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 보비 찰턴 경
보비 찰튼경은 뮌헨 비행기 참사에서 살아남아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중 한명이 되었고 그의 클럽과 나라를 위해 홍보대사가 되었다. MUTV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말했던 사고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회상은 유고슬라비아로의 운명적인 유로피언 컵 원정 경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베오그라드의 전투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두 경기는 팽팽한 양상이었다. 우리는 홈 경기를 치른 이후 단 한 골차로 앞서있었고 그것은 우리가 보통 홈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던 것을 생각해 볼때 흔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높았지만 그들은 세쿨라라치나 수비 벽을 감아 넘기는 프리킥으로 득점해낸 코스티치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어려운 경기를 치뤄왔기 때문에 이번 대진에 어떤 팀이 선택되더라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레드 스타와 상대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이전까지 동유럽 팀과 경기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우 효율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열렬한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준비가 되어있었고 유럽에서 최고의 팀 중 한 팀을 상대로 전반전에만 3-0으로 리드하였고 이런 활약을 통해서 준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경기장 상태는 나빴다. 진흙탕이었고 물기가 빠지고 얼음이 녹긴 했지만 군데군데 공을 튀게 할만한 눈이나 얼음 조각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슈팅에는 매우 좋았다. 그리고나서 우리가 좋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을 때는 그런 문제점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모든 문제점을 감수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경험부족이었고, 유럽 대회에서 뛰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홈 경기 덕에 우리는 3골차로 지지 않으면 됐다. 경기 종료 5분 전에 그들은 동점 골을 넣었고 경기는 매우 긴장감이 넘쳤다. 다행히 심판이 휘슬을 불었고 우리는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환상적인 결과였다.
뮌헨에서의 사고
날씨는 좋지 않았다. 활주로에는 눈이 쌓여있었고 오늘날 공항에서 쓰는 시설같은 것들은 그 당시 이용할 수 없었다. 비행사는 3번이나 이륙 시도를 했다. 두번이나 제자리로 돌아 온 뒤에 우리는 공항에 머물렀다. 마침내 공학 직원이 우리가 이륙해도 좋다고 말했다. 활주로에 있었던 얼음이 문제였다. 사고기인 엘리자베탄은 이륙하기 위해서 긴 활주로를 필요로 했던 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이륙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는 바깥쪽 펜스를 통과했고 모든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매우 두려웠고 사고로 인해 일어난 가장 나쁜 일은 어린 선수들이 그들의 전성기를 피워보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유나이티드가 유럽 대륙에서 펼치고 있는 활약에 매우 신이 나 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내 의자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비행기 바닥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해리 그렉과 빌 포크스는 내가 15분가량 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 동안 그들은 비행기 안과 밖을 오가며 사람들을 구해내려고 노력했었다. 그것은 매우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비행기에는 불이 나 있었고 두동강이 나 있었다.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 그들에게 반드시 감사해야만 할 것이다.
처음에 두 번째로 우리가 이륙에 실패한 이후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코트를 벗었다. 세 번째에는 나는 코트를 벗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다시 비행기에서 내려야 할 지도 모르고 그런다면 추위때문에 코트를 입고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에 내가 내 근처에서 물 구덩이에 있는 맷 버스비를 보았을 때 나는 내 코트를 벗어 그의 밑에 깔아주었다. 그 당시 그가 심각하게 다친 것이 확실해 보였다.
뉴스가 서서히 이해되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했고 나머지 선수들을 보려고 했었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있었던 그 당시를 매우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나는 뇌진탕 증세를 보이고 있었고 머리에 상처가 몇군데 있었지만 나는 불쌍한 동료들을 보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와서 내 목에 주사를 놓았고 그 뒤로 다음날 아침까지 나는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다.
다음날 나와 함께 한명의 또다른 어린 동료가 같은 방에 있었고 그는 신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게 사고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의 영어 실력은 훌륭한 편이 아니었지만 그는 몸짓을 섞어가며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선수들의 명단이 스쳐갔다. 그리고 그는 내게 그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말해주었다.
비행기에 탄 사람중에 단순히 손님이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비행기에는 신문기자나 대사관에서 온 대표 그리고 잉글랜드에 잠시 머물기 위해 베오그라드에서 온 대사관 직원 등도 타 있었다. 그들 역시 모두 사망했다. 잉글랜드 대표팀과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던 훌륭한 골키퍼인 프랭크 스위프트는 기자로써 축구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나 역시 사망했다. 나는 비행기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어서 운이 매우 좋았다. 던컨 에즈워즈는 심각하게 부상을 당했지만 즉사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 당시에 오늘날의 발전된 의술이 있었다면 그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내게 말했다.
그는 나와 같이 군대에 있었고 그래서 그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우리 팀의 스태프들도 우리 곁을 떠났다. 지미 머피의 코치인 베르트 월리, 그리고 축구화나 장비, 훈련등을 담당하던 나이 든 트레이너인 톰 커리는 물론 클럽의 비서인 월터 크릭머 역시 세상을 떠났다.
회복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갑자기 다시 한번 이런 기회가 어떻게하면 올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그 시즌에 자신감을 갖고 훌륭한 경기력을 펼치면서 아스날을 두번이나 이긴 활약들을 다시 한번 반복할 수 있는가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는 뮌헨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매우 좋은 팀이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이 사고는 가족과 선수 그리고 팬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슬픔에 휩싸이게 했다. 믿을 수 없는 사고였다. 만약 이 사고 소식에 대해 듣게 된다면 그 누구도 이런 일이 결코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 밝은 면을 들여다 보자. 해리 그렉과 빌 포크스는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왔고 나는 그들 뒤를 따랐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추스려야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유로피언 컵에서 우승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왜냐하면 만약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어다면 우리는 그 해에 그것을 반드시 이뤄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으며 어떠한 도전도 버겁지 않았다.
화려한 컴백: 1968
우리는 팀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맷 버스비는 5년이 지나기 전에 우리가 큰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날부터 거의 5년이 되는 날, FA 컵 우승을 일구어 냈다. 그리고 10년 뒤에는 유럽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는 것은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도리이자 그들에게 진 빚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노력하게 된 계기였다.
1968년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던 그날 밤은 무언가 특별했다.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웸블리에서 우승을 거두기를 원했고 실제로 우승을 거두면서 역사의 일부분이 되었다. 우리가 그것을 해냈다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보비 찰튼 경, MUTV인터뷰.-
원문출처: http://www.manutd.kr/NewsAndFeatures/Features/2008/Jan/Sir%20Bobby%20A%20survivors%20story.aspx?pageno=4
첫댓글 아 찰튼 맞구나...친구랑 자리바꿔서 살아남은게
지금 유나이티드 보면 진짜 뿌듯하실듯.. 글 잘 읽었어요 ㅎㅎ
아 소름돋네요...ㅠㅠ
소름.
지금 유나이티드보면 뿌듯하실듯 정말 ㅎㅎ
정말 모두 안타깝네요...특히 던컨 에즈워즈 선수는 의료기술만 좋았어도 생존하셨을수도 있었는데...ㅜㅜ
역사 속 실존인물...찰튼경ㄷㄷㄷ블로그로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