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永明)·석옥(石屋)·중봉(中峰) 등 많은 큰스님들이 모두 '산중에 사는 시[山居詩]'를 지어 자성(自性)을 선양하였으니, 그 아름다운 울림이 천고에 떨치고 있다.
그러나 기격[기품과 격조]이 웅혼하고 글귀가 정공(精工)함을 겸한 것으로는 욱당 스님의 마흔 수의 시가 더욱 여러 분들 것보다 절창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모두 진실하게 참구하여 깨달음으로써, 마음에서 충일하여 밖으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 시를 보라.
미풍이 극락의 보배 나무를 스치니
천제의 마음에 건달바의 요금(瑤琴: 옥으로 장식한 거문고)을 느끼네.
치지 않아도 소리하며
두드리지 않아도 울림이여!
微風過極樂之寶樹(미풍과극락지보수)
帝心感乾闥之瑤琴(제심감건달지요금)
不搏而聲(불박이성)
不撫而鳴(불무이명)
시로 보아서도 매우 오묘하지만 그렇다고 시로 논의할 수도 없다.
근본을 힘쓰지 않고 지말만을 추구하며 세상을 마치도록 시구만 다듬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바라건대 산에 사는 자는 고인의 도를 배울 일이지 고인의 시를 배우지 마라.
첫댓글 고인의 도를 배우고 지말이 아니라 근본에 힘쓰기를.
마하반야바라밀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