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2g6lnSUxUQ
룻 3:2,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2024.4.14.
사람들은 자꾸 만나면서 친해지고, 그러다 보면 정말 생명처럼 아끼는 그런 친구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 그 이상의 존재는 가족의 연대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웃보다 못한 그런 가족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려울 때는 동기간(형제 자매 사이) 밖에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서울대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을 때,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보험에 든 것도 없고, 건강보험료가 그렇게 큰 혜택을 주는 시절도 아니였기 때문에, 수술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쪽 형제들(자매)이 모아서 수술 비용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친 형제들이 아닙니다. 외조부가 일찍 돌아가시고, 외조모는 재가를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작은 집에서 성장했습니다. 그 작은 집 형제들이 6명 정도 됐는데, 조금씩 모아서 수술비에 보태서 수술을 잘 마치고 건강을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친족을 매우 강조하는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특히 재산이나 기업이나 땅을 다시 찾아 오는 일이나 형제의 억울한 일을 복수하는 일 등을 감당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친족이 하는 일입니다.
첫째. 누구나에게 복 되게 하는 친족이 있습니다.
룻기의 등장인물은 나오미, 그의 며느리 룻, 그리고 룻의 남편이 되는 보아스입니다. 나오미의 뜻은 ‘희락’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기쁘고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어서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모압 땅에서 두 아들이 모압 여인과 함께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흉년보다 더 불행한 일이 닥쳤습니다. 자기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어,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나오미가 고백합니다. 자기의 형편이 희락이 사라지고 고통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룻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각주 1) 나오미(희락), 각주 2) 마라(괴로움)
나오미의 인생이, 그의 며느리 룻과 함께 희락에서 괴로움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밖에 없는 나오미와 룻에게는 친족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도 있고, 좀 더 먼 친족도 있었는데, 룻기에서는 그 친족 중 한 사람 보아스가 등장합니다. 이 친족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안식을 주는 일입니다.
룻 3:1–2,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친족’(마다야트)은 해야 할 책임은 ‘기업을 무르는 일’입니다. 나오미가 이전에 가졌던 땅이나 기업이나 재산을 다시 돈을 주고 사서 되찾아오는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 보아스가 그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된 여러분을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친족이 되셨습니다.
보아스는 원래부터 나오미의 친족이였지만, 그래서 보아스에게는 기업무를 책임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친족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과 지옥의 불 가운데 처한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이 빼앗겼던 천국집과 영원한 안식과 생명을 되찾아 주시려고 여러분의 모든 죗값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안식(천국)을 주시고, 복되게 하실 유일한 구주가 되셨습니다.
둘째. 기업 무를 자(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사실 나오미에게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고 싶어도,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나오미에게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친족의 책임입니다. 그 친족이 하는 일이 ‘기업을 무르는 일’이고, 그래서 ‘기업 무를 자’(고엘)라고 불립니다. 보아스는 자신이 가장 가까운 친족이였다면, 당장 그 기업 무를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그런데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말씀드린 것처럼,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고, 그 일은 그에게 먼저 우선권과 책임이 있었습니다.
룻 4: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여기서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는 바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나오미의 친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기업 무를 자에게 나오미의 기업과 재산과 땅을 사서 되 돌려 주라고 말할 참입니다.
그런데 그 기업 무를 자가 어떻게 합니까? 그가 인애(사랑)을 베풀지 않고, 기업무를 책임과 권리를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데래서 보아스는 먼 친족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의 기업 무를 책임을 다했습니다.
룻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이렇게 예수님은 ‘고엘’(기업무를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보아스처럼 여러분의 먼 친척보다도 더 먼 여러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하나님과 죄인되었을 때에, 여러분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키고 되 찾아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의 기업무를 자가 되셨습니다.
‘고엘’(구속하다, 구속자, 복수자, 돈으로 교환하거나 되사다, 속량하다, 구원하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원수 된 여러분을 위해서 구주가 되셨습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보아스는 돈으로 사서 나오미와 룻을 회복시켜 줬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키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고엘, 구주가 되셨습니다.
셋째, 고엘로 말미암아 복되게 되었습니다.
기업무를 자(고엘)가 구원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의 텅빈 인생, 괴로움과 고통 밖에 없는 인생에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들레헴의 성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미와 룻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예수님은 여러분의 모든 기업과 재산과 생명을 다시 회복시켜 주심으로 여러분이 축복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룻 4:11–12,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보아스와 룻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에브랏과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상속자를 주셔서 위대한 가문이 되게 하시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룻기를 어떻게 마칩니까? 룻이 보아스를 통해서 다윗의 조상이 되고, 또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그런 위대한 가문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여러분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에, 이런 모든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이런 모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