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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취의(捨生取義)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한다는 뜻으로, 목숨을 버리게 될지라도 의로운 일을 하겠다는 의미의 말이다.
捨 : 버릴 사(扌/8)
生 : 살 생(生/0)
取 : 취할 취(又/6)
義 : 옳을 의(羊/7)
(유의어)
사기위인(捨己爲人)
살신성인(殺身成仁)
살신입절(殺身立節)
종용취의(從容取義)
출전 : 맹자(孟子)의 고자편(告子篇)
이 성어는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지만, 비록 목숨을 잃을지언정 옳은 일을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孟子)의 고자편(告子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맹자는 인의(仁義) 정치와 왕도정치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사상가이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선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원하는 것이지만 이 모두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생선보다는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生)도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원하는데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二者不可得兼, 捨生而取義者也) 이는 정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孟子曰 : 魚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맹자는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로움을 택하겠다고 하여 의(義)를 향한 자신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의로움을 쫓다보면 때로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생취의(捨生取義)는 정의나 진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가 말한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같은 뜻으로, 목숨보다도 仁과 의(義)를 더 중시하여 정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는 유교사상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유사한 표현으로 종용취의(從容取義), 사기위인(捨己爲人) 등이 있다.
일례로 수년 전 강원도 인제군의 모 부대에서 전술훈련을 마치고 통신장비를 철거하던 중 무전기 안테나가 고압선에 걸려 감전된 병사를 구한 뒤 본인은 감전돼 병원으로 후송 도중 사망한 김칠섭 소령,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李秀賢)씨,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국립 철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5년 동안 철도 공무원으로 복무하다가, 서울 영등포역에서 열차에 치일 위험에 놓인 아이를 구하고 대신 발목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김행균씨 등이야 말로 사생취의(捨生取義)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유가(儒家)의 중심사상이 仁이며 공자가 가장 중시했던 덕목 또한 바로 그 仁이었음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仁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자는 충(忠)과 서(恕)라고 해석했다. 쉽게 말해 타인에 대한 자비나 인간애, 동정심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인(仁)은 군자(君子)가 먼저 익혀야할 덕목이기도 했다.
군자가 仁을 버리고 어찌 이름을 이룰 수 있으랴(君子去仁, 惡乎成名)? 곧 仁은 몸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공자의 가르침 자체가 실천 도덕이 아니었던가. 물론 仁이 최고의 덕목인 만큼 仁 자체에는 대소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을 행하는데 있어 경중과 귀천의 구별 또한 있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심지어 여기에는 생사의 구별조차 무의미 한 것이 된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살기를 원하지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의심(道義心)이 강하고 의지가 깊은 사람(志士)이나, 인덕(仁德)을 갖춘 사람(仁人)이라면 목숨과 仁이 양립할 수 없을 때 생명을 아끼느라 仁을 해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일신(一身)을 희생하면서까지 인을 실천하지 않을까(成仁)?
그래서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살기 위해 인(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몸을 죽여 인(仁)을 행할 뿐이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맹자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유명한 사생취의(捨生取義)다. 인의(仁義)가 같은 덕목일진대 공자나 맹자는 인의(仁義)를 목숨보다도 더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곧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면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것을 뜻한다.
비늘만한 자비에도 인색한 게 요즘 세태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이 사회에는 그래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아 어둠과 각박한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사생취의(捨生取義)
맹자는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로움을 택하겠다고 하여 의를 향한 자신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의로움을 쫓다보면 때로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생취의(捨生取義)는 정의나 진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말한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같은 뜻으로, 목숨보다도 인(仁)과 의(義)를 더 중시하여 정의(正義)를 위하여 목숨을 희생한다는 유교사상을 담고 있다
사생취의(捨生取義)란 목숨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한다는 뜻으로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다,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이다. 맹자(孟子)의 고자편(告子篇)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이다.
孟子曰: 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생선은 내가 원하는 바이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둘을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생선을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生, 亦我所欲也; 義,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의로움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둘을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겠다.
生亦我所欲, 所欲有甚於生者, 故不為苟得也;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구차하게 (삶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死亦我所惡, 所惡有甚於死者, 故患有所不辟也.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바이지만,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근심에 (죽음을) 피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이다.
如使人之所欲莫甚於生, 則凡可以得生者, 何不用也?
사람이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한 게 없는 거라면, 무릇 삶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어찌 (그렇게) 쓰지 않는가?
使人之所惡莫甚於死者, 則凡可以辟患者, 何不為也?
사람이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한 게 없는 거라면, 무릇 근심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어찌 (그렇게) 하지 않는가?
由是則生而有不用也, 由是則可以辟患而有不為也.
이로 말미암은 즉 삶에도 쓰지 않음이 있는 것이고, 이로 말미암은 즉 근심을 피할 수 있으나 하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是故所欲有甚於生者, 所惡有甚於死者, 非獨賢者有是心也,
이런 까닭에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함이 있는 자,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함이 있는 자는, 단지 현자(賢者)만이 이러한 마음이 있다고 않는 것이다.
人皆有之, 賢者能勿喪耳.
사람은 모두 그것이 있고, 현자는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一簞食, 一豆羹, 得之則生, 弗得則死. 嘑爾而與之, 行道之人弗受; 蹴爾而與之, 乞人不屑也.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꾸짖으면서 주면 길 가던 사람도 받지 아니하며, 발로 차서 주면 걸인이라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萬鍾則不辨禮義而受之. 萬鍾於我何加焉?
매우 많은 돈이라면 예의를 따지지 않고 받는다는데, 그런 식으로의 매우 많은 돈이 나에게 어찌 보탬이겠는가?
為宮室之美, 妻妾之奉, 所識窮乏者得我與?
대궐 같은 집의 아름다움, 처첩의 받듦, 궁핍한 자가 나를 찾는다고 알려지는 바를 위해서인가?
鄉為身死而不受, 今為宮室之美為之;
지난 번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대궐 같은 집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하며,
鄉為身死而不受, 今為妻妾之奉為之;
지난 번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처첩의 받듦을 위해서 하며,
鄉為身死而不受, 今為所識窮乏者得我而為之, 是亦不可以已乎?
지난 번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궁핍한 자가 나를 찾는다고 알려지는 바를 위해서 하니, 이 역시 그만둘 수 없는 것인가?
此之謂失其本心.
이것을 일러 ‘그 본심을 잃었다’고 한다."
- 맹자 고자편 상 제10장
삶이 중요하긴 하지만 때로는 삶보다도 더 중한 가치가 있으며, 맹자에 따르면 '의로움(義)'이 그러한 가치이다. 사람은 의로움을 위해서라면 삶을 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사생취의(捨生取義),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다'이다.
물론 '삶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데도 그것을 얻지 않고 기꺼이 죽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러한 즉, 삶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다만 현명한 사람만이 이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일 뿐이다.
예컨대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걸 발로 차서 주면 거지라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인간의 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의로움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인간이 인간됨을 버리고 삶을 택한다면, 그 삶이 더 중하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매우 많은 돈을 받게 되면 그런 취급을 참는 것은 어째서인가? 맹자에 의하면 매우 많은 돈은 '나'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는 '나의 인간됨'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사실 많은 돈을 통해서 하는 일이란 진정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집, 처첩, 명성'을 위해서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이런 행동이 이익을 얻고 나서 '그 본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사생취의(捨生取義)
구차함이란 버젓하지 않거나 번듯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구차함에 대한 경계는 예기(禮記) 곡례(曲禮)의 다음과 같은 예가 절실하다. "재물을 대하여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말며, 어려움을 당하여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라(臨財毋苟得 臨難毋苟免)."
눈앞의 이익과 안일(安逸)을 위해 구차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사람의 도리(道理)가 아니니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겨날 리 없고 아름다운 삶도 힘 있고 밝은 삶의 모습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사생취의(捨生取義)란 말이 있다. 삶을 버리고 의리(義理)를 좇는다는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과 거의 같은 의미의 말이다.
이는 맹자(孟子)의 고자편(告子篇) 에 나오는 데 다음과 같다. "생선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원하는 것이지만 이 모두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생선보다는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生)도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원하는데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義)를 취할 것이다(孟子曰 魚我所欲也 態掌 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魚而取態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인생은 끝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져가는 것인데 인간의 행복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영혼과 마음에 죄의식(罪意識)이 없고 당당하고 떳떳함일 것이다. 비록 지난 날 잘 모르고 저지른 실수는 누구나 있게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들이 회개(悔改)하고 돌아오면 이들의 죄(罪)를 모두 사(赦)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는 그 영혼과 마음이 죄의식에서 해방되어 참 평안과 자유로움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창숙 선생의 독립운동
국민의 행복추구라는 정치의 요체를 망각한 채 좌우 진영 싸움으로 무위도식하고 있는 현 정치권을 보면서 구한말의 가짜 선비들을 생각한다. 국가 위기에 몸 바쳐야 하는 것은 선비들의 의무이자 대의이다. 선비 정신은 행동할 때 빛난다. 유교 국가 조선이 망한 것도 지배층 유림이 먼저 부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리고 의를 쫓는다)를 끝까지 지켜 ‘3절(三節)’이라 불렸던 지사(志士)가 있다. 총독부 반대 방향으로 집을 지은 만해 한용운, 일제 치하에선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며 ‘꼿꼿세수’로 유명한 단재 신채호, 대의에 어긋나는 일과는 타협하지 않은 ‘마지막 선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심산은 국운이 기울어가던 1879년 7월 10일 경북 성주에서 김호림과 인동 장씨 사이에서 1남 4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조 명유(明儒) 동강 김우옹의 13대 종손이다. 본관은 의성, 자는 문좌(文佐)이다.
2000년 5월, 김수환 추기경이 심산상(心山賞)을 받았다. 심산상을 받는 사람들은 심산 선생의 수유동 묘소에 가서 참배할 때 두 번 절을 올리는 것이 관례였다. 김 추기경이 심산 묘소에서 절을 두 번 올리자 언론이 '가톨릭과 유교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심산의 민족주의 정신은 유학의 '대의명분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27세의 심산은 상경하여 "나라 팔아먹은 오적(五賊)의 목을 베라"는 내용의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렸고, 1909년 일진회(一進會)가 한일합방론을 들고 나오자 이를 성토한 죄로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독립선언서 작성 시에 심산은 모친의 병환으로 상경(上京)이 늦어져 결국 3.1 독립선언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의 민족대표 33인만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심산은 망국의 책임이 있는 유림이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함을 치욕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전국의 유림을 규합해서 137명의 연명으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파리장서'를 작성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우편으로 제출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제1차 유림단사건'이다.
심산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침체하자, 의열단의 나석주를 지원하여 1926년 식산은행 폭탄투척 의거를 감행했다. 이 자금 출처 때문에 다시 한번 유림이 고초를 겪으니, 이른바 1927년의 '제2차 유림단 사건'이다.
심산은 '서로군정서'를 조직해 군사선전위원장으로 활약 중 일경에 붙잡혀 본국으로 압송되었고, 14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대전 교도소에서 옥중투쟁과 악독한 고문 끝에 '벽옹(躄翁, 앉은뱅이 노인)' 신세가 되었지만, 변호를 거절하고 항소를 포기했다.
광복 후 심산은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하고, 1946년 사이비 황도유학(皇道儒學)을 척결하고 성균관대학을 설립,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후진양성에 이바지하였다.
심산은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표상이었다. 네 차례의 투옥과 고문을 당했고, 두 아들까지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그는 1962년 5월, 83세로 타계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문집으로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선각자이자 직언거사(直言居士)인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자"라는 추모사를 했다.
실천적 지성으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분, 시대가 갈수록 광휘(光輝)가 나는 위인, 진정한 오상(五常, 인· 의· 예· 지· 신)을 실천한 대유(大儒). 심산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嗚呼三節大儒賢(오호삼절대유현)
光復籌謀半百年(광복주모반백년)
아! 일제강점기 절의 지킨 ‘삼절’로 큰 선비였고, 조국 광복을 도모한 계책으로 반백 년을 보냈네
異域風霜唯尺宅(이역풍상유척택)
鄕關零落只寸田(향관영락지촌전)
이역만리에서 풍상 겪어 오직 한 자 집터만 있고, 고향 살림은 줄어들어 다만 좁은 밭만 남았네
受刑萬苦形身躄(수형만고형신벽)
問招千端血淚堅(문초천단혈루견)
온갖 괴로운 형벌을 받아 몸은 앉은뱅이가 되었고, 수많은 문초를 받았지만, 피눈물로 견뎌냈네
打破舊儒新氣運(타파구유신기운)
始終一貫一靑天(시종일관일청천)
시대에 뒤진 유교문화를 타파하여 기풍을 진작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맑게 갠 하늘이었네
▶️ 捨(버릴 사)는 ❶형성문자로 舍(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舍(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舍(사)는 '떼어버리다', '내리는 일', 捨(사)는 '손에서 물건을 내리다', '버리는 일'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捨자는 '버리다'나 '포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捨자는 手(손 수)자와 舍(집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舍자는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간이 시설을 그린 것으로 '여관'이나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舍자는 내가 잠시 쉬었다 떠나는 곳이기 때문에 소유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捨자는 이렇게 '일시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舍자에 手자를 더한 것으로 '버리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捨자는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이후부터는 '무소유'의 개념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사가(捨家)라고 하면 집을 버리고 승려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捨(사)는 ①버리다 ②포기(抛棄)하다 ③폐(廢)하다 ④내버려 두다 ⑤개의(介意)하지 않다 ⑥기부(寄附)하다 ⑦희사(喜捨)하다 ⑧바치다 ⑨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⑩놓다 ⑪쉬다, 휴식(休息)하다 ⑫(화살을)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버릴 반(拌), 버릴 연(捐), 버릴 기(棄),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질 취(取), 쓸 용(用)이다. 용례로는 목숨을 버림을 사명(捨命), 많은 대상 등에서 현상의 특성이나 공통성 이외의 요소를 버림을 사상(捨象), 오줌을 눔을 사뇨(捨溺), 버리고 떠남을 사리(捨離), 계율을 버리고 지키지 않음을 사계(捨戒), 바둑에서 버릴 셈 치고 작전상 놓은 돌을 사석(捨石), 취하여 씀과 내어버림을 용사(用捨),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림을 취사(取捨), 내던져 버림을 투사(投捨), 마음에 즐기어서 재물을 냄을 희사(喜捨), 희사하도록 권장함을 권사(勸捨), 목숨을 바침을 연사(捐捨), 옥에 갇힌 죄인을 풀어 줌을 복사(服捨), 재보를 희사함을 외사(外捨),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식량을 버리고 배를 침몰시킨다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어떤 일에 대처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을 사량침주(捨量沈舟), 장단을 가려서 격식에 맞춘다는 뜻으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점은 취한다는 말을 사단취장(捨短取長),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사근취원(捨近取遠),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차지함을 이르는 말을 사소취대(捨小取大), 그릇된 것을 버리고 옳은 길로 돌아섬을 이르는 말을 사사귀정(捨邪歸正),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려고 꾀함을 이르는 말을 사구도신(捨舊圖新), 반올림으로 근삿값을 구할 때 4 이하의 수는 버리고 5 이상의 수는 그 윗자리에 1을 더하여 주는 방법을 사사오입(四捨五入),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골라 잡음을 이르는 말을 취사선택(取捨選擇) 등에 쓰인다.
▶️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날것과 찬 것을 생랭지물(生冷之物),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
▶️ 取(가질 취)는 ❶회의문자로 又(우; 손)와 耳(이; 귀)를 뜻하는 글에서, 손으로 귀를 떼다, 떼다를 말한다. 옛날 전쟁에서 적을 잡으면 증거물로 그 왼쪽 귀를 잘라내어 가져 왔다는 데서 취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取자는 ‘얻다’나 ‘가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取자는 耳(귀 이)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取자를 보면 손으로 귀를 잡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取자는 먼 옛날 전쟁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옛날에는 전투를 치른 후에 내가 죽인 사람의 수만큼 포상을 받았다. 초기에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적의 머리를 잘라 바쳤지만, 후에 부피를 줄이기 위해 적의 왼쪽 귀를 잘랐다. 여기서 ‘가지다’라는 뜻의 取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取자는 손으로 귀를 잘라 ‘얻었다’라는 데서 유래한 글자인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인 12만 명의 코와 귀를 잘라 가져 가 만든 귀 무덤이 아직도 일본 교토시에 남아있다. 그 무덤의 이름을 耳塚(이총)이라 한다. 그래서 取(취)는 (1)십이인연(十二因緣)의 한 가지. 애(愛)에 따라 일어나는 집착(執着) (2)번뇌(煩惱), 집착(執着) 등의 뜻으로 ①가지다, 손에 들다 ②취(取)하다 ③의지(依支)하다, 돕다 ④채용(採用)하다, 골라 뽑다 ⑤받다, 받아들이다 ⑥이기다 ⑦다스리다 ⑧멸망(滅亡)시키다 ⑨장가들다 ⑩어조사(語助辭) ⑪인연(因緣)의 하나 ⑫춘추(春秋)의 필법(筆法)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버릴 배(偝), 버릴 기(弃), 버릴 반(拌), 던질 포(拋), 버릴 연(捐), 버릴 사(捨), 버릴 수(擻), 버릴 랄/날(攋), 버릴 기(棄)이다. 용례로는 있는 사실을 없애 버림을 취소(取消), 영양분을 빨아들임을 섭취(攝取), 꼭 누르거나 비틀어서 즙을 짜 냄을 착취(搾取), 사물을 다룸을 취급(取扱), 어떤 사물에서 작품이나 기사의 재료를 얻음을 취재(取材), 자기 소유로 함을 취득(取得), 연구나 조사를 위해 필요한 것을 그곳에서 취함을 채취(採取), 방송이나 진술 따위를 자세히 들음을 청취(聽取), 어름장을 놓아 억지로 빼앗음을 갈취(喝取), 싸워서 빼앗아 가짐을 쟁취(爭取), 어떤 내용의 소리를 녹음하여 채취하는 것을 녹취(錄取),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 가짐을 탈취(奪取),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주머니 속에 지닌 물건을 꺼낸다는 뜻으로 아주 쉬운 일 또는 손쉽게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낭중취물(囊中取物), 장단을 가려서 격식에 맞춘다는 뜻으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점은 취한다는 말을 사단취장(捨短取長),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골라잡음을 이르는 말을 취사선택(取捨選擇),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차지함을 일컫는 말을 사소취대(捨小取大), 돈이 없이 남의 파는 음식을 먹음을 일컫는 말을 무전취식(無錢取食), 가까스로 밥이나 얻어 먹고 살아가는 꾀를 일컫는 말을 취식지계(取食之計), 사람을 속여 돈이나 물건을 빼앗음을 일컫는 말을 기인취물(欺人取物), 교묘한 수단으로 빼앗아 취한다는 뜻으로 남의 귀중한 물건을 가로채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교취호탈(巧取豪奪) 등에 쓰인다.
▶️ 義(옳을 의)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义(의)는 통자(通字), 义(의)는 간자(簡字)이다. 나(我)의 마음 씀을 양(羊)처럼 착하고 의리있게 가진다는 뜻을 합(合)하여 옳다를 뜻한다. 羊(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양으로 양을 바쳐 신에게 비는 의식(儀式)이 나중에 바르다, 의로운 일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義자는 ‘옳다’나 ‘의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義자는 羊(양 양)자와 我(나 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我자는 삼지창을 그린 것이다. 義자의 갑골문을 보면 창 위에 양 머리를 매달아 놓은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양 머리를 장식으로 한 의장용 창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창은 권위나 권력을 상징했다. 상서로움을 뜻하는 양 머리를 창에 꽂아 권위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義자는 종족 내부를 결속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옳다’나 ‘의롭다’,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義(의)는 (1)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道理). 오상(五常)의 하나임 (2)남과 골육(骨肉)과 같은 관계를 맺음 (3)글이나 글자의 뜻. 의미(意味) (4)경서의 뜻을 해석시키던, 과거(科擧)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 등의 뜻으로 ①옳다, 의롭다 ②바르다 ③선량하다, 착하다 ④순응하다 ⑤맺다 ⑥해 넣다 ⑦섞다, 혼합하다 ⑧간사하다(마음이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 ⑨의(義), 정의(正義), 올바른 도리(道理) ⑩의리(義理), 우의(友誼) ⑪뜻, 의미(意味), 의의(意義) ⑫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 예절(禮節), 의식(儀式) ⑬정의에 합당한 행동, 의로운 일 ⑭명분(名分) ⑮법도(法道) ⑯용모(容貌),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⑰의로 맺은 친족 관계, 의리(義理)의 관계 ⑱공적인 것, 공익을 위한 것 ⑲인공적인 것 ⑳가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의로운 사람을 의인(義人), 義로 맺은 형제를 의형제(義兄弟),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을 의무(義務), 정의를 위하여 거사함을 의거(義擧), 수양 아버지를 의부(義父), 글이나 학설의 뜻을 설명하여 가르침을 강의(講義),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을 주의(主義),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정의(正義), 믿음과 의리를 신의(信義), 표의 문자에서 글자의 뜻을 자의(字義), 같은 뜻나 같은 의미를 동의(同義),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갚아야 할 의리와 은혜를 은의(恩義), 의리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불의(不義),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의방지훈(義方之訓), 의기에 불타 일어나는 용맹을 일컫는 말을 의기지용(義氣之勇),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당연함을 이르는 말을 의리당연(義理當然), 의가 있는 사람은 어버이를 거역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의불배친(義不背親), 의로써 이利의 근본을 삼음을 이르는 말을 의이건리(義以建利), 의는 바다와 같고 은혜는 산과 같다는 뜻으로 은의恩義가 대단히 크고 깊음을 이르는 말을 의해은산(義海恩山),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봉건시대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곧 어려서는 아버지를 좇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좇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음을 이르는 말을 삼종지의(三從之義), 남남끼리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런 형제를 일컫는 말을 결의형제(結義兄弟),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이르는 말을 인의예지(仁義禮智),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는 뜻으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의를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의멸친(大義滅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일컫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일컫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남의 시문 중에서 전체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씀을 일컫는 말을 단장취의(斷章取義),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예의염치(禮義廉恥)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