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수요일) 망월마라톤클럽에서 출정격려를 받고, 16일 오늘 출발하는 날이다. 박선화 회장이 을숙도 수자원공사까지 태워주겠단다. 너무 고사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박회장 차로 대회장에 도착하였다. 10시 무렵이다. 망월마라톤클럽의 김겸렬, 이삼해, 박명석 회원이 나와 걱정해 주고 여러 가지를 보살펴준다. 고대부산교우회 집행부회의를 마치고 온다며 주태완 사무처장이 7~8명의 교우와 함께 나와 격려해 준다. 무리하지 말고 언제든지 힘들면 포기하라고. 이 자리에 못나온 여러 지인들이 전화로 격려해 준다.
스트레칭을 하고 다섯, 넷, 셋, 둘, 하나 출발 구호와 함께 12시 자정에 달려 나간다. 많은 동호인과 지인의 격려로 힘이 되지만 중간에 포기하기가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주는 격려의 힘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 200km, 단순 계산상 100km의 2배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100km에 체력이 소진되고 다음 100km는 정신력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과연 가능할 것인가? 생각이 복잡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격려에 대한 보답은 100km를 넘기기만 하면 체면치레하는 것으로 하고 갈수 있는데 까지 가보자고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한다.
참가자가 200여명이라 출발할 때 선두와 후미의 구별이 없다. 중간에 휩쓸려 적당하게 따라간다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옆에 가는 주자가 묻는다. 지난 1월 비치 울트라와 같은 코스냐고. 보니 충청도에서 온 주자다. 이번 코스는 해안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강변으로 간다고 아는 대로 설명해 준다. 주변의 주자들을 보니 속도가 빠르다. 내 계획은 km당 8분으로 첫 50km를 7시간으로 잡았는데, 현재 속도는 km당 7분정도인 것 같다. 출발할 때 50km까지는 물을 보충하기 어려울 것 같아 1,500cc를 준비하였다. 박명석군이 중간에 물을 보급해 줄테니 반만 가지고 가란다. 서바이벌이니 원칙대로 해야 하고 박군이 서너시간 고생할 필요가 없다며 지원을 사양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0여km 갔는데 바지가 축축해 진다. 물이 새는 것이다. 원인을 살펴보니 번호표를 배낭에 붙일 때 핀으로 물통을 찔러 구멍이 난 것이다. 아주 조금씩 샌다. 새는 물통으로 몇 시간을 버틸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3시경 준비해 간 김밥을 밤참으로 먹는다. 같이 가던 주자와 나누어 먹는다. 5시경 물이 동이 났다. 40km는 넘어 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cp1에 도착하니 6시로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도착했다. 제공하는 죽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지금부터가 은근히 걱정이다. 과속에 햇살이 어떨지 모르겠다.
cp1 출발이 6:20, 오늘 하루 동안 구름이 많이 끼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는 동행하는 주자가 바뀌었는데 지금부터는 거제에서 온 임씨와 동행하게 되었다. 임씨는 20여년 전에 프로 복싱선수로 한국 챔피언 타이틀을 가진 적이 있단다. 당시 로드워크를 하던 경험으로 마라톤을 하고 있는데, 풀과 울트라100은 완주했단다. 이번 낙동200에 신청하고는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서 걱정이란다. 10시경 73km지점의 현풍할매곰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침 박명석군이 전화를 한다. 현풍할매곰탕집에 다 와 가느냐고 묻는다. 식사를 방금 마쳤다니까, 그러냐더니 식당으로 금방 들어온다.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응원차 여기까지 온 것이다. 너무 고맙다. 냉동이 잘된 스포츠 음료를 주고, 양 다리에 파스 스프레이를 한껏 해 준다. 무리는 말라면서 걱정해 준다. 오후에는 망월마라톤 회원이 더 올 것이라며 평소의 유쾌한 모습으로 힘을 실어주고 간다.
지금부터는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햇볕이 쨍쨍하다. 물을 마시면 금새 입이 마른다. 주자 임씨와 보조를 맞추면서 계속 간다. 임씨가 오른쪽 발목에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손우현 원장이 준 진통제 한 첩을 내어 주고 발목 보호대를 주었다. 지참하고 있는 물이 뜨뜻하다. 주로의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열을 식히면서 간다. 공사장 근방을 지날 때, 공사장에 있던 분이 완전히 얼은 물병 두개를 준다. 하나씩 나누어 가지며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땡볕의 주로에서 천금보다 얼음이 훨씬 좋다. “아저씨,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다는 말로 모자라서 나온 인사다. 조그만 고개를 한두개 넘으니 시원한 물이 먹고 싶다. 연습주 때 보았던 한창(주)에서 식수대의 시원한 물을 얻었다. 마금산 온천을 넘어 갈 때 지나가는 승용차에서 시원한 물을 한 병 준다. 그 차에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탄 것 같다며 고마움을 보낸다. 날씨가 정말 죽여준다.
상천재(94.6km지점)를 넘는 일이 너무 힘든다. 불과 2~3km일텐데 20~30km는 되는 것 같다. 봉촌 오일뱅크를 지나니 나무그늘아래 평상이 두개 있다. 할머니 한분이 쉬어가란다. 발을 벗고 누었다가 옆의 냇가에 내려가 물에 발을 담그니 정말 좋다. 한숨 잤으면 좋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cp2를 향해 간다. 뛰는 것이 아니고 그냥 걸어가는 것이다. 저 멀리 천막이 보인다. 도착해 보니 오후 3시 20분경이다. 53km를 9시간 넘게 걸린 것이다. cutoff 시간 18시보다는 일찍 도착했으나 내 계획보다는 1시간을 벌었는데도 20분이나 늦었다. 그러나 시간타령이 문제가 아니라 계속할 건지 말건지가 문제다. 임씨가 계속 가자고 할 것 같아 쉬겠다고 하고 천막안에 누었다. 잠도 오지 않고, 이글거리는 햇볕은 여전하니 방책이 없다. 보관했던 가방속의 파워바와 진통제 등 필요한 것 몇 가지를 보충하고 다시 나선다. 그러다보니 임씨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나를 응원해 주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완주는 아니더라도 150km는 가야 말이 되겠다 싶다. 우선 목표는 150km이다. 이룡교 다리를 지나고 있는데 박명석군이 또 전화를 해 왔다. 어디쯤 오고 있는냐 해서 이룡교라니 알았단다. 다리를 지나 길곡방면으로 내려서니 박군이 도마도와 얼음을 한 봉지 주면서 몸을 식히란다. 곧 망월마라톤 회원들이 올테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이삼해, 김세현, 김대경, 최순선, 김철우가 왔다. 나를 응원하러 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니 고맙기 짝이 없다. 응원군이 음료수 과일 등을 공급해 준다. 김대경부부는 얼린 홍삼 즙 두병과 홍삼젤리 3개를 준비해 왔다. 무어라고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그냥 고맙다는 말밖에 할 것이 없다. 고맙다는 간단한 말속에 내 진정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겠지. 그리고 나는 정말 행복한 친구야, 이런 후배들이 토요일 오후에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힘을 실어 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응원팀과 헤어지고 다시 출발한다. 태양의 위력은 아직 건재하다. 손우현 원장의 전화다.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천태산 cp3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단다. 오후 5시경 길곡주유소 근방에서 곰탕을 먹었다. 김대경부부가 식사자리에 같이 하면서 한숨 자라고 하나 잠이 오지 않는다.
햇살이 조금 순해졌다. 가다가 주자 박씨를 만났다. 박씨는 고맙게도 나의 페이스에 신경을 써준다. 날이 조금씩 저물면서 더위는 물러갔다. 이제부터 슬슬 졸리기 시작한다. 끝도 없는 국도 위를 지나는데 차량은 질주하고 졸려 걸음은 지그제그이니 사고가 두렵다. 입체교차로(133km지점)에서 내려와 둘은 잠간 눈을 붙이기로 한다. 세상에, 맨길 바닥에 잔적이 없지만 길가쪽에 붙으니 우수배수로 위인데 등을 붙이니 너무 차겁다. 너무 졸리니 비몽사몽간에 20분이 경과했는데 졸림은 없어졌다. 박씨는 발목에 통증이 있어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계속 아프다고 한다. 진통제를 한 첩 주면서 손우현 원장이 조제해 준 것이라 하니 먹어보겠다고 한다. 계속 가다가 길을 놓쳤다. 신영우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여 설명을 듣고 약 10여분을 되돌아 나와 만어사 방향으로 길을 제대로 찾았다. 200km 울트라의 진미를 제대로 맛보았다고 자위하고 마음을 다시 잡는다. 박씨 덕분에 어두운 길을 잘 찾아와 고마워 하는데 삼랑진 IC 부근에서 쉬었다 가겠다한다. 여태 나를 도와주었는데 혼자 가기도 난처해 우물거린다. 그는 곧 갈테니 먼저 가란다. 미안한 기분에 꼭 오라고 하고는 출발한다.
삼랑진역을 지나 천태산 cp3 쪽으로 오른다. 지난 부산대 이어달리기에서 가본 코스다. 오르막만 4~5km된다. 손우현 원장의 전화다. 146.5km지점이란다. 천태산입구라고 알리고 슬슬 걸어 올라간다. 같이 가는 일행중 충청도에서 온 주자가 같이 뛸 사람 없느냐고 한다. 같이 뛰겠다고 하고 뛰는 시늉을 한다. 야밤에 달려보니 기분이 상쾌하고 좋다. 달리자던 주자가 처지고 혼자 달려 올라간다. 손원장을 빨리 만날겸 시간도 단축할 겸, cp3에 도착하니 01시 10분이다. 45km를 약 10시간이나 걸려서 온 것이다. 그것도 cuttoff 50분 남겨놓고. 국밥 한 그릇을 준다. 밥을 더 달래서 먹는다. 식성이 좋은 것 만해도 천만 다행이다. 물을 챙기고 커피 한잔과 콜라 한 캔을 마시고 01시 30분경 출발한다.
손원장이 지금부터 10시간은 잡아야 한다고 한다. 내 체력으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간내 완주가 만만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시간도 구애받지 않겠다. 완주만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손원장이 아주 편하게 페이스메이킹을 해준다. 졸려서 걸음이 왔다갔다하면 잠간 눈을 붙이게 해준다. 오봉산 옆 고갯길을 오를 때는 내가 갈수 있는 속도에 맞추어 준다. 슈퍼가 보이면 먹을 것과 음료수를 공급해 준다. 내 스스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손원장만 따라간다. 드디어 호포역에 도착했다. 07시경 박선화 망월회장이 전화로 덕천에 있다며 언제쯤 도착하냐고 묻는다. 새벽에 나온 것 같다. 일요일 편히 쉴 것을 나 때문에 이렇게 일찍 나오다니 고맙기 짝이 없다.
손원장이 11시경 을숙도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하란다. 아마 손원장도 내가 제대로 시간내 완주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했던 것 같다. 나도 그 말을 들으니 약간 안심이 된다. 박회장이 금곡역에서부터 먹거리와 음료수를 공급해 준다. 사상에서부터 강뚝으로 갔다. 체력이 소진되어 달릴 힘이 전혀 없다. 하염없이 걷는다. 몇 주자를 제외하고 모두 걷는다. 동서고가 밑에 와서 남은 거리와 시간을 보니 걸어서 될 일이 아니다. 손원장이 날 쳐다본다. 달리자는 뜻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릴 수는 없지 않는가? 왼쪽 발목 윗쪽에 통증이 심하다. 손원장이 보고 건초염(?)이라 하며 2~3일은 아프고 2~3주간다고 설명해준다. 달리기 시작한다. 아니, 속보속도로 달리는 모양만 잡은 것이다. 하구언 돌아가는 곳에 김병호 고문이 발바닥의 물집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쉬고 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수자원공사 앞으로 간다. 마지막 들어가지 전에 모양을 내자며 검은 안경을 꺼내 쓰고 번호표를 중앙에 제대로 붙이고 finish라인을 통과 한다. 11시 11분, 35시간 11분에 드디어 완주한 것이다. 월계관과 꽃목도리를 씌우고 사진을 찍어준다. 완주패와 완주증을 현장에서 발급해준다. 강상중 동기, 김대경 부부, 박선화 회장, 손우현 원장 모두 축하해 준다. 드디어 끝났구나.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움직이려니 왼쪽 발목이 너무 고통스럽다. 내색하지도 못하고 박회장 차에 오른다. 목달에서 여러분의 고마움을 갚겠다는 인사만 남기고.
울트라 100km를 처음 했을 때다. 마라톤을 모르는 친구에게 울트라를 설명했더니 “니 미친놈 아이가?”하는 대답을 들었다. 200km를 말하면 뭐라 할까? 아마 “아직 정신병원에 안갔나?” 가 아닐까. 내가 생각해도 사람이 할일은 아닌 것 같다. 몸 버려서 의미없는 목표를 달성하고 이에 만족하는 기분을 나도 이해할 날이 있을까? 하지만 아직 내가 아픈 발목을 이끌고 다니고는 있다.(2006.6.19)
첫댓글 영원한 청년 김유일교수님! 화이팅! 막판 역주 멋졌습니다.
교수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150km부터 밤을 세워 같이 달리는 동안 교수님의 강인한 정신력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최고령 완주 축하드리오며 조속한 회복을 기원합니다. 김유일!김유일!힘!!!!!!
존경합니다! 체력경영에서 이제는 정신력경영까지.... 옛날(?) 강의실에서 교수님 모습이 언뜻 스쳐갑니다!
지난번 연습주때 교수님의 뛰시는 모습을 보고 전 충분히 완주하실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완주를 축하드리고 빠른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축하합니다.김유일교수님 아주 의미있고 뜻깊은 날입니다.빠른 회복하시기 바랍니다..김유일 교수님 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에 존경심을 보냅니다. 교수님! 힘!!!
완주 축하드리고 회복 잘 하시기 바랍니다.
몸조심 합시더,완주 축하드립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범어사 주로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