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많고 태풍에 변덕스러운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닿을 듯처럼 가까이 있던 산들도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고 따가운 가을 햇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든다.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오면 수확의 기쁨으로 출렁거려야하는 요즘,,
농민들의 얼굴은 영 밝지가 않고, 허리가 푹 꺽기는게 벌써 춥기까지 하다.
봄에 양파부터 마늘 이어서 고추에 드디어 사과까지 어느 한 작목도
살림살이 펴줄 밑천될 만한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장이 농업인경영안정자금 나왔다고 카톡과 문자를 보내주었다.
예전 같으면 “아아 분천4리 마을주민께 알려드립니다. 아아..” 하고 방송을 하겠지만
촌에도 sns가 대세다.
농협에 가보니 벌써 줄이 쭈욱 서서 갑론을박 시끌시끌한게 대체로 분위가 좋다.
다들 봉화사랑상품권 50만원을 받아들었다.
봉화 안에서는 어디든 사용이 가능한 상품권이다.
추석 밑에 받았으니 요긴하게 쓸 것같다.
다가올 추석, 차례상도 넉넉하게 차리고, 소고기도 넉넉히 사고 손주들 양말도 돌리고 해야겠다고 즐거워했다.
“봉화군농민회가 애 좀 썻어요” 하고 한마디 생색을 낼려다가 반응이 없으면 괜히 머쓱할것같아 속으로만 생각하고 나왔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봉화군수후보 정책토론회를 열고 후보들에게 농민수당 공약을 약속받고
이후 농민수당 정책토론회와 조례 제정까지 힘을 쏟고 노력을 했다.
내용이나 형식에서 싸우기도 하고 설득도 했건만 농민수당이라는 이름 대신
농업인경영안정자금이라는 명목으로 공약은 지켜진 걸로 결론이 났다.
여성농민도 받아야 된다고 주장해봤지만
농민수당이라는 이름조차 뺏지 못하는 상황에 지레 포기하고 만 꼴이 되었다.
우째든 50만원 상품권을 받아드니 배짱이 생긴다.
곧 아이들이 올텐데 오미자도 따고 고추도 따고 일도 시킬건데 뭘 좀 해먹일까?
일단 차에 기름도 든든하게 채우고, 허술한 전지가위도 좋은 걸로 바꿔야겠다.
일본제품말고 단단한거 뭐 없나 하고 철물점을 기웃거렸다.
그러면서 드는 농민수당이 매달 지급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농사빚에 눌려 먹고 살기에도 벅찬 농민들에게 공익적 기능은 먼나라 이야기일뿐...
농촌에서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자부심을 느낄 겨를이 없다.
자급자족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뭐라도 하나를 몰아서 심어야지 돈이 되지.. 이것저것 심어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는 생각에 작물 다양성은 깨어진지 오래다.
물론 다들 몰아서 심은 결과는 참담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농민들만의 잘못이겠는가?
하지만 농가 경영체별이 아닌 여성농민, 청년농민 개별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이 정기적으로 매달 주어진다면 농업, 농사, 농촌에 사는 다양한 삶의 방식의 모색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소된다면
가족농 중심의 중소농가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이 되고
다양하고 특색있는 농가 행태들의 농촌 진입과 다양한 작물들, 땅과 환경을 살릴 수 있는 생태적인 순수 기능의 농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농정신문 기고용으로 쓴글인데 시기가 지나서 카페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