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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후
이 기 영
1
며칠 전에 인쇄에 부칠 잡지 원고에 교정이 오늘부터 나온다는 말을 들은 경수는 아침을 재촉해서 먹고 그길로 바로 D인쇄소로 달려갔다.
그는 이층에 있는 공장 사무실로 올라가보니, 벌써 사무원들은 늘어앉아서 제각기 맡은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잡지 원고의 교정을 혼자 맡아놓고 보기는 여간 성가신 노릇이 아니다. 더구나 문선¹이 서툴러서, 준장²에 뻘겅 글자투성이를 만들게 하는 데는, 골치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그런 것을 삼준 사준을 본 뒤에야, 겨우 오자를 메울 수가 있는데 어떻든지 이런 일로 오륙일 동안을 날마다 시달리고나면, 그는 마치 중병을 치른 것처럼 얼굴이 축났다. 그렇다고 불행을 말할 수도 없다. 월급은 쥐꼬리만치밖에 못 받지만, 그나마 고만두면, 당장 식구들이 살 수 없는 형편이다. 갈수록 생활난이 심하여 취직이 어려운 세상인 만큼, 남들은 이런 속은 모르고, 직업을 가졌다고 자기를 부러워하는 축도 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 간혹 서울을 왔다 갈 때는 으레 찾아와서 제가끔 취직을 시켜달라는 데는 질색할 노릇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경수는 기가 막혔다.
지금 자기도, 직업다운 직업을 갖지 못해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간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남의 직업을 구해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사정을 솔직하게 말하면 투박한 그들은 도리어, 박정하다고 오해를 할는지 몰라서, 그는 좋은 말로, 차차 두고 보자고, 그런 자리가 있는 대로 구해보겠다는 대답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얼굴이 간지러운 멀쩡한 거짓말이었다.
*
경수는 지나온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쓰라린 기억이 새로이 씹힌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면서기로 고원으로 굴러다니다가 공부에 뜻을 두고 서울로 올라올 때는 어려서부터 재동이라는 칭찬을 들었던 그는 미상불 자부심도 다소 생겨서 설마 어디든지, 붙일 손이 잡히려니 하였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생각하던 바와는 아주 딴판으로서, 어디 하나,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래 그는 몇 차례를 올라와서 헛물만 켜고 내려갔다. 돈 없고 반연³ 없고 학력조차 박약한 그를 누구나 채용해주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실망한 끝에, 할 수 없이 단념하려던 차에, 그때 마침 지금 있는 잡지사에서, 모집하던 현상문예(懸賞文藝)에 응모한 것이 요행으로 당선되자, 그런 반연으로 기자란 직업을 얻게된 것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식소사번⁴이다. 원고 쓰랴, 편집하랴, 교정 보랴, 발송하랴, 도무지 빤한 틈이 없다. 그것은 실직의 비애를 면한 대신에, 다시 취직의 비애를 느끼게 할 뿐이다. 집에 들면, 생활난이 파고들고, 밖에 나가면, 또한 남의 지배 밑에서 마차말같이, 부림을 받지 않는가? 마음의 자유도, 몸의 자유도 없는 생활은 오직 초조와 번민을 자아내게 할 뿐이다. 이것이 인간의 생활이냐?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의 생활이냐? 사람은 왜, 누구나 배우고 싶은 대로 배우고, 일하고 싶은 대로 일하고 하여, 제각기 타고난 천품을 발휘할 수 없는가?……그는 이렇게 아무리 항변(抗辯)해야, 소용없었다. 무거운 생활의 짐은, 갈수록 천근같이 내리눌러서 잠시 반틈, 옆눈 하나 팔 수 없게 하였다.
그는 자기의, 악착한 현실에 맞부딪힌 신세를 생각할 때마다, 저 『죄와 벌』을 읽을 때의 비루먹은 마차말의 꿈 이야기를 연상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그 말에게 비겨본다.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마차말은 차부의 무자비한 채찍 밑에 헐떡이며, 죽기를 기 쓰고 끌려 한다. 그러나 짐은 워낙 힘에 벅차다. 끌려지지 않는다. 그래도 채찍은 용서 없이 비 오듯 한다. 말은 견딜 수 없어 뒷발로 찬다. 그러면 구경꾼들은 웃음통을 터친다. 차부는 더욱 성이 나서, 무섭게 매질한다. 그래도 가지 못한다. 마침내 차부는 무지한 철봉을 들어서 사정없이 내려쳤다. 말은 펄쩍 뛰면서 최후의 있는 힘을 다하여 끄당겨본다. 그러나 말은 그대로 땅 위로 거꾸러져서 죽어버린다.
과연, 자기의 생활은 이 가련한 마차말보다 무엇이 나을 것이냐? 소리 없는 채찍은 머리 위로 간단없이 내리친다. 생활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자기는, 그 매를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짐을 벗어 멜 수도 없다. 힘이 벅차는 짐은 끌 수도 안 끌 수도 없다. 그러니 이런 생활이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이냐? 가련한 말의, 최후의 운명! 그것은 자기의 장래를 상징함이 아니었던가! 그는 이런 생각이 들수록 무서운 공포를 느끼었다.
그런데. 양복때기를 입고 잡지사의 기자 명함을 가졌다고 자기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얼마나 허구픈 일이냐? 얼마나 잔인한 히니꾸⁵냐.
2
경수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새로 나올 초준을 기다리는 동안에 담배 한 개를 피워 물고 앉았는데. 웬 문선 직공이 원고를 손에 든 채로 들어와서 경수에게 논문 원고의 흘려 쓴 글자를 묻는다. 그것은 악필로 유명한 K씨의 경제 논문이었다.
경수는 그 글자를 일러주고 나서, 다시 한 번 문선 직공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몹시도 낯이 익어 보이기 때문에. 그러나 누구라고 얼른 집어낼 수 없이 생각은 상막해진다.⁶ 그도 그런지 한동안 마주 쳐다보고 있다.
“실례올시다만, 고향이 서울이신가요?”
경수는 마침내 궁금증이 나서 먼저 물어보았다.
“아니요, 시굴입 니다. × × 이여요.”
“매우 낯이 익은데요.”
“글쎄요!”
“아, 인제 생각나는군! 저, 정인학씨 아닌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시는지요.”
“난, 김 경수요.”
“김경수. ……글쎄 어디서 뵈었던가, 원……”
문선 직공은 그저 아리송해서 경수를 잘 몰라보는 것 같았다.
“아따 왜, 우리가 십여 년 전에, 저 경상도 풍기 땅에서 한 달 동안이나, 같이 있지 않었소. 그때 우리는 누구보다도 친절하게 지나지 않었소.”
“아, 옳지! 인제 알겠군요. 그런데 아주 몰라보겠는걸요.”
문선 직공도 그제야 알은체를 한다.
“참, 반갑소이다. 십여 년 전 일이니, 그렇지 않고. 노형도 무척 변했는데.”
“변하다뿐이여요, 아주 늙었지요. 참! 자세히 보니까 그때 얼굴 모습이 그대로 남어 있는 것 같군요. 그래도 나보다는 눈이 밝으신데·…… 난 선뜻 못 알어보겠는데…… 허허.”
“그래 언제부터 인쇄소 일을 배우게 되시고, 서울로 오셨던가요? 참, 훌륭한 기술을 배우셨소.”
“훌륭하다니 그저 죽지 못해 하는 노릇이지요 무슨…….”
문선 직공은 별안간 부끄러운 듯이, 어색한 대답을 한다. 그는 사무원들을 곁눈질 한다.
“천만에…… 그럼, 바쁘실 테니 이따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합시다. 참 이렇게 만날 줄은 천만 꿈밖인데요.”
“글쎄요……참 그럼 다시 또 뵙지요.”
하고 인학은 경수가 악수를 하려고 내미는 손을 못 본 체하고 그대로 휭하니, 돌아서 나간다. 경수는 인학이가, 간 뒤에도 한참 동안 그가 걸어가던 눈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뜻밖에 인학을 만난 것이 여간 반갑지 않은데, 인학은 어째 서름서름한⁷ 게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섭섭하였다.
그것은 그가 만일 진보된 의식을 가졌다면, 직공이 된 것을 그리, 부끄러워할 리가, 없겠는데, 그래서 자기도 소탈하게 대하였는데, 그는 웬일인지 늠름한 기개를 엿볼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봉건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가? 아니 그럴 리도 없겠지.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그런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으랴? 어떻게 룸펜 쟁벌을 집어치우고, 직공이 될 수 있었으랴? 그의 성격은 그전부터. 겸손하였다. 그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오늘날의 생활을 가져오게 하고, 시대의 선두를 용감히 걷게 함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그는 도리어, 자기의 기자 생활을 민망히 여길는지도 모른다. 잘 익은 이삭은 고개를 더 숙인다는 말과 같이, 그래서, 그는 아까도 자기의 생활을 겸손하게 말한 것이나, 아닌가?……
그렇다. 자기의 지금 생활은, 그 앞에서는 오직 가련한 존재로 나타날 뿐이다. 그것은 마치 매소부(賣笑婦)⁸의 본색을 드러내 뵈는 것과 같다 할까? 잡지 기자! 통속적 취미 잡지의 삼문 기자! 그것은 참으로 인류 사회에 얼마마한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정당한 의미에서 자기의 생활을 찾을 수 있다면, 자기는 그와 같은 빙공영사⁹의 타락한 잡지는 응당 박멸해야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경수로 하여금,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게 하였다.
3
십 년―속담에 십 년 직공을 들이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 하고, 또한 십 년 동안에는 상전이 벽해로 변한다는 말이 있다.
경수는 십 년 전의 과거를 더듬어 올라가볼수록, 그런 말이 믿어졌다. 참으로 세상은, 십 년 동안에 얼마나 엄청나게 변하였을까? 그는 우선, 그것을 인학의 변해진 생활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자기는, 마치 십 년 동안을 자다가 깬 것 같다. 참으로 자기는 그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정신없이 잠만 자고 있지 않았는가?
그것은 십 년 전 일이었다. 경수는 소년 시절에 어떤 동무의 꾀임으로 우연히 집을 나와서, 방랑 생활의 지향 없는 길을 떠났다. 그것은 바로, 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인데, 충청도 아래대로――전라도로 헤매다가, 다시 경상도로 접어들어서, 나중에는 금광을 발견한다고 망치를 들고, 소백산 속을 더듬던 무렵에, 풍기구읍 어떤 주막집에서, 역시 자기와 같은 헛바람을 맞아 다니는 인학이와 우연히 만나 알게 되자, 그 뒤로부터 서로 친하게 된 것이다. 타향에 봉고춘이라 할 만치, 같은 충청도에도 고을을 이웃해 산다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일면이 여구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확천금의 몽상이 좀처럼 실현할 가망이 없이 뵈고, 따라서 의식을 붙일 곳이 없어, 객고가 심한지라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제각기 고향을 찾아갔다. 그때 서로 갈린 뒤로는 피차에, 오늘날까지, 소식을 몰랐는데 오늘 아침에, 우연히 또, 인학은 인쇄 직공으로, 자기는 잡지 기자로 등장하여. 역사적 회견을 다시 할 줄 누가 알랴? 그러나 직공과 기자! 공장 노동자와, 섬약한 얼치기 인텔리! 그것은 십 년 전의 똑같은 룸펜 생활과는 얼토당토않은 운양의 차이였다. 한 사람은 인간의 큰길을 걷고 있는데, 한 사람은, 매음부와 같이 어둠 속에서 헤맨다. 그는 비록 어떠한 고생이라도 진리를 위해서, 살 수 있다면, 위대한 순교자적 정신으로, 그것을 생활하고 싶다. 자기의 이상과, 하는 일이 일치한 생활, 이상과 현실이 부합한 생활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거룩한 생활이냐? 때로 그것은 고통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고통일수록 위대할 것이다. 고통일수록 거룩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격류에 부대끼는 조약돌(小石)과 같다 할까. 부대끼면 부대낄수록, 추잡한 이끼가 묻을 새도 없이, 갈려져서 정결한 광택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의 지금 생활은, 마치 웅덩이에 담겨 있는 썩은 물―아니, 그 밑창에 깔려 있는 시궁 흙이 아니냐? 경수는 이런 생활을 할수록, 자기 생활의 모순을 느끼고 그럴수록,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약점을 가진, 그로서는, 반성이 반성에 그치고, 가책을 가책대로 되풀이하는 데, 자기 증오를 느끼었다. 차라리 그런 생각이나 말 수 있다면 그는 의미 없는 생활이나마, 고통은 덜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무거운 짐을 끄는 마차말 이상의 가련한 동물이라고, 그는 다시, 자기를 채질하였다.
4
그 뒤로 경수는 인학을 친하려 들었다. 괄목상대한 그의 구의를 생각할수록, 더욱, 새로운 우정을 자아내게 한다.
며칠 후에 공장의 노는 날을 틈타서, 경수는 인학을 찾아갔다. 동대문 밖 용두리에서, 사글셋방살이를 하는, 인학이는 집에 있었다.
“김선생님, 이거 웬일이십니까?”
경수가 문밖에서 찾자마자, 인학은 동저고리 바람에 풀대님으로 나오더니, 황망히 머리를 숙이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놀러 오시지 않기에, 내가 먼저 찾어뵈 러 왔지요.”
하고, 경수는 소탈한 웃음을 웃었다. 그는 요전의 경험으로 악수는 청하지 않았다.
“너무 불안스럽습니다. ……한번 가뵌다면서도 도모지 틈이 없어서요.”
“물론 그러시겠지. 더구나 이렇게 멀리 사시니까.”
경수는 단장을 짚고 서서, 인학을 반가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런데, 모처럼 나오셨는데, 들어앉으실 데도 없어서…… 산다는 것이 이렇답니다.”
하고, 주인은 무의식적으로 대문 안을 돌이켜보며, 불안스러운듯이 머뭇거린다. 경수는 그가 오히려, 자기를 어설프게 대하는 것이 서운하다. 자기 같으면 아무리 누추한 방이라도, 소매를 붙잡고 들어가서, 십 년 전에, 타향에서, 사귄 친구라고 아내한테도 소개를 하고 어린애들까지도 인사를 시켰을 것인데, 그는 어째 도무지 이처럼 어색히 구는지 모르겠다. 유유상종으로 자기의 생활과 같지 않은, 생활 의식의 간격인가?
“날이 따뜻한데, 집 안에 들어앉어 뭐 하겠소. 볼일이 없으시면, 우리 산보나 나갑시다.”
“글쎄요…….”
인학은 다소 난처한 모양으로, 잠시 머리를 긁고 섰다. 그 눈치를 챈 경수는,
“무슨 바쁜 일이 계신가요?”
하고 다시 인학을 쳐다보며 물어본다.
“아니요? 별로…….”
“그럼, 옷 입고 나오시오. 오래간만에 조용히 만났으니 막걸리라도 한잔 나누고 적조한 서회¹⁰나 합시다. 저 경상도에서 불고기 해놓고, 술 자시던 생각 나시지요.”
“하하…… 참,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지요. 그럼, 잠깐만 계셔요.”
“네.”
미구에 인학은 중절모자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나왔다. 그들은 전찻길로 나와서, 청량리를 향하여 걸어갔다. 사월 초생의 따스한 일기는, 오늘이야말로 봄 기분의 농후한 색채를, 유난히 푸른 하늘빛과 아울러, 먼 산의 자줏빛 아지랑이 속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경수는 기분이 유쾌하였다. 청량리 앞, 다리를 당도하자, 담배 한 개씩을 피우고 가자고, 걸음을 멈춰 섰다. 다리 밑으로는 백사장 위를 밝은 풀이 쫄쫄 흐른다. 그는 담뱃갑을 꺼내서, 인학이와 한 개씩을 피워 물었다. 오래간만에, 교외를 나와 보니, 어느덧 십 년 전으로 흘러간 물 같은, 옛날의 방랑 시절이 눈앞에 다시 온 것 같다.
“우리, 피차에 지나간, 이야기나 해봅시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울로는 언제 오시고?…….”
경수는 비로소 인학의 경과를 물어본다. 그는 어떠한 경로를 밟아서 인쇄 직공이 되었는지 그것이 제일 알고 싶고, 흥미를 끌게했다.
“뭐, 지나간 말이야 다 해 무엇 합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난으로 허덕거릴 뿐이지요.”
“그야 그렇지만…… 대관절 서울로는 언제 올라오셨소?”
“한 육칠 년째, 되었어요.”
“그러나 그 전에는 고향에 계셨던가요?”
“네! 그때 참, 김선생님과 그렇게…… 들어와 보니 집안 형편은 점점 말이 아닌데, 그 이듬해에,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단칸살림이 되고 보니, 다시 돌아다닐 수도 없거니와 또는 그란댔자 소용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추레하게도, 훈장질을 몇 해 해보지 않었겠어요. 허허.”
“하―.”
“그러나, 그것도 어디 셈이 돼야지요. 아이들이 차츰 학교로 달어나니까요. 그래 할 수 없이 전후를 불계하고 그야말로 남부여대로 서울로 올라왔습지요. 어떻게 합니까? 연골 적에, 배우지 못한 노동은 할 수 없고 장사를 하랴니, 밑천이 있나요. 경험이 있나요. 그래 서울로 올라와서 갖은 고통을 다 겪다가, 어떤 인쇄소에 다니는 친구 하나가―그 친구도 그저 식자공을 다닙니다마는, 인쇄소 견습을 다녀보라고, 자네는 식자가 있으니, 문선 배우게 되면 될 것이라고. 그래 참, 그 친구의 반연으로 견습을 다니다가 몇 해 전부터 명색 직공 구실을 한다고, 월급을 받겍그름 된 셈이지요. 그러나 원, 이까짓 생활로야 어디 셈이 돼야지요. 식구는 많고…….”
인학은 말을 그치자, 경수를 쳐다보며 허구픈 듯이 실쭉 웃는다. 경수는 인학의 소경력을 비로소 자세히 듣고, 어느덧 감구지리가 없지 않았다.
“지난 일이야 하여간, 지금은, 좋은 직업을 잘 얻으셨소. 물론 고생되는 점도 많겠지만, 그 대신 마음 편코, 아모 거리낄 것 없는 생활이 좋습니다.”
하고, 경수는, 참으로 진정에서, 흐르는 말을 평소에 생각하던 그대로, 진중하게 말하였다.
그런데, 웬일이냐? 이 말을 들은 인학은 별안간 표정이 달라지며, 실쭉한 기 색을 은연히 나타내 보인다.
“천만에! 그런 농담은 마십시오. 여북해야, 직공 생활을 합니까?”
인학에게 많은 기대를 가졌던 경수는 자못, 낙망하였다.
“아니, 나는 결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 같은 생활이야말로, 오죽잖게 살기 때문에…….”
“원 별말씀을!…… 노동자가 되었다고 그처럼 비양하지는 마십시오. 아니 선생님 생활이 어때서 그라셔요? 참, 워낙 그전부터 재주가 좋으시니까, 서울 바닥에 들어서도, ……그런데 어느 틈에 글공부는 그렇게 하셨어요, 소문이 높으시니.”
고만 경수는 와락, 불쾌한 생각이 치밀었다. 그는 인학을 어떻게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저편에서도 히니꾸를 하는 줄만 알았다. 마는 그렇다면, 그는 얼마든지 그것을 감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수는, 그가 처음부터, 선생이라고 부르는 게나 유달리 존경하는 말이 도리어 섭섭하게 들려왔는데, 그는 그래도 그것을 서로 생활이 같지 않은 생소한 분위기로 알고, 다시 한동안은, 돌려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차차 그의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정으로, 그런 말을 한다. 아니, 그는 오히려, 십 년 전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성싶었다.
“나는 결코 누구를 비양거리거나, 조롱하랴는 그런 생각은 조곰도 없소. 더구나 오래간만에 만나는 자에게 그런 실없는 말을 할 리 있나요.”
하고 경수는 비로소 정색을 하며, 다소간 무색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인학은 아무 대꾸도 않는다. 그동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흐르는 물소리가 갑자기 높이 들린다. 그들은 무료한 듯이 서로 한동안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5
경수는 손톱이 뜨거워진 담배 토막을 냇물 위로 던졌다. 담배 토막은 물 위로 떨어지는 순간에, 불이 꺼지고 둥둥 떠간다. 경수는 무심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발작적으로 시선을 돌이키며 “고만 갈까요’ 하고, 인학에게 물었다.
“그라지요.”
그들은 걸음을 떼놓았다. 그러나 경수는 갑자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치, 무엇을 잃은 것처럼, 서운한 생각이 들어갔다. 그는 아까까지 유쾌하던 기분이 사라지고, 차차 우울증에 사로잡혔다.
그는 인학을 데리고 청요릿집으로 들어가서 간단한 점심 요기를 하였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다. 별안간 경수의 표정이 달라진 눈치를 채자, 인학은 더욱 서름서름한 구석을 보이는 것이, 경수로 하여금 한층 불유쾌하게 하였다.
그는 이런 심사를 강잉히 누르고, 다시 인학의 심중을 캐보았다. 그러나 경수는 인학의 마음속에서, 자기가 발견하려는 광명은 한 가닥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의 의식은, 여전히 십 년 전의 암흑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의 의식은 여전히 룸펜이었다.
참으로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인학으로 하여금, 이렇게 두번째 놀랐다. 그러나 이번의 놀라움, 그것은 자기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주었던가?
경수와 인학이―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콘트라스트¹¹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모순의 대립이냐? 육체적으로 정당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정신이 썩었다. 정신이 아직, 성한 사람은, 육체가 썩었다. 만일 두 사람이, 다 같이 양면으로 건전한 생활을 못 할진대, 차라리 한 사람이나, 온전한 생활을 못 할 것인가? 그는 자기의 정신을 인학에게 주고 싶다. 그런 생활을 자기가 못 할진대, 차라리 반신불수와 같은 자기 몸에 붙은 정신을 그에게나 보태주고 싶음이었다. 두 사람이 똑같은 반신불수가 되느니, 차라리, 한 사람이나, 성한 사람을 만들고 싶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성한 사람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두 사람을 다 같이 건지는 일이 아닐까?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의 위대한 이상은 영육의 완전을 동경하기 때문에……
룸펜 생활은 인간을 동물 이하로 타락시킨다. 그와 마찬가지로, 룸펜 의식은 노동자를 타락시킨다. 오직 건전한 생활에서 체득하는, 건전한 의식의 소유자야말로 그의 앞길에, 태양과 같은 광면을 비춰올 수 있지 않은가!
경수는 음식점을 나와서, 인학을 작별하였다. 그는 아무 볼일 없건만, 우울한 심사를 걷잡지 못해서, 때마침 원산으로 가는 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그길로 정거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덮어놓고, 창동 가는 차표를 샀다.
경수는 여러 사람 틈에 끼어서, 차에 올랐다. 전에 없이 쓸쓸한 적막이 덮어 눌렀다. 그는 무료히 차창 밖으로 먼 경치를 내다보고 있었다. 야릇한 공허는 공상의, 하늘을, 쇠잔한 불나비와 헤매었다.
그는 잠시 가슴이 뭉클하다. 그것은 자기 자신보다 인학을 위함이 더하였다. 십 년이란 세월은 참으로 허사였던가?…… 사람의 관념이란, 이렇게도 변해지기가 어려운 것일까?……
그는 다시 십 년 이전의 그와 자기를 돌이켜보았다. 그때는 두 사람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안팎 생활이 똑같은 룸펜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은 비록 반신불수라도 한편의 생활을 혁신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만큼, 시대의 진보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의식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는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금 자기도 모르게 고소하였다.
*
경수는 창동역에서 기차를 내던지고, 시원한 들 가운데로, 걸어나왔다. 어느덧 오후의 석양이 홋홋하게 등허리를 내리쪼인다.
그러나 봄은―벌써, 몇 달 전부터 오려는 봄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꽃이 피려면, 멀었다. 얼음은 확실히 풀려서 물은 소리지고 흐르건만 완구한 봄은 아직도 먼 것 같다. 아, 이 봄은 언제나 오려는가?……
경수는 높은 하늘을 찌를 듯한 도봉산 봉우리를 쳐다보며 지향없이 들 가운데로 걸어나갔다. 태양은 봄빛을 끌어오는 양염을, 모락모락 타올린다. ……어느덧 경수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이 불어졌다. 무슨 군호 같은, 호된 휘파람 소리는 고요한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다.
-끝-
2016년 6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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