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한시 소고(小考)」
《회성세고》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남겼던 시문을 모아서 이를 한 권으로 엮어낸 삼대시문집이다. 소개하려는 한시는 회성세고(懷城世稿)에 수록되어 있고 삼대가 각각 제야(除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1. 할아버지 한시
할아버지는 국파 위형식(菊坡 魏衡植)으로 30世, 안항공파, 장흥 방촌출신으로 1849년 12월 12일 태어나 1906년 1월 25일 타계했다. 행록에 의하면 시문에 능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모두 유실되고 70여 수만 전해지고 있다. 본 시에서 삼경이라고 나오는데 삼경은 밤11~ 1시 사이며, 신축년은 1901년으로 52세 그믐에 작시했다.
【辛丑除夜 신축년 섣달그믐 밤】
一席遊談轉且淸/ 이 자리 환담이 더욱 청아하니
豊烟盡是世人情/ 이런 풍광이 다 세상 사람의 정이라
知應守歲郡生樂/ 한 해의 마지막 밤을 즐기는 것은
想必廻春衆蛰驚/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할 것을 상상함이라
遲遲漏燭三更寂/ 간간이 떨어지는 초 눈물은 三更이 고요하고
曲曲溪流七里鳴/ 굽이굽이 흐르는 시내물은 七里나 들린다
每每斯樓花樹會/ 매번 이 누각에 花樹會가 열리니
期於掃萬赴詩城/ 만사를 제쳐놓고 詩城에 달려온다.
2. 아들 한시
아들은 정헌 위계후 (靜軒 魏啓厚)로 31세 안항공파, 1905년 12월 27일 출생해 1982년 6월 24일 타계했다. 정헌공 문집에는 다수의 문장과 사백여 수의 시가 전하고 있으며 장흥향교 장의를 지내기도 했으며 국파公에게 양자로 입적했다. 정유년은 1957년으로 타관에서 고향을 그리는 심경을 한시로 표현하고 있다.
【丁酉除夕 정유년 섣달 그믐 밤】
萍闕又復送今年/ 타관에서 또 다시 금년을 보내니
半世經過夢一邊/ 반 평생 지난 세월이 꿈만 같구나
此夜寒燈仍不寐/ 오늘밤 차가운 등불아래 잠 못 이루고
故鄕千里眼森森/ 천리길 고향풍경이 눈에 삼삼하다.
3. 손자 한시
손자는 소헌 위공량(小軒 魏孔良), 32세, 안항공파, 1936년 5월 16일 장흥 방촌에서 정헌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동국대를 졸업 후 서울시 공무원을 지냈다. 저서로 서창여적, 북창한담, 여창고음, 고문초 등이 있다. 갑신년 2004년에 작시했다.
【甲申除夜韻 갑신년 섣달그믐밤】
天序無違新舊移/ 하늘의 질서는 어김없이 신구가 바뀌는데
每年此夜感懷悲/ 매년 이 밤이 되면 감회가 서글프더라
甲申去向鐘鳴處/ 갑신년은 제야의 종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가고
乙酉來從鷄鳴時/ 을유년은 첫닭이 우는 때를 따라 오더라
維慰鄕愁三酌酒/ 오직 향수를 달래는 데는 석 잔의 술이요
常忘客苦一篇詩/ 항상 객고를 잊는 데는 한편의 시더라
燈火明滅漏聲盡/ 등불은 가물가물 시간은 자꾸 가는데
惱我塵思入夢遲/ 나를 괴롭힌 잡다한 생각에 잠들기 힘드네
4. 대(代)를 이은 삼대한시 특징
천관산 영은동천 입구에 터 잡은 장천재는 장흥위씨 문중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시제를 지내기도 하는 등 제사공간 활용,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배움의 공간인 강학소(講學所), 족보편집실, 시인 묵객들과 수창(酬唱) 하는 외부인과의 교류장소, 문중회의 장소, 문중 계모임, 문중 친목 행사장소에 이용되었다. 특히 제야(除夜)와 원단(元旦)을 맞이하는 행사장소로도 쓰였다. 제야행사는 일종의 새해맞이 행사다.매년 12월 31일 밤부터 이듬해 1월 1일로 넘어가는 1월 1일 아침까지 치러진다. 그렇다면 연도는 어떻게 정해질까. 제야의 연도는 12월 31일의 연도를 따르는 것이 관례다.
할아버지는 1901년 12월 31일, 아들은 1957년 12월 31일, 손자는 2004년 12월31일 작시한다. 내용도 모두 제야(섣달그믐)를 공통주제했고 연대로 보면 100년이 넘는 세월이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지만 삼대가 읊는 시의 흐름은 모두 비슷하다.한 구(句)가 일곱 글자씩으로 된 여덟 줄의 한시를 칠언율시(七言律詩)라 부르는데할아버지와 손자는 이 형식을 따르고 있다. 아들은 한 구가 일곱 글자씩으로 된 네줄의 한시인 칠언 절구(七言絶句) 형태를 보이고 있다. 52세, 48세, 68세에 작시되었으나 삼대를 걸쳐 고향과 제야를 소재한다는 점에서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환담, 정, 밤, 눈물, 누각, 花樹會, 詩城이라는 단어를 활용했는데 특히 일가가 꽃피는 나무 밑에서 모여 술을 마시고 친목을 도모한 데서 유래된 花樹會가 눈에 띤다. 종친회와 동의어로 詩城의 장소가 바로 장천재임을 알 수 있다. 장천재는 현재까지도 문계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고향에 살면서 종친들과 함께 안빈락도의 삶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아들은 타관, 반 평생, 꿈, 밤, 차가운, 등불, 고향 등의 단어에서 느끼 듯 타향에서 살아가는 외롭고 힘든 삶을 서술하고 있다. 손자는질서, 신구, 밤, 종소리, 첫닭, 술, 객고, 시 등의 단어를 나열해가며 묘사와 서술을 적절히 조합했다.
세 작품을 읽자니 비록 연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고향이 떠오른다. 구체적으로는 할아버지가 제야행사를 했던 장천재와 만난다. 이는 필시 아들이 장천재에서의 제야 행사를 목격했을 것이고 손자 또한 아버지한테 들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제야를 소재한 작품들은 대게 그해의 마지막 어둠을 걷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심경과 다짐이 많다. 이 삼대한시 또한 작자 심경과 제야행사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명작한시는 운자도 중요하다. 한시에는 리듬감이 필요한데 일정한 위치에 음 넣은 것을 압운이라고 한다. 이 시에는 淸, 情, 驚, 鳴, 成(할아버지), 年, 邊, 森(아들), 移, 悲, 時, 詩,遲(손자)를 운자(韻字)로 활용했다.
野雲위원님은 씨족문화 진작의 일환으로 작호, 작명, 서체분석, 카페와 블로그 개설 등을 도입해 문중에 풍요롭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 심성이 옳곧고 상대를 늘 편안하고 세밀히 배려해 많은 종친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