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요한복음 17:1-5
앞으로 출애굽기를 배우다보면
성막에서의 기도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을 하는데
번제단에서의 분향은 성막의 뜰에 위치함으로 누구나 드릴 수 있는 기도이고
죄사함에 초점이 맞혀 있습니다.
성막 안에서의 분향은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곳에서의 분향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분향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을 흔히 대제사장적인 기도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은 기도가 대제사장적인 기도인 이유는
먼저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제자와 모든 믿는 자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 기도의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1절).
이때는 어떤 때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신 이유를 실천하실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입니다.
이것은 내가 십자가를 지고 순종하였음으로 보상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의미는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나의 섬김과 사역, 삶을 근거로 하나님께 이렇게 해달라고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이만큼 헌신했으니 내가 정해놓은 보상과 결과를 당당히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기쁨과 풍성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말씀을 원문 성경으로 보면 이것이 영생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영생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 주님을 구주 삼고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누리며 살아가는 풍성함입니다.
정리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인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이 순간부터 영생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영생은 우리가 모든 삶의 순간 속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며 사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영생을 살아도 아담처럼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노아처럼 구원받은 사람이 있고
에녹처럼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영생은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과 시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기도와 삶이 세상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도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라는 간구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우리는 영생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영생의 풍성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날마다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