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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 시계(懷中時計)
회중 시계(懷中時計)는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소형 휴대용 시계이며, 포켓 워치라고 가리킨다.
최초의 회중시계는 15세기 말 독일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사슬에 이어서 목에 걸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조끼를 입은 흰 토끼가 주머니에서 꺼내 보는 시계가 회중시계이다.
연미복과 실크햇이 남성의 정식 예복이었던 시대 그림이나 삽화 등을 보면 조끼 주머니에 흔히 시곗줄이 늘어져 있다. 회중시계 그 자체와 함께 시계를 매다는 줄 또한 중요한 패션 아이템 역할을 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델라가 머리카락을 팔아 산 남편의 선물이 백금 시곗줄이었다. 저 당시만해도 백금은 은의 짝퉁 취급받던 시절이라 백금생산량이 비교적 많았던 러시아 같은 곳에선 백금으로 찍은 화폐를 은화보다 조금 못한(!) 가치로 통용하곤 했다. 더 안습인 사실은 16세기 스페인에서는 가짜 은화 제작을 우려해 몇십만 톤의 백금을 바다에 수장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직 찾은 사람은 없다고.
회중시계는 자전거가 발명되면서 조금씩 사양길에 들어갔다. 자전거가 발명된 후,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시계를 보기 위해 손목시계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회중시계에게는 다행히도 당시 손목시계는 모두 기계식 시계라 소형화하려면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했고, 때문에 가격도 높아서 진짜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회중시계로 만족해야 했다. 게다가 애초에 회중시계도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좀 큰 마을마다 시계탑이 있거나 최소한 교회에서 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일반 병사도 지원 포격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 나는 언제 돌격해야 하는지 시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는데, 가뜩이나 소총과 군장으로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손에 든 상태에서 회중시계 같은 것을 휴대할 경우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멈춰서서 손에 든 짐을 내려놓고 품속을 뒤져서 시계를 꺼낸 다음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시계를 품속에 넣고 다시 손에 짐을 드는 불편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동안 적의 총탄에 안 맞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넌센스. 덕분에 이때부터 회중시계는 본격적인 쇠락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앞서 말한 문제점 때문에 손목시계는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상당한 귀중품이라서 시계가 주요 노획품에 포함될 지경이었으므로 회중시계도 널리 사용되었다.
때문에 2차대전이 끝나고 회중시계가 실용품의 범주에서 본격적으로 밀려난 것은 쿼츠 시계가 등장할 때로 본다.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비로소 손목시계도 싼값에 대량으로 많이 만들 수 있었는데, 굳이 무겁고 크며 시간 확인 때마다 불편한 회중시계를 쓸 사람은 없었다.
현대엔 그나마의 아이덴티티이던 휴대가 가능한 시계의 위치를 새로운 회중시계가 빼앗았다. 휴대 전화에 시계 기능이 기본적으로 들어가면서 어차피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데 불편하게 손목시계까지 착용하거나 회중시계를 휴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중시계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휴대폰을 시계대용으로 쓰는 사람들이 몸소 체감한 바이겠지만, 사실 전쟁이나 운동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의외로 회중시계식 사용방법이 그닥 불편하거나 시간을 허비하진 않는다. 다만 시험을 볼 때나 국군 사병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손목시계를 사용하는 편. 휴대폰 사용이 자유로운 군 간부들은 둘 다(…)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인의 경우 대체로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이 휴대폰과 손목시계를 둘 다 사용한다. 이 경우 시계는 사실상 패션 아이템일 뿐이기 때문에, 손목에 시계가 있으면서도 까먹고 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다가 혼자 웃기도(…) 한다. 그리고 이 패션이라는 점은 회중시계가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3. 매커니즘
19세기 이전의 회중시계들은 조그만 열쇠를 이용해서 태엽을 감고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헌데 이 열쇠가 크기도 매우 작은데다가 잃어버리기도 쉬워서 대개는 시계줄에 함께 끼워두고 있다가 필요하면 떼어내서 태엽을 감는 식이 일반적이었다. 이것도 불편한 사람들은 시계줄을 두 줄로 해서 한쪽에는 시계를 달고 다른 한쪽에는 열쇠를 달아 사용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Double Albert 방식의 시계줄이다. 19세기 사람들이 시계줄을 양복 조끼에 줄줄 늘어놓고 다녔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태엽도 19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Fusee 라는 매커니즘이 사용되었는데, 당시의 형편없는 야금술로 태엽의 탄성이 부족하고 일정하지 않아서 태엽이 불규칙하게 풀리자 이를 막기 위해 자전거 체인과 비슷한 부품을 추가해 태엽이 일정한 속도로 풀리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체인 부품의 두께가 꽤 컸기 때문에 덕분에 18세기 때 널리 사용된 Fusee 회중시계는 두께만 거의 30, 40mm에 달했다. 여기에 뚜르비옹 같은 부속까지 넣으려면 그만큼 시계가 두꺼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당시에는 시계를 얇게 만들수록 솜씨가 좋은 것으로 인정받았으며, 이런 시계들은 굉장한 고급품이었기 때문에 시계판도 도자기로 구워서 만들고, 케이스도 금이나 은으로 만들었으며, 무브먼트에도 쓸데없이 고퀄로 화려한 장식을 넣었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회중시계로 화려하게 장식된 무브먼트에서 열쇠를 끼워 태엽을 감고 시간을 조정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1900년대 초 들어 오늘날과 같은 크라운(용두)을 돌려 태엽을 감고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이 조금씩 도입되기 시작해 1920년대에 보편화되었다. 오늘날 기계식 손목시계의 크라운과 같은 원리이다.
현재에 와선 시간을 알 목적으로 회중시계를 사용하는 경우보단 단순 패션용으로 더 많이 팔리는 중이다. 말하자면 남자의 로망. 실크 해트와 더불어 스팀펑크 세계관에서도 꽤 많이 등장하는 악세사리다.
연구에 집중하고있던 아이작 뉴턴이 달걀 삶다가 이걸 집고선 달걀인 줄 알고 삶아 버린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집중력이 엄청났다는 식으로 자주 소개되는 일화. 비슷한 것으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자기 주소를 못 외웠다는 일화 정도. 적어도 이 사람은 시계를 삶은 적은 없지만 그나마 뉴턴은 시계를 삶는 걸로 끝났지만, 프랑스의 대수학자 앙뻬르는 계산에 쓰는 조약돌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학교에 간다는 것이 회중시계를 강에 수장시키고 조약돌을 들고 학교에 갔다고 하니(…)
일본의 철도기관사들이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할 요소로, 강철의 연금술사의 국가 연금술사마냥 입사할 때 지급받는 물건이기도 하다. 열차를 보면 이 시계를 끼울 수 있는 걸이대가 판넬(운전대) 앞에 있을 정도. 이는 열차에 시계장비와 같은 정밀 기기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며, 운전 중에 손목시계보다도 보기가 더 편하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 전통은 증기기관차 시절부터 있었다.
1958년 SEIKO가 제작한 회중 시계. SEIKO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도 일본 철도회사의 회중시계는 모두 여기서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디자인은 별 차이는 없다.
여담으로 호주 멜버른 역에 걸려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중 시계(?)도 이 회사에서 만든 것. #1 #2
철도기관사들은 정시성을 위해 매 운행시마다 시계를 조정해야 하는데, 쿼츠시계가 등장하기 전엔 기계식 시계였기 때문에 붙박이로 있으면 불편하다는 이유에서 회중시계가 채택됐다고 한다. 이후 쿼츠시계가 개발되고, 전동차 운행이 늘어난 지금에 와서도 병결운행을 위해 중간문을 채택한 탓에 운전석이 상당히 비좁고, 또 회중시계를 쓰는 것이 관습화 돼 굳이 차량 계기판에 시계를 넣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통근열차 운전실에 고속버스 수준의 대형 디지털 시계가 떡하나 붙어있고, 다른 기관차/동차 기관실에도 디지털이든 모니터 안에든 시계가 들어있다. 또한 기관사들이 모두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굳이 멋이 목적이 아니라면 회중시계를 쓸 일은 없다.
한때 손목시계 밴드 부분에서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회중시계를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예비 의학도에게 축하선물로 주기도 했으며, 특유의 간지 덕분에 은근히 팔렸었으나 현재는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잘 통용되는 관습은 아니다.
태엽으로 구동하는 종류는 3-4만 원 정도면 괜찮은 걸로 장만할 수 있고, 전자구동은 만 원 정도… 다만, 당연하게도 쿼츠 시계 계통인 전자구동식 회중시계가 더 정확하며 추가적인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태엽으로 움직이는 시계의 경우, (오토매틱은 예외)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꼬박꼬박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노고가 필요하지만 의외로 제때 태엽을 감아준다면 그럭저럭 시간이 정확하다. 태엽의 특성상 태엽이 느슨할 때는 시계가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인데, 보통 태엽이 중간 정도 남았을 때 감아주면 된다. 태엽의 동력을 완전히 소모하는 데는 기종마다 다르지만 평균 약 18-24시간 정도. 중요한 것은, 태엽을 감을 때 너무 많이 감으면 태엽이 고장난다는 것. 태엽을 감다보면, 잘 감기다가 좀 둔한 느낌이 나고 더이상 감기지 않는데, 이 이상 감으면 내부에서 고장이 날 수 있으니 주의.
여담으로, 청바지의 앞주머니에 달려 있는 작은 주머니를 '와치 포켓'이라 하며 원래 회중시계를 보관하던 용도였다.
5. 유명인이 사용한 회중시계
윤봉길 의사가 거사 직전 김구 선생과 교환한 아이템도 회중시계. 윤 의사가 건네받은 회중시계는 보물 제568-3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제법 많아 해당 일화가 그려진 위인전의 삽화나 학습만화 등에서 손목시계로 잘못 그려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한 흥선 대원군도 회중시계를 사용했다. 쇄국정책 대명사인 대원군이 서양의 회중시계를 쓰다니 놀라는 일이지만 대원군이 회중시계를 사용한다는 서술이 있고 운현궁 내부의 유물전시관에 가면 그가 쓴 회중시계를 볼 수 있으며 이 시계는 1966년 대원군의 묘를 오늘날 자리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물건이라고 한다.
제27대 조선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역시 회중시계를 사용했다. 사용하던 회중시계의 제조사는 바쉐론 콘스탄틴. 출처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모 경매회사를 통해 출품되었으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개인 수집가에게 1억 2500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파텍 필립 헨리 그레이브스 슈퍼컴플리케이션도 회중시계 중 하나다.

첫댓글 까르띠에가 보석을 박은 손목시계를 만들면서 시계의 유행을 바꿔 버렸습니다. 까르띠에 시계는 진품보다 짝퉁이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