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데, 시골의 한 장터에서 나란히 뻥튀기를 돌리는 할머니와 아저씨가 나온다. 한 아저씨가 낡은 기계를 손으로 돌리는 한 할머니에게 저처럼 자동 기계를 놓아서 좀 편하게 돌리라고 너스레를 떨자, 할머니가 대뜸 “이놈 안가?”라고 한다, 그러자 옆의 그 아저씨가 대거리를 하는데, “내가 왜 안가(家)요? 최가(家)지.”라고 말하는데, 동시에 자막으로도 뜬다.
우리 동네에도 ‘감자뼈해장국’을 파는 가게가 있는데 그 이름이 ‘김가네’인데, 간판에 ‘金家네’라고 써 있다. 역 앞으로 더 가면 ‘김家네 김밥’집도 있다. 홀로이름씨(고유명사)인데 뭘 따지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다만······.
어릴 때, 어른들이 성이 뭐냐고 묻거든 ‘정가요’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배웠다. 남의 성 뒤에는 이씨니 박씨니 하는 식으로 ‘씨’를 붙이고, 자기네 성 뒤에다는 꼭 ‘가’를 붙여야 한다고 어른들이 당조짐을 했다.
예전에 ‘김씨네’란 가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어이 김씨’라고 불러대서 아예 이름으로 삼았다는 사람이다. 이처럼 남들이 그렇게 불렀다면 모르겠거니와 자기들이 스스로 ‘김씨네’라고 한다면 웃음거리밖에 더 될까? 내가 초등학교 다닐 즈음만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슨씨네’란 이름으로 간판을 내건 집이나 블로그가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는 지경이니 앞으로 애들한테는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씨’란 말은, 옛날에는 관명에 붙이는 칭호로도 썼으며, 성 뒤에 붙여 저명인이나 전문가를 높이는 데도 썼으며, 결혼한 여자의 친가 성을 말할 때도 썼다. 또한 그 자체로 남을 높여 가리키는 데 쓰기도 하지만, 성이나 이름 밑에 붙여 쓰는 높임말이다. 현재는 이 두 가지의 용도로 주로 쓰인다. 그러니 자신한테 쓰면 안 된다고 우리의 아버지들이 우리들을 잡도리했을 터이다.
그래서 제 성을 남한테 말할 때는 ‘정가’나 ‘정가네’라고 해야 하는데, 이때 쓰는 ‘가’를 한자로는 ‘哥’라고 한다. ‘家’가 아니다. 이 집 가란 글자에는 집안이란 뜻이 있다. 왕가(王家), 김가(金家), 도쿠가와가(德川家)라고 하면 왕씨네 집안, 김씨네 집안, 도쿠가와씨네 집안이란 말이다. 그러니 “저희가 왜 안가(哥)요?”라고 했다면 혹 모르겠으나, “내가 왜 안가(家)요?”라고 했다면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그런데 되지 않게, ‘집 가’를 써서 ‘김가네’니 ‘박가네’라니 우습게 돼버렸다. 굳이 ‘집 가’를 쓰고 싶다면 뒤의 ‘-네’를 떼어야 하리라.
제 나라 말도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한 채, 그 위에 한자를 온 국민에게 가르쳐 놓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그런데 다들 김가 이가 박가라고 할 때, ‘가(哥)’라는 한자를 쓰지만, 신채호에 따르면 부여의 관직명에 나오는 마가, 저가, 우가, 구가라고 할 때의 ‘-가’에서 온 말이란다. 그렇다면 한자를 갖다 댈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하긴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자를 쓰면서도 제 성 뒤에 ‘가(哥)’를 붙이는 걸 아직 듣도 보도 못한 것 같다. 이 말이 맞는다면 또 다시 한자는 남을 높이는데 쓰고, 우리말은 나를 낮추는데 쓴다고 생각하니 이 역시 그리 달갑지 않다.
내 생각으론 제 성을 말하면서 굳이 ‘-가’라는 뒷가지를 붙일 필요도 없다고 본다. 그냥 ‘정입니다’라고 하면 될 성부르다. (2004.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