한테 귀명하고
예배드리고, 공양물을 올리고,
자기 자신이 중생이라고 낮추면
네가 부처님인데 깨우쳐주고(야단쳐 주고),
완전히 자기중생이라고
보는 눈으로부터 완전히 항복받는 것입니다.
다라니 기도하는 불자들은 강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부처로 봐야 합니다.
이것이 옴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뜻입니다.
다라니 기도를 하는 분은 옴의 뜻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자심은 실상이며 실상은 본존이니 본존불 곧 나 자신이라.”
다라니를 지송하면 일체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진실불허(眞實不虛) 즉, 진실하여 조금도 헛됨이 없다는 뜻입니다.
《반야심경》마지막 부분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는 진언의 총합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면
가테가테 파라가테 파라샴가테 보디스바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테가테’는 ‘갑시다, 갑시다’이고,
파라가테’는 ‘파라는 극락세계로 여기에 갑시다’입니다.
파라샴가테’는 ‘샴가테는 함께라는 뜻으로 함께 갑시다’입니다.
보디’는 보리 즉 깨달음이고, ‘스바하’는 ‘귀의합니다’ 뜻입니다.
즉 ‘깨달음에 귀의합니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라니를 지송(지송)할 때는 입만 하는 것보다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같이해야 힘을 받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도 소리뿐만 아니라
같이 쓰면 쉽게 외울 수 있듯이 말입니다.
손을 펴 보십시오. 왼손은 나를, 오른손은 부처님을 뜻합니다.
엄지손가락을 먼저 쥐고 주먹을 쥐면 금강권을 상징합니다
즉 누구도 깰 수 없는 주먹입니다.
여기 왼쪽 다섯손가락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을,
오른손가락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뜻하고
혹은 10개의 손가락을 십바라밀다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라니 기도를 하면 힘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받기 위해서는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원력을 세우지 않으면 힘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라니는 불자들의 세간사를 다 성취하고,
성불에 이르게 합니다.
만사형통케 하는 힘이 다라니에 있습니다.
보살의 되기 위해서는 다라니를 갖춰야 합니다.
보살이 부처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라니의 힘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다라니 기도에 가끔 빠지신 분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기도에 자주 빠지시면
다라니의 힘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합니다.
기도를 다 못 지킬 것 같다면
스스로 약속을 하십시오.
예를 들어 21일 기도를 한다면
21일만큼은 꼭 지켜서 기도하고 회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회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님들이 흔히 축원할 때
회향삼처실원만(回向三處悉圓滿)이라는 말을 합니다.
삼처가 무엇인가. 첫째가 번뇌장을 제거하는 데 쓰입니다.
다라니 기도는 번뇌를 제거합니다.
번뇌는 스스로 짓는 것입니다.
놓아버리면 되는데 놓지 못해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소유라는 것이라는데 번뇌가 생깁니다.
두 번째는 소지장(所知障)을 소멸합니다.
소지장은 그릇된 지식과 가르침과 사유에 의해 일어나는 병입니다.
이 두 가지는 나를 위해 썼다면
세 번째는 남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회향은 아무나하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장과 소지장을 제거한 사람만이
실제적인 남을 위해 회향할 수 있습니다.
회향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도의 원력이 있다면 다 성취했다는 마음가짐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러 다녀야 합니다.
확신을 갖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공덕이 보입니다.
모셔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