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급락+거래실종, 시세 신뢰 낮아… 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하락, 표준지는 상승 불가피
"국가의 기초 통계가 집값을 잡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시세의 정확성부터 확보해야 한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1년 유예된다. 내년 공시가격 산정시 2022년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 주택가격 급락으로 공시가격의 분모인 시세에 대한 국민신뢰가 낮은 만큼 장기 수정안을 세울 시간을 벌자는 제안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4일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정·보완' 공청회에서 이 같은 최종 검토의견을 내놨다. 현실화율 목표를 기존 90%에서 80%로 낮추는 내용을 포함해 4가지 대안도 제시했으나 방점은 현실화 계획 '1년 유예'에 찍혔다. 업계에서도 예상치 못한 용역 결과다.
연구원 측은 현실화 계획의 수정·보완 방안은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서도 장기 계획을 현 시점에서 재수립하고 변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부동산 시장 상황과 공시제도 개편 등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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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급락에 무색해진 공시가 현실화, 전문가들 "시세 신뢰부터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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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유예'라는 초유의 선택엔 급변하는 주택시장과 시세의 불확실성이 작용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금리인상 등으로 인해 지난 5월부터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가 급락하고 있다. 5월 -0.68%, 6월 -0.31%, 7월 -2.21%, 8월 -1.58%로 하락폭을 종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시가격은 매년 1월 1일 기준시점으로 공시되기 때문에 현실화율 목표치를 90%로 설정할 경우 주택가격 하락기에는 공시가격이 시세를 역전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경기·인천 및 올해 상반기 세종 등은 이동평균(과거1개월, 3개월) 가격을 10% 이상 벗어난 비율이 약 5~30%다.
실제 지난해 2월 26억7000만원에 거래된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면적 84㎡가 지난달 7억2000만원 낮은 19억5000만원(12층)에 실거래됐다. 이 단지의 해당 면적 공시가격은 최대 19억6500만원(최저 17억원 중반)으로 실거래가 대비 공시가격이 이미 시세의 100%를 넘었다.
연구원도 이를 감안해 현실화율 90% 목표를 80%로 낮추고 달성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부동산 가격의 하락폭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고 공시제도 개편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해 1년 유예로 결론을 내렸다.
시세 정확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여전히 낮은 점도 작용했다. 공시가격은 시세에 현실화율을 곱하는데, 최근 가격이 급변하고 있는데다 거래량이 급격히 줄어 정확한 시세 추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실화 계획 재검토를 위한 전문가 자문위에서도 현실화 계획 이전에 시세의 정확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토지·단독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시세 평가에 오차가 많아 이를 감안할 경우 90%의 현실화율 목표치는 과도한 상황이다. 연구원이 표준주택·표준지 모형을 통해 시세를 예측하고 이를 부동산원의 실제 시세와 비교한 결과, 10%이상 시세가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표준주택은 17%, 표준지는 20%에 달했다. 시세 정확성 부분은 국토연구원이 내년 5월까지 '공시제도 개선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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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빠진다… 표준지 공시가는 상승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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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1년 유예됨에 따라 당장 2023년도 공시가격은 전년도 현실화율이 그대로 적용된다. 2022년 현실화율은 공동주택 71.5%, 단독주택 58.1%, 표준지 71.6%다.
주택 가격이 하락한 가운데 현실화율이 유지되면 2023년도 공동주택 공시가격 평균은 하락이 유력하다. 한국부동산원 발표에 따르면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8월 기준 1.9% 하락해 8월까지 누적하락률이 5.2%에 달한다. 10년 만에 최대 하락률(2008년 -4.0%)을 넘어선 상태다. 전국주택가격도 지난해 말 대비 0.64% 하락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세무사)는 "전반적으로 주택 공시가격이 떨어지겠지만 공시가격은 1월 1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까지 집값이 오르고 하반기 낙폭이 적다면 개별 주택별로 공시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올해 1월 1일보다 집값이 떨어진 아파트라면 공시가격이 빠지겠지만 단지별로 하락 시기와 하락폭이 달라 지역 및 단지별로 아파트 공시가격이 모두 떨어질 것으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공동주택 공시가격과 달리 하반기에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토지는 공시가격 하락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지가 변동률에 따르면, 9월 전국 지가는 0.197% 올라 여전히 상승세다. 지난해 말 대비 누적으로는 2.688% 올랐다.
2023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빠지고 표준지 공시가격만 오를 경우 토지소유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표준지는 시게 대비 공시가격이 71.6%로 현실화율이 가장 높은 부동산 유형이다. 현실화 계획상 90% 달성 시기도 2028년으로 가장 급격하게 상승 조정돼왔다.
한 업계 전문가는 "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하락하고 표준지 공시가격만 오르면 토지가격보다 건물이 들어선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더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형평성 면에서 토지 소유자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