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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카페 게시글
광주사태의 진실탐구마당 칼럼 전두환의 미환수 통치자금 vs 시민군의 미회수 실탄
역사학도 추천 0 조회 307 13.08.09 07:49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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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09 09:28

    첫댓글 어제 티브조선을 보는데.. 518때인지... 무스거 보안사령관이였다는 자가 나왔는데... 전두환을 까면서... 동서화합이니 뭐니 하면서.. 자신이 518 광주에가서.... 사과를 했다나 뭐랬다나????? 이런 개대가리 쌕귀들이 문제입니다... 분별이 없는 잡것들은... 자신의 범위 아래에 있는 문제는 문제가 없지만.... 자신을 오바하는 정밀도의 문제에 있어서는... 좌좀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개대가리 인간형들이 문제입니다...

  • 작성자 13.08.09 16:48

    보안사 내에 권정달 등 김재규 부하 라인이 있었는데, 김충립은 권정달의 부하였습니다. 보안사령관이 아니라 특전사 보안반장이었는데,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감시하는 직책이었습니다.

  • 13.08.09 22:53

    그랬었군요.. 한심한 인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3.08.19 20:23

    그렇습니다. 게다가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며(우리국군의 경비 해제를 요구하며) 무장봉기가 일어난 것이기에 그 무장봉기는 정당하며 민주화운동이라는 주장과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조갑제 말을 뒤집으면 계엄령 해제를 하면 간첩선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이 계엄령 해제를 해야 할 상황일 수 있겠습니까?

  • 13.08.30 15:55

    그러면 당시에 그 삼엄한 경계 상황에서 북한군이 들어왔다면 당시 관계자들도 전부 처벌해야 하지 않소이까? 아 그리고 왜 하필 광주만 침투했을까요? 부산도 부마 항쟁이 끝난지 일년이 겨우 지난지 얼마 안 되어 선동할 수 있었을 텐데요?

  • 13.08.30 15:58

    여보쇼들 광주에서 계엄군이 진주하기 전까지 광주가 시위가 격렬했다고 나오나요? 평화적 횟불시위가 전부였는데 공수부대가 진주하고 나서 전남대 앞에서 마주치고 나서 잔인하게 진압당하죠. 좋다 그렇다 칩시다. 그러면 금남로에서 구경나온 시민들에게까지 돌격명령을 내린 것은 무슨 의도요? 당신들의 주장대로 한다면 공수부대가 문제를 일으키고 이에 격분한 시민들을 이용해서 소위 북한 간첩들이 이를 이용해 혼란 상황을 가져올 생각이었다는게 되는데 그럼 공수부대와 간첩들이 서로 짜고 광주항쟁을 일으켰다고 봐야 되는거 아닌가요?

  • 13.08.30 16:00

    간첩들은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잔인한 진압작전을 펼칠 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총기를 습격할 장소를 물색했다?
    처음부터 무기를 털어서 대응하면 되지 왜 공수부대가 발포하고 나서 무기고를 털었을까요? 혼란의 목적은 광주가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시키는 것이어야 되는거 아닌가요?

  • 13.08.30 16:02

    역사학도님 광주항쟁의 원인이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작전에 있다는 것은 인정 하시나요?

  • 13.08.30 16:08

    충전작전은 기본적으로 허리이하를 가격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근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자신들의 싸인 스트레스를 시민들에게 해소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방조한게 전두환과 그 일파들이죠. 진압군은 자신들의 잔인성을 알리면 시민들이 부마 항쟁처럼 꼼짝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광주 사람들은 달랐어요. 물론 부산 마산 사람들이 겁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박정희가 살아있었으니까. 공수부대가 계속 증원될수록 사람들의 분노가 높아만 갔고 그러다가 장갑차 한대가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목숨의 위협을 느끼니까(지들이 사람들을 팰때는 생각지도 못했겠지요) 총을 쏜거고

  • 13.08.30 16:11

    그리고 역사학도님 글에서 본적이 있는데 무기고를 털기로 미리 계획한 사람은 이름이 뭐더라 생각은 안나는데 신원이 확실한 광주 사람 아니었나요? 마지막 수배자였다고 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분이 어떤 일이 발생하면 광주 시민 2000명 정도는 죽을 거라고 미리 예상했고 무기고 습격을 계획했다고 선생님이 쓴 글에 나왔던 걸로 기억하던데요. 그러면 북한군의 계입은 물건너 간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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