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바(Padova)는 산 안토니오(San Antonio)의 도시라 불릴정도로 순례자들에게는 성지로 잘 알려져 있고 시인 단테가 살던 곳이기도 하며, 갈릴레오가 교수로 있였던 대학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이탈리아에 있는 예술 도시들중의 하나이다.
BC 13세기경 그리스 신화들중 고대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전설에 따르면, 트로이 왕의 아들인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달아나자 메넬라오스의 형제인 아가멤논이 트로이를 정복하기 위해 그리스군 원정대를 이끌고 간다. 그 지역이 얼마나 요새였던지 전쟁은 끝날줄을 모르고 약 10년 동안 계속되는데, 전략을 짠 그리스군이 불시에 트로이아를 습격할 무리를 거대한 목마 안에 숨긴채 철수를 하지만, 위장하는 방법을 통해 전쟁이 끝난줄알고 트로이 사람들이 그 목마를 도시 안으로 들여놓자 그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인들은 자기편 군대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그리스 군대는 트로이 도시를 약탈하고 남자들은 모두 학살하고 여자들을 전쟁의 포로로 데려갔다고 한다.
어째거나 3000년전 트로이아의 왕자였던 안테노레(Antenore)에 의해 도시가 세워졌다는 전설이 있고 오늘날 파도바는 베네토 지방에서 인구가 3번째로 많은 도시이고 1222년 세워진 오래된 대학과 중세 성벽과 같은 유적들이 많이 있다. 1200-1300년경 도시는 종교적,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고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성벽과 웅장한 궁전들, 종교적인 건물들이 건축된다. 1232년에는 성인으로 추대된 산안토니오의 유해를 보관하기 위해 바실리카 델 산토(Basilica del santo) 성당이 건립된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베네토지방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약 1세기동안 건설되는데 8개의 원형지붕과 종탑이 있고 성당 내부에는 죠토(Giotto) 학교의 예술가들, Altichiero와 Giusto de Menabuoi, Donatello와 같은 유명 예술가들에 의해 장식된다. 특히 토스카나 지방의 장인이었던 도나텔로의 청동 동상이나 십자가와 죠토의 수많은 회화 작품들은 인상깊다.
13~14세기에는 자유 무역에 의해 도시가 번영했고 라죠네궁(Palazzo della Ragione), 스크로베니 성당(Cappella degli Scrovegni)의 죠토 프레스코화도 이 시기에 그려졌다. 1318~1405년까지 카라라(Jacopo da Carrara) 가문이 통치했다.
1405~1797년까지 파도바는 베네치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는데 도나텔로(Donatello)와 만테냐(Mantegna)의 작업들때문에 예술도시로 성장하고 1500년대 도시는 굉장한 변화에 직면하게 되는데 도시의 형태를 결정지우는 새로운 성벽들이 건설된다. 또한 새로운 공공 건축물과 훌륭한 성당들이 건설되고 대학은 황금기를 맞는다. 4세기동안 베네치아의 지배아래 있던 도시에 1700년대 말부터 전통 시장이 열리던 광장, Prato della valle를 건설하게 된다. 중앙에 거대한 원형의 녹색섬을 만들고 4개의 점에는 4개의 다리를 건설하고 운하주위로 파도바 태생이거나 관련된 유명 인사들 78명의 동상들을 세워놨다. 또한 광장 주변에는 다양한 시대에 걸쳐 건축된 건물들이 있는데 그중 Palazzo Angelli 저택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Minici Zotti의 콜렉션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Precinema 박물관이 들어가 있다.
1815~66년에는 오스트리아(Austria) 황제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고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1848년 2월 민중 혁명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많은 폭격을 받았고 13세기에 지어진 에레미타니(Eremitani) 성당에 있던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프레스코 (frescoes)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1945년 4월 도시는 영국군과 애국주의자들에 의해 완전한 자유를 찾게 된다.
스크로베니 소성당(Cappella degli Scrovegni)
파도바의 갑부였던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가 고리대금업자였던 아버지 레지날도의 속죄를 위해 성모 마리아께 헌납한 예배당 로마시대 원형극장이 있던 곳에 성당을 지은 사실에서‘아레나 소성당’이라고도 불리운다. 제단에는 지오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가 만든 대리석 성모자상이 그 뒤에는 엔리코 스크로베니 무덤이 있다. 성당벽과 천장에는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그린 유명한 프레스코화로 가득차 있는데, 마리아의 생애와 예수님의 생애를 마치 종교극처럼 그렸다. (지오토는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로, 교회 중심적이었던 비잔틴주의 미술을 인간 중심적인 미술로 전환시킨 르네상스회화을 열였다고 평가받고 있음) '최후의 심판' 중앙 하단 부분(동그라미 표시)에 성모 마리아에게 성당 모형을 봉헌하는 엔리코를 그려 넣었음(엔리코는 교회에 거금을 헌금함으로써 천국행 티켓을 보장받고 싶어 했고 조토는 이것을 가시적으로 표현)
에레미타니 교회(Chiesa degli Eremitani)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한데, 1218년에 착공, 1306년에 완성, 중세 자유도시 시대의 재판소로 건설되어 사용 되었음. 라조네는 이탈리아어로 「재판소」라는 의미,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로, 윗층에 큰 홀을 가지고 있으며 배 밑 부분 형태 (boat-upside down)의 독특한 지붕(검은 나무 천정), 포르티코(주랑, Portico = 지붕을 받친 기둥들이 쭉 늘어선 현관)등으로 꾸며져 있다. 1층의 아케이드는“소또 살로네(살로네 아래)”라고 통칭 되어 정육점, 생선가게, 치즈, 햄, 등 여러 가지 식료품 전문점이 서있다.라조네궁의 남북을 사이에 둔 Erbe 광장(야채)과 Frutti 광장(과일)에는 매일 시장이 선다. 1420년 화재로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파괴되었다. 원래 세 개의 지붕이 있었고 세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베네치안 건축가가 재건할 때 내부 칸막이 벽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공간은 하나로 되고 큰 홀(The Great Hall), 즉 샬롱(Salone)'이 되었다, 홀은 거의 직사각형으로 길이 81.5m, 넓이 27m, 높이 24m로 넓은 내벽에는 Giotto의 우화적인 프레스코(allegorical frescoes) 로 장식되어 있다. 화재 때 많은 작품이 손실된 것을 후에 지역 예술가들이 복구 했다고 함. 1400년대에 드나텔로(Donatello)에 의해 제작된 큰 검은 목마상(나무 제품)도 있는데 복제품이다.
성 안토니오 성당, 산탄토니오 성당(Basilica di Sant'Antonio, The Basilica of San Antonio) 광장에는 도나텔로가 1453년 청동으로 세운 베네치아의 용병대장 Gattamelata (에라스모 다 나르나의 별칭으로 ‘달콤한 고양이’라는 뜻을 가짐)의 기마상이다. 파도바의 수호 성인 「S.Antonio/ 산 안토니오」 이 성당은 이탈리아 성인을 모신 성지로 유명하고,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안토니오(1195~1231년)는 프란체스코회의 수사겸 설교자로 사후 로마 가톨릭의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젊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책과 하얀 백합을 들고 있다. 고아·수감자·표류자·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임산부·아픈 어린이·유리공예 직공, 유리제품 상인의 수호 성인으로 그려진다. 성당 내부에는 성 안토니오(1232~1307)의 무덤과 그를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음, 도나텔로가 제작한 동상과 양각 조각물이 있는 높은 주 제단상이 있고, 제단 안쪽에 밑에는 그리스도 상이 있다. 성모 마리아 상, 파도바의 성인상 등도 있다. 그는 특히 설교에 능했는데, 신기하게도 그가 죽은 뒤에도 혀만은 썩지 않았다고 하며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성당은 빨강과 흰색 배색이 아름다운 8개의 큰 쿠포라(둥근 지붕)가 둘러싸고 있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을 닮은 7개의 비잔틴식 돔과 2개씩 짝을 이뤄 서있는 육각형의 종탑, 로마네스크풍의 육중한 벽돌건물 성당의 정면을 향해 우측으로는 회랑이 계속 되는 입구가 있고 예배당도 있다. 성당에 부속되는 시설로서 산·죠르죠 기도당과 그 쌍둥이와 같은 기도당(구교회)이 있고 이 내부에도 성당내와 같이 가치 있는 프레스코화가 많이 있다.
프라토 델라 발레 광장(Prato della Valle)
이태리 말로 Prato=잔디, Valle=평야라고 하는 의미 그대로 잔디가 있는 넓은 광장이다. 중심에는 섬 같은 잔디 정원(8,862㎡), 그 주위에 해자(moat)가 있고 광장이 이 분수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중심의 섬 부분은 베네치아 건축가 안드레아 멘모에 의한 것으로 멘미아섬(Isola di Memmia)로 불리운다. 해자의 양쪽으로는 78개의 동상(파도바의 유명인들)이 세워져 있는 타원형의 공원(18세기에 완성)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중의 하나이다. 1931년에는 Mussolini가 120,000명의 군인들과 함께 프라토 델라 발레를 방문하여 연설을 한 역사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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