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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그리운 명절
“얘 금분아. “
“네에. “
“넌 저 달이 뭐만큼 커 뵈니?”
“……양푼만해요. “
“넌? 창례는?”
“……맷방석만헌데요.”
“어유! 가지뿌렁허지 마라 얘. 어쩌문 저 달이 맷방석만허다니?”
“쟨 누구더러 가지뿌렁이래. 아, 그래 저 달이 양푼만허문, 고 속에서 옥토끼가 어떻게 방아를 찧는단 말이냐?”
“그럼 얘야, 맷방석 속에선 어떻게 방아를 찧니?”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송편을 빚던 두 소녀는, 팔월 열나흗날 밤 구름 한 점 없는 중천에 둥두렷이[둥그스름하게 솟아 뚜렸다하다] 떠오른 달을, 눈 하나를 째긋하고 손가락으로 재보다가, 서로 호호거리며 웃는다.
“그렇죠, 네? 선생님. 그런데 참 정말 저 달 속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찢는대유?”
영신은 바늘을 잡았던 손을 쉬며, 달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그건 옛날버텀 전해 내려오는 얘기란다. 그런 건 없어두, 커다란 망원경이란 걸 대구 보면은 사람이나 짐승 같은 건 없지만, 달 속에두 산이 있구 시내 같은 게 있단다.”
“그럼, 그 물이 어디루 쏟아진대유?”
“아이구 어쩌나. 우리 머리 위루 막 쏟아지문……”
“아냐, 달 속의 냇물은 바짝 말러 붙었단다.”
“날이 가물어서요?”
“그럼 달 속엔 중창 숭년만 들겠네.”
“참 햇님은 신랑이구, 저 달님은 새색시라죠? 그게 정말이야유?”
계집애들이 줄달아 묻는 말에 영신은,
“글세……그런 건 다 지어낸 말이니깐……..”
하고 웃으며 우물쭈물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신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천진덩이인 아이들의 질문에, 영신은 똑바른 대답을 해줄 만한 천문학의 지식도 없지만, 설명을 해준대도 계집애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동안 한곡리에서는 농우회관을 낙성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영신은 슬그머니 성벽이 나서,
‘청석골은 그버덤 곱절이나 큰 학원 집을 짓고야 말겠다.’
는 야심이 불 일듯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기부금도 걷지 못하게 되어서, 백방으로 생각하다가 추석날을 이용해서 이 시골구석에서는 처음인 학예회 같은 것을 추석 놀이 겸 열고, 다소간이라도 집을 지을 밑천을 얻으려고 두 달재나 그 준비에 골몰해왔었다. 오늘 저녁은 학예회에 출연할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연습을 시켜서 돌려보내고, 유희하는 데 나오는 여왕에게 싀워줄 종이 면류관을, 마분지로 오려 금지로 배접[종이나 헝겊 또는 얇은 널조각 따위를 여러 겹 포개어 붙임]을 해서는 그것을 꿰매고 앉은 것이다. 그날 입힐 복색까지도 영신이와 원재 어머니가 며칠씩 밤을 새우며 꿰매놓았다.
한편으로는 부인친목계 회원들이, 조석으로 한 숟가락씩 모은 쌀을 빻아 풋밤과 호박고지를 넣고 시루떡을 찌고, 그들이 손수 심고 거두어 들인 햇팥과 콩으로 소를 넣어 송편을 빚는데, 금분이랑 창례랑 집가까운 아이들이 모여 와서 한몫을 본다. 이 떡은 내일 추석 놀이가 끝이 나면 아이들에게 상금처럼 나누어주려는 것이다.
영신은 달빛에 번쩍번쩍하는 가위를 놀리다가, 몇 번이나 그 손을 쉬고 머리를 떨어뜨렸다. 금분이나 창례만할 때에, 그때도 추석 전날 오늘처럼 달이 초롱같이 밝은데, 낮에 동산에서 주워다 둔 밤과 풋대추를 가지고, 마루에서 사촌 동생과 공기를 놀던 생각이 났다. 그것을 죽은 오라비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몸부림을 치며 울다가,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듣던 생각이 났다. 울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과 대추가 대소쿠리에 소복이 담겨서 머리맡에 놓여 있지 않았었던가. 그 신기하던 생각이 바로 어제런 듯 눈에 선하다.
“얘들아 창가나 하나 허렴.”
향수에 잠긴 영신은 면류관을 집어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손풍금을 들고 나왔다. 그것을 본 계집애들은 미리 신이 나서,
“선생님 뭘 허까유? <이태백이 놀던 달아>를 허까유?”
하면서 손뼉을 쳐서 떡가루를 털며, 영신의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왜 요전번에 가르쳐준 거 있지? 낼 저녁에 너희 반에서 헐 거 말야. 그 창가를 날 따라서 불러봐.”
“옳지, 난 알어. 그 창가 난 알어.”
맨 꼬랑지에 앉았던 복순이가 내닫는다. 손풍금은 처음에는 <조선의 꽃>을 타다가, 어느덧 <갈매기의 노래>로 멜로디가 옮겼다. 제 손으로 고요하게 반주를 해가며 그 처량한 노래를 나직이 부르는 영신의 눈에는, 고향의 산천과 한곡리 바닷가의 달밤이 번차례로 지나간다. 안갯속과 같이 아련히 —꿈속처럼 어렴풋이 —
그러다가 영신은 노래를 그치고, 손풍금을 힘없이 무릎 위에 떨어뜨리며, 기다란 한숨과 함께 눈을 내리감았다.
계집애들은 멋도 모르고,
“아이 재밌다! 재밌다!”
하고 손뼉을 치는데, 평생을 외롭게 사는 원재 어머니도 처량한 생각이 들어서, 행주치마 끈으로 눈두덩을 누르며 돌아앉았다.
그날 밤 영신은, 어머니를 꿈속에 만나서 마주 붙들고 느껴 느껴 울었다. 그러다가 새벽녘에는 동혁이와 첫날밤을 치르는 꿈을 꾸었다. 엄마가 그리워 헤매어 다니던 어린 물새처럼, 지쳐 늘어진 날개를, 그의 따뜻한 품속에 조심스러이 깃들인 꿈을…..
추석날은 장거리에서 물 위와 물 아래 동리를 편을 갈라서, 줄을 다린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그리로는 장정들만 한 십여 명쯤 갔을가, 그 밖에는 청석골의 남녀노소가 모두 예배당으로 모여 들었다. 몇십 리 밖에서 단체를 지어 온 사람도 수십 명이나 된다. 말똥구리 굴러가는 것도 구경이라고, 구경이라면 머리악을 쓰고 덤벼드는 여편네들은, 정각 전부터 예배당 마당이 빽빽하도록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시집올 때 입었던 단거리 비단 저고리 치마를, 개켜 둔 자국도 펴지 않은 채 뻗질러 입고, 두 눈구멍만 남기고는 탈바가지처럼 분을 하얗게 뒤집어슨 새댁네도 섞였다.
그네들은 사철 동이를 이고 논 귀퉁이의 샘으로 물을 길러 다니고, 이웃 집에 마실을 다녀본 것밖에 소위 명절날이라고 구경을 나서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배당 벽을 의지하고 송판 쪽으로 가설한 무대 좌우에는, 커다란 남포를 켜고 검정 장막을 내리쳤다. 흙방 속에서 면화씨만한 등잔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전등이란 구경도 못 하였지만 이 남폿불만 하여도 대명천지로 나온 것만치나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
청년회(그것도 근자에 영신이가 발설을 해서, 조직을 한 것이다)의 회원들과 부인친목계의 회원들은 가슴에다가 종이꽃을 하나씩 꽂고 나섯다.
아이들은 앞줄에다 앉히고, 물밀듯이 달려들며 떠드는 구경꾼들의 자리를 정돈시키느라고,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걸렸다. 동네에 있는 멍석과 가마때기를 깡그리 몰아다가 깔았건만, 땅바닥으로 밀려나간 사람이 태반이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때 쫓겨나간 아이들처럼 담 밖에서 넘겨다보고, 뽕나무로 올라가는 성황을 이루었다.
영신이도 새 옷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처음으로 분때[팥가루나 밤 가루 따위로 만든 재래식 분을 문질러 바를 때에 때처럼 밀려나는 찌꺼기]를 다 밀었다.
“얘, 오늘 저녁엔 우리 선생님이 여간 이뻐 뵈지 않는구나.”
“언젠 우리 선생님이 숭허드냐? 분 한 번 안 바르시니깐 사내 얼굴 같지.”
무대 앞에 앉은 계집애들이, 개막할 시간이 되어서 쩔쩔매고 오르내리는 영신을 쳐다보고 소곤거린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저녁의 영신은, 달빛에 보아 그런지, 담 밖을 넘겨다보는 한 송이 목련화처럼 탐스러워 보였다.
“따르르……”
목각종 치는 소리가 나더니, 막이 드르르 열렸다. 선생이 막 뒤에서 반주하는 손풍금 소리를 따라, 공작새처럼 색색이 복색을 한 계집애들이 나와서 창가를 한다. 눈이 푹푹 쌓이는 날도 홑고쟁이를 입고 다니던 금분이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서 유희를 해가며, 가냘픈 목소리로 동요를 한다.
“흥, 아무튼 가르치구 볼게여.”
“여부가 있나. 선녀들 놀음 같은걸.”
늙은이 축에서도 매우 감탄하는 모양이다. 막은 몇 번이나 열렸다. 닫혔다. 손뼉도 칠 줄 모르고 떠들던 구경꾼들은, 평생 처음 구경하는 아이들의 재롱에,
‘내 딸은 언제 나오나’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휴식 시간이 지난 뒤에 학예회는 제이부로 들어갔다. 여자 상급반의 아이들이 나와서 가극 비슷한 여왕 놀음을 하는데, 황금빛이 찬란한 면류관을 쓰고, 옥좌 위에 가 점잖이 앉았던 옥례가, 서캐가 무는지 자꾸만 뒷머리를 긁다가, 그 관이 앞으로 벗어졌다. 황급히 집으려는데 마침 바람이 홱 불어 종이 면류관은, 떼굴떼굴 굴러서 무대 아래로 떨어지려고 한다.
옥례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에구머니! 절 어쩌나.”
하며 그 관을 집으려고 허겁지겁 달려들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넘어졌다 일어나 보니, 면류관은 자반처럼 납작하게 찌부러졌다. 그것을 보자, 마당에서는 떼웃음이 까르르하고 터졌다.
어떤 마누라는 부처님 앞에 절을 하듯이 연방 합장을 하면서 허리를 잡는데, 옥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무대 뒤로 뛰어들어갔다.
끝으로 남학생들의 ‘흥부 놀부’ 놀음도 여러 사람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흥부가 어색하게 달고 나온 수염이, 붙이면 떨어지고 붙이면 떨어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수염이 콧구멍을 간질여서,
“에취!”
하고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수염은 몽땅 떨어져 달아났다.
여러 사람의 웃음은 한참 만에야 진정이 되었다. 이번에는 올해 일곱 살밖에 아니 된 간난이란 계집애가, 반은 선생에게 떠다밀려서 무대 한복판으로 나왔다. 커다란 리본을 단 머리를 숙여 나비처럼 곱다랗게 예를 하고는, 딱 기착[기척. 구령어로서의 ‘차렷’을 이르던 말]을 하고 서서 두 눈을 깜박깜박하더니,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오늘 저녁에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 이처럼 여러분께서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부자연하게나마 글을 외듯히 한마디를 하고는, 고만 말문이 막혀서 할낏할낏 뒤를 돌려다 본다. 선생이 막 뒤에 숨어서,
“우리들이 살기는 구차하지만……”
하고 뚱겨주는 소리가 여러 사람의 귀에까지 들린다.
“우리들이 살기는 구차하지만, 열심으로 배우면 이렇게 창가도 하고 유희도 할 줄 안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우리 강습소를 도와주시고 하루바삐 새집을 커다랗게 짓고, 내년에는 그 집에서 추석 놀이를 썩 잘하게 해주십쇼.”
하고는 다시 예를 납신하고 아장아장 걸어 들어간다.
앵무새처럼 선생의 입내를 내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이, 고것 앙증두스러웨. 조게 사봉이 딸년이지?”
하고 어떤 마누라는, 한 번 안아나 주려고 무대 뒤로 쫓아 들어간다.
끝으로 손풍금 소리가 다시 일어났다. 아이들은 무대 위와 아래로 가지런히 벌려 서서, 일제히 목청을 높인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내 동산
하고, 제이백십구 장 찬송가를 부른다.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하고 후렴을 부를 때, 아이들은 신이 나서 팔을 내저으며 발을 구르며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어느 틈에 원재를 위시하여, 청년들과 친목계의 회원들까지 따라 불러서, 예배당 마당이 떠나갈 듯하다. 이 노래는 ‘한곡리’서 <애향가>를 부르듯이, 무슨 때에는 교가처럼 부르는 것이다.
찬송가가 끝나자, 원재 어머니는 회원들을 대표해서 먹글씨로 커다랗게 쓴 백지를 무대 정에다가 붙이고 내려간다.
일금 이백칠십원야 청석동부인친목계원 일동
一金 貳百七拾圓也 靑石洞婦人親睦契員一同
이 종이 쪽을 보고 놀란 것은 비단 학부형뿐이 아니다. 이때까지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던 영신이도, 무대 뒤에서 제 눈을 의심할 만치 놀라서,
“저게 웬일이야요?”
하고 한달음에 원재 어머니의 곁으로 갔다.
“아까 회원들이 다 모인 김에, 우리가 입때꺼정 저금헌 걸 새집 짓는 데 죄다 내놓기루 했어요.”
한다. 영신은 감격에 겨워, 눈을 딱 감고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섰다. 영신의 덕택으로, 호미와 절구공이와 오줌동이밖에 모르고 지내던 작기네부터 글눈을 떴거니와, 오늘 저녁에 자기네가 금지옥엽같이 기르는 자녀들이, 그처럼 신통하게 재주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평생 처음으로 크나큰 감동을 받은 그들은,
‘오냐, 우리네 자녀도 가르치면 된다. 남부럽지 않게 개화를 한다.’
하는 신념을 얻었다. 그래서 원재 어머니의 발설로 몇몇 해를 두고 별별 고생을 다 해가며 푼푼히 모은 저금을,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학원을 짓는 데 기부를 하게 된 것이다.
“허허, 이거 부인네들이 저 어려운 돈을 내놨는데, 사내 코빼기라구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하고, 늙은이들은 주머니 털음을 하고 타동 사람까지도 지갑을 뒤져서 당장에 칠 원 각수[돈을 ‘원’이나 ‘환’ 단위로 셀 때 그 단위 아래 남는 몇 전이나 몇 십 전을 이르는 말]가 모였다. 몇백 명 틈에서 단돈 칠 원! 그러나 그네들이 시제[현재] 가지 돈이라고는 그밖에 없었다. 그것도 뜻밖의 큰돈인 것이다. 구경꾼들은,
‘좀 더 구경헐 게 없나’하고 서운한 듯이 떠날 줄을 모르다가, 하나씩 둘씩 흩어졌다. 영신은 아이들의 옷과 유희하던 제구를 챙겨 넣은 뒤에, 어젯밤 밤늦도록 빚은 송편과 시루떡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아, 저이들두 인제는 저만치나 깨어가는구나.’
하니, 저의 헌신적 노력이 갚아지는 듯, 다시금 감격에 겨워 몇 번이나 그 떡이 목에 넘어가지를 않았다.
일 년 중에도 가장 밝고 말고 서늘한 추석날 저녁의 달빛은, 예배당 마당으로 쏟아져 내린다. 영신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 달이 기울도록, 노래를 부르며 어린애와 같이 뛰놀았다. 기쁨과 행복이 온몸에 넘쳐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와락 달려들어, 한바탕 머리를 꺼둘러주고[움켜쥐고 함부로 휘두르다] 싶었다. 뺨을 대고 그 기쁨을, 그 행복을 들부벼주고 싶었다.
영신은 그 돈 이백칠십 원 중에서 반만 학원을 쓰리라 하였다. 그 돈을 다 들인 대도 도저히 설계한 대로 지을 수는 없지만, 근근자자히[매우 부지런하고 꾸준히] 모은 근로계의 돈을 내놓았기로, 냉큼 송두리째 집어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위선 이것만 가지고 시작을 해보겠어요. 시작이 반이라는데, 설마 중간에 못 짓게야 될라구요. 기부금 적은 것만 들어오면……”
하고 회원들의 특별한 호의라느니보다도, 일종의 희생적인 기부금을 굳이 반만 쓰겠다고 사퇴를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같은 통속이래도 잔약한 그네들에게만 의뢰를 하는 것은 근본 취지에 어그러진다. 내 힘으로 해야지, 내 힘껏 해보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드래도, 전수이[모두 다] 남의 도움만 받으려는 것은 우리네의 큰 결점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 인젠 집을 짓는구나!’
하니, 그는 미리부터 흥분이 되어서 잠이 아니 왔다.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는 엄두가 나지를 않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니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도 집 짓는 데는 모두들 손방이라, 누구와 의논조차 해볼 데가 없다.
‘동혁 씨나 핑곗김에 공사 감독으로 불러댈까? 한 번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으니…..’
하다가,
‘아니다. 그건 공상이다. ‘
하고 어떻게든지 한곡리 회관보다 번듯하게 지어놓은 뒤에, 낙성식을 할 때에나 버젓이 초대를 하리라 하였다. 그때까지는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꽁꽁 참으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