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 젊은 것들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렇게 중얼거린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직업상 요즘 젊은 것들과 자주 어울려서 그런지 이들에 대한 이해 혹은 인내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경어법을 제대로 모른다거나 인사가 영 인사 같지 않다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한다. 몇 년 전에 술에 취해 내 앞에서 담배를 꼬나문 녀석한테 쪼인트를 날리고 나서는 내가 많이 후회했다. 그 후로는 대가리에 피가 말랐던 안 말랐던 담배에 대해서도 모른 척 한다.
노아의 홍수 이전부터 모든 시대의 모든 늙은이들이 젊은 것들 하는 짓을 보면서 혀를 찼을 것이다. 이집트 고분(古墳)에도 늙은이들의 혀 차는 소리가 새겨져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인류역사는 싸가지 없는 젊은 것들에 의해 이렇게 진보해 왔으니. 하기야 젊은 것들 욕하는 늙은이들 자신이 젊었을 때는 싸가지 없는 것들 아니었던가. 따지고 보면 젊은 것들의 언행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늙은이의 기준으로 보니까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세대차이일 뿐인데 늙은이들이 그걸 선악과 우열의 관계로 바꿔버린 것이다. 마치 미국 애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전 세계에 강요하는 것처럼.
일본에 교환교수로 가서는 오히려 맞담배질 안 한다고 꾸중을 들었다. 그 대학 이사장님이 칠순이 넘은 분이라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울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누구한테 들었는지 내가 담배 피는 것을 알고는 자꾸 담배를 권했다. 내가 거듭 사양하자 이 분이 정색을 하고 ‘우리 학생들이 모두 당신 앞에서 담배를 피울 텐데, 그러면 당신 기준으로는 우리 학생들이 모두 무례하다는 것이냐’고 한다. 헐, 듣고 보니 그도 그런지라 하는 수없이 담배를 받아들었는데 이번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핀다고 지적을 당했다.
예절이라는 것이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회에 따라 다른 것이라면 예절은 절대불변의 원칙 혹은 본질이 없는 것일까. 예(禮), 하면 공자님인데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예는 정에서 나온다(禮出於情)’고 하셨다. 예의 본질은 정이라는 말씀이시다. 육법전서보다 더 딱딱하고 ‘자본론’보다 더 살벌한 논쟁거리였던 저 무수한 동양의 예절들이 결국은 정으로,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령 예의 형식이 조악하더라도 거기서 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허물이 되지 않는다. 슬픔이 망극한 상주(喪主)에게 상례(喪禮)를 가지고 길게 시비 걸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에 길 가던 선비가 날이 저물어 농민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마침 그 날이 그 집 제삿날이어서 선비는 제삿밥 얻어먹을 생각으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젊은 제주(祭主)는 밤새 쉬지 않고 절을 해 댄다. 기다리다 지친 선비는 잠이 들어버렸고 아침 늦게야 일어나 제삿밥을 얻어먹었다. 선비는 숙식을 제공받은 답례로 제주에게 제례를 일러주려고 했다. “이보게 제사는 자시(子時)에 시작해서 참례자들이 두 번씩 절하고 마치는 것인데, 자네는 어찌하여 밤새 절을 하는가.” 그러자 젊은 농사꾼은 이렇게 말했다. “선비님처럼 많이 배운 분들은 조상의 혼백이 오는 시각을 잘 아시겠지만 저같이 무식한 농사꾼이 어찌 그 시각을 알겠습니까. 제가 비록 무식하나 혼백이 밤에 온다는 말은 들어 알고 있으므로, 밤새 절을 하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틀림없이 제 절을 받고 갈 것 같아서 그리 한 것입니다.” 농민의 이 갸륵한 정성 앞에서 선비가 예에 정통한들 어찌 제례를 강(講)하겠는가. 집집마다 그 나름의 예가 있다는 ‘가가례(家家禮)’도 ‘예출어정’의 정신과 통한다. 집안의 남녀노소가 모두 제사에 참례해도 되는 것이고, 고인이 생전에 즐겨먹은 개고기를 제수로 올려도 무방한 것이다. 예는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들씌우는 것이 아니다. 새 며느리가 들어오면 집안의 법도니 뭐니 하면서 예절교육부터 시키려 들지 말고 한 가족으로서의 친밀감부터 쌓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할 바는 요즘 젊은 것들의 무례(無禮)가 아니라, 그 무례를 떠받치고 있는 무정(無情)이다. 사람들이 모두 독도(獨島)처럼 고립되어 있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고, 서로에 대한 경쟁과 적대감이 창날처럼 번득이는 이 무정한 세월을 우리는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려운 예의범절은 가르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정(情)은, 사람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은 길러줘야 한다. 정이 있다면 싸가지는 좀 없으면 어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