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버스 8 산으로 둘러싸여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들 사이를 돌아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운행하는 낡은 시골 버스가 있습니다
온종일 읍내와 몇 가구 안 되는 구석진 마을 곳곳을 빗자루 쓸듯 돌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침이 면 장날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야 섭섭이 니 백 원 모지란다”
“내일 드릴게예” 버스비가 모자라면 정으로 충전한 마음 하나면 되고요 “송골마을 순석이 니는 어제도 안냈데이” “울 오매가 가을에 고추 농사 지가 한꺼번에 다드린다카데예”
“알았다…. 근데 그때까지 내가 기억을 다할랑가 모리겠네” 오고 가는 정을 풀어놓은 버스가 들썩들썩 비포장길을 달리고 있을 때 “너거들 학교 가면 아침 먹은 거 벌쑤로 소화 다되가 우야겠노”
“그래서 점심시간 되기도 전에 밴또 다 까먹어쁘림미더”
“좋을 때다..내도 너거만한때는 돌멩이도 씹어 먹었는데.....” 빡빡 밀은 머리를 매만지며 멋쩍게 웃고 있는 중학생을 바라보며
“너거들 버스가 덜컹거린다꼬 옆에 여학생들 있는데 방귀 뀌면 안된데이..”
그렇게 웃음이 피어나는 버스가 뒤뚱뒤뚱 거리며 달려가다 멈춘 정류장에서 거북손 등으로 버스 난간을 잡고 힘들게 올라서는 할머 니를 보고선
“할메는 그냥 타이소”
“뭐라쿠네,,,빠스비는 주야지 물부갖고 댕기는것도 아이고“
“게안심더” “내 미안해서 오늘 새벽에 낳은 달걀 두 개 가져왔데이”
주머니에 찌른 손이 빈손일걸 알기에
“아이고 안주시도 되는데 잘무께심더 그라고 청학마을에 영구니 퍼떡 일나서 할메 그 안차드리라“ “이번 설에 손자랑 아들이 온다쿠 는데 뭐 묵을게 있어야제 그래서 오꼬시랑 떡 쪼매 해놓을라꼬 읍에 안나가나“
딱히 정거장이 없는 이 버스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내리고 싶은 그곳이.... 정류장이기에 이마을 저마을에서 버스에 오른 사람 들은 반가움을 넉넉한 웃음으로 내보 이며 이런저런 안부와 지나온 얘기 보따리들을 풀어놓고 계셨습니다
“거기 달구 새끼. 보따리에서 안 나오게 단디 잡으소“ 몽골 몽골 하게 피어나는 무채색 길을 따라 시끌벅적한 아침 풍경이 꽃잎에 물방울 맺히듯 펼쳐지는 버스 안에는 장에 나가 팔 곡식들을 챙겨놓은 보따 리 보따리들이 사람보다 더 많은 것도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달달달 거리는 낡은 엔진 소리가 숨이 차는지 뽀얀 흙먼지를 꽁무니에서 토해놓으며 산비탈 길을 요리조리 춤추듯 달려나간 버스가 텅 빈 정류장 에 홀로 앉아있던 할머니 앞에 멈추어 섭니다
“정학이 할메요.... 서울서 오늘 손주가 오는 갑네예” 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할머니 앞에 놓인 곡식 보따리들을 버스 위로 하나둘 올려놓고 있습니다 “자…. 출발한미데이.. 다들 단디 잡으쇼”
행복 한점 풀어놓은 듯 번져가는 웃음꽃 속에 하나둘 내려 서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고기사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고 구름 속에 피어난 노란 달이 달걀 후라이를 닮은 시간이 되어서야 정든 집으로 돌아서 갑니다 비 갠 다음날 고 기사가 운전하는 행복 버스가 숨바꼭질 하듯 오가더니 어둠을 베어 넘기며 하얗게 뜬 두 눈을 하고 서 있는 곳은 시장 앞이었습니다
바람이 화가 나서인지 생하게 달려온 버스에 만 원어치도 안 되는 나물을 펼쳐놓고 하루종일 장에 오고가는 반가운 이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 오른 어르신들이 쥐여주는 우유와 요구르트 그리고 배추 팔아 사 온 닭 한 마리 까지
그 따스한 고마움들을 표현해놓고 간 자리를 보며 고 기사의 얼굴은 달 뜬 표정이기보단 애연한 마음이 먼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똑똑…. 또배기 할메요 아직 안주무심미꺼?”
“누꼬…. 이 늦은 밤에..”
“저. 고기사미더”
뼛속을 도는 아픔을 뒤로하고 달보다 환한 웃음으로 열어준 할머니 앞에 어르신들이 주고 간 먹거리들을 한 아름 안겨드리며
“할메요..아끼지 말고 많이 잡수이소 그라고 지는 낼 새벽에 일가야 해서 갑미더“ 노곤한 눈동자를 애써 감추며 묵은 마음은 한편으로 접어둔 채 돌아가서 가는 고 기사의 마음속에는 노란 달님이 보내준 행복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산속에 안긴 밭이고 논이고 들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초원을 이불 삼아 가로로 누워 있는 어미 소의 젖을 빠는 송아지가 그려 놓은 길을 따라 고 기사가 모는 행복 버스는 새벽을 열고 벌써 나와 앉았습니다 따스한 햇볕이 감싸줘서인지 자연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러러 몰려들 옵니다 읍내에 있는 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태우고 달리던 고 기사는 길가 옆 익숙한 오두막 앞에 차를 세우더니 “이상테이…. 어젯밤에 읍에 있는 장에 간다꼬 분명 이 시간에 나오신다 캤는데..“
라며 빵빵거려 보지만 닫혀있는 대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 없자 차에서 내려 뛰어가 봅니다
“아이고 미안 테이 내가 밤새 잠이 안와가 아침잠이 깜박들었는갑데이”
“얼렁타이소”
한나절뿐인 웃음을 머금고 그림자보다 길어진 외로움과 함께 버스에 오를때 까지 안에서 기다리고 앉은 어느 사람도 시간을 대들보에 묶어 놓은 듯 재촉하는 사람이 없는 행복버스가 그려준 그림을 따라 딱히 줄을 설 필요가 없는 한적한 마을 입구를 지나 또 멈추어 섭니다
“순자할메요 오늘도 쌍굴마을에 가시는교?”
“하모.”
구부정한 등골 안에 지난 삶을 구겨놓고는 어릴 적 자식들 키우던 그곳을 잊지 못하고 잠들지 못한 고단함을 매단채 그 마을을 찾아가 시는 할머니를 보며 고 기사의 마음은 미처 보내지 못한 둥근 달이 되어가고 있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인생도 함께 타고 달려가던 행복 버스가 정류장에서 떠나려 할 때 저 뒤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달려 오는 중년의 남자를 발견하고는 후진 을 해서 다가갑니다
“남철이 아버지요.. 어디간다꼬예?”
“읍에 이발하러 간다꼬”
“와예. 뭔날인미꺼?”
“우리 남철이가 이번에 지색시감 데꼬 온다 안하나..”
“벌써 남철이가 장가갈 때 됐심미꺼”
집안 이야기 속속들이 펼쳐놓은 자리에 함께 웃다가 때론 눈물짓는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행복 버스가 좁다란 길을 가다가 소가 끄는 달구지를 만나 멈춰서 있을 때 버스 맨 뒤에서 빨갛게 달궈진 연탄 처럼 붉어진 얼굴로
“고 기사…. 차 쪼매 세워봐라..”
머리가 시원하게 드러난 아저씨의 고함에 놀라 열어준 버스 문을 밀치고 길가 풀숲으로 뛰어가더니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얼굴에 올리고선 다시 버스에 오릅니다 “고 기사 미안 테이 내 소피가 마려우가…. 이제 나이 드니까는 못 참는 게 많아진데이“ 넘어진 김에 쉬어 가랬다고 그래도 누구 하나 그 모습에 짜증을 내는 이 없는 버스 안에서 금방 끓인 라면을 머리에 얹어놓은 듯한 뽀글이 파마를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한마디 거듭니다
“다음 뻔엔 못 참는 건 집에 두고 오면 되겠네예”
그 말에 털털거리며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는 햇살에 놓아둔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훈훈한 정이 내뿜어 주는 힘으로 별과 달이 친구 되어 앉아있는 하늘길을 따라 행복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따듯한 방안에서 나누는 가족의 온기를 느끼려 하나둘 달려가고 있을 때
“장수마을 앞에 세워주이소 ”
“아이고 잘됐네 예 아주메요! 회관 옆에 혼자 사시는 지씨할메 알지예 거기 요 감기약 좀 전해 주이소..“
얼굴이 통통해진 달이 뽐을 내고 있는 길을 따라 더 내달린 버스가 쌍벽 마을 앞에서 멈춰선뒤 내리는 이장님 을 보며
“이장님요…. 요거 설날이라 한 개 싼긴데 손녀 키우는 숙이할메 한 테 좀 전해주이소“
“아이고마 내가 할 일을 자네가 다해뿌니까네.. 내 이제 이장 모가지 되는 건 시간문제데이...“
“기냥 읍에 간 김에 털신 하나 사심더“
고맙다는 인사는 바람의 언어로 남겨둔 채 하나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버린 텅 빈 버스 안에는 오늘도 누군가가 심어놓은 행복 나무가 예쁘게 자라나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