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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률이상 제24권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7. 국왕들[諸國王部] ①
1) 전륜성왕인 국왕들[轉輪聖王諸國王部]
(1) 겁이 만들어진 시초[劫初]와 사람 왕[人王]이 생긴 시초
겁(劫)이 처음 이루어질 때에 수재(水災)가 일어나서 제2선(禪)을 무너뜨리면 풍재(風災)가 불어서 엉기게 하여 세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광음천(光音天)의 여러 하늘들의 복과 수명이 다하면 사람이 되어 태어나서 기쁨[歡喜]으로써 밥을 삼고, 몸의 광명은 저절로 비추며 신족(神足)으로 날아다니게 된다. 남자, 여자와 높고 낮음의 사이와 차이가 없으므로 중생(衆生)이라 한다.
저절로 생겨나는 지미(地味)가 있었는데, 모양은 마치 제호(醍醐)와 같았고, 빛깔은 생소(生酥)와 같았으며, 맛은 꿀보다 더 감미로웠다. 손으로 찍어서 맛을 보았다. 그런데 그 맛에 애착을 내어 많이 먹은 이는 안색이 거칠고 여위었지만, 조금만 먹으면 살갗에 윤기가 났었다. 승부를 다투는 일이 있게 되고 서로 시비를 하게 되면서 지미는 저절로 없어져 버렸다.
또 지피(地皮)가 났는데, 모양은 얇은 떡과 같았고, 빛과 맛은 향기롭고 맛이 있었다. 그러나 함께 그것을 먹으면서 차츰차츰 서로가 업신여기게 될 때에 지피도 소멸되었다.
다시 지부(地膚)『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과 『누탄경(婁炭經)』에서는 다 같이 지비(地肥)라고 하였다.가 났는데, 그것을 많게 먹고 적게 먹음으로 인하여 모든 나쁜 법이 생겼다.
땅에서 나는 멥쌀을 중생들이 함께 먹게 되면서 남자와 여자의 형상이 생기고 왕을 세우기에 이르렀다.이 일은 이미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부世界成壞部에서 나왔다.
세상은 부유하고 즐거웠으며, 땅에서는 푸른 풀이 피어나서 마치 공작새의 꼬리처럼 점차로 퍼져 나갔다. 8만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백성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닭 울음을 서로 들을 수 있었고, 천하에는 병도 없었고 큰 더위나 큰 추위도 없었다.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렸고 10선(善)을 받들어 행하였으며,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만물을 가엾이 여겼으며, 사람들은 수명대로 오래오래 살았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왕의 덕망이 점차 얇아지면서 수명도 차츰 줄어져서 1만 살까지밖에 못 사는 정도에 이르렀고, 지금은 1백 살만 사는 데에 이르렀다. 왕이 죽어서 아들이 이어받았는데, 아들의 이름은 진보(珍寶)라 하였다.『장아함경(長阿含經)』 제22권에 나온다.
(2) 대왕에게 수레바퀴[輪]를 맡긴 연유
전륜성왕에게 금륜(金輪)을 맡기게 된 까닭은 이렇다.
제석(帝釋)은 사천왕(四天王)에게 언제나 1개월에 6일 동안을 천하를 순찰하면서 사람들의 선악을 엿보도록 명령을 내렸다.
사천왕과 태자의 사자(使者)는 어느 큰 나라의 왕이 10선(善)과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等]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면서 백성들을 걱정하고 살피는 마음이 인자한 아버지보다도 더한 것을 보았다.
이 일을 천제석에게 아뢰자 제석은 그 얘기를 듣고 그가 능히 그렇게 하는 것을 경하하였다. 그리고 비수갈마(毘首羯摩)에게 명령을 내려서 그 금륜을 하사하도록 하였기에 이내 가지고 나와서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에게 맡겼다.
비사문천왕은 금륜을 가져다 비행 야차(飛行夜叉)에게 맡겼으며, 비행 야차는 다시 그것을 가지고 와서 대국왕에게 주었다. 비사문천왕은 이 야차에게 이렇게 신칙하였다.
“너는 언제나 이 왕을 위하여 이 금륜을 지니고 있도록 하여라. 왕의 정수리 위에 두고서 그의 수명이 다하기까지 절대 중간에 놓아 버려서는 안 되느니라.”
그러므로 이 야차는 언제나 금륜을 들고서 나아가거나 멈추거나, 또 오고 가고 하는 모든 것을 성왕의 뜻에 따라 한다.
그가 수명을 다한 연후에는 도로 비사문천왕에게 맡기며, 비사문천왕은 도로 비수갈마에게 맡기며, 비수갈마는 도로 보배 광 안에다 넣어 둔다.『잡비유경(雜譬喩經)』 제6권에 나온다.
도종견덕(道種堅德)은 금륜을 타고 4천하(天下)에서 왕 노릇을 하며, 성종성왕(性種性王)은 은륜(銀輪)을 타고 3천하에서 왕 노릇을 하며, 습종성왕(習種性王)은 동륜(銅輪)을 타고 2천하에서 왕 노릇을 하는데, 이들은 열 가지 선행 때문에 왕이 된 것이며, 철륜(鐵輪)을 타는 왕은 1천하에서 왕 노릇을 하게 된다.『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에 나온다.
(3) 금륜왕(金輪王)의 왕으로서의 덕화와 방법
전륜성왕은 7보(寶)를 성취하였고, 네 가지의 신덕(神德)이 있었다. 7보의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요, 둘째는 백상보(白象寶)요, 셋째는 감마보(紺馬寶)요, 넷째는 신주보(神珠寶)요, 다섯째는 옥녀보(玉女寶)요, 여섯째는 거사보(居士寶)요, 일곱째는 주병보(主兵寶)이다.
만약 전륜왕이 염부제(閻浮提)에 나갈 때가 되면, 모든 찰리(刹利)가 물을 왕의 정수리에 붓고 달이 찼을 때에 향탕(香湯)으로 목욕을 하고서 높은 전각 위에 오른다. 그 자리에 모인 대중들이 기악을 울리고 하늘에서 금륜보(金輪寶)가 홀연히 나타나 앞에 있게 된다. 그 금륜보의 바퀴에는 천 개의 바큇살이 있고, 광채와 색깔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하늘의 금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바퀴의 지름은 한 길 넉 자나 된다.
왕은 이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내가 옛날부터 들어 왔던 것이 있더니, 지금 이렇게 수레바퀴가 나타났는데, 혹 이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이제 내가 이 윤보(輪寶)를 시험해 보아야 하겠다.’
왕은 이내 네 가지 병사[四兵]를 부르고, 금륜보를 향하여 오른팔을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꿇으며, 오른손으로는 금륜을 만지면서 말했다.
“너는 동방을 향하여 법대로 굴러가되 절대 일정한 법칙을 어기지 말아라.”
그러자 금륜은 이내 동쪽으로 굴러갔고, 왕은 네 병사들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갔다. 금륜의 앞에는 네 분의 신(神)이 금륜 머무를 곳을 인도하였는데, 왕이 바로 수레를 멈추게 하였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에서는 금 발우에다 은 조[粟]를 담고, 은 발우에는 금 조를 담아서 왕에게로 가지고 와서 머리 조아리고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이 동방은 토지가 풍요하고 즐거우며 여러 가지 값진 보배가 많고 국민도 매우 융성하옵니다.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여기에 머무셔서 다스리고 교화하옵소서.”
그러자 대왕이 대답하였다.
“그대들은 다만 바른 법으로써 백성을 다스릴 것이요, 절대 편법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하고, 나라 안에서 그릇된 법이 행해지지 않게 하시오. 그렇게만 하면 저절로 살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리다. 산 것을 죽이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사악한 음행을 하거나,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거나, 나쁜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비단결처럼 입에 발린 말을 하거나, 탐을 내어 취하거나, 질투로 시새우거나, 비뚤어진 소견을 지닌 사람이 없도록 가르쳐야 하느니라. 이것을 바로 나의 다스리는 방법이라 이름을 붙이느니라.”
이 때 여러 작은 나라의 왕들이 대왕을 따라 여러 나라를 순행하게 되었으니, 금륜이 가는 데를 따라 동쪽ㆍ남쪽ㆍ서쪽ㆍ북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모든 나라의 국왕들은 모두가 국토 중에서 편편하고 넓은 곳을 바쳤는데, 금륜이 돌아다니는 지경의 거리는 동쪽, 서쪽이 12유순(由旬)이 되고, 남쪽, 북쪽이 7유순이나 된다.
천신(天神)은 성곽을 만드는데, 그 성은 모두 일곱 겹으로 되어 있다.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그물과 일곱 겹의 줄지어선 나무로 둘레를 빙 두르며 7보로 섞어 장식을 해 완성한다. 그리고 수많은 새들이 서로 화답하며 지저귄다. 그 성안에는 다시 여러 개의 궁전을 만드는데, 궁전의 담은 일곱 겹이며 7보로 만들어진다. 이럴 때에 금륜보는 궁전 위의 허공 안에 머물러 있게 된다.
왕이 맑은 새벽에 정전(正殿) 위에 가 앉아 있으려니, 홀연히 백상보(白象寶)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 털은 순백색이고 일곱 군데가 편편하며,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힘이 세고 그 머리에는 여러 색깔이 섞여 있다. 여섯 개의 어금니는 가늘면서 고르고 진금(眞金)이 그 사이사이에 섞여 박혀 있다. 왕은 그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코끼리가 참으로 좋구나. 만약 잘 길들여져 있기만 하다면 한번 타볼 만하겠구나.’
그러면서 바로 이 코끼리가 길들여져 있는가를 시험해 보았더니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전륜왕은 스스로 코끼리를 시험해 보려고 그 위에 올라탔다. 날이 밝은 새벽녘에 성을 나갔는데 사해(四海)를 두루 돌아다니고도 밥 때에는 벌써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왕이 이른 새벽에 정전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감마보(紺馬寶)가 홀연히 눈앞에 나타난다. 그것은 검푸른 빛깔을 하고 있는데, 붉은 털이 꼬리와 머리에 있고, 우러러보자면 마치 까마귀와 같으며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힘이 세다. 왕은 그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감마보야말로 참으로 좋구나. 만약 잘 길들여져 있다면 타볼 만하겠구나.’
그리고 이내 길들여졌는가를 시험해 보자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왕이 말을 시험하려고 직접 그 위에 올라타자, 맑은 새벽에 성을 나가서 사해를 두루 돌아다니고도 밥 때에 벌써 돌아와 있었다.
또 그 때에는 왕이 맑은 새벽에 정전 위에 있으면 저절로 신주보(神珠寶)가 홀연히 앞에 나타난다. 그 바탕과 빛깔이 맑게 사무쳐서 티가 없다. 왕은 이것을 보고 생각한다.
‘이 신주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좋구나. 만약 광명이 있으면 궁전 안을 비출 만하겠다.’
그리고 왕은 구슬을 시험해 보려고 곧 네 가지 병사[四兵]들을 불러서 이 보배 구슬을 높은 당기 위에 두게 하였다. 캄캄한 밤중이 되어 그 당기를 가지고 성을 나가자 그 구슬의 광명은 1유순 밖까지 비추었으므로, 성안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낮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모두 일어나 일을 하기 시작한다.
또 옥녀보(玉女寶)라는 것도 홀연히 스스로 나타나는데, 얼굴빛이 조용하고 얼굴 모습은 단정하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억세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다. 겨울이면 몸이 따뜻하고 여름이면 몸이 시원하며, 온몸의 털구멍에서는 전단 향기를 뿜고, 입에서는 우발라꽃[優鉢羅華] 향내가 자오록하다. 말은 부드럽고 거동은 의젓하며, 먼저 일어나고 뒤에야 앉으며 위엄 있는 행동거지의 법도를 잃지 아니한다. 그러나 이 때의 왕은 조금도 애착하는 마음이 없어서 잠깐조차도 생각하지 않거든, 하물며 다시 친히 하고 가까이하겠는가?
그리고 거사보(居士寶)가 홀연히 또 스스로 나타났는데, 그의 보배 광 안의 재물은 풍부하여서 한량이 없다. 거사(居士)는 전생의 복으로 눈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땅 속에 묻힌 보배 광이 주인이 있는지 주인이 없는지를 모두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주인이 있으면 잘 보살펴 지켜 주고, 주인이 없으면 가져다 왕에게 주어서 쓰게 한다.
이 때 거사보는 왕에게 가서 아뢴다.
“대왕이시여, 대 줄 데가 있으시면 근심할 것 없나이다. 제 자신이 잘하겠사옵니다.”
그 때 왕은 이 거사보를 시험해 보고 싶어졌기에 바로 배를 꾸미게 하여 물놀이를 하면서 거사에게 말한다.
“나는 금 보배가 필요하니 그대는 속히 나에게 주라.”
거사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잠시만 기다리소서. 제가 해안에 닿아야 하나이다.”
그러나 왕은 절박하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써야겠느니라.”
그러자 거사보가 오른손을 물 속에 넣었고, 물 속에서 보배 병(柄)이 손에 따라 나왔으니, 마치 벌레가 나무에 붙듯 하였다. 왕은 그것을 보고 거사에게 말한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사실 나는 필요 없었는데 그대를 시험했을 뿐이니라.”
그러자 거사보는 이내 보물을 도로 물 속에다 던진다.
또 주병보(主兵寶)라는 것도 홀연히 나타나는데, 지혜와 꾀가 뛰어나고 용맹스러우며 뛰어난 계략으로 혼자 결단한다. 그는 이내 왕에게로 와서 말한다.
“대왕이시여, 토벌(討伐)할 데가 있으시면 아무 걱정 없습니다. 제가 혼자서 잘 처리하겠사옵니다.”
그러면 이 때 왕은 주병보를 시험하기 위하여 이내 네 가지 병사들을 모아 놓고 그에게 말한다.
“그대는 이제 군사를 부리도록 하여라. 아직 모이지 않은 이는 모이게 하고, 이미 모인 이는 보내며, 아직 무장을 하지 않은 자는 무장을 하게 하고, 이미 무장을 다한 이는 무장을 풀도록 하여라. 또 아직 떠나지 못한 이는 떠나게 하고, 이미 서 있는 이는 서 있게 할지니라.”
이 때에 주병보가 왕의 말대로 모두 다 해 놓는데, 왕은 그것을 보고 뛰어오를 듯 기뻐하며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전륜성왕이로구나.”
첫째 요절(夭折)하지 않고 오래 사는 것에서 그에게 미칠 수 있는 이가 없으며, 둘째 몸이 강건하고 병환이 없는 것에서도 미칠 수 있는 이가 없으며, 셋째 얼굴 모습이 단정한 것에도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다. 또 넷째 보배 광이 가득 차서 나오는 것에서도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는데, 이것이 성왕으로서 갖추는 네 가지 공덕이다.
큰 바다의 저편 언덕에는 다시 발두마 연못[鉢頭摩池]과 구물두 연못[俱物頭池]과 분타리 연못[分陀利池]이 있다. 여기를 지나면 땅이 텅 비어 있는데, 그 빈 땅 안에는 울선나(鬱禪那)라고 하는 큰 바닷물이 있다. 이 물 아래는 전륜성왕이 다니는 길이 있는데, 길의 너비는 12유순이다. 좁은 길의 양쪽에는 일곱 겹의 담과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구슬 그물과 일곱 겹으로 줄지어 선 나무가 있는데, 모두 7보로 이루어져 있다. 염부제의 땅에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오면, 그 때는 물이 저절로 비키고 그 길이 편편하게 드러나게 된다. 전륜성왕이 또 수레를 준비하도록 명하여 뒷동산에 놀러 나갈 때는 마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잘 몰면서 가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나는 국토의 백성들이 안락하고 우환이 없는가를 자세히 살피고자 하기 때문이니라.”
이 때 나라의 백성들 중에서 길에 나와 왕의 행렬을 구경하는 이들은 또 시종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좀 천천히 가십시오. 우리는 성왕의 거룩하신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합니다.”
이 때 왕은 사람과 만물을 인자하게 양육하였으니, 마치 아버지가 아들 사랑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백성들이 왕을 사모하는 것도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우러르듯 하였으니, 모든 진기한 것을 다 왕에게 바치곤 하였다.
“원하옵건대, 부디 받아 주시옵소서.”
그러면 이 때 왕은 대답한다.
“그만두어라, 여러 백성들아. 나에게도 보배가 있으니, 이것은 너희가 쓰도록 하여라.”
왕이 이 염부제를 다스릴 때에는 땅은 편편하고 바르며, 가시나무나 구덩이거나 언덕 따위가 없었다. 모기와 등에와 벌과 파리와 뱀과 나쁜 벌레도 없었으며, 돌과 모래와 조약돌은 저절로 가라앉아 없어지고, 금과 은과 보배와 옥들이 땅 위에 나타났다. 네 계절이 순조롭게 조화하여서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며, 그 땅은 부드럽고 티끌과 먼지가 없으니, 마치 기름을 땅에 발라 깨끗하고 윤기가 나는 것과 같았다.
땅에서는 샘물이 흘러나오는데 아주 깨끗하고 마르지를 않았으며, 수목은 무성하고 꽃과 열매는 아주 성하였다. 땅에서는 부드러운 풀이 나서 겨울이거나 여름이거나 간에 언제나 푸른색이 마치 짙은 비취색과 같다. 또 저절로 자라나는 멥쌀은 겨가 없고 온갖 맛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향나무는 꽃과 열매가 무성하다가 그 열매가 익게 되면 저절로 벌어지면서 향기가 자오록하게 나오며, 또 옷나무[衣樹]는 꽃과 열매가 무성하다가 그 열매가 익게 될 적에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갖가지의 옷이 나온다. 또 장신구 나무에서도 그 열매가 익게 될 적에 갖가지의 장신구가 나오며, 또 머리 꾸미개 나무[鬘樹]에서도 그 열매가 익게 될 적에 갖가지의 머리 꾸미개가 나온다. 또 그릇 나무에서도 그 열매가 익게 될 적에 갖가지의 그릇이 나오며, 또 과일 나무는 꽃과 열매가 무성하다가 그 열매가 익게 될 적에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갖가지 과일이 나오며, 또 악기 나무에서도 그 열매가 익게 될 적에 여러 가지 악기가 나온다.
전륜성왕이 세간을 다스릴 적에는, 아뇩달용왕(阿耨達龍王)이 한밤중에 아주 빽빽한 구름을 일으켜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서 큰비를 내리는데, 소의 젖을 짜는 시간 동안만 내리며, 여덟 가지 맛[八味]의 물은 윤택하고 세상에 두루 퍼져 있다. 땅에는 물이 괴이지 않고 질퍽거리지도 않으며, 아름다운 빛이 널리 퍼진다. 밤중이 지난 후에는 공중이 청명하고 깨끗하여져서 구름 그림자도 없으며, 바다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니 깨끗하고 부드러워서 몸에 닿으면 즐거움이 솟아난다.
성왕은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잘못됨이 없으며, 열 가지의 선행을 닦았기에 그 때의 모든 백성들도 바른 소견을 닦고 열 가지 착한 일을 갖추었다. 그 왕은 오랫동안 사람의 음식을 즐기며 사는 듯하다가도 몸이 조금 쾌적하지 않으면서 이내 목숨을 마쳐 범천(梵天)에 가 난다.
이 때에 금륜보와 백상보와 감마보와 신주보는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옥녀보와 거사보와 주병보와 국토의 백성들은 기악을 울리면서 향을 푼 목욕물로 왕의 몸을 목욕시킨다. 그리고 왕의 몸을 겁패(劫貝)로 묶고 5백 장의 털 담요를 차례로 그렇게 묶고서는, 왕의 몸을 들어 올려 금관(金棺) 속에 넣고 향유(香油)를 거기에다 뿌린다. 그리고 철관(鐵棺) 속에다 넣고 다시 목곽(木槨)으로 겹대고 옷으로 그 밖을 싸고는, 여러 향나무의 섶을 쌓고 옷으로 그 위를 싸고는 화장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네거리 옆에 칠보탑(七寶塔)을 세우는데, 세로와 너비가 1유순이 되며, 여러 가지 색이 사이사이 섞이고 7보로써 만들어진다.
옥녀보와 거사보와 주병보, 그리고 온 나라의 선비와 백성들은 모두 와서 이 탑에 공양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를 하는데, 밥을 구하면 밥을 주고 옷을 구하면 옷을 주며, 그 외에도 코끼리ㆍ말ㆍ보배ㆍ탈 것 등 대중이 구하는 것을 그 뜻에 따라 대주게 된다.『누탄경(婁炭經)』 제1권에 나오며, 또 『장아함경(長阿含經)』에도 나온다.
(4) 등광명(燈光明) 금륜왕(金輪王)이 팔을 버리다
“과거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에 이 세계의 이름은 일월뢰(日月雷)였으니, 또한 5탁(濁)이 있는 세계였다.
나는 이 때에 전륜왕으로서 염부제의 왕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이름은 등광명(燈光明)이었다. 아승기 사람들을 가르쳐 인도하여 착안 법 안에 머무르게 하였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몸에 포박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물었다.
‘저 자는 무슨 죄를 범했는가?’
대신이 말하였다.
‘밭에서 기른 보리 곡식은 6분의 1을 관청에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국법을 따르지 않았나이다. 이 때문에 그를 포박하였사옵니다.’
나는 칙명으로 그를 놓아주게 하였다. 신하가 말하였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 왕의 여러 아드님과 후궁 권속들이 쓰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다른 이들한테서 강제로 취한 것이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나이다.’
나는 크게 근심하다가 그 땅을 5백 등분으로 나누어 평등하게 여러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고 바로 출가하였다. 남쪽 해변의 울두마(鬱頭摩) 숲 속으로 가서 여러 가지 열매를 따 먹고 점차로 수행하고 배우다가 5신통(神通)을 얻었다.
그 때 염부제에 5백 명의 장사꾼이 있었는데,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고 있었다. 그 장사꾼들의 우두머리는 만월(滿月)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원하는 대로 보물을 얻었으므로 그만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용이 성이 나서 장사꾼들을 해치려고 하였다.
한편 마견(馬堅)이라는 한 용왕이 있었는데 그는 큰 보살로서 본래의 서원 때문에 용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그가 자비심을 일으켜 여러 장사꾼들을 구제하여 안온하게 큰 바다를 지나 저편 언덕 가에 이르게 하였다. 용왕은 그런 뒤에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 때 어느 아주 나쁜 나찰(羅刹) 하나가 장사꾼들을 쫓아서 마치 그림자가 본체를 따르듯 쫓아다니면서 해치려 하였다. 이 나쁜 나찰은 그날 아주 사나운 바람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여러 장사꾼들은 정신이 헷갈려 길을 잃게 되어 너무나 두려운 마음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슬피 울고 있었다. 여러 하늘이며 마혜수라(摩醯首羅)며 수신(水神)이며 지신(地神)이며 화신(火神)이며 풍신(風神)들을 부르기도 하였고, 또 부모와 처자 권속들을 부르기도 하면서 이렇게 빌고 있었다.
‘원하옵나니 제발 저를 구제하여 주시옵소서.’
선남자야, 나는 그 때에 깨끗한 하늘 귀[天耳]로써 그 음성들을 듣고 이내 그곳으로 가서 부드러운 말로써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대들에게 길을 보여 주리라. 그대들로 하여금 안전하고 편안하게 염부제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
선남자야, 나는 그 때에 흰 털 담요로 팔을 묶고 거기에 기름을 부어서 태우며 심지로 삼아 진실한 말을 하였다.
‘나는 먼저 울두마의 숲에서 13년 동안이나 오로지 정진하며 4무량심(無量心)을 수행하였다. 중생들을 위하여 열매를 따 먹으면서 8만 4천의 모든 용과 야차, 신들을 권하여 불도에 들게 하였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 선근(善根) 때문에 이제 이 팔을 태워 길을 지시할 수 있는 것이며, 여러 장사꾼들로 하여금 무사히 염부제로 돌아갈 수 있게 하게 된 것이니라.’
팔을 밤낮 7일 동안 태웠더니, 이 여러 장사꾼들은 무사히 염부제로 돌아갔다. 선남자야, 나는 그 때에 다시 착한 서원을 세웠었다.
‘만약 염부제에 모든 값진 보배들이 다 없어질 것 같으면,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 나 자신의 이익을 얻어서는 장사꾼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세상 곳곳에 일곱 번 보배를 비처럼 내리겠습니다. 또 큰 바다에 들어가 여의주(如意珠)를 가져다 하나하나의 모든 세상에 다시 갖가지의 보배를 비처럼 내리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차례로 이 세계를 두루 하고, 나아가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모든 세계 안에까지도 또한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남자야, 내가 옛날에 세웠던 모든 원을 모두 성취하였고,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대겁(大劫) 동안에 언제나 위없는 살박(薩薄)의 주인이 되어서 항하 모래만큼 많은 다섯 가지 흐름[五濁]의 나쁜 세상에서 갖가지의 보배를 비처럼 내렸노라. 하루 동안에도 일곱 번이나 비처럼 내려 그들로 하여금 만족하게 하였느니라. 그런 뒤에야 권하여 3승(乘)에 머무르게 하였다.”『과거향연화불세계경(過去香蓮華佛世界經)』에 나온다.
(5) 개사(蓋事) 전륜왕은 큰 이익이 있었다
과거 염부제(閻浮提)에 네 개의 강물[四河水]과 두 사람의 큰 나라 왕이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바라문 제바(提婆)[양(梁)나라 말로 범천(梵天)이라 한다.]인데, 혼자서 세 개의 강물을 점거하고 있었고, 백성도 번성하기는 하였으나 나약하였다. 다른 한 왕의 이름은 벌사건제(罰闍建提)[양(梁)나라 말로 금강취(金剛聚)라 한다.]인데, 강을 오직 하나만 가지고 있었고, 백성들 수도 적었으나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다 용맹하고 강건하였다.
이 때 금강취왕은 정전(正殿)에 있다가 생각하였다.
‘우리 병사들이 용맹하고 날랜데도 가지고 있는 강물이 너무 적다. 저 옆 나라는 힘도 나약한데 세 개의 강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제 사신을 보내어 한 개의 강을 찾아 가지리라. 만약 나에게 주겠다면 함께 친하게 지내며 사이를 돈독하게 하겠고, 우리 나라에 있는 좋은 물건도 바치리라. 또 만약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서로 가서 구제하리라. 그러나 만약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실력으로 빼앗으리라.’
금강취왕이 사신을 보내어 범천(梵天)의 나라에 가서 왕의 뜻을 자세히 말하게 하였더니, 범천왕은 생각하였다.
‘우리 나라는 풍요롭고 알차면서 백성의 수도 많다. 또 이 나라의 국토는 우리 부왕께서 가지고 계시다가 나에게 물려주신 것이다. 설사 힘으로 다투게 된다 하여도 우리는 결코 그에게 밑지지는 않으리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나라는 우리 부왕께서 내게 물려주신 것이오. 우리의 힘이 당신네보다 못하지 않으므로, 만약 힘으로 결정하겠다고 하면 우리도 절대 당신네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오.”
사신은 돌아가서 자세히 왕에게 보고하였고, 이내 군사를 모아 범천국을 공격하게 되었다. 같이 한 번 맞붙어 싸웠는데 바로 범천의 군사들은 무너지고 말았다. 금강취왕의 군사들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뒤를 쫓아 지름길로 먼저 성 근처에까지 이르렀다. 범천국 사람들은 두려워서 위축되어 다시는 감히 나서지 못하였다. 그래서 범천의 여러 신하들은 함께 범천왕에게로 가서 대왕에게 아뢰었다.
“저 나라 병사는 강하고 우리 나라는 나약하옵니다. 강물 하나를 아끼시다가 지금 이렇게 싸움에 지셨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오래지 않아서 나라를 전부 잃고 말겠습니다. 그러니 원하옵건대 부디 잘 생각하시어 강 하나를 그들에게 내주십시오. 그래서 함께 친하고 사이좋게 지내며 안전을 얻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왕은 사신을 보내어 강물 하나를 주겠다고 하였고, 또 딸을 주어서 금강취왕의 부인으로 삼게 하였다. 그리고 나라 안의 기이한 물건들을 그들에게 바치면서 위난과 위험에는 함께 서로 가서 구하기로 약조하였다. 금강취는 그 여인을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고 서로 함께 화해하고 군사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왔다. 얼마를 지나자 그 왕의 부인은 태기가 있음을 깨달았다. 임신한 뒤에는 7보로 만들어진 커다란 일산이 항상 몸 위에 있으면서 앉아 있을 때나 걸어다닐 때나, 혹은 서 있을 때라도 절대 몸에서 멀리 떠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열 달이 다 차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몸은 자금 색이고 머리카락은 검푸른 빛이며, 광명이 번쩍이면서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에서 밖으로 나오자 일산은 아이의 위에 와 머물러 있었다. 여러 관상 보는 사람들을 불러서 이 아이의 관상을 보게 하였더니, 관상 보는 이가 왕에게 아뢰었다.
“태자의 덕스런 모습은 이 세상 어디에도 드문 것이옵니다.”
왕과 신하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 이내 그의 이름을 찰라가리(刹羅伽利)[양(梁)나라 말로 개사(蓋事)라 한다.]라고 지었다. 아이가 나이가 차서 성인이 되자 부모가 돌아가셨으므로 작은 왕과 신하와 백성들은 다 함께 개사를 옹립하여 정사를 하게 하였다. 개사가 왕이 된 지 수 년 만에 성 밖으로 나와 유람하다가 여러 백성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고생하는 것을 보고 좌우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대답하였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백성은 곡식을 생명으로 삼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백성의 생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멸망하게 되옵니다.”
왕은 말하였다.
“만약 나의 복으로 인하여 마땅히 왕이 된 것이라면, 나의 백성들로 하여금 저절로 된 곡식을 얻게 하여라.”
왕이 이 말을 마치자마자, 백성들의 창고에는 갖가지 곡식들이 원하는 대로 다 갖추어졌다. 그리고 다시 뒷날에 밖으로 나와 유람하는데, 사람들이 물을 긷고 방아를 찧는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되어 또 신하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신하는 왕에게 아뢰었다.
“왕의 은택을 입어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얻게 되긴 하였습니다만, 부지런히 일해서 그 곡식을 익혀야 하옵니다. 이 때문에 서민들이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만약 나의 복덕으로 인하여 마땅히 왕이 된 것이라면, 내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이 저절로 만들어진 밥을 갖도록 하여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온 나라 안에서는 모두 저절로 된 밥을 얻게 되었다. 왕이 뒷날 다시 나와 유람을 하다가 베를 짜서 옷으로 만드는 광경을 보고 물었다.
“이 여러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저것을 붙잡아 만들고 있는가?”
신하가 말하였다.
“의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만약 나의 복덕이 마땅히 왕이 될 만하여서 왕이 된 것이라면, 나의 나라 안의 모든 나무에서 저절로 된 옷이 나오게 하여라.”
이 말을 하자마자 나라 안의 모든 나무에서는 전부 아름다운 옷이 나왔는데, 실이 아주 가늘고 부드러우면서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ㆍ흰색 등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마음대로 되었다.
왕이 뒷날 다시 나와 유람을 하다가 여러 국민들이 다투어서 악기(樂器) 만드는 것을 보고 다시 신하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저러는가?”
신하는 말하였다.
“악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만약 내가 지닌 복으로 인하여 내가 왕이 된 것이라면, 나의 나라 안의 나무에서 악기가 나오게 하여라.”
그러자 또 뜻에 맞도록 다 갖추어졌다.
또 얼마를 지난 뒤에 여러 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와서 하례(賀禮)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왕의 식사 때가 되었으므로 붙잡아 머물게 하고 음식을 주었다.
그 때 여러 신하들은 왕의 음식을 먹어 보고, 온갖 좋은 맛이 다 났으므로 함께 왕에게 아뢰었다.
“신 등이 집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그 맛이 대수롭지 않사온데, 지금 왕의 밥을 먹어 보니 그 맛이 참으로 보통이 아니옵니다.”
왕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경 등 신민들이 언제나 나와 같은 밥을 먹고자 한다면, 내가 밥 먹는 같은 때에 먹을 것 같으면 모두 그러한 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내 관리를 찾아서 칙명을 내렸다.
“내가 밥 먹을 시간이 되거든, 큰 북을 울려서 모든 백성들이 다 그 소리를 듣고 시간을 알 수 있게 하여라. 내가 밥을 먹을 때에 같이 먹으면 온갖 맛이 다 나는 훌륭한 공양을 얻게 될 것이다.”
이로부터 이후로는 밥 때가 되면 북을 울렸다. 모든 국민들이 그 소리를 듣고 밥을 생각하면 맛있고 훌륭한 음식이 저절로 자기 앞에 나타나게 되었으므로, 국민들은 너무나 즐거워하였다.
이 때 범천왕은 다시 사신을 보내어 개사왕의 나라에 가서 개사왕에게 말하게 하였다.
“그대의 부왕이 계실 때에 내가 강물 하나를 그대의 부왕에게 쓰시도록 드렸소. 이제 그대의 부왕께서 돌아가셨으니 마땅히 나에게 돌려주셔야겠소.”
이 때 개사왕은 그 사신에게 말하였다.
“나의 지금의 나라 경계와 그 강물은 역시 나의 힘으로 강제로 그대들에게서 얻은 것은 아니오. 그러나 나는 왕이 되어서 백성과 만물을 괴롭히지는 않으리니, 잠시 기다리면 내가 뒤에 그대의 왕을 만나 뵈오리다.”
사신이 돌아와서 왕에게 아뢰니, 왕은 그의 뜻을 받아들이고 기일을 정하여 약속을 하였다. 두 왕이 동시에 출발해 나아가자 많은 군사들이 에워쌌다. 저마다 큰 진영을 강 한쪽 편에 두고서 두 왕은 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나아가 서로 만났다. 이 때 범천왕은 처음 개사왕을 보았는데, 몸빛은 빛이 나서 자금(紫金)의 산 같았고, 머리카락은 반짝거려 감색(紺色) 유리(琉璃) 같았으며, 그 눈은 너무나 넓고 길어서 인간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저절로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면서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분명 범천일 것이다.’
서로 인사를 마치고 한 곳에 마주 앉아서 두 나라 땅 문제를 이야기하고 강 찾는 일을 논의하자, 개사왕은 대답하였다.
“저의 나라 백성들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돈으로 내거나 왕을 위해 부역하는 노고도 없습니다.”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밥 때가 벌써 되었는지라 개사왕의 진영에서는 북을 울리고 밥을 먹으려 하였다. 범천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으로 여기고 두려워하며 일어나 죄를 빌면서 양가죽을 사방에다 펴고 배를 대며 엎드렸다. 개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끌어 당겨 도로 앉게 하고서 그에게 말하였다.
“대왕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우리 군사는 식사 때면 언제나 북을 울립니다. 왜냐 하면 나의 밥 때에 먹으면 모두가 맛있는 훌륭한 공양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범천왕은 다시 일어나 개사왕에게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대왕이시여, 저와 나라 사람에게도 그 은혜가 널리 미치게 하소서. 모든 것을 다 항복하여 따르겠사오니,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다 그 은택을 입게 하소서.”
이렇게 하여 개사왕은 염부제를 다 맡았고, 모든 백성들은 다 안락을 얻었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정전(正殿)에 있으면 여러 신하들과 모든 벼슬아치 들이 시봉을 하고 서 있었다. 해가 처음 솟아오를 때에 금륜보(金輪寶)가 동방으로부터 왔으며, 이렇게 하여 7보가 잇달아 이르렀고, 4천하(天下)를 다 맡게 되었다.
모든 중생들은 왕의 은덕을 입어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였다. 왕은 모두들에게 10선(善)을 수행하게 명령을 내렸으니, 백성들은 모두 수명을 마친 뒤에는 하늘에 가서 태어났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찰라가리왕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요, 벌사건제왕은 바로 지금의 부왕이며, 어머니는 바로 지금의 마야(摩耶)시니라.”『현우경(賢愚經)』 제8권에 나온다.
(6) 전륜왕이 반 구절의 게송[偈]을 위하여 몸을 깎아 천 개의 등불을 켜다
그 때에 전륜성왕이 부처님 법을 구하기 위하여 염부제(閻浮提)에 두루 물었다.
“누가 부처님 법을 아느냐? 대전륜왕이 그 법을 얻어서 소중하게 익히려 하느니라.”
그러자 모두가 말하였다.
“무변(無變)의 한 조그마한 나라에 바라문이 있사온데 부처님의 법을 아나이다.”
그래서 바로 그를 청하였더니 궁성으로 들어왔다.
“나를 위하여 법을 풀어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은 말하였다.
“왕은 참으로 어리석으십니다. 저는 부처님 법을 배우느라 오랫동안 부지런하게 노력하며 온갖 고통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비로소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지금 어찌하여 이 자리에서 바로 얻어 들으려 하십니까?”
왕은 대사에게 아뢰었다.
“어떤 물건이 필요하십니까?”
“나에게 공양을 하십시오.”
“필요로 한다는 그 공양이란 것은 어떤 물건입니까?”
“만약 왕의 몸을 깎아 천 군데에 상처를 만들고서 거기에 기름을 가득히 붓고 등불 심지를 놓고서 공양한다면, 나는 그대를 위하여 부처님 법을 해설하리다.”
왕이 아직 대답도 하기 전에 대사가 이내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므로, 대왕은 즉시 다가가서 잡아서 붙잡고 말하였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혼자서 깊이 생각을 하고서 공양을 받들어야겠습니다.”
그 때 대왕은 궁중으로 들어가 여러 부인들에게 알렸다.
“이제 그대들과는 그만 이별을 해야 하겠소. 나는 몸을 깎아 천 개의 등불을 만들어 큰 스승에게 공양하려 합니다.”
부인들은 말하였다.
“천하에서 소중한 것은 자기 몸보다 더한 것이 없거늘 어떻게 자신의 몸을 해치려고 하십니까?”
왕은 말하였다.
“부처님 법을 구하는 것은 일체 중생을 위한 일이오. 어둡고 깜깜한 방에 지혜의 등불을 켜서 그대들 나고 죽는 광명 없는 캄캄한 곳을 비추어 주려 하는 것이오. 그대들 쌓여 있는 많은 번뇌를 끊고 열반에 이를 수 있게 하려 함에서 그리하겠다는 것인데, 그대들은 이제 어째서 나의 마음을 거역하는 것이오?”
그러자 부인들은 잠자코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슬퍼하고 한탄하며 목이 메어 있었다. 왕은 안팎의 모두와 이별하고 도로 전상(殿上)에 왔다. 그리고 큰 스승에게로 나아가 몸에 달고 있던 구슬을 다 벗어 버리고 몸을 단정히 하여 똑바로 앉아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누가 나를 위하여 내 몸을 깎아 천 군데의 상처를 만들어 주겠느냐?”
모두가 함께 대답하였다.
“차라리 내 두 눈을 뽑아낼지언정, 절대 내 손으로 왕의 몸을 깎을 수는 없나이다.”
어떤 전다라(旃陀羅)라는 성질이 모질고 포악한 사람이 있었는데, 왕의 이 말씀을 듣자 바로 나아가 여러 태자들에게 말하였다.
“걱정하고 괴로워할 것 하나 없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방법이 있나이다. 대왕으로 하여금 이 일을 이룰 수 없게 하고, 도로 국토를 거느리면서 본래와 다름이 없게 사시도록 할 수 있나이다.”
태자들은 듣고 기뻐하였다. 전다라는 말하였다.
“대왕께서 몸을 깎으려 하신다면, 제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너야말로 이제 나의 위없는[無上] 도의 벗[道伴]이로다.”
이 때 전다라는 우설도(牛舌刀)를 왕의 몸에 갖다 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재빠르게 깎아 천 군데의 상처를 다 만들었다. 이 정도면 왕도 그만두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칼을 내던지고 도망쳤다. 왕은 그 상처마다 기름을 가득히 채우고 가는 털실로 심지를 만들었으니, 이 때 바라문은 왕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정진(精進)을 하시다니 실로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하십니다. 이런 고행(苦行)을 닦는 것은 부처님 법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바라문은 이내 반 구절의 게송을 말하였다.
대저 태어남은 곧 죽음에 나아가니
이것이 사람짐[滅]이 즐거움이리라.
왕은 말하였다.
“나에게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이 법을 기억하고 지녀야 한다. 모든 나라 땅마다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이 왕명을 널리 펴 알릴지니라.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다 알아야 한다.
대전륜왕은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함을 보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몸을 깎아 천 개의 등불을 켜서 이 반 구절의 게송을 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 이 게송을 쓰고 베끼어 읽고 외우며, 소중히 익히며 그 이치를 생각하여 그 말씀대로 수행을 해야 하느니라.”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왕을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참된 자비의 아버님이시라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이 고행을 닦으시옵니다. 저희들은 당연히 어서 가서 이 게송을 쓰고 베껴 두겠습니다.”
사람들은 이 게송을, 혹은 종이와 비단에, 혹은 돌 위에나 나무에, 그리고 기와와 조약돌, 혹은 풀잎에까지, 좁은 오솔길이나 중요한 길목,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모두 쓰고 베껴 놓았다. 그리하여 그것을 보고 듣는 모든 사람들이 도의 마음[道心]을 내게 되었다. 왕은 천 개의 등불을 켜서 큰 스승께 공양하였으며, 그 광명은 멀리 시방세계를 비추었다. 그 등불의 빛 속에서도 역시 음성이 들리면서 이 반 구절의 게송을 말하였으므로, 그 법을 듣는 사람들 모두가 도의 마음을 낼 수 있었다.
그 광명이 위로 비추어 도리궁(忉利宮)에까지 이르러 하늘의 광명을 다 가려 버렸으므로 도리 천왕은 생각하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광명이 생긴 것일까?’
도리 천왕은 이내 천안(天眼)으로써 세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륜왕이 큰 자비로써 자신의 마음을 닦았기에 중생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깎아 천 개의 등불을 켜고, 큰 스승께 공양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려 하였던 것을 보았다.
“우리들도 내려가서 권하고 경계하고 도와야겠구나.”
도리 천왕은 곧장 세상으로 내려와 변화로 보통 사람이 되어서 왕에게로 나아가 대왕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자신의 몸을 깎아서 천 개의 등불을 켜는 고행을 닦으셨는데, 그 반 구절의 게송을 구하여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야, 나는 중생들이 모두 도의 마음을 내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라.”
그 때 변화로 된 사람은 이내 제석의 몸으로 회복되어 말하였다.
“이런 공양을 하여서 천왕(天王)이나 마왕(魔王), 아니면 범왕(梵王)이라도 되기를 원하는 것이더냐?”
왕은 말하였다.
“나는 그런 것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중생을 위하여 보리(菩提)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편안하지 않은 이를 편안하게 하고 알지 못하는 이를 알게 하고,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되게 하고 도를 얻지 못한 이는 도를 얻으려는 마음을 먹게 하기 위해서 그리 한 것입니다.”
천왕 제석은 말하였다.
“대왕이여, 지금 이 짓은 너무 어리석은 짓이 아니십니까? 보리를 구하는 이는 오랫동안 부지런히 많은 고생을 하고서야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가 어떻게 위없는 도를 구하려 하십니까?”
천왕 제석에게 대답하였다.
“설사 뜨거운 쇠 수레바퀴를 나의 정수리 위에서 돌린다 하여도 그 괴로움 때문에 위없는 도를 구하는 마음에서 물러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가 비록 이런 말을 하지만 나는 끝내 믿지 않겠습니다.”
이 때 전륜왕은 천왕 제석 앞에서 서원을 세웠다.
“만약 제가 진실한 마음으로 3보리(菩提)를 구하지 않고 천왕 제석을 속인 것이라면, 내 몸의 천 군데 상처가 끝내 낫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 만약 그렇지 않다면 피가 마땅히 젖으로 변하며, 천 군데 상처가 모두 아물게 하십시오.”
왕이 이 말을 하자마자 상처가 이내 아물므로 천왕 제석은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이렇게 고행을 하시니 이제 오래지 않아서 위없는 보리를 얻게 되실 것입니다. 보리를 얻으신 때에는 반드시 나를 먼저 제도하여 주십시오.”
천제석은 큰 광명을 놓아 왕의 몸을 두루 비추었으니, 백천의 모든 하늘이 함께 보리 마음을 내었다. 5백 명의 태자도 그 부왕의 몸의 상처가 본래대로 아문 것을 보고 한량없는 기쁨으로 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2만 명의 부인들과 백천의 채녀들도 역시 그러하였다.『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 제3권에 나온다.
(7) 마조(摩調) 금륜왕(金輪王)이 나라를 버리고 도를 배우다
“옛날 마조(摩調)라는 왕이 있었다. 당시의 명호는 차가월왕(遮加越王)이었으며, 4천하(天下)의 임금으로서 바른 법으로 다스리고 백성들을 속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인자한 마음을 행하여 마치 갓난아이 돌보듯이 백성을 보았다. 그 때의 사람의 수명은 8만 살이었고, 왕에게는 7보(寶)가 있었으며, 또 천 명의 아들이 있었다. 채찍과 막대기는 쓰는 일이 없었으나 백성은 말썽을 일으키거나 송사를 하는 일이 없었다. 왕의 교화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왕이 사방 어디로 가려고 하건 다 그 뜻을 따라 바로 그곳에 이르곤 하였으니, 수천만 인이 왕의 뒤를 따라 날곤 하였다. 무기를 지니는 일도 없었으므로 백성과 귀신들이 모두가 절로 기뻐하였다. 한번은 왕이 시위하는 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나면 꼭 나에게 말해야 한다.’
시위하는 사람이 말했다.
‘흰 머리카락이 났습니다.’
그러자 왕은 태자를 불러서 말하였다.
‘나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났으니, 이제 늙어서 몸이 쇠약해질 날이 멀지 않았다. 이제 너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노라. 지금부터 이 4천하는 모두 너에게 속하게 된다. 너도 후일에는 나처럼 또한 세간의 즐거움에 싫증을 내어서 도를 구하는 길을 행하여야 하느니라.’
왕은 이내 나라를 버리고 머리를 깎고 도를 배우게 되었으니, 이 때의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크게 슬피 울었다. 마조의 자손은 대대로 서로 나라를 전하면서 유지하였는데, 자그마치 1,084명의 왕이 머리가 희어지면 도를 배우러 떠나곤 하였다.
마조왕은 1,084세(世) 후에 다시 사람이 되어 세간에 나와서 도로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이름은 남(喃)이라고 하였다.
남왕은 이번에도 또 바른 법을 지켰으므로, 부인들[中宮]과 모든 귀인(貴人)들에게 8계(戒)를 지키고 달마다 6재(齋)를 닦으라고 신칙을 내렸다. 신하와 백성들은 남녀 모두 이 명을 받들어 지녔으며, 사문과 도인이 옷과 밥이 없으면 모두 다 공급하여 주었고, 의약품까지 보시하였다. 천제석이 남왕에게 말하였다.
‘도리 천상의 여러 천왕들을 만나 보고 싶습니까?’
남왕은 이내 대답하였다.
‘만나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제석이 말하였다.
‘내가 채하육다(蔡嗬育多)라는 이름의 수레 한 채에 천 마리 말을 보내어 왕을 영접하리다. 남왕의 명성은 멀리 도리천에까지 소문이 났으므로, 모든 천왕들에게 공경과 존중을 받는 터라, 서로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그리고 수레가 나타나서 말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입니다. 우리 왕께서 훌륭한 하늘 수레를 베푸시어 왕을 영접하십니다.’
남왕이 수레에 오르자 수레와 말이 함께 날아올랐다. 왕은 이내 수레 모는 이에게 말하였다.
‘두 가지 길을 모두 지나가 주십시오. 나는 나쁜 사람의 길도 보고 싶으며, 또 착한 사람의 길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마(摩)는 말하였다.
‘지나가면서 지옥 사람들에게 모진 고문(拷問)을 하는 곳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도리천에 오르면 천상의 즐거움을 구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이 제석궁에 이르자, 천제석은 다시 말하였다.
‘천상의 여러 왕들이 몹시 만나 보고 싶어하십니다.’
남왕은 떳떳한 도[常道]로 공덕을 말하고, 이내 앞으로 나아가 팔을 끌어서 함께 나란히 앉았다. 남왕은 몸이 변하여 천상의 몸이 되면서 다시는 세간에서의 더러운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며 꽃을 흩뿌리고 향을 사르면서 제석은 남왕에게 말하였다.
‘아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 세간의 모든 기악(伎樂)은 함께 즐겨 놀 만하며 족히 근심을 잊을 만합니다.’
그러나 남왕은 천상의 기악을 낙(樂)으로 삼지 않았기에 바로 제석에게 말하였다.
‘마치 사람이 물건을 빌리면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처럼, 저는 본래 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기악으로써는 낙으로 삼지 아니합니다.’
이 때의 남왕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니라.”『마이조왕경(摩異調王經)』에 나온다.
(8) 무쟁념(無諍念) 금륜왕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다
보살이 과거의 겁(劫) 때에 이 부처님 세계의 이름은 나제람(那提嵐)이었고, 겁의 이름은 선제(善提)였다. 전륜왕이 있었으니, 이름은 무쟁념(無諍念)이었고, 4천하의 임금이었다. 보해(寶海)라는 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범지(梵志)의 종족으로서 점과 관상을 잘 알았다.
이 때 아들을 낳았는데,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갖고 있었으며, 백 가지 복으로 이 모습이 이루어지고 언제나 비치고 있는 광명이 한 길[尋]이나 되었다. 백천의 여러 하늘들이 와서 함께 공양하였으므로 그 때문에 이름을 보장(寶藏)이라 지었다.
그 후 장대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아 버리고 법복을 입고 출가하여 3보리(菩提)를 이루고서도 이름은 그대로 보장이라고 하였다. 10호(號)가 두루 갖추어 있었으니, 이내 법 바퀴를 굴려서[轉法輪] 중생들을 모두 하늘에 가서 나게 하였으며, 모두가 해탈을 입게 하였고, 천상과 인간을 두루 이롭게 하였다. 성문(聲聞) 대중들은 공경하는 뜻으로 안주라성(安周羅城)을 에워쌌는데, 그곳이 바로 성왕(聖王)이 다스리는 곳이었다.
그 성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에 염부(閻浮)라고 하는 동산 숲이 있었다. 이 때 부처님과 성문 대중들이 이 숲 속에 머무르고 계셨는데, 왕이 그 소문을 듣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중들과 함께 부처님께로 나아갔다. 부처님 계시는 곳에 당도하자마자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세 바퀴를 돌고 한편으로 물러나 앉아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내 왕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씀하시고, 갖가지 방편으로써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여래와 모든 성인들께서는 석 달 동안을 제가 공양하는 의복과 음식, 침구와 탕약 등을 받아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셨으므로 왕은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돌아갔다. 그리고 소왕(小王)과 신민들과 권속들에게 모든 공양 거리를 마련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때 주보신(主寶臣)은 염부림 속의 땅을 순금으로 되게 하고, 그 땅 위에 7보의 누각을 만들었다. 그 누각에 있는 네 개의 문은 7보로 만들어졌고, 주위에는 7보로 된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는 모두 보배 옷과 영락과 갖가지 구슬 일산 및 여러 보배 그릇이 달려 있게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갖가지 향과 보배 꽃을 흩뿌리고 관(冠) 끈으로 된 비단을 깔아서 거기에 비단 번기와 왕의 금륜(金輪)들을 달아 놓았다. 누각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앞에는 땅에서 일곱 자 떨어져서 여보(女寶)가 일산을 잡고 서 있었고, 마니주(摩尼珠)를 부처님 앞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구슬 바퀴에서 나오는 두 줄기 광명이 항상 숲 속을 비추어 낮과 밤이 다름이 없었다. 우두전단(牛頭栴檀)으로써 상탑(床榻)과 책상이며 흰 코끼리를 만들고, 보배 나무를 갖가지로 장엄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의 앞뒤에 세워 두었다.
또 옥녀보(玉女寶)는 일곱 개의 마니보(摩尼寶) 일산을 들고 부처님 앞에 서 있었으며, 우두전단과 흑침수(黑沈水)를 흩뿌리어 공양을 하는 동시에 온갖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동산 바깥 변두리에는 네 가지 병사 보배[四兵寶]가 둘러 에워쌌다. 왕은 부처님께로 가서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세 바퀴 돌고 직접 씻을 물을 돌렸다. 또 몸소 잔을 기울이면서 훌륭한 음식을 부처님과 스님에게 공양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음식을 다 잡수신 뒤에 발우에 돌린 물을 버리고 입을 양치질하셨다. 그러자 왕은 보배 부채를 가지고 여래와 한 분 한 분 성문들에게 부채질을 하여 드렸다.
이 때 왕의 천 명의 아들들과 8만 4천의 여러 소왕(小王)들은 모두 다 한 분 한 분 성문들에게 마치 전륜왕에게 하듯이 똑같이 공양을 올렸다. 이윽고 식사 후에는 수없이 많은 대중들이 숲으로 들어가 법을 들었으며, 여러 천인들은 꽃을 흩뿌리고 하늘의 기악을 울리면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허공 중에서는 하늘 옷[天衣]과 영락이며 갖가지 보배 일산들이 스스로 빙빙 돌고 있었으며, 4만의 청의 야차(靑衣夜叉)는 우두전단을 가져다 대중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밤중에는 전륜왕이 대중 앞에 백천 개의 한량없이 많은 억 나유타(那由他) 만큼의 등불을 켰다. 왕은 정수리에 한 개의 등불을 이고 어깨에는 두 개의 등불을 메고, 좌우의 손에 네 개의 등불을 붙잡고, 그 두 무릎 위에는 각각 한 개의 등불을 놓았으며, 양 발등 위에도 각기 한 개의 등불을 켜고서 밤낮으로 공양하였다. 부처님의 신력 덕분에 몸은 고달프거나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고, 마치 3선(禪)에 들어간 듯하였으니, 전륜성왕이 받은 쾌락 또한 그와 같았었다.
이렇게 석 달이 지나고 나서 주장신보(主藏臣寶)는 여래에게 염부단금(閻浮檀金)으로 된 용의 머리의 영락 8만 4천을 바쳐 올렸고, 또 금륜보(金輪寶)ㆍ백상보(白象寶)ㆍ감마보(紺馬寶)ㆍ마니주보(摩尼珠寶)와 아름다운 화주(火珠)를 올렸다.
주장신보와 주병신보(主兵臣寶)와 여러 소왕(小王)들은, 안주라성의 여러 작은 성읍에서 7보로 만든 옷과 보배 꽃ㆍ보배 꾸러미ㆍ보배 일산ㆍ몸에 걸칠 아름다운 옷과 꽃다발ㆍ영락ㆍ보배 수레ㆍ보배 병장기ㆍ7보로 된 머리와 눈의 교락(交絡) 및 모든 보배 그물과 염부의 금으로 만든 자물쇠ㆍ진주 보배 꾸러미ㆍ훌륭한 신ㆍ관(冠)의 끈ㆍ자리ㆍ미묘한 책상ㆍ7보의 그릇ㆍ종ㆍ북과 같은 악기ㆍ보배 방울ㆍ가패(珂貝)ㆍ동산 숲의 당기ㆍ번기ㆍ병ㆍ두레박ㆍ등ㆍ초ㆍ7보의 새와 짐승이 뒤섞인 아름다운 부채와 갖가지 약(藥)들 따위, 이러한 물건들을 각각 8만 4천씩을 부처님과 스님들께 드렸다. 이렇게 베풀고 난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나라에는 일이 많아서 모든 것에서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사옵니다. 이제 저는 허물을 뉘우치옵니다.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오래오래 이 동산에 머무시고, 또 저로 하여금 자주 예배 공경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왕의 여러 아들들도 저마다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석 달을 마쳤는데,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이 때 왕의 천 명의 아들 가운데 첫째 태자의 이름은 불순(不眴)이었는데, 석 달을 마치기까지 공양은 왕과 똑같이 하였으나 금륜 등의 7보만이 없었다. 대신 보해(寶海) 범지는 두루 염부제의 모든 남녀들에게 알렸다.
“부처님께 빌 일이 있는 사람은 먼저 3보(寶)께 귀의하여 보리 마음을 내도록 하시오. 그런 연후에 그대들에게 베푸는 바를 받아야 되오리다.”
그 때의 염부제에서는 범지를 따르지 않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기에 모두 3귀의를 받고 보리 마음을 내고 나서 곧 베푸는 물건을 받았다. 이 때 여러 왕자들은 모두 저마다 마음먹기를, 어떤 이는 도리천왕을 원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이는 범왕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마왕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전륜성왕을 구하기도 하였고, 혹은 큰 부자를 원하기도 하였고, 혹은 성문이 되기를 구하기도 하면서 저마다 부처님과 스님들을 향하여 자신의 허물을 뉘우쳤다. 전륜성왕은 과거의 보시로 인하여 다시 지금의 머무름[住]을 구하였던 것이다.『비화경(悲華經)』 제2권에 나오며, 『적의보살문오탁경(寂意菩薩問五濁經)』에도 나온다.
(9) 견고(堅固) 금륜왕이 천륜(天輪)을 잃고 출가하다
과거 세상 때에 왕의 이름은 견고(堅固)였다. 네 가지 병사가 있었고, 전륜왕으로서 천하를 거두어 다스리되 법으로써 정치를 하였으며, 7보(寶)를 다 갖추고 있었고, 인간의 네 가지 묘[四妙]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왕은 뒷날에 천륜(天輪)을 잃게 되자 태자 정래(頂來)에게 말하였다.
“내가 본디 옛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전륜왕이 만약 천륜을 잃게 되면 그 왕은 반드시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태자야, 나는 이미 인간의 욕심을 누렸으니, 이제는 하늘의 욕심을 구하려 하노라. 나는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믿음을 즐기며 출가를 하려고 한다. 이제 큰 바다와 국토를 너에게 넘겨주겠으니, 너는 법으로써 가르치고 다스려서 그릇된 법을 짓지 말지니라. 또 너에게 천륜이 옮겨간 처소도 알려 주겠다.”
견고왕이 도를 배운 지 7일 만에 천륜이 낮에 홀연히 보이지 않게 되자 정래왕은 부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왕이 될 수 없겠나이다. 어떻게 하여야 되옵니까?”
부왕은 말하였다.
“천륜의 복행(福行)을 지어야 옳으리라. 15일에 설계(說戒)할 때에 머리를 감고 당상(堂上)에 올라 있으면, 동방에서 천륜이 올 것이다. 어떤 솜씨 좋은 장인의 재주로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리니, 세찬 불꽃은 극히 미묘할 것이다.”
재일(齋日)이 되어 정래왕이 머리를 감고 당상의 동쪽에 올라가 있자 견고왕은 말하였다.
“태자는 법대로 남자와 여자, 아내와 아들과 모든 신민들을 관행(觀行)하여야 하느니라. 한 사람의 사문과 바라문에게만이 아니라 아래로 새와 사슴에 이르기까지 그리 하여야 한다. 그리고 달마다 8일, 14일, 15일에는 재(齋)를 지내야 한다. 사문과 바라문, 가난한 이와 외로운 이, 늙은이나 구걸하는 이에게 보시를 베풀어야 한다. 음식과 의복과 꽃다발과 갖가지 향과 침상과 집을 대주어서 분명한 증거가 되게 하여야 한다.
만약 나라 안에 지혜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거든 마땅히 그를 찾아가서 때때로 묻고 논의하여야 한다. 무엇이 착함이고 착하지 않음이며, 또 무엇이 선한 것과 나쁜 것의 과보인가? 무엇이 현재 세상의 이치이며, 무엇이 뒤에 올 세상의 이치인가, 또 어떻게 행을 지으면 선을 받고 악을 받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물어 깨우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만약 나라 안에 가난한 이가 있으면 재물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천륜을 얻는 복행이니, 네가 그 행(行)과 서로 맞을 것 같으면 이내 얻게 될 것이다. 15일 설계(說戒) 때에 머리를 감고 당상의 동쪽에 올라가 있으면 당연히 천륜이 올 것이요, 그 후로 계속하여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정래왕은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가면서 그 나라 안에서 재물을 베풀어 주었다. 전륜왕이 되어서 7보와 인간의 4묘(妙)를 함께 갖추었다.
무엇을 묘(妙)라 하느냐 하면, 바로 위와 같은 7보와 위와 같은 네 가지의 미묘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 천륜은 뒷날에 역시 처소를 옮겨가 버렸고, 결국 천륜이 나타나지 않기에 이르렀다. 정래왕도 역시 처음에는 근심 걱정 없이 음욕에 즐겨 집착하여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세상을 억지로 다루며 다스렸기에 백성들은 날마다 줄어들고 불어나지는 않았다. 그 선왕(先王) 때에는 법대로 정치를 했었는지라 불기만 하고 줄어지지 않았었다. 별자리 점을 치는[明星] 한 바라문이 아뢰었다.
“천왕께서는 이것을 아셔야 하십니다. 욕심으로써 백성을 다루면 그 수가 줄어들기만 하고 불어나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여러 전륜왕 같은 분들은 천륜의 법과 상응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불어나기만 하고 줄지 않았던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천왕의 나라 영토 안에는 점술[算法]에 밝은 사람이 있을 것이며, 또 여러 신하들 중에는 주술(呪術)에 밝고 천륜의 법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천륜 법의 행과 상응하여야 하니, 만약 그와 서로 상응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므로 천륜을 이내 얻으실 수 있습니다. 15일 설계 때에 목욕하고 높은 당상의 동쪽으로 올라가시면 천륜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어떻게 하는 것이 천륜의 복행을 행하는 것입니까? 나의 행을 그와 상응하게 하여 주십시오.”
“마땅히 법대로 하여야 하니, 처자에게나 보시하는 물건에 이르기까지나 모두 법 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왕으로서 천륜의 행이십니다. 만약 이 행과 상응하면 그것이 바로 옳은 것이라 곧 천륜을 얻을 수 있으십니다.”
정래왕은 뒷날에 처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법 안에서 행하였다. 백성들이 재물을 아끼고 보시하지 않다가 너무 궁하여 아무것도 없어지게 되면 도둑질을 하고 왕에게로 나와 벌을 받곤 하였는데, 왕은 말하였다.
“너 중생아, 진실로 주지 않은 것을 취하였느냐?”
도둑질을 한 백성이 대답하였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만약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면 저는 생명을 보존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왕은 이내 물건을 내주면서 그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그만 가거라. 뒤에는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라.”
그러자 다른 가난한 이들도 도둑이 왕을 뵙자 왕이 그 물건을 내주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모두들 “우리도 차라리 도둑질이나 해야겠다”고 하면서 다시 도둑질을 하였으므로, 도둑은 차츰차츰 불어갔다.
사람의 수명도 점차 줄어져서 8만 4천 살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백 살까지 밖에 살 수 없는 때에 이르렀다. 때로는 조금 더 사는 이도 있었다.
왕은 말하였다.
“만약 나의 지경에서 도둑질을 하면, 모두 나무 아래다 세워 놓고 칼로 목을 베어 높이 달아매리라.”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사람 수명이 열 살이 될 것이다.”『아함경(阿含經)』 제14권에 나온다.
(10) 문타갈(文陀竭) 금륜왕이 4천하(天下)를 유람하다
옛날 문타갈(文陀竭)이라는 왕이 있었다. 어머니의 정수리로부터 나왔고, 뒤에는 차가월왕(遮迦越王)이 되었는데, 동서남북 사방이 모두 그에게 속하였으며, 7보를 두루 갖추었다.
왕에게는 천 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4천하의 왕 노릇을 하면서 수천 년을 지났었다. 왕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4천하가 있고 백성은 번성하며 곡식과 쌀은 너무 많아 흔하게 널렸으며, 천 명의 아들들은 다 재주가 많고 씩씩하다. 여기다가 하늘에서 금과 은을 밤낮 7일 동안 비처럼 내려 준다면 더욱 유쾌하겠구나.’
그러자 하늘이 이내 왕을 위하여 돈과 금은을 7일 동안 밤낮으로 비처럼 내렸으므로 왕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다. 다른 여러 지역에 땅과 백성들이 번성하다는 소문이 들리면 왕은 7보와 네 가지 병사를 거느리고 함께 날아가서 차례로 모든 나라에 이르러서 모두 다 항복 받고 바른 법으로 세상을 다스렸다. 이렇게 각각 나라를 다스린 것이 수천 년이었다.
왕은 다시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염부제국(閻浮提國) 28만 리가 있고, 나에게는 또 구야니국(俱耶尼國) 32만 리가 있으며, 나에게는 불우체국(弗于逮國) 36만 리가 있다.’
왕은 북방에 울단월(鬱單越)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 세상이 아주 즐겁고 백성도 번성하다는 것을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으므로, 꼭 한번 그곳에 가고 싶어하였다.
“그곳에는 가난도 부자도 강함도 약함도 없고, 노비라거나 높고 낮은 계급이라거나 하는 것이 없이 모두가 똑같이 평등하다고 한다. 나의 백성들과 권속들로 하여금 다 함께 그곳에서 저절로 자라는 멥쌀을 먹고 저절로 생겨난 옷과 장신구와 값진 보배들을 입게 하리라.”
그리고 곧 모두를 데리고 울단월에 날아서 들어갔다. 그곳은 땅이 푸르러서 마치 비취 빛깔 같았다. 다시 조금 더 나아가자 하얀 것이 보이는데, 마치 눈과 같은 저절로 난 멥쌀이었다.
“너희들은 어서 먹을지니라.”
그리고 또다시 다시 더 앞으로 나아가자 여러 가지 보배의 나무가 보이는데, 백 가지의 옷 나무[依樹]에 금과 은, 그리고 영락 따위의 것들이 모두 나무에 달려 있었다. 왕은 곁의 신하에게 물었다.
“너희들에게도 지금 이런 것들이 보이느냐?”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가 대답하였다.
“예, 이미 이 나라에 들어온 것을 압니다. 이곳의 백성들은 모두 다 항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울단월의 땅 40만 리를 다스리면서 또 수천 년을 지났다. 그러다 또다시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4천하가 있다.’
왕은 수미보(須彌寶) 산을 올라가 도리천왕 제석이 사는 곳에까지 이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내 7보와 백관(百官)들을 거느리고 함께 날아가 수미산에 도착하여 천왕 제석의 궁전으로 들어갔다. 왕 제석은 멀리서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반기며 말하였다.
“왕의 공덕에 대한 소문은 자주자주 들었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어한 지가 벌써 오래였습니다. 당신께서 이렇게 와 주시니 정말 좋습니다.”
제석왕은 이렇게 말하며 문타갈왕을 끌어다 함께 자리에 앉으며, 자기 자리 반을 문타갈왕에게 내어 주었다. 문타갈왕은 자리에 앉자마자 좌우를 돌아보고, 천상의 옥녀(玉女)를 발견하고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4천하와 온갖 비로 내린 보배가 다 있다. 이제 천왕 제석을 죽여서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야겠다. 하늘 위도 저 하늘 아래 세상 다스리듯이 그렇게 하고 싶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문타갈왕은 그곳에서 떨어져 곧바로 하늘 아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몹쓸 병에 걸려서 고생을 하며 병석에 눕게 되었다.
신하가 왕에게 물었다.
“왕께서는 천왕 제석의 자리를 얻고 싶어하는 뜻이 없었나이까?”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내가 그런 뜻을 갖자마자 곧바로 밑으로 떨어져 땅에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몹쓸 병까지 걸렸노라.”
그리고 마음으로 스스로 뉘우치며 말하였다.
“사람에겐 만족이란 없구나. 만족할 줄 아는 이는 참으로 적구나.”
문타갈왕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다.『문타갈왕경(文陀竭王經)』에 나온다.
(11) 정생(頂生) 금륜왕의 사랑한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
“과거의 세상에 인간의 수명은 한량없었으며, 그 때 왕의 이름은 선주(善住)였다. 그 왕은 그 때에 태자로서 나라를 다스렸었고, 왕위에 오른 다음에도 각각 8만 4천년씩 지냈다.
어느 날 왕의 정수리 위에 혹[肉皰]이 하나 생겨났는데, 그 혹은 물렁물렁하여 마치 도라면(兜羅綿)과 같았고, 가늘고 부드러운 겁패(劫貝)와도 같았다. 혹은 점차로 부으며 자라났으나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열 달이 다 차자 혹이 터지면서 어린아이가 나왔는데, 그 형상이 단정하여 인간 세상에서 으뜸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왕은 기뻐하면서 정생(頂生)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선주왕은 바로 나라 일을 모두 그에게 맡기고, 처자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도를 배우며 8만 4천 년을 채웠다.
정생왕이 15일이 되어 높은 누각 위에서 목욕하고 재(齋)를 받들고 있었더니, 동방에서 금륜보(金輪寶)가 다가왔다. 그 금륜은 천 개의 바큇살에 바퀴통, 바퀴테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었으며, 세상의 장인(匠人)이 만든 것이 아닌 저절로 생겨난 것으로서 정생왕에게 와서 응(應)한 것이었다. 왕은 생각하였다.
‘내가 옛날 일찍이 5통(通) 신선의 이런 말을 들었었다.
≺만약 찰리왕(刹利王)이 15일에 높은 누각 위에서 목욕하고 재를 받들 때에 금륜이 와서 응한다면, 전륜성제(轉輪聖帝)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왕은 시험삼아 왼손으로 그 금륜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향로를 잡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댄 채 서원을 하였다.
‘만약 이 금륜보가 사실이요 거짓이 아니라면, 마땅히 과거의 전륜성왕과 같아질 것이다.’
그러자 금륜보는 이내 허공으로 날아올라 시방(十方)을 두루 돌고 왕의 왼 손으로 돌아왔다. 왕은 마음에 자신이 전륜성왕이 되었음을 알았다. 그 후에 오래지 않아서 다시 백상보(白象寶)가 있게 되었는데, 마치 흰 연꽃 같았으며 일곱 개의 가지로 땅을 버티고 있었다. 왕은 생각하였다.
‘역시 신선의 설명과 같구나.’
그래서 다시 15일이 되자 높은 누각 위에서 목욕을 하고 재를 받들면서 또 시험삼아 향로를 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하였다.
‘이 백상보가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라면, 마땅히 과거의 전륜성왕이 부렸던 코끼리와 같아지이다.’
그러자 코끼리는 곧 아침부터 저녁까지 8방(方)을 두루 돌아다니며 큰 바다의 끝까지 다 가 보고는 본래 있던 데로 돌아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다시 말하였다.
‘나는 이제 틀림없이 전륜성왕이로다.’
그 후 오래지 않아서 다음에는 마보(馬寶)가 있게 되었으므로, 왕은 또 앞에서와 같이 하였다.
다시 여보(女寶)가 있게 되니, 모습이 단정하고 잘 생겨서 세상에 으뜸가는 아름다움이었다. 그 여인은, 손을 왕의 옷에 대기만 하여도 이내 왕의 몸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았고, 왕의 마음이 인연하는 것도 알았다.
또 저절로 마니주보(摩尼珠寶)가 있게 되었는데, 마치 순수하게 푸른색의 유리구슬 같았다. 크기가 꼭 수레바퀴만 하여서 그 빛이 1유순을 비추었다. 그래서 만약 하늘에서 비가 내려 빗방울이 수레의 굴대만큼 크더라도, 이 구슬의 힘으로 큰 우산을 만들어 1유순을 가려 그 큰비를 막아 내며 아래로 빗물이 새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역시 왕은 앞에서와 같이 생각하였다.
다음에는 주장신(主藏臣)이 저절로 출현하여 재보가 넉넉하게 되어 모자라는 것이 없어졌다. 눈으로 직접 땅속에 묻힌 광[伏藏]을 볼 수 있었고, 왕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모든 일이 잘 갖추어졌다. 그러자 왕은 아예 함께 배를 타고 큰 바다에 들어가 주장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값지고 기이한 보배 광을 얻고 싶구나.’
그러자 그 신하는 왕의 말을 듣고 이내 두 손으로 큰 바다를 휘젓다가 열 손가락 끝에서 열 개의 보배 광이 나오게 하여 성왕께 받들어 올렸다. 그리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꼭 필요한 만큼만 뜻대로 쓰시고, 는 것이 있으시면 큰 바다에 빠뜨려야 합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에는 주병신(主兵臣)이 저절로 출현하였는데, 용맹하고 씩씩하며 모책(謀策)이 으뜸가는 병사였다. 네 가지 병사를 잘 알아서 능히 꺾어 조복 시킬 수 있었고, 이미 조복된 이는 힘으로 잘 지킬 줄 알았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이 염부제(閻浮提)야말로 안온하고 풍요로우며 또 즐거운 곳이니라. 나는 이제 7보(寶)가 모두 성취되었고 천 명의 아들까지 두루 갖추어졌으니, 다시 더할 일이 무엇이 있느냐?’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동불바제(東弗婆提)와 서구야니(西拘耶尼)와 북울단월(北鬱單越)만이 아직 덕에 귀화하지 못하였사오니, 왕께서 이제 그곳으로 가셔야 하옵니다.’
이 때 왕은 이내 7보와 모든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허공을 날아서 그곳으로 갔다. 사방의 인민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덕에 귀화하였다. 왕은 다시 대신에게 말하였다.
‘나의 4천하가 안온하고 풍요롭고 즐거우며, 백성들이 번성하여 모두가 이미 귀화하였다. 이제 다시 할 일은 무엇이겠느냐?’
그러자 또 여러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성왕이시여. 삼십삼천(三十三天)은 수명이 길고 안락한지라, 스스로 하늘의 복만을 믿고 아직 와서 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가서 토벌하여 그들을 조복 시켜야겠나이다.’
왕은 다시 허공을 날아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나무 한 그루를 보았는데, 그 색이 청록(靑綠)이므로 이내 대신에게 물어보았다.
‘이것은 무슨 색인가?’
그러자 대신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바로 파리질다라(波利質多羅)나무입니다. 도리천의 여러 천인들이 여름 석 달 동안 날마다 언제나 이 아래에서 재미있게 놀면서 기쁨을 얻는 나무입니다.’
또 흰 빛깔이 마치 흰 구름과 같은 것을 보고 다시 대신에게 물었다.
‘이것은 또 무슨 빛깔인가?’
그러자 대신은 대답하였다.
‘이는 선법당(善法堂)으로서 도리천의 여러 하늘들이 언제나 그 안에 모여서 인간 천상의 일을 논의하옵니다.’
이 때 천제 석제환인(釋提桓因)은 왕이 밖에 와 있는 것을 알고 나아가 영접하였다. 만나자마자 손을 잡고 선법당으로 올라가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그 때의 두 왕의 형용과 모습은 똑같아서 차별이 없었으며, 다만 쳐다볼 적에 눈을 깜짝거리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현우경(賢愚經)』에서는 “전생의 몸이었을 때에 콩을 불사불(弗沙佛) 위에 흩뿌렸는데 네 알이 발우에 들어갔으므로 4천하의 왕 노릇을 하게 되었고, 한 알이 정수리에 있었으므로 두 하늘二天의 즐거움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왕은 말하였다.
‘내가 이제 이 안에 살면서 천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천제석은 대승(大乘) 경전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면서 남을 위하여 널리 펴서 설법을 하곤 하였으나, 깊은 이치만은 아직 다 통달하지 못하였었다. 왕이 제석에게 나쁜 마음을 내자 이내 밑으로 떨어지며 염부제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하늘과 땅으로 멀리 떨어져 이별하게 되어서 크게 괴로워하였고, 게다가 병까지 들어서 이내 죽게 되었다.
제석은 바로 가섭불(迦葉佛)이요, 전륜성왕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니라.”『대열반경(大涅槃經)』 제12권에 나온다.
(12) 아육사분왕(阿育四分王)이 지었던 처음부터 끝까지의 업(業)
파타리불다국(波吒利弗多國)『잡아함(雜阿含)』에서는 파련불읍(巴連弗邑)이라 하였다. 왕의 성은 공작(孔雀)이요, 그 이름은 빈두바라(頻頭婆羅)[아버지 이름은 일월호(日月護)이다.]이며, 아들의 이름은 아수가(阿輸柯)였다.양(梁)나라 말로는 무우(無憂)이며, 또 아육왕(阿育王)이라 이름한다. 전생의 이름은 사야(闍耶)인데, 동자였을 적에 석가께서 왕사성에 들어가시는 것을 만났었다.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며 큰길 가에서 모래를 양식이라 여기며 부처님 발우 안에 넣고 공양을 올리면서 서원을 세우기를 “저는 오는 세상에 금으로 된 땅金地의 왕이 되어서 널리 공양을 일으키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내 그에게 수기하시기를 “내가 열반에 든 지 백 년 후에 파타리불다성(波吒利弗多城)에 성은 공작이요 이름은 아육이라는 이가 태어나서 4분(分) 전륜왕이 되어 8만 4천의 탑(塔)을 일으켜 사리(捨利)를 공양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아육왕경(阿育王經)』 제1권에 나온다. 그는 용모가 거칠고 보기 싫었기에 부왕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후일 관상을 잘 보는 이에게 아들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나의 여러 아들에서 누가 왕이 될 만한가?”
아육의 어머니는 아육을 불러서 몰래 그 사실을 알려 주며 일렀다.
“너도 차례에 맞춰서 나아가야 된다.”
그러자 아육은 어머니에게 여쭈었다.
“부왕께서 저를 보시면 좋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하였다.
“일단 가기만 하여라.”
그 때 대신 성호(成護)가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신다는 것입니까?”
아육은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성호는 가장 훌륭한 코끼리를 타도록 그에게 내 주었다. 왕이 여러 아들들에게 음식을 베푸니 아들들은 모두 다 보배 그릇을 내어 놓았다. 그러나 아육에게는 그 차례가 미쳐 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따로 반찬 그릇과 음식을 마련하여 주었는데 모두가 훌륭하였다. 관상쟁이는 말하였다.
“아육이 가장 훌륭하므로, 이 분이 왕이 될 만하옵니다.”
대왕은 말하였다.
“그 아이는 내가 중히 여기지 않는 아이이다. 반드시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니, 다시 점을 쳐 찾아보도록 하여라.”
관상쟁이는 또 말하였다.
“지금 이 분은, 타고 있는 코끼리도 좋고 음식도 좋고 그릇도 좋으십니다. 이 분이야말로 왕이 될 만하고, 다시 이 분보다 더 훌륭한 이가 없나이다.”
뒷날 나라 영토 안의 덕차시라(德叉尸羅)라는 작은 나라가 반역을 하려 하자, 왕은 아육에게 칙명하였다.
“너는 네 가지 병사를 모아 저 나라를 포위하여 빼앗아 오도록 하여라. 그러나 병기와 물자는 아무것도 너에게 줄 수 없다.”
아육은 명을 받들고 이내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왕이 될 만한 공덕이 있다면, 바라옵나니 병기와 물자가 저절로 솟아 나오게 하옵소서.’
그러자 땅이 진동하며 갈라지면서 병기와 밥이 끝없이 솟아 나왔다. 덕차시라국에서는 아육이 온다는 말을 듣고는 도로를 꾸미고 위풍을 바라보면서 받들며 영접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다투어 공양을 올리며 아예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도 않았다. 그러자 왕은 두 명의 사신을 가사국(佉師國)에 보내서 산을 꺾어 넘어뜨리고 멧부리를 엎을 수 있을 만큼 건장한 아이 둘을 구해 오게 하였다.
이 때 여러 천인들이 그 두 사람에게 일렀다.
“이 사분 전륜왕은 염부제를 거느릴 분이니 거역할 수 없으리라. 모든 영웅과 어진 이들이 받들어 뵙지 아니함이 없으며, 여러 천인들이 하늘의 보배 관(冠)을 그의 머리에 씌웠노라.”
대왕은 이 말을 듣고 이내 큰아들 수사마(修私摩)를 보내며 크게 병력을 일으켰으나 끝내 토벌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대왕은 몸에 중한 병까지 들어 더욱 성이 났다. 그러다가 또 싸움에 이기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입에서 뜨거운 피를 토하고 바로 목숨을 마쳤다.
아육은 드디어 왕위[大位]에 오르고 성호(成護)를 제1 대신으로 임명하여 국사를 다스리게 하였다. 수사마 등의 다른 아들들은 부왕이 죽고 아육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모든 병사를 모아 와서 아육을 토벌하려 하였다. 두 큰 역사(力士)와 대신 성호가 각기 문을 하나씩 맡아서 진을 쳤다. 왕은 동쪽 문 쪽에 진을 치고는, 큰 불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 물건을 덮어서 연기나 불꽃이 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기관을 장치한 나무 사람을 만들어 놓고, 왕은 큰 나무 코끼리를 타고 느릿느릿 가면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수사마가 그의 민첩한 병졸을 거느리고 아육을 죽이려고 와서는, 여러 명의 나무 사람이 천천히 걸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곧 군사를 독려하여 곧장 전진하게 하였으니, 군사들은 모두 큰 불 구덩이에 빠져서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28만 리의 땅 모두 신하로서 아육왕에게 예속되었으며, 육지의 용과 야차(夜叉)도 모두 다 항복하였다. 다만 한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곳만이 예외였으니, 그 너비가 3백여 리가 되는 땅이었다. 그곳은 부처님 사리를 얻어 최초로 탑을 일으킨 지방으로서 라마촌(羅摩村)에 있었고, 큰 공덕이 있어서 홀로 귀화하지 않고 있었다.
아육은 능히 살육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인 기리가(耆利柯)라는 전다라(旃陀羅) 사령(使令)을 한 사람 뽑아서 감옥을 세우고는 복종하지 않는 사람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옥의 문을 극히 화려하게 장엄하여서 보기에 아주 좋아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곳은 한 번 들어가기만 하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 때 계사(鷄寺)의 비구가 수다라(修多羅)를 외우고 있었는데, 마침 수다라에서는 지옥의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기리가는 그것을 듣고 그에 따라 확탕(鑊湯), 노탄(鑪炭), 도산(刀山), 검수(劒樹) 등을 만들었다.
해의(海意) 비구라는 이가 일찍 일어나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다가, 우연히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자 기리가가 그를 붙잡았다. 비구는 울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출가는 더욱 만나기 어렵습니다. 저는 아직 도법(道法)을 만나지 못했으니, 한 달만 살려 주십시오.”
기리가가 대답하였다.
“나는 왕의 명령을 받았으므로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7일까지는 허락하겠다.”
그래서 비구는 밤낮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왕자가 이것을 보고 나인(內人)과 함께 말하였다.
“칙명으로 그대에게 옥을 맡긴 것이니, 기리가는 즉시 쇠 절굿공이로 부수어 버리시오.”
비구는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7일째가 되는 밤에 사유(思惟)하다가 드디어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다. 다음 날 기리가는 비구를 쇠 가마 속에다 넣고 끓는 똥오줌과 찌꺼기가 섞인 고름과 피를 담고서 맹렬한 불로 그를 삶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의 몸이 허물어지지 않고 비구는 꼿꼿이 연꽃 위에 앉아 있었다. 왕과 모든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함께 가서 그를 보았다. 그러자 비구는 신통력을 써서 몸을 허공에 솟구쳐 열여덟 가지 변화[十八變]를 나투어 보였으므로,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그대 몸은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이지만, 그대의 힘은 사람의 힘을 멀리 뛰어넘었도다. 나에게도 그대가 하는 그런 신족(神足)을 알려 주시어 할 수 있게 해 주시오.”
비구는 대답하였다.
“왕은 부처님 말씀에 맞추어 널리 탑묘(塔廟)를 지어서 사리(舍利)를 공양하십시오. 법을 위하여 이롭게 하시면 부처님께서는 모든 누환(陋患)을 없앨 것이며, 자비가 견줄 데 없을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논사(論師)를 저는 제자로 삼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전륜왕에게 이렇게 수기(受記)하셨습니다.
‘나의 사리를 가져다 8만 4천의 탑을 세우고 널리 모든 부처님 일[佛事]을 지으리라.’
왕께서 앞서 지옥 등을 만들어 살해한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제 모든 죄업을 없애고 두려움 없음[無畏]을 베푸셔야 합니다.”
왕은 이내 합장하고 이 비구를 향하여 스스로 참회하고 바로 자신이 직접 지옥에 들어갔다가 나오자, 기리가가 말하였다.
“저는 먼저 칙명을 받들고 누구를 막론하고 들어가면 나올 수 없게 하였나이다.”
왕은 말하였다.
“너는 나를 죽이고 싶으냐?”
기리가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왕은 물었다.
“처음에 이 옥을 세우고서 누가 맨 먼저 들어갔었더냐?”
대답하였다.
“기리가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왕은 옥졸에게 말하였다.
“기리가를 아교풀로 만든 집 속에다 넣어 놓고 불로 태워라. 그런 뒤에 지옥을 헐어 버려라.”
그리고 이내 5부(部)의 스님들에게 천 개의 금과 은, 그리고 유리 단지에 담은 향수, 또 갖가지의 음식과 향, 꽃 등으로 공양하였다. 8계(戒)를 받은 뒤에는 손수 향로를 붙잡고 높은 전각에 올라가 사방의 스님들을 청하면서 말하였다.
“세존의 제자로서 사방에 계신 모든 이들께서는 저를 거두어 주기 위하여 모두 여기로 오셔야 하십니다.”
그리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러 아라한이시여
오셔서 저를 거두어 주소서.
제가 아라한을 청하옵나니
모두 이곳으로 오셔야 하옵니다.
30만의 비구가 있었는데 아라한이 10만이요, 배우고 있는 사람[學人]이 20만이었으며, 범부는 수도 없이 많았다.
상좌(上坐)의 한 곳에는 앉은 사람이 없으므로, 왕은 야사(耶舍)에게 물었다.
“첫째 자리에는 왜 사람이 없으십니까?”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 중에 사자후(師子吼)를 할 수 있는 이는 빈두로(賓頭盧)이니, 바로 첫째의 상좌이니라.’”
왕은 이 말을 듣자 털이 곤두서며 마치 가담바화(柯曇婆華)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자 야사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가 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신 이가 지금까지 계십니다.”
대답하였다.
“그가 바로 지금의 빈두로이십니다.”
그러자 왕은 또 물었다.
“제가 오늘 그 사람을 뵈올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그 분이 이제 오실 것입니다.”
아육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이내 게송으로 찬탄하고 합장하며, 공중을 우러러보며 눈을 잠시도 떼지 않았다. 그 때 빈두로는 수없이 많은 아라한과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첫째 자리에 앉으셨고, 온 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두로를 보니 머리와 살갗은 모두 하얗고 이마의 가죽과 눈썹이 모두 합쳐서 얼굴을 뒤덮은 것이 마치 연각(緣覺)의 몸 같았다.
온몸을 땅에 던져 빈두로에게 예배하고 혀로 그 발을 핥으면서 울며 게송으로 빈두로를 찬탄하자, 빈두로는 두 손으로 눈썹을 쳐들면서 아육을 칭찬하였다.
“나는 여래를 자주 뵈면서 부처님 덕을 찬탄하였느니라.”
아육이 다시 물었다.
“어디서 부처님을 뵈었습니까?”
빈두로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과 5백의 아라한이 함께 왕사성에 나가셔서 안거(安居)하실 때 나는 그 때 대중 안에 있었느니라.
사위국에서 외도를 이기기 위하여 갖가지 신력을 나타내기도 하셨으며, 또 삼십삼천(三十三天)에서 안거하시며 어머니를 위하여 설법하신 뒤에는, 내려오셔서 다시 아승가사국(阿僧柯奢國)에 가셨었다. 또 수마타가(脩摩陀迦)에서 고독한 여인이 부처님과 5백 아라한을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신력으로써 분타발타국(分陀跋陀國)에 가셨고, 나는 신력으로써 산을 들고 공중으로부터 역시 그 나라에 이르렀었느니라. 이 때에 여래께서는 나에게 이와 같이 신칙하셨노라.
‘너는 열반에 들지 말고 나의 법이 머무르도록 하여라.’”
아육이 다시 물었다.
“빈두로 대덕이시여, 몇 사람이 당신을 따라왔습니까?”
빈두로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6만의 아라한이니
모두 번뇌의 독을 다하였노라.
대왕은 왜 갑자기 의심하는가.
빨리 스님들께 음식을 베푸시게나.
“스님들이 식사가 끝나면, 다시 함께 말하여야 합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갖가지를 버리면서 모두 공양하려 하였다.
이 때 왕은 비구 일체지(一切支)에게 말하였다.
“저는 10만의 금과 천의 은, 유리 단지를 보시하겠으니, 대중 가운데서 저의 이름을 부르며 공양한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아육왕의 아들 구나라(鳩那羅)는 부왕의 곁으로 갔으나 그의 부왕이 두려워서 감히 말은 하지 못하고, 두 손가락을 들어 지시하면서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아들이 닦는 복이 그 부왕의 모습보다 갑절 더 큰 것을 비구가 드러내 보이자 대중들은 크게 웃었다. 왕은 대중들이 웃는 것을 보고 대신 성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하는 일이 옳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웃고 있는 것이오.”
성호는 대답하였다.
“많은 사람이 복을 짓고자 하면서 반드시 한 갑절 더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육은 대답하였다.
“저는 30만의 금을 대중 스님들께 공양하겠으며, 3천의 단지에다 향수를 담아 드리겠습니다.”
계속하여 왕은 또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저는 이제 7보의 창고를 만들어서 온 대지(大地)의 관인(官人)과 대신, 아울러 저의 몸과 구나라까지도 모두 스님들께 보시하겠습니다.”『아육왕경(阿育王經)』 제1권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