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인’이 ‘정당인’으로 변한 이유
제가 걷고자 했던 인생의 길은 ‘영원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김영삼 시대까지만 해도 저는 프리랜서로 매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연락 오면 칼럼을 써주고, 방송에서 요청하면 방송 나가고, 기업과 정부기관들에서 강연요청 오면 강연 나가고, 기업이 경영진단 해 달라면 신이 나서 일해주고, 틈틈이 책을 써내고. . .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이런 일을 하면 저절로 넉넉한 수입이 생겼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일부 좌익들에 놀아나긴 했어도 그 때에는 국가안보를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노태우 시대와 김영삼 시대에 걸친 10년 동안 저는 위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이때에 제 머리 속에는 좌익이다 우익이다 이런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쓰는 책들, 제가 쓴 칼럼들은 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부각되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조선과 동아에서도 글을 써달라는 요청들이 왔고, 한겨레와 말지 같은 데서도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특히 군의 일부 간부들이 저지르고 있던 무기구매 실태와 낙후된 시스템, 전근대적인 군수관리 실태들을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내놓았을 때 수많은 독자들이 저를 좋아했습니다. 이때에는 좌익도 우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회고해해 보니 당시에 저를 가장 열렬하게 좋아하던 사람들이 리영희, 강만길, 한완상, 김근태, 정동영, 김진홍 김대중 그리고 이름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좌익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진보’라고 생각했고, 당시 수구적인 일부 군출신들은 저를 좌익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저 스스로를 단 한 번도 우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제가 가진 관찰력을 가지고 사회병리 현상들을 진단하면서 이들에 대한 시스템적 대안을 제시하는 과학자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제게는 엄청난 충격이 왔습니다. 제 눈에는 김대중과 임동원, 이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서 벌이고 있는 햇볕정책은 이 나라를 김정일에게 바치는 과정(프로세스)이었습니다. 이에 놀란 저는 제가 누려오던 행복을 버리고 그들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국민에게 저들의 실체와 음모를 알리는 일에 몰입했습니다.
제가 쓰는 글들이 저들에겐 비수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좌익들은 “지만원이는 수구 꼴통이다” “ 그 사람 극우다” “그 사람 반공병에 들어 반 미쳐 버린 사람이다” 이런 식의 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이런 소문은 ‘문제의식 없이’ 무심하게 세상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이미지로 전파되었습니다.
임동원은 지금 도청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도청은 부지휘관에 불과한 김은성 차장이 모두 관장했고, 지휘관이었던 자기는 일체 모르는 일이라고 우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재판기록을 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습니다. “김대중과 임동원이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지만원이다” “지만원이가 대통령과 원장을 빨갱이라 하며 햇볕정책을 저지해야 한다고 발광을 한다” “지만원은 1년 이상 도청 당했다” “도청은 주로 강연스케줄에 관한 것이었다” “임동원이 차장에게 전화를 자주 해서 예 예 소리만 하지 말고 지만원이를 어떻게 조치했는지 보고를 해보라” “집중적으로 지만원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라” “수시로 인터폰으로 차장에게 ‘무슨 조치를 했느냐’ 닦달을 했다” “차장 시절 가장 어려웠던 것이 지만원 문제였다” . . .
제가 프리랜서를 살아가는 주요 생활수단은 위의 두뇌활동들입니다. 이런 활동들이 1999년 하순부터 갑자기 한꺼번에 끊겼습니다. 당시 저는 심리적 공황상태였습니다. 당시에 국정원과 국방부로부터 무차별 소송을 받았습니다. 민사사건 2건에 대해 1심에서 승소했던 것들이 2심에 가자 판사들의 태도들이 냉랭해 지면서 판결이 뒤바뀌었습니다. 국정원에는 정보관 또는 조종관(I/0)이 있습니다. 지역별로 11개 지부가 있고, 각 지부에는 그야말로 007로 뛰는 정보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검사나 판사들의 비행도 조사하고 언론사들도 조종합니다. 이런 힘을 이용하여 그들은 재판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제가 광주로 잡혀간 것도 김대중과 임동원의 작용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습니다. 저는 갑자기 엄습한 공황상태가 임동원의 작용에 의해 발생했다며 임동원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제 인생은 험난한 가시 정글 속을 달리는 호랑이 등을 타게 된 것입니다. 이를 전환점으로 하여 저는 영원한 자유인 프리랜서의 길에서 투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애국세력들이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한나라당이 열우당처럼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고, 그래서 이를 대치할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면서부터 제 인생은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투사의 길에서 다시 정당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제 심경
한국의 정치판은 선진국과는 많이 달라서 소위 꾼들이 노는 장소입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들이 국가를 압니까, 경영을 압니까? 김대중과 노무현의 파괴행위로 인해 지금 이 나라는 참으로 어려운 시국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의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관과 경영능력을 가진 대통령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반드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문뜩 문뜩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게는 소위 정치기반이 없는데다가 활동할 자금이 없습니다.
작년 10월12일, 저는 좌익들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면 정당을 만드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여러분들께 호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발기인대회로 일을 저질렀습니다. 당이 만들어 질 것이라는 희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이 길이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에 창당의 초기 절차인 ‘발기인대회’라도 치러놓아야 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이 때 제 심정을 보다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제 과거 역사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1975년, 저는 미해군대학원에서 문과분야인 MBA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수학을 좋아했기에 시스템공학과에서 가르치는 응용수학 과목 2개를 정식으로 수강했습니다. 이 배운 것을 응용하여 제조업체의 재고가치를 통계학적으로 파악하는 수학모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석사 논문에 탄복한 DAVE BURNS라는 교수님이 저를 시스템공학 박사과정으로 추천하는 운동을 했습니다. 학교 당국에서는 100년 역사에 문과 석사에서 응용수학 박사과정으로 전환한 예가 없다며 난처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수님은 ‘이 학생을 받아 주지 않는 학교라면 내가 학교를 그만 두겠다’ 이런 식으로 협박했습니다. 유명한 교수를 잃기 싫은 학교는 제게 박사과정 입학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이 때 학장이 당시 유재흥 국방장관에게 ‘이 예외적인 능력을 가진 학생에게 3년간의 시간을 더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국방장관이 학교당국의 제의를 거절해 주기를 너무나 바랬습니다. 공부가 너무 힘들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똑같은 마음이 지난 번 ‘발기인대회’를 열 때의 제 마음이었습니다. 가시밭길을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아시다 시피 하늘은 기적을 주셨습니다. 여러 분들께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3.27일의 창당 대회장을 감격과 감동의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구어낸 제1의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봉착해 있습니다. 5억원의 기탁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이 기탁금은 반드시 당원으로부터만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마련하기가 더욱 까다롭습니다. 지난 6월18일, 지금으로부터 만 한 달 전에 농협통장(농협 100082-55-000957 예금주 시스템미래당)을 열었습니다. 현재까지는 기탁금을 내 주신다는 분들까지 합쳐 약 5천만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탁금 통장에 모인 돈이 올 11월 초까지 5억에 미달하면 기탁금 모두를 본인들에게 모두 되돌려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 총선에 아무런 성과가 없으면 비록 여러분들께서 어렵게 만들어 주신 정당이지만 저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모든 걸 청산하려 합니다.
지금의 제 솔직한 심정 역시 하늘이 제게 더 어려운 길을 가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욕심이 있어서 가는 길도 아니고 희망이 있어서 가는 길도 아닙니다. 단지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마지막으로 다 해보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스스로 짊어진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 이 일을 접고 쉬는 것은 제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고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기탁금 마련을 위해 제가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하늘의 뜻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선관위에서 통지가 왔습니다. 후보는 460억 정도까지는 쓸 수 있다며, 저더러는 얼마를 쓰겠느냐 묻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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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죄송한 딴지~~ 시스템미래당... 뜨기 힘듭니다~ 담명에 감성이 없어요 열라 차갑습니다. 비이성적으로 느끼는 분들은 계산적?? 이란 모호한 느낌까지 줍니다... 그리고 직접 나서겠다 하면 더 힘들죠~ 거물을 영입한다면 모를까~ 제발 뭉쳐요~ 내가 나선다라고 하면 아무도 안 쳐다봅니다~ 내가 모씨를 위해 밀알이 되겠다라고 하면 문지방에 구둣발 자국은 조금 생길겁니다 그 몇몇 발자국들을 모으세요~ 오술길이 되고 골목길이 되고 대로가 되고 고속도로가 되다보면 언젠가 하늘길이 열리겠죠~ 길은 딱 그거 하나뿐 입니다~ 나 스스로가 한명의 발자국이 될때 만이 길이 만들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