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을 차리면서
손 원
설 명절을 얼마 앞두고 부터 아내는 차례상에 올릴 음식준비를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부터 제사를 지내고 있다. 기제사 때는 아버님이 혼주가 되어 "고실 유인..."으로 시작 하는 지방을 쓰고 독축을 한다. 여느 집과 같이 설, 추석에는 비교적 간단히 차례를 지낸다. 독축만 안할 뿐 상차림은 기제사때나 마찬가지다. 아내는 준비할 품목을 쪽지에 적어 놓고 틈틈히 장을 봐 창고에 보관한다. 건어물 등 보관성이 좋은 품목부터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두부나 채소를 구입한다. 평일에는 손자 둘을 돌보기에 제 엄마가 데려가는 주말에 장을 본다. 동네 마트에서 하나씩 사모으고 한 번 쯤은 대형마트에 부부가 같이 쇼핑하여 마무리 한다.
설 하루 전 아버님이 계시는 시골집으로 간다. 그간 장을 본 과일과 식재료를 트렁크에 실으니 넘쳐서 일부는 뒷자석에다 실었다. 오전에 도착하여 아내는 차례상 음식 준비에 분주했다. 이번 명절에 제수씨는 유고가 있어서 아내 혼자 음식을 준비 해야만했다. 예년 같으면 동생부부가 전을 붙이고 아내는 제반 준비를 하면 무난했는데 올 해는 우리 부부가 모든 걸 해야만 했다. 다소 바쁘고 힘들 것 같기도 했지만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조수가 되어 아내를 도왔다. 그렇게 하여 온종일 걸렸지만 어렵잖게 마무리 할 수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다소 힘들긴 했지만 동생 내외의 사정을 배려 해 줬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명절 때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일가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것은 고유의 미풍양속이었다. 물론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심신이 지칠만큼 고단한 노동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조상을 모시고 손님 맞이를 하는 것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여성에게 명절은 심신이 지칠만도한 고된 날들이었다. 여성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시도는 오래 전 부터 있었다. 가정의례 준칙에 의한 제례의 간소화를 강조 해 왔지만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고 여성들은 여전히 차례나 기제사 준비에 힘들어 했다.
이번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네번째 맞이하는 설이다. 그간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지 못했다. 기제사나 차례도 약식으로 하거나 아예 지내지 않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제례문화에 큰 변화가 감지 되고 있다. 기제사나 차례를 직계자손만으로 지낸다든지, 기제사 대신 성묘를 가는 등의 형태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성균관유도회에서도 제삿상 간소화를 권고하고 있다. 설 차례상일 경우 떡국을 포함해서 9가지 정도를 선보였다. 종전에는 젯상이 비좁을 정도로 차린 것에 비하면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차림을 간소화 하여 부담을 줄이고, 가족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자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오랜 전통이 쉽게 깨질 것 같지가 않다. 오늘 제사 음식을 준비하면서 아버님 의중을 떠 보았다. "아부지, 요즘 제삿상이나 차례상은 음식을 줄여 9종류를 권장하던되요." "제사는 지내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것을 놓고 왜 왈가불가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 어떤 집안의 경우 어른이 돌아가시면서 웃대 제사를 대폭 줄여 지내도록 정리 해 준 경우도 있어요. 저야 부모제사를 내 생전에는 지내겠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지금 추세대로라면 제사가 없어질 것 같아요."라고 했다. 아버님은 별 말씀을 안 하셨지만 매우 안타까워 하시는 듯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 해 보았다. 내 생전에 세태를 봐 가면서 제사방법을 정립하여 물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은 아버님이 계시기에 아버님 뜻대로 함이 마땅하다.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 10년이 지났건만 전통형식으로 지내는 것을 당연한 걸로 여겨왔다. 아내께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아내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여태 불평 한마디 없다. 어찌보면 즐겁게 음식을 장만하여 형제들이 모여 정성껏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것을 즐겁게 여긴다고 하면 내가 아둔해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아니면 아내의 진정성이 그런가 다소 혼란스럽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같이 역할을 다하는 아내가 고맙다. 적어도 아버님 살아계실 때 만이라도 전통을 따르자는 생각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나면 조금 간소화 해서 아내와 며느리의 부담을 줄여 보고싶다. 우리 집의 명절은 남자들만의 명절이 아니고 여자들도 같이 즐기는 명절이 되도록 배려해 보자. 설날은 떡국을 포함해 9가지 음식만 놓고 경건히 지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기제사도 간소화 하고, 제사대신 성묘를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물론 형제들이 모여 오손도손 하루를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그때는 아내를 수고럽게 하지말고 비용이 조금 들더라도 외식을 하면된다. 종전 대가족일 때 상이 넘치도록 음식을 장만했지만 앞으로 대폭 간소화 하되, 한편으로는 고유한 미풍양속인 만큼 현실에 맞게하여 선양함은 마땅하다. 제삿날을 형제들 계모임하는 날 정도로 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형제들간 화합의 날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2022년 섣달 그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