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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진심 어린 노래가 직업가수들의 화려한 쇼를 압도하고 있다.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전 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지난달 28일 시청률이 6.43%였다. '재탕' 혹은 '선정' 전문 채널로 천대받으며 0점대 시청률을 전전하던 케이블 업계로서는 들불처럼 일어나 '만세삼창' 할 일. 같은 주 방송된 지상파의 가요 프로그램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SBS '김정은의 초콜릿' 시청률이 각각 5.4%와 3.2%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기세는 더욱 무섭다. 몸값도, 콧대도 높은 스타 가수들이 심사위원 한마디에 울고 웃는 미약한 가수 지망생들에게 무릎 꿇고 있는 형국. TV에 제대로 얼굴을 비친 '슈퍼스타K' 응시자들은 이미 70여만 명의 경쟁자들을 뚫고 심사위원 앞에 섰으니 냉정하게 실력을 겨뤄봐도 기획사 출신 스타들과 백중세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슈퍼스타K'는 전혀 새롭지 않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에 수많은 변형 프로그램을 뿌려왔던 미국 폭스TV의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의 한국판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악동클럽', '배틀신화', '슈퍼스타 서바이벌'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출현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기에 기적 같은 시청률 행진을 벌이고 있는 '슈퍼스타K'는 훗날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실질적 기원으로 대접받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열광의 원인은 뭘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슈퍼스타K'의 힘은 노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이 프로는 일부 응시자들의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을 꼼꼼하게 알려 화제를 만들지만 막상 심사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든든한 심정적 지원을 얻고 있는 이들을 탈락시켜 충격을 안겨주곤 한다. 휴머니즘과 공정한 경쟁이라는 '대명제'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벌이며 시청자들 감정을 '롤러코스터'에 태워 추동력을 얻는 것. 시각장애인 김국환씨가 깊고 풍부한 창법으로 커다란 찬사를 받으면서도, 신체적 한계 때문에 새로 연습한 곡의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지 못해 중도 하차하는 순간, 이 프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선연하게 드러낸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원하는 대중 앞에 그래도 냉정한 실력 평가를 통한 경쟁의 순수함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꺼내놓는 것이다. 물론 일부 시청자들의 격렬한 반발은 제작진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사람들은 늘 힘겨운 경쟁 속에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을 더 좌절시키는 건, 어딘가 나보다 좋은 조건에서 수십 보 앞서 출발한 사람들에게만 쏟아지는 세상의 빛이다. '슈퍼스타K'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에는 세상에는 존재하기 힘든, '순결한 경쟁'에 대한 로망이 숨어 있다. 게다가 침체된 경기와 끊이지 않는 정쟁 속에 지친 대중들에게 이미 수차례 좌절을 맛본 젊은이들의 치열한 도전은 그 자체로도 뜨거운 감정이입의 대상이 된다. 이는 지상파 TV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 시장이, '천하무적 야구단', '오빠밴드' 등 출연자들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힘 모아 도전해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과도 통하는 지점. 다만 일상의 팽팽한 긴장을 확 풀어버리고 느긋하게 즐겨야 할 TV 속에서도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도전과 경쟁을 찾고 있으니 한편으로 슬프고 처량한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