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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라와 안코나1 - 페라라에서 에스테 가문의 영화를 보고는 리미니에 가다!
5월 22 일 아침에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 근처 중국인 민박집에서 일어나
바포레또를 타고 그랑 카날레 운하를 내려가 산마르코 광장에서
두칼레 궁전과 산마르코 대성당을 보고 2번 바포레또를 타고 대운하 그랑 카날레를 올라온다.
페로비아 Ferrovia 선착장에서 내려서는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Venezia Santa Lucia 역으로
들어가는데, 예전에 베네치아에 처음 왔을때 여기 역 유인 라카에 배낭을 맡긴후
시내관광을 하고는 당일 밤에 베로나 가는 기차를 타러 바포레또로 역으로 되돌아 오는데....
배 안에 있는 정류소 표시를 아무리 찾아 보아도 산타루치아 Santa Lucia 정류소는 보이지
않고 페로비아 Ferrovia 정류장 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는다.
10시 52분 기차는 육지와 연결된 둑위로 난 철길을 달려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을 지나...
11시 25분에 파도바 역에 멈추는데 선로 옆에 Deposito Bagagli 를 보는데 유인 라커를
뜻하는 것인지 아님 짐을 부쳐주는 사무실인지 잠시 혼란스러운 마음이 든다.
원래 우리 여행계획서에는 이 도시 파도바 를 보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
볼로냐에서 환승해 리미니 지나 안코나 에 내려 크로아티아 자다르 가는 밤배를 탈 예정이다.
시간상으로는 될 것도 같은데 문제는 유럽이
테러예방 때문에 대도시를 제외한 왠만한 기차역에는 코인 라커 가 없는지라
배낭 때문에 아쉽지만 포기했던 것이라!
파도바 Padova 는 운하를 통하여 포강과 베네치아에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자유도시로 번영을 누리다가
15세기에서 1798년까지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파도바 성 안토니오 성당은 도나텔로의 부조로 유명하고 에레미타니 성당은 만테냐의
벽화가 있으며 그외 티치아노와 스크로베니 에배당의 조토등 문화유산이 많다.
코페르니쿠스 를 배출했으며 16세기 말부터 갈릴레이 가 교수로 있어 유명한
파도바 대학 은 1222년에 창립되어 법학과 의학 에 뛰어나니 이른바 학문과 예술의 도시이다.
성 안토니오 성당은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36세에 죽은 성 안토니오가 모셔져 있는 순례지로
도나텔로가 만든 청동 주제단이 볼만하다지만 망설이는 중에 기차는 출발을 하고 마네?
이윽고 기차는 12시 16분에 페라라 Ferrara 역에 도착하는 데,
코인 라커 Luggage Locker ( Consignes ) 라 부리나케 찾았지만 없네? 이제 배낭을 어떡하나?
어쩔수 없는지라 택시를 잡아타고 트렌토 트리에스테 광장 Piazza Trento Trieste 의
에스테가의 거성 맞은편 대성당 두오모 앞에 내리니 9유로가 나온다.
비수기라 관광객이 적은 탓인지 기사가 대기 여부를 묻길래 1시간 후에 보자니 명함을 준다.
대성당 Cathedrale 은 12세기에 세운 것으로 3면에 모두 파사드를 가지고 있는데,
2개의 수직 각기둥이 3구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대성당 두오모 를 보자니....... 마침 수리중인지 개방을 하지 않네?
대성당 두오모는 밑부분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윗부분의 고딕 양식이 뛰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문 주위의 정교한 디자인과 조각이 매우 아름답다.
두오모 미술관 Museo del Duomo 은 대성당 정면 왼쪽 계단을 오르면 벽화와
벽을 덮는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있는데 “수태고지”,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이다.
이 도시 페라라 Ferrara 는 베네치아 남쪽 포강 하류 유역의 농업지대에 위치해
롬바르드 시대에 도시가 형성되어
1,208년부터 1,598년 까지 에스테가의 거점 으로 번창하였다.
에스테가의 문예보호 정책에 따라 유럽 문화의 중심지 가 되어
에스테성과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대성당,
스키파노이아궁을 비롯하여 에스테가 시대의 옛 건축물이 많다.
만토바공작 부인 이사벨라 데스테와 알폰소 데스테를 배출한 에스테가 는
골육상쟁을 하는 가운데도
르네상스 시대에 밀라노, 베네치아와 경쟁하며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다.
16세기에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를 주도하던 페라라 출신의 이폴리트 에스테 추기경 은
19세게 추기경이 되고 마흔에 교황선거에 출마하나 낙선한다.
이때 당선된 율리우스 3세가 그를 티볼리 지사로 임명하자
수도원을 헐고는 궁전을 지었으니 오늘날 분수가 유명한 로마 근교 티볼리 이다!
페라라의 에스테 가문은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 데,
추기경인 이폴리트 그 자신도 첼리니, 티티안, 페데리코, 세르기오 등을 후원하고
티볼리 빌라 데스테 Villa d'Este 에 500여개의 분수를 설치했다.
이는 후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외 분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데....
2,004 년에 러시아 전국일주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름궁전이라 불리는 페테르고프에서 수백개의 분수 를 본 기억이 난다!
구시가지 중심가의 오래된 광장을 보고는 스키파노이아 궁전 Palazzo Schifanoia 에 이른다.
이 궁전은 1,385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한 에스테가의 여름철 별궁으로 내부는
시립 미술관인데, 코스메투라의 “열두달의 홀”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엿볼수 있고
스투키 Stucchi라 불리는 천장 세공도 무척 아름답다지만 시간이 없어 그만 발길을 되돌린다.
돌아오는 길에 성 프란체스코 교회 를 보니 여기가 바로
사보나롤라 거리 Via Savonarola 이니 그럼 사보나롤라가 사역한 교회일러나?
대성당 앞으로 돌아오니 에스텐세 성 앞에 큰 동상이 서 있어 보노라니
바로 수도사 사보나롤라 인 데....
피렌체에서 민중 혁명을 이끈 이 수도사의 고향이 페라라인가 보네?
그는 1,452년에 페라라에서 태어나 도미니크회의 수도사가 되었는 데,
피렌체 성마르코 수도원장이 되어 교회혁신을 위한 설교와 예언자로
시민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하느님의 노여움”이라고 그가 예언한 1494년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의 프랑스 군의
이탈리아 원정은,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신벌로 받아들여졌다.
피렌체의 통치자 메디치 가문이 프랑스에 굴복하자 사보나롤라는 피렌체 시민들을
선동하여 지배자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민주정치와 신정정치를 혼합 해 통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속적인 사회를 거부하고 교회 내부개혁에 과격한 방법을 취함으로써
크게 반감을 사서
로마 교황청으로 부터 배척되니 시민들에게서도 버림받아 죽임을 당한다.
그러니까 1497년의 사육제에서 시민의 사치품과 이교도적 미술품 및
서적을 불태운 이른 바 “허영의 소각”을 비롯한
여러가지 과격한 방법을 취함으로써 크게 반감을 샀던 것이다.
해서 프랑스군이 철수한 뒤 반대세력이 우세해지고
교황 알렉산드르 6세와의 불화와 프란체스코회와의 대립 등으로 지지 기반을 잃어
결국에는 "화형" 에 처해졌던 것이다.
그러고는 붉은 벽돌로된 성채 에스텐세 성 Castello Estense 으로 들어가는 데....
이 성채는 에스테가의 거성 이다.
성의 네모퉁이 성루 탑마다 해자를 파서 호를 두르고 도개교를 설치한
견고한 요새로 1,385년 착공후 16세기에 이르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여기 4각 모양의 에스테성은 1385년 착공한 뒤
200년에 걸쳐 개축하였다고 하는데,
미술관이 있으며 동쪽 끝의 탑은 오를수 있는데 페라라 시내조망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한 오늘은 어찌된 영문인지 문을 닫은 탓으로 내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 아마도 무슨 보수공사를 하는 모양이네?
에스테 Este 가문 은 중세 이후 유럽의 유력한 왕후 가문으로
벨프가로 알려진 본가와 에스테가로 알려진
분가가 있는데, 팔백년 된 고대의 베틴 왕가와 친척 관계이다.
본가 는 대다수가 역사에 영향을 끼쳐 바이에른 공, 작센 공 을 거쳐
1,198년에는 마침내 신성로마제국 독일국왕 에 선출되기도 한다.
이후 대공의 칭호를 얻어 “하노버 선제후”로 더 알려지게 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후 하노버 왕국으로 지위가 높아지면서 크게 확대되었다.
그 전인 1,714년에 영국에서 왕의 혈족이 단절되자....
이 가문의 왕자가 영국왕으로 초빙 되니
바로 조지 1세 로 현재 엘리자베드 여왕의 선조 가 된다.
한편 에스테 가문의 분가 는 페라라(1240-1597) 시대를 거쳐
모데나와 레지오(1288-1796) 의 군주를 겸직하였으며 황제파(기벨린)에 대항하는
교황파(구엘프) 의 기둥 이었다.
그러니까 분가인 에스테가문의 원 수도는 여기 페라라 인데
후일 베네치아의 압박을 받으 면서 수도를 모데나 로 옮긴 것일러나?
1,239년에 제정된 에스테 가문의 문장 은 시대가 내려가면서
여러차레 바뀌어 이후 일곱번째인 오스트리아-에스테 문장이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이는 16세기 말에 페라라를 잃으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남계(男系)가 끊기고
영토는 혼인관계로 말미암아 합스부르크 왕가 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페라라는 15~16세기에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보르소 에르콜레 1세, 알폰소 1세, 에르콜레 2세, 알폰소 2세 등
4대의 학예보호로 문화의 중심지 가 되었다.
1,453년 오스만 터키 의 메메드가 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서진하자
베네치아와 헝가리가 맞아 전쟁이 벌어졌는 데....
이 도시 페라라의 에스테가 군주 는 1,463년 5월 베네치아의 용병 으로 참전해
그리스 펠로소스 반도에 파병되었던 것이다.
에스테 가문은 특히 여성이 뛰어났으니
출가후에도 모국을 걱정하던 재색을 겸비한 만토바 후작비 이사벨라 데스데 와
밀라노 후작비 베아트리체 가 있다.
에스테성 앞 작은 공원에서 허기를 떼우고는
다시 배낭을 택시에 싣고는 카보오루 대로 Viale Cavour 를 달려
페라라 역 에 내리니 8유로가 나온다.
우리 부부는 오늘 밤에는 멀리 안코나 에서 밤배를 타고 크로아티아의 자다르 로
가야 하는지라, 로컬 기차를 타고 볼로냐에 도착해
기차를 바꾸어 타고는 동쪽 아드리아해의 리미니 를 거쳐 안코나 로 갈 예정이다.
리미니 역전에서 삐끼 영감님이 보이길래 반가운 마음에 방을 물으니 호텔 명함을 잔뜩 들고 있는 데, 영어라고는 단 한마디도 못한다. 그러면서 고개를 옆으로 두손을 모으는 것은 “잘래?” 하는 소리로 알아 들었는 데..... 배를 위아래로 손으로 쓰는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하니 잠만 잘래, 식사까지 할래? 하고 양자 택일을 요구하는 것이었는 데!!!
성미 급한 영감님이 짜증이 나는 판인 데, 마침 농부처럼 생긴 늙으수그레한 영감 이 뒤에서 기웃하니 우리를 인계하고 그만 다른 사람한테로 가버린다. 시골 영감님 또한 영어는 전혀 한마디도 못하시는 데... 4명이 하룻밤에 50유로를 내란다. 눈이 번쩍 뜨인다. 1인당 13유로도 안되는 가격아닌가? 한국민박도 1인당 25유로에, 독방이라고 35유로씩 낸적도 있는데 이건 아침 제공은 안된 다고 쳐도 그 절반 가격이니..... 어서 갑시다!!!
그런데 우릴보고 “꼬레아" 란다. 어찌 알았느냐고 신기해서 물었더니, ”Fashion" 이란다. 우리 옷차림이그리 특이했나? 눈썰미가 있는것이 민박 장사를 할만하다. 폐차시기를 넘긴 그래도 명색이 벤츠 를 타려는 데, 선배님은 아무래도 불안하니 그만 다른 곳을 알아보자 며 망설이신다. 어찌 믿고 따라가려 하느냐고 수심이 가득하시다!!!
민박이나 호텔에 소매치기 때문에 귀중품을 맡길 때는 신용카드 하나는 몸에 지닙니다. 왜냐하면 "맡긴 물건은 이미 제것이 아니고 잃어버렸다고 가정" 하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납치될 것에 대비하는 마음 가짐 만 가지면 되는 것이고, 집이 초가라면 싼 맛에 감수하던가 아니면 되돌아 나오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시가지를 멀리 벗어나는 것이 큰소리 친 나마저 슬슬 불안해지는 데..... 이윽고 차는 고급 주택가에 멈추는 것이 아닌가?
철대문을 열고 열쇠로 현관을 따고서는 주인은 2층에 사는양, 1층 문을 또 열쇠로 따니 다시 세면장 좌우에 두 가구가 나오는 데 그중 한 문을 열쇠로 연다. 큰 방에 침대 4개와 옷장, 그리고 문이 달린 세면장(화장실 겸용) 이 나오는데, 독방에다 벽지등 아주 깨끗한 것이, 이건 민박을 전문으로 하려고 일부러 개수한 집이다. 여긴 변두리라 거리에는 시간이 늦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기로, 빵과 물만을 사서 방으로 돌아와 전기남비로 햇반과 라면을 끓여 저녁식사를 한다.
그런데 이런? 에어컨이 없네? 영감님은 또 나가셨고... 울마눌이 볼펜으로 종이에 선풍기 모양을 그려 수전증이 있는 2층의 늙은 할머니에게 들고 가더니 없단다!! 이날 우리는 밤새 지독한 무더위에 시달렸다. 아 선풍기여..... 선풍기 한대의 고마움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면서...
( 다음날 보니 선풍기가 있었는 데, 할머니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행 중에 마눌에게 미룬것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 것이니... 실수였네? )
귀국해서 보니 "리미니 Rimini" 는 달리 파스타, 스파게티 및 피자를 파는 아주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체인 이네!!! 그 사진을 한장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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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기해요
이탈리아는 작은 도시에도 유구한 역사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