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
-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ㅡ월간 《시》(2024,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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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급하게 살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어렸을 때 밥상머리에서
밥은 꼭 꼭 씹어서 천천히 삼키라고 배우고 익혔을 겁니다
성장하면서 벼락출세하고 벼락부자가 되는 걸 자주 지켜보면서 덩달아 급해졌지요
혼자 뒤쳐지는 것 같으니 자꾸 빨리 가려고 기를 쓰다가 진이 다 빠집니다
백세 시대를 맞으면서 건강이 최고라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급행열차 보다 더 빠른 초고속열차 표를 예매하려고 분주합니다
명상을 거친 이들만 완행열차를 타고 있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나 봅니다
쓸쓸한 아름다움,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을 모를 뻔 했다고 자위합니다
대자연의 위기 속에서 서둘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소소한 일부터 자연스레 마무리 지으며 천천히 소일하는 게 멋진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