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부에선
야크의 날카로운 뿔보다 천사 같은 눈빛을
단페의 기품 있는 꼬리보다 무심한 한가로움을
출렁다리 밑의 급류보다 펄럭이는 깃발의 외침을
말처럼 푸르럭거리는 룽다의 몸부림보다 풍마(風馬)의 가르침을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원색의 타르초보다 그 본질을
초르텐의 근엄함보다 나쁜 것을 듣지도 보지도 않는 불심(佛心)을
왼쪽만을 돌아야하는 마니스톤보다 돌에 새겨 놓은 경전들을
마음으로 보고 가슴에다 새겨라...............................................................박제헌 <히말라야가 내민 손> 중에서
트레킹 루트 변경
원래의 계획은 교쿄리를 거쳐 촐라패스를 넘기로 돼 있었는데 급히 계획을 변경하였다
폭설이 내려서 트레킹로가 사라져버렸으며, 비수기로 인해 롯지의 주인들이 하산해버렸다는 이유였다
교쿄리의 멋진 경치를 기대했었는데 자연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곧바로 EBC로 가기로 하였다
우리의 일행인 송정식씨는 어제부터 소화가 안 된다며 계속 콜라만 마시고 있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 초르텐
이틀 동안 머무르면서 고소 적응을 했던 남체 바자르를 떠나 캉주마를 향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산허리를 따라 나있는 길을 걷는데 아마다블람이 손에 잡힐듯이 다가오는 길목에 수려한 초르텐이 서 있었다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기념하여 텐징 노르가이와 세르파들의 영예를 기리기 위해 2003년에 건립된 것이다
초르텐이 세워진 곳은 반드시 전망이 좋은 곳이기에 모두들 설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마다블람을 배경으로
세계 3대 미봉의 하나인 아마다블람을 배경으로 앉아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바라보았다
각오를 단단히 했건만 정작 이곳에선 체력도 건강도 앞으로의 일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체력보다 욕심보다 중요한 건 자연에 대한 겸손한 마음이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내와 끈질긴 의지를 가지고 순례자의 마음으로 걷는 것이다.
야생의 들소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야생 들소 한 쌍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히말라야에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산양이나 들소 한 마리도 함께 어우려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히말라야엔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고, 산이 끝나는 곳에 하늘이 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땅 히말라야. 그래서 삶과 이별하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하는 곳,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땅이다
마니석은 히말라야의 예술이다
마니석은 라마교의 경전이나 기도문을 크고 작은 바위에 새겨 넣었거나 넓적한 돌에 새긴 조각으로 길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마니석에 새겨진 문구는 대부분 마니교의 창시자인 구루 림보체를 기리는 글로써 '옴마니 밧메홈'의 반복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보거나 읽음으로써 온갖 고난으로부터 보호받도록 배려하고 있다.
포터나 세르파들은 마니석이나 초르텐을 절대로 오른쪽으로 통과하지 않는다.
이것은 불교에서 행운의 상징인 만(卍)자가 가리키는 방향이 왼쪽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른쪽으로 통과하면 이미 쌓아놓은 복까지 까먹는다고 한다...그래서 우리들도 왼쪽으로 돌아갔다
좁키오(Zhopkyos)
지나가는 좁키오와 야크를 눈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야크는 몸둥이에 털이 많이 나 있다.
다리 아래나 엉덩이 부분에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이 야크이고, 몸에 긴 털이 별로 없는 것이 좁키오라고 한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뿔의 모양이 다르다.
야크뿔은 끝이 뒤로 휘어져 있는데 반해서 좁키오의 뿔은 앞으로 뻗어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캉주마(Kyanjuma, 3,550m)
전망 좋은 롯지 두 채와 벼랑 위에 지어 놓은 빵 파는 레스토랑 하나가 전부인 곳이지만 첫 휴게소라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남체바자르에서 캉주마로 가는 길은 산 옆 능선을 돌고 돌아간다.
이곳에 서면 멀리 눕체(7861m),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6m), 아마다블람(6856m)의 봉우리들이 아련하게 보인다.
우리들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환상적인 풍광을 사진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었다.
사나사(Sanasa 3,600m)
여기까지 함께 걸어온 여행자들이 이곳에서부터 고쿄로 가는 팀과 에베레스트 방면의 팀으로 나뉘어진다.
사나사는 고쿄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고쿄에서 칼라파타르로 가려면 촐라를 넘어야 하므로 칼라파타르 고전 루트보다 한결 힘들다.
우리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교쿄리 가는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방향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풍기텡가(Phunki Tenga, 3,250m)
풍기텡가는 고산병의 피난처...
캉주마에서 고산병이 발생하면 풍기텡가로 내려오고, 또한 텡보체에서 발생해도 다시 뒤돌아 이곳으로 내려와 몸을 추스린다.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머무르기만 해도 자연스레 몸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각국의 트레커들이 점심 식사를 하는 이곳에서 우리도 감자와 칼국수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상화 대리를 헬기에 태워 카트만두로 후송시키고 뒤늦게 출발한 가이드 머누(Manu)도 이곳에서 합류하였다
강렬한 태양빛에 온몸을 맡기고 일광욕을 하다가 만년설 녹은 물로 양치질을 하고 텡보체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마지막 체크 포인트
점심 식사를 한 롯지의 바로 윗쪽에 있는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였다
말도 안 통하는 부가이드와 함께 가다가 머누(Manu)가 앞에서 이끌어주니 더욱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시간이 머무는 땅, 히말라야의 깊은 숨결 속으로 점점 들어간다
문명의 속도가 비껴간 자리에 시간조차 느긋하게 머무는 곳, 그 순수한 대자연의 속삭임과 마주한다.
머리 위로 전깃줄이나 교통신호등 대신 색색의 깃발이 나부끼고 쉼 없이 흐르는 역사 속에서도 정지된 듯 똑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텡보체(Tengboche, 3,860m)
풍기텡가에서 텡보체(Tengboche, 3,860m)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비탈길을 꾸준히 올라야 한다.
텡보체는 유명한 불교 사원인 텡보체 곰파와 네댓 개의 롯지가 있는 곳이다.
텡보체는 사가르마타의 풍광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선 전망이 매우 좋아서 눕체-로체 연봉이 정면으로 잘 보인다.
사가르마타는 눕체 뒤로 머리 부분만 내밀고 도도한 모습을 잠깐씩만 보여줘서 아쉬움이 컸다
텡보체 곰파(Gompa, 티베트 사원)
텡보체곰파는 신의 옷자락이 닿을 듯 아득한 해발 3,860m 고지에 놓여 있다.
그 높이가 무색하리만치 잘 가꾸어진 모습에서 신을 향한 이곳 사람들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긴 세월 히말라야에 살면서도 많은 걸 바라지도,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신에게 닿을 사원으로 가기 위해, 사람에게 닿을 마을로 가기 위해 절벽 위에 실낱같은 오솔길을 새겨 넣었을 뿐 그 외에 모든 것을 그대로 두었다.
그렇게 지켜진 자연의 품에서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성스럽고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리따 최코르
히말라야를 여행하다보면 티벳식 불교 사원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사원 건물 위에 위와 같은 금빛 조형물이 늘 눈에 보이는데 이를 '리따 최코르' 라고 한다.
양쪽 사슴들은 부처님이 인도 사르나트에서 처음 설법을 하셨을 때 한 쌍의 사슴도 함께 들었다 해서 표현한 것이다
가운데 있는 바퀴 모양은 윤회를 뜻하는데, 수레바퀴의 중앙에 8개의 바퀴살이 있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실천 수행해야 하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뜻하는 8정도(八正道)를 나타낸 것이다.
거대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히말라야인들의 간절한 바램이 담겨있는 사원은 성스러움의 극치다
텡보체 곰파
쿰부에 있는 티벳식 사원으로는 단연 규모나 전통, 상징성 면에서 으뜸인 곳으로 쿰부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순수한 수도원이다.
텡보체 곰파는 쿰부 히말라야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절로 유명하다.
대략 1667년 경 세워진 이 사원은 쿰부 지방 불교의 아버지인 라마 상게 도르제(Lama Sangwe Dorje)가 창건했다.
이후 1934년 지진으로 파괴되고, 1989년 다시 화재로 절을 태웠지만 국제적인 도움과 셀파들의 원력으로 1993년에 새로운 곰파가 회향되었다고 한다.
사가르마타를 배경으로 깃발을 펼치다
텡보체 곰파에는 전설의 설인 예티의 두개골과 손뼈가 있었는데 1991년 도난당했다고 한다.
도난당한 두개골은 일본인 수중에 넘어가 비행기에 실렸는데 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신산회와 전주에서 참가한 박미란씨, 서울에서 온 신여사가 함께 깃발을 펼치니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구름 위의 성지...히말라야에선 성지가 따로 없다.
평생 잊지 못할 비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가장 신비로운 인생 최고의 성지가 아닐까?
아이젠을 신다
텡보체를 지나자마자 빙판길이 이어져서 배낭 깊숙히 넣어둔 아이젠을 꺼내어 착용하였다
암벽등반을 하였다는 김기기씨는 자신감이 넘쳐서 반팔 차림으로 눈길을 걷고 있는데...며칠 뒤 크게 후회하게 된다
자연은 사람을 감싸 안고 사람은 그 자연을 지키며 사는 곳...
산세를 해치지 않도록 이동이 가능한 만큼만 계속 이어진 길을 걸으며 우리가 얻는 건 크고 작은 깨달음이다
히말라야를 ‘설산도량’ 이라 부르는 것은 이런 야생의 삶을 통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배가 고파봐야 음식의 귀함을 알게 되고, 불편한 잠자리를 견뎌봐야 내 집의 안락함을 그리워할 줄 알게 된다.
데부체(Debuche, 3,820m)
텡보체에서 데부체로 내려오는 길은 자작나무와 랄리구라스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 사이로 나 있었다.
그 숲을 이룬 나뭇가지에는 기다랗고 푸른 이끼 같은 겨우살이풀이 붙어서 바람에 하늘대고 있었다.
옛날 가난한 수도승들이 산중에서 살다가 속세에 나오려면 입을 옷이 변변치 않아 이것으로 거적을 만들어 몸에 둘렀다고 한다
파라다이스 롯지에 숙소를 정하고 양지쪽에 앉아서 봉동산 편강을 먹으며 피로감을 달랬다
첫댓글 구름위의 성지..
마음을 비우고 멋진 그림을 그린 사나이들속에서
여인들의 모습이 부럽네요..
순다리.. 순다리~~`ㅎㅎ
여유로움.... 고산병... 무서워~~
텡보체에서 에베레스트를 보았습니다
구름 속에 숨어서 일부만 보여주었지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세계의 지붕 위를 거닐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씁니다
또 하나의 겸손을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