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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아메리칸 고딕 |
- 미국 산업의 대표주자인 GM, 크라이슬러는 2008년 무너졌으나 은행구제자금을 긴급 수혈받고 2013년 흑자로 전환하며, 밥딜런을 고용하여 미식축구 슈퍼볼 경기에 광고를 했는데 그 내용이
“독일인이여 맥주나 빚게, 스위스인이여 시계나 만들게, 아시아 인들이여 스마트폰이나 조립하게, 우리는 당신들이 탈 자동차를 만들테니까”라는 광고를 디트로이트에서 촬영하여 미국인의 마음을 울렸다
- 자동차 산업의 성지 디트로이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으며 68만이던 인구는 8000명으로 줄고, 그중 55만명이 아프리카계인데 산업축소와 1967년 폭동으로 백인들이 떠나며 실업과 인종차별, 고리대금업 같은 죽음의 소용돌이가 디트로이트를 삼켰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주택 6만5000여채가 강제압류되고 2013년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도시파산 선언을 했고 미국 전역의 산업도시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아메리칸드림이 악몽으로 변하고 시민들이 피눈물을 흘렸으나,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그런 지역과는 상관없는 것들이었고 월스트리트와 글로벌 금융업계를 구해내는 싸움이 더 급했다
도전받는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신화
- 래리 서머스(1954년생 1999~2001 재무부 장관, 하버드대 총장)의 2013년 IMF에서의 연설의 주재는 2010년 이후 유럽의 경제사정은 더 나빠졌고 미국은 2009~2010년에는 경제가 회복하였으나 그 후 역사상 가장 느린 경제 회복세가 이어지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였고 모든 것이 다 정상이 아니며 래리 서머스 자신 역시 전혀 잘못된 쪽으로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고 인정했다
2008년 이전에 통화정책이 지나치게 완화되어 사람들은 너무많은 돈을 빌리고 쓰며 돈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나 정말로 그랬다면 미국 경제는 엄청난 호황이어야 했는데 부동산 시장만 과열되고 2008년 무렵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수준에 불과했다
실업률은 낮아지지 않았고 물가는 그대로였으며 엄청난 거품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지 못한것이다
- 만성적 투자부족 타계를 위해 래리 서머스는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미국의 사회기반시설들을 다시 건설하고 그 과정에서 황폐해진 도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래리 서머스가 요구한 사항은 오바마 행정부도 시도하려다가 의회의 저항, 국민의 우려, 우파의 공격적 대응 등 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여 미국의 경기회복은 대단히 느린 속도로 불평등하게 진행되었다
- 프랑스 경제학자인 에마뉘엘 사에즈, 토마 피케티가 2013년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2009년 이후 경제 회복을 통해 이룬 성장에서 미국 국민들 중 1%가 성장으로 인한 혜택의 95%를 독점했고, 국민의 99%는 수입증가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고 경제성장의 혜택 대부분은 고소득층과 많은 금융자산을 소유한 부자들이 독점했다
시험대에 오른 오바마의 위기 정치학
- 오바마 대통령은 상의원 시절부터 아메리칸 드림의 퇴조와 해밀턴 프로젝트를 중요한 정치적 화두로 삼았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자메이카나 아르헨티나에 근접했고 아프리카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외곽 지역 백인 노동자 계층이 느끼는 절망감은 심각하여, 2007년에는 약물남용 사망률이 교통사고 사망률을 앞서고 백인노동자는 2010~2014년 사이 약물남용 사망률이 297% 증가했다
세계화로 고소득층은 더욱 많은 수입을 올린반면 저소득층은 더욱 낮은 수입으로 고통받았고 1990년대 이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중국의 WTO 가입으로 저렴한 공산품이 수입되어 미국의 소비자들은 혜택을 누렸지만 반면 제조업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급여가 줄어들었다
- 2013년 미국 노동운동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으로 일자리 320만개가 사라지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경쟁으로 미국 노동자 1억명의 급여가 1800억 달러 줄었다고 주장했다
- 미국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기관들은 좋은 의도를 갖고 노력했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고, 부자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이익을 극대화했다
워런 버핏은 미국 최상위 소득자들에게 최소 35%의 세율을 부과하자는 법안에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법으로 제정하지 못했고 이는 21세기 미국의 권력 균형이 철저하게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금융과 기업 엘리트에게 정치적 권력이 점점 더 집중되어 이들이 경제를 작동시키는 규칙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문제는 그 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라는 것이다라고 인정했다
미국의 대형 금융업체들은 사업을 확장했고 유럽의 경쟁자들이 주춤하는 동안 시장을 장악했고 기업들이 자금을 쉽게 융통해 경쟁기업들을 매입, 합병한건 벤 버냉키의 저금리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 중 하나이고,
독과점금지 당국의 감시 아래, 거대한 인수합병으로 미국의 자본주의는 다시 한번 좀더 집중된 독과점 형태를 구축했다
-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토마 피케티(유럽 온건파 사회민주주의자)는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건 전면적인 부유세의 도입이라고 그의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을 통해 주장한다
그러나 잔혹한 투쟁을 통해 수십년간 엄청난 자산을 쌓은 최상류층은 소득재분배에 대한 모든 진지한 노력에도 꿈쩍도 하지 않으니 해답은 정치로, 즉 권력에는 권력으로 맞서야 한다
- 2014년 의회 증언대에 선 라이시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성장의 결과물을 나누는 개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말하고 20세기와 함께 시작된 진보주의 운동처럼 시대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외침은 강력한 설득력이 있었다
- 2013년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불평등 연설에 대해, 폭스뉴스 출연자들은 편향된 경제 회복세에 대한 토마 피케티와 에마뉘엘 사에즈의 자료들을 동원하며 오바마 행정부에 일어났던 불평등에 대해 알리고, 따라서 지금 대통령이 말하는 제도의 문제는 대통령 자신의 문제라고 비난 하였다
극단적인 경제 양극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세율을 제안하고 통과시킨 건 의회의 공화당이었으나, 우파들은 아메리칸드림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대통령은 모든 잘못된 문제의 원인이자 화신이라고 비난했다
- 2013년 민주당이 오바마의 두번째 승리에 취해 있을 때 우파의 역습이 시작되었고 공격 목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회복지 정책인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 보험법(오바마케어)의 시행에 필요한 예산이었다
긴축 재정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갈등 고조
2011년 공화당 내부의 강경 보수파 티파티 분파Tea Party(기존 공화당 세력과는 달리 반기업 세력)는 미국을 재정 위기로 몰아넣었고, 2013년 1월 까지도 당파를 초월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여 예산 삭감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어 미국의 정부 기능이 마비되었고, 2013년 10월 미국 정부는 부분적인 셧다운에 들어감에따라 연방정부 공무원들 85만명이 일시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붕괴의 위협에 드러난 권력 구조의 민낯
- 하원의 10%를 차지하는 극보수주의나 극단적 미국 우선주의 강경파들은 국가를 마비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극보수주의의 선두주자인 스티브 배넌은 2013년 가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 레닌은 국가를 무너뜨리고 싶어했고 나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의 산업민주주의에서 전에는 한번도 본적없는 문제점이 드러났고 빚으로 쌓아올린 미국은 허울뿐인 복지국가였다”라며 미국의 구원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 미국의 양대 정당 정치인들은 대책이나 합의점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티파티 덕분에 공화당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기업들은 공화당보다 주류 민주당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민주당이 공화당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의 빈자리를 메꾸는 동안, 공화당은 미국 우선주의와 아메리칸드림을 전면에 내걸고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요구했다
20장 테이퍼 텐트럼 |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은 연준의 양적완화 중단에 따라 발생하는, 시장의 충격을 묘사하는 단어로 연준의 양적완화 중단은 국제금융과 신흥국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재무부 채권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제3차 양적완화 조치에 따른 채권매입으로 채권의 가격은 올라갔으며 수익률은 떨어졌고, 각국의 투자자들은 안정을 되찾았다
은행은 연준의 도움으로 현금을 보유하여 만족했고, 연준은 2008~2013년에 3500억 달러의 이자 수입으로 그 손실 이상을 메울 수 있었다
자본 유입 통제에 나선 신흥시장국가들
미연준의 저금리 정책으로 투자자들은 쉽게 값싼 달러를 빌려 신흥시장국가에 투자했고, 2015년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채무액은 9조 8000억 달러로, 부유한 선진국이 대부분이지만 신흥시장국가들에도 3조3000억 달러의 채무가 남아있었다
세계 5대 자산관리 업체가 운용하는 자금이 70조 달러인데 그 중 1%인 7000억 달러가 움직여도 신흥시장국가들의 흥망을 좌우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2013년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국가들은 자본흐름을 통제하고 자국 통화의 절상을 막기 위해 조치에 나섰다
재정규울에 관한 뼈아픈 진실
2013년 벤 버냉키는 미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정책회의에서 매월 매입하는 채권 규모를 85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줄이는 방안과 2014년에 채권매입을 완전히 중단할 계획을 밝혔고 이런 발표는 “테이퍼 텐트럼”을 일으켰다
채권 수익률은 2.17%에서 최고 2.66%에 이르렀고 이자비용은 25% 증가했고 채권 소유자들은 심각한 자본 손실을 입었으며 미국 증권시장도 4.3%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위기의 5인방인 터키와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의 환율은 급락했다
2013년 G20 정상회담에서 연준은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이 상호의존적인 세상에 살고있음을 인정해야 했고, 부라질, 인도네시아, 중국은 벤 버냉키에게 좀더 분명한 태도를 요구했고 상호의존성의 역풍의 염려로 2008년 광범위한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시장과 연준 사이에 드리운 의심과 불안의 그림자
2013년 9월 FOMC는 금리는 현 상태를 유지하며 현행 이율로 채권 매입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 했고, 수조 달러가 걸려있는 시장은 연준의 정책 방향을 추측하느라 혈안이 되었고, 언제라도 정책이나 시장의 변화에 의해 균형이 깨질 수 있는 상황으로 글로벌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세계에 대한 꿈
- 제3차 양적완화 조치를 중단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인도의 루피화를 회복시켰고 인도네시아의 통화 폭락을 멈추게했다
한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영란은행, 캐나다 중앙은행, 스위스 국립은행 합동으로 기존의 임시 유동성 스와프 협정은 정식협정으로 전환되어 유동성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을 계속했다
아시아의 중앙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여, 일본은 인도와의 기존의 스와프 협정 규모를 10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와는 두배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 일본은 중국 다음으로 막대한 달러화를 보유하므로 이러한 협정이 가능했고,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일본은행은 연준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했기에 이런 방식으로 달러 유동성은 전세계로 공급되었다
2013년 가을, 정부요원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의 NSA(미국국가안전보장국)의 전자감시망의 불법사찰 폭로는 미국은 물론 미국과 얽힌 국가들 안에 또다른 권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21장 x같은 유럽연합. 우크라이나 위기 |
서방을 따를 것인가, 러시아를 따를 것인가
-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11년, 아시아 중시 정책이라는 외교정책을 새롭게 천명하고 더 넓게 확대된 교역 및 투자 협정에 아시아의 경제대국들에게 함께 할 것을 종용했다
2012년 아베신조가 총리가 되고 일본 자위대를 더 강력하고 독립적인 집단으로 만들면서 2014년 일본과 중국 사이에는 전쟁의 공포가 감돌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중국과의 교역에 관심이 많았고, 독일 정부 각료들은 중국에 자동차와 공장설비를 수출하고 싶어하는 등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싶어했다
- 2013년 APEC 회담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새로운 투자은행 설립 계획을 발표했고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이런 제안에 찬성하지 않았고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는 즉시 미국에 동조했으나 영국은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의 창립회원이 되었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착수했다
- 당시 2인자였던 푸틴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끔찍한 최후를 보고 서방측을 믿을 수 없다 생각하여, 2012년 이전보다 더 단호해진 모습으로 대통령이 된다
2011년 아후 러시아는 기존의 유라시아관세동맹을 유라시아경제연합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고, 유럽연합 본부는 푸틴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동맹의 회원국이 유럽연합 협약에 가입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에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진행하려면 제재를 각오하라고 경고했고 따라서 유럽연합 협약서에 서명하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크림반도를 장악한 러시아
- 구소비에트 연방 소속이던 국가들에게 2008년의 경제적 정치적 충격으로부터의 회복은 고르지 않았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유로존 회원국이 되었다
폴란드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야당이 유럽통합의 노력은 독일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공격했고, 헝가리는 IMF의 압박으로부터 헝가리를 보호하겠다고 나선 민족주의 피데스당과 기민당, 파시즘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던 조빅당은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앞세워 모두 70%의 지지를 얻었다
- 이들은 외국계 은행에 대한 과세와 민간 연기금에 대한 강제적 관리를 정당화했고 강경파총리 오르반 빅토르는 개인적으로 IMF건 유럽연합이건 누구도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하며 헝가리만의 방식으로 공격적인 수익창출 정책과 강제적인 내핍조치를 강행했는데 이것이 어느정도 효과를 거둠으로써 유럽연합은 헝가리에 시행된 굴욕적인 과도적자시정조치를 중단했고 또 다른 신흥시장국가의 경기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해외의 대출 기관들은 오르반 총리의 민족주의 실험을 좀 더 관대한 눈으로 보기시작했다
- 자금을 확보한 헝가리는 2013년 IMF의 채무를 완전히 청산하고 2013년 러시아와 새롭게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푸틴은 원자로 기술과 천연가스 공급 등 물질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처럼 유럽연합과 NATO 모두에 안전하게 정착한 헝가리는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으나 동유럽의 소국들 중 하나인 아르메니아는 러시아로부터 협박을 받고 유럽연합 협약 신청을 철회했고 푸틴의 유라시아관세동맹에 참여할 의사를 선언했다
- 동유럽의 세력 균형 문제를 결정짓는 우크라이나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었고 부패한 기회주의자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서방측과 러시아를 수시로 오갔으며 IMF로부터 지원금도 받았다
유럽연합과 IMF는 우크라이나에게 엄청나게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 들이는건 정치적 재앙이었다
2013년 푸틴은 우크라이나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150억 달러 대출까지 제안했으며 조건은 유라시아관세동맹에 가입하라는 것이었다
- 2013년 11월에 수십만명이 키예프 거리로 쏟아져나와 유럽 연합 협약을 거부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갑작스런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우크라이나 전역의 관공서들이 점령당했는데 이 사태에 유럽연합과 미국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명백하다
증거는 미국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인 빅토리아와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사이의 대화가 새어나오며 밝혀졌는데
“우리가 직접 중재에 나서거나 아니면 UN을 통해 중재에 나서면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X같은 유럽연합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 그로부터 2주 후 결국 야누코비치의 대통령직은 끝이나고 새로운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고 임시정부는 야누코비치의 결정을 뒤집어 러시아가 아닌 IMF 그리고 유럽연합과 새로운 금융 혐정을 맺으려했다
이에 러시아 군대가 2014년 크림반도를 장악했고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의 도네츠크 지역의 분리주의자들을 부추겨 중앙정부에 반란을 일으키도록했다
러시아와 서방측 사이의 새로운 냉전의 심화
- 서방측과 러시아 사이의 충돌은 심화되고 우크라이나 임시정부는 도츠네크 지역을 수복하기 위해 대테러 작전을 개시했다
미국정부와 NATO본부는 군사원조와 냉전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세력도 있었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문제의 확대를 반대했고, 다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이 은밀한 경로로 전달되었고 서방측의 공식 대응은 경제제재였다
미국은 우회적인 경제제재로 푸틴의 측근세력인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의 수장 이고르 세친과 노바텍, 가스프롬방크 등 러시아의 핵심기업의 자본시장 접근을 막았다
- 독일의 기업대표들과 원로정치인들은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로 진격하는 상황에서도 푸틴과의 우호적 관계를 계속 유지했고, 프랑스는 러시아로부터 대형 항공모함 두 척을 발주 받은 상태고, 이탈리아의 에너지 관련 기업들은 흑해 개발 계획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독일은 NSA의 동맹국 감시활동으로 인해 미국 정부와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결국 유럽연합은 러시아 주요 인물 18명에 대한 개별적인 제재조치에만 동의함으로써 미국 의회 우파들의 분노를 샀고, 5월 대서양에서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IMF에 150억 달러 지원을 요청했고 오바마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이런 요청을 지지하며 대출보증을 서겠다고 나서며 우크라이나 위기는 IMF가 미국에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분명한 사례라고 주장함으로써 IMF가 결국 미국의 정책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 러시아의 개입과 미숙한 법과 제도로 불안한 우크라이나는 현재의 채무 상황을 감당해낼 수 없었고 혁명을 일으킨지 불과 몇 주도 지나지 않아 파산을 선언 할 위기에 놓이자 IMF는 전면적인 개입에 나섰고 유럽연합은 따로 유로를 지원하고 미국이 보증을 서주기로 했으며 일본도 참여하는 등 유럽연합으로서는 상당한 성의를 보였으나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규모에 비하면 한참 모자다
- 7월 우크라이나 군대는 격렬한 공세를 펼쳐 돈바스 반란군을 제압 직전까지 갔으나 러시아가 반란군에게 다시 무기를 공급함으로써 돈바스 전쟁은 수많은 난민과 수천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진짜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 신형 러시아 미사일로 무장한 반군이 298명의 승객을 태운 말레이시아 항공기를 격추시켰고 이에 유럽 연합은 윤리적 분노에 힘입어 러시아로 흘러들어가는 모든 군수품과 석유산업용 장비들의 수출을 차단했고, 러시아 국영은행과 에너지 기업들은 유럽연합 안에서 장기 채권을 발행할 수 없게되었고 미국은 러시아의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의 자본시장 접근을 제한했고 엑손모빌과 BP를 압박해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중단하게 만들었다
- 이에 러시아는 유럽에서 들어오는 농산물 수입을 금지시키고 돈바스 반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늘렸고, 반군은 8월 23일에 처절한 반격을 시작했고 전황이 어려워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어쩔수 없이 독일과 프랑스의 중재 아래 휴전협정을 받아 들인다
구소비에트 연방지역으로 확산되는 우크라이나 위기
- 2014년 3월 러시아 상원에서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러시아군의 배치 표결이 진행되었고 다다음날 러시아 주식시장은 약12% 폭락한다
미연준의 재닛 옐런은 제3차 양적완화를 마감하고 글로벌 신용상황을 어렵게 만들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자발적 공급제한을 풀어 원유 가격은 폭락했다
10월이 되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의 붕괴를 막기 위해 본격적인 개입을 했으나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고 트러스트 뱅크와 러시아 3위 항공사인 유테이르 항공이 문을 닫았고 러시아 중앙 은행은 어쩔수 없이 금융계 전체에 대한 보증을 섰다
푸틴과 중앙은행은 금리를 6.5%에서 17%로 올렸으나 금리인상 발표와 함께 시장은 이런 조치를 오히려 공황상태의 전조로 받아들여 루블화는 외환시장에서 끝없이 추락했다
- 푸틴 대통령의 집권1기는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나, 2008년 위기로 무너졌고, 2015년 하반기에 겨우 진정세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는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국가가 되었고 푸틴은 민족주의를 선동하며 지지율이 치솟았다
경제적 보복으로 인해 러시아 이웃 국가인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의 통화는 달러화 대비 50%가치하락했고 키르기스스탄과 몰도바, 타지키스탄도 30~35%가치가 하락했다
세계화에 동참해 해외로부터 많은 자금을 차입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은행들은 엄청난 부담을 짊어졌고, 남성 취업연령 인구의 절반이 러시아에서 부쳐주는 송금에 의지하는 타지키스탄 같은 나라는 송금액이 줄어 재앙에 가까운 위협을 느꼈다
러시아와 중국이 20세기를 마무리하는 방식
- 러시아는 고통을 겪긴 했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입지 않아서 푸틴은 정국을 단단히 틀어쥐었고,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경제제재에 대한 불만이 쏟아질 것 같았고, 미국 내부에서 조차 러시아에 동조하는 세력이 등장하는 분위기일 때 러시아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동맹국을 찾아냈다
2014년 러시아와 서방측의 대립이 점점 심해지자 러시아 지도부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기로 결정하고, 중국은 러시아가 서방측과 대치하는데 힘을 보태기로 한다
만일 미국과 유럽연합이 경제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한다면, 러시아는 중국의 홍콩과 상하이를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 할 것이고, 남중국해에서 일본과 갈등을 빚고있는 중국은 그 대신 러시아와 중부 유럽을 관통하는 육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2014년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 공급 계약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 중국과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연합국)가 주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맞서 싸운지 70년, 이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는 새로운 관계가 구축되고 있었고 두 나라는 이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