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추모 시화전
나는 어느 정부청사 중앙 홀에서, 세월호 추모 시화전을 열었습니다.
정작 당사자이지만, 열었다는 말을 부끄러워서 못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놀러(수학여행) 간 아이들을 유관순 열사처럼, 애국지사로 만들 셈이냐고.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중에, 진도 맹골수로에서 304명이 사망했습니다.
침몰 원인은 두 가지였습니다.
누가 손발 묶었습니까?
열일곱 살, 피 끓는 청춘
와글댄다고 나무라지만
빨리빨리 닦달에
뛰기 위해 엎드린 개구리
다람쥐보다 빠르게
기차도 단숨에 올라타고
누구 없냐고 핑 둘러보고
맨 나중에 나올 우린데!
어디로든 튀지 않고는
못 배길 스프링인데!
눈만 말똥말똥 뜨고
허공만 바라보다가
한번 당겨 보지 못하고
무참하게 부러진 화살이여!
가만있어! 하는 어른들 말씀에
순종한 죄뿐입니다.
세월호에는 평형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초가집 화단에는, 구멍이 숭숭 난 검붉은 돌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둘레석입니다.
거룻배가 제주에서 올 때, 해산물을 싣고 옵니다. 그리고 가벼우니 기우뚱거리지 말라고, 배 밑에 돌을 넣습니다.
쌀가마니는 무거우니, 돌아갈 때 돌은 내려놓고 갑니다.
속이 비면 채우고, 속이 차면 내려놓는 것이, 수평을 맞추는 평형수입니다.
어느 잠수사의 일기
수심 37m, 동북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배에서, 실종자를 찾는 일이었다.
오직 한 명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 5번을 잠수했다.
거센 물살에 빨랫줄처럼 날리는 몸을, 힘겹게 가누면서 사투를 벌였다.
서치라이트를 켰지만 시계는 30~40㎝에 불과해서, 손바닥을 펴도 잘 안 보였다.
선체를 더듬으면서 30분쯤 잠수했는데, 몸이 선체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물 흐름이 잦아든 공간이다. 승객들이 다니는 통로였으리라.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방향을 안쪽으로 돌리자, 신발 두 짝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었다. 청바지 차림으로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남학생 주검이었다.
눈 감고 두 손 모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수습 관행대로, 시신을 밀어 배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데,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길이 1m가량의 구명조끼 끈에 연결된. 여학생의 주검이었다.
물속에서는 시신은 떠오르기 마련인데, 떠오르지 않았다.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죽음이 닥쳐올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은 것이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끌고 나가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잠수 가능한 시간은 10여 분
연결된 끈을 조심스럽게 풀어, 남학생을 먼저 배 밖으로 밀어낸 후에, 여학생을 업고 나왔다.
동료 잠수부도 학생들 시신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물속에서는 귀신이라는 경력 35년의 잠수부지만, 이때 본 광경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가슴이 아프다면서, 물속에서 만난 두 어린 학생 이야기를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으면 좋겠다. 삼가 명복을 빈다.
정부합동분양소에서
첫댓글 꽃들이 저간 아픈 사연이지요
아까운 우리 젊은 생명들이 세상을 뜬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삼가 고인들의 넋을 기려봅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의 깊은 가슴속 깊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좋은 작품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