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임에서 활동하는 학생이 과제로 쓴 글인데 제법 괜찮아서 당사자의 동의를 구한 뒤 합의 내용을 기초로 카페에 공유합니다.
작성자 : 민모군, K대
작성일 : 2015.10.19
1. 블랙 프라이데이란?
우리는 가게에 가서 진열된 상품을 보지만 뒷편의 창고에 가면 재고가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게가 운영되려면 새로운 물건을 계속 들여오고 재고는 처리해야겠죠. 특히 11월과 12월을 지나 다음해가 되면 상품의 가치는 많이 떨어지고, 남는 재고를 운반하여 보관하고 관리해야하는 비용도 들기 때문에, 가게들은 연말에 많은 할인을 해서라도 재고를 처리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품 가치 하락에 대한 판매자들의 전략과 할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날이 바로 블랙 프라이데이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연말 할인 행사의 시작일입니다. 날짜는 미국의 공휴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11월 4째주 금요일이며, 이때부터 크리스마스 시즌 쇼핑이 시작됩니다. 소매업체에서는 연 매출의 70%가 이 기간중에 나오기 때문에 '흑자'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블랙'프라이데이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 1년 소비의 20%가 이 기간에 일어나는 만큼, 소비심리를 파악하는데 이 기간의 매출을 기준으로 한다고 합니다. 이 날에는 물건을 사기위해 새벽부터 가게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하며, 하나 남은 물건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사람들까지 볼 수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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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에도 블랙프라이데이?
블랙 프라이데이는 우리와는 먼 미국의 이야기였지만, 최근 몇년사이 상품을 해외에서 직접 구매하는 직구가 늘어나면서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에 관심을 갖는 한국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먼저 직구에 대해서 잠깐 살펴볼까요. 직구로 해외에서 구매하는 상품의 가격이, 일반 통관의 경우 과세가격(물품가액X고시환율+과세운임) 15만원 이하일때, 목록 통관의 경우 물품가액 $200 이하일때 관세가 면제됩니다. 물품은 업체에서 직접 발송해주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배송대행(미국내 주소로 물품을 받아 한국으로 배송시켜주는 업체 서비스)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관세청이 분석한 2015년 상반기 수입 현황에 따르면 직구를 통한 수입규모는 $770M로, 2011년부터 매년 72%, 50%, 47%, 49% 증가해왔습니다. 수입 품목은 의류 16%, 건강식품 16%, 기타식품 15%, 화장품 13%, 신발 11%, 전자제품 5%, 완구인형 4%, 가방 4%, 시계 1%, 서적 1% 정도입니다.
소비자들이 직구를 하는 이유는 물품의 다양성 때문도 있지만, 직구로 구매하는게 한국에 정식 수입된 상품을 사는 것 보다 싸기 때문입니다.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에는 온라인 쇼핑몰들에서도 많은 세일을 하기 때문에 직구의 증가와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블랙프라이에 대한 관심도 같이 높아졌습니다.
2015년 올해, 대한민국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가 시행되었습니다.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진행된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는 상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정부가 내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주도하였는데요. 산업통상부장관의 '코리아 그랜드 세일'의 확대 적용 계획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불황인 대한민국 경기에 메르스 여파까지 겹쳐, 침체되어있는 내수 시장을 살려보자는 의도는 좋았으나, 그 과정과 결과는 좋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는 면세점, 백화점, 대형마트, 전통시장, 편의점까지 크고 작은 업체들이 참여하고 많은 카드사들도 참여했습니다. 또한 이 기간에는 한글날을 포함한 금토일 연휴가 있어 세일기간에 사람들이 몰리는 백화점의 경우에는 전년도 대비 30%정도의 매출 상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 대상에 포함된 전통시장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참여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행사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연 정말 몰랐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즉 행사에 대한 준비와 홍보가 미비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전통시장에서 주로 파는 식자재나 생필품 같은 경우는 연중 필요에 따라 지속적인 수요가 있는 품목으로, 블랙 프라이데이 같은 재고 처리성 할인과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미뤄볼때, 정부는 내수시장 활성화의 기준을 백화점과 대형 유통기업에만 맞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행 전부터 블랙 프라이데이를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 옳은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건 미국과 한국의 제조 및 유통 과정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제조사가 다음해가 되기 전에 상품 가격을 낮추고 유통사가 2차적으로 가격을 제조정 하는 한편, 이번에 국내에서 시행된 블랙 프라이데이는 제조사가 조정한 가격은 없고 유통업체가 할인의 부담을 전부 안았기 때문이죠. 국내 유통업체인 백화점, 마트, 편의점 등은 이미 정기 세일이나 1+1 혹은 2+1같은 행사를 진행해 오던 터라, 기존의 세일에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이름만 씌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시행 일정에도 문제가 있었는데요. 시행기간 중인 7일에 할인율과 적용대상이 확대된 것입니다. 할인율이 다르게 적용되면서 먼저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비자들의 비난은 유통업계를 향하고 있지만 문제의 발단은 정부에 있습니다. 10월 6일 국회 산업통상자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블랙프라이데이의 부진함이 산업부의 탁상행정탓으로 이어지면서 산업통상자원부의 관계자가 할인 품목과 할인율을 늘리겠다고 했고, 유통업계의 할인은 7일에 변경 적용되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요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행사 기간에 추가 할인을 해도 문제 없다는 조언을 듣고 진행했다”라는 백화점 관계자의 말처럼 유통업계는 억울함을 호소했하지만, 산업부는 확대적용을 시행한 유통업계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행한 정책이 유통업계와 소비자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3. 넓게 보자 블랙 프라이데이
위에서 블랙 프라이데이가 무엇인가 살펴보면서 행사의 초점이 면세점, 백화점 등의 대형 유통업체들에게 맞춰져 있다고 했는데요.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를 시행한데는 내수시장 활성화뿐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요우커'라고 불리며 국내 쇼핑,관광업계에서 핵심 고객으로 여겨지는데요. 일본의 한류열풍이 사그라들고 중국의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요우커의 소비 형태는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국내의 계속되는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요우커들의 소비에 힘입어 면세점과 백화점 사업은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올해 있었던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의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은 대폭 줄었고 정부에서는 외국인 관광 활성화를 위해 블랙 프라이데이를 시행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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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관광객은 중국이 발전함에 따라 앞으로 그 수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중요도 또한 높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중국인의 경우에는 재방문 빈도가 높지 않다는 점과 관광객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서울에만 편중되어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분명 한계가 있고 개선할 점을 찾아야합니다.
산업연구원의 2014년도 보고서인 '중국인 관광객 소비패턴 분석 및 산업연계 활용방안'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 소비패턴 분석 및 산업연계 활용방안_산업연구원.pdf
중국 관광객들은 쇼핑과 사행사업을 제외한 여가,관광,문화 관련 사업에는 수요가 높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아래와 같은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정책과제, 산업연계 활용 방안,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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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앞으로의 블랙 프라이데이
필자의 기준으로 올해 시행한 블랙 프라이데이는 내수시장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실패입니다. 시행 기관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고, 제조와 유통이라는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시행한 행사였습니다. 일정이 빠듯하여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업체들은 참여하기를 꺼렸으며, 그나마 참여한 업체들은 효용 없이 명목상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로 중간에 시행에 변경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메르스 이후 중국 관광객 유치를 회복한 백화점과 면세점만이 블랙 프라이데이를 통해서 이익을 봤습니다. 과연 이들 대형 유통업체가 '내수시장'에 기여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과연 전통시장의 상인들이 블랙 프라이데이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손해를 보면서 할인을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미국과같이 땅이 넓어 제조와 유통 및 판매 그리고 저장이 따로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에는 분명히 재고를 처리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체가 할인에 참여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블랙 프라이데이의 본질적 효과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국 관광객들이 오는 것과 늘어날 것을 대처함과 동시에,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 왜 사그러들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에 맞는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그들이 와서 쓰기에는 편할지 몰라도, 더 편하고 새로운 곳이 생기면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것을 만들어야된다는 점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는 실패입니다.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는, 맞지 않는 미국의 문화를 이름만 빌려와 소비자와 유통업체간의 신뢰를 깨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소비문화를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관광객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초점에 맞춘 행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