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라이(Rye)라는 마을이 있다.
인구가 만 명도 되지 않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는 데 두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작은 마을이다.
라이는 호밀, 지명에서 짐작컨대
호밀을 키우는 시골 마을일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라이는 영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관광지다.
가장 영국적인 시골 마을이라
은퇴한 영국 노인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영국적이라고 해봐야 딱히 볼 건 없다.
도자기로 유명하다는데 왕실에 납품을 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서민들의 찻잔과 식기를 책임지는 정도?
1150년에 짓기 시작했다는 작은 교회 정도나 볼만할까?
사실 오래되었다는 정도 외에
이 교회도 대단한 건축물은 아니다.
규모도 작고 기둥은 비뚤비뚤하고
예술적 가치도 딱히 없는,
이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지은 소박한 교회일 뿐이다.
그런 교회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라이의 높은 언덕을 지키고 서 있다.
90년대 중반
라이를 찾았다가
두어 시간 산책을 하고 나니
딱히 볼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어
자그마한 동네 서점에 들렀다.
그 작은 서점에 라이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잠시 기웃거렸는데
이 또한 별 볼 일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웠던 마을에
단 한 건의 살인사건이 있었던 모양인지
라이 교회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정도가
눈에 띄는 정도였다.
그러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지보다 못한 수준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역시 라이 고등학교 역사반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제목은 '라이와 나'.
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일별하려다
나도 모르게 선 채로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맨 앞에 실린 학생의 글을 짧게 요약하면 이러하다.
학생의 증조모는 귀족이었고,
증조부는 그 집의 종이었다.
청춘 남녀는 눈이 맞았고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먼 곳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영국 최남단의 라이에 정착했고,
라이 교회에서 결혼했다.
머지않아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는 금세 자라
부모가 결혼한 라이 교회에서
역시 한 여인과 결혼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또한 그 교회에 다니며 성장했고,
그 교회에 있는 기계식 종을 치다
어떤 여인과 눈이 맞았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라이 고등학교에 다니며
자기 집안과 라이의 관계를 글로 쓴 것이다.
그 학생은 자기 또한 라이 교회 종치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교회에서 누군가와 결혼식을 올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렇게 평생 라이에서 살고 라이에 있는 가족묘에 묻히겠다는 것이다.
영국의 평범한 한 가족의 역사가
이상하게 오랫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보니 알겠다.
역사가 별 건가.
이게 바로 역사다.
그것도 살아 있는 역사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직의 역사를 배운다.
1443년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고,
1592년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략했다는 식의.
우리는 조선 왕의 순서도 줄줄 외운다.
태정태세문단세…
우리가 배운 수직의 역사에는
정보가 있는 대신 구체적 삶이 없다.
우리는 살아 움직였을 옛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대신
정보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리고 시험을 보지 않게 된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다.
수직의 역사만 배운 우리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수직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새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세종이 민중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을 때,
어떤 궁녀는 고심하는 왕을 위해
한밤중에 야식을 만들며
오래도록 보지 못한,
고기 한 점 먹어보지 못한 부모 생각에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임진왜란 때
누군가는 스물도 되지 않은 꽃다운 청춘에
목숨을 잃고 귀가 잘렸을 테고,
그 귀는 교토의 귀무덤에서 서럽게 썩어갔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곁에선
또 어떤 외로운 영혼이 어떤 마음앓이를 하고 있을까?
수직이 아닌 수평에
구체적 삶이 있고,
연민이 있고,
사랑이 있다.
ㅡ 정지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