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제목 : 좋은 눈과 나쁜 눈,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
설교본문 : 마태복음 7:13~29(마태복음 6~7장, 사사기 6~7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5년 1월 12일
========================
● 가애교회 2025년 표어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무엘상 3:10, 이사야 6:8, 사도행전 9:10)
서 론 :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의 기도는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이 땅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진단하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는 기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좋은 눈과 나쁜 눈’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살펴보겠습니다.
--------------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참되게 믿으면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주께서 내 안에 신령한 새 생명을 주십니다.
이 새 생명이 세례 요한이 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고,
이런 사람이 바로 ‘거듭난 자’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은
거듭난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여러 번 자세하게 살펴서
그 뜻을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1 부 : 좋은 눈과 나쁜 눈, 영적 진단과 분별력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떠한지, 나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보고 분멸하고 판단하는 것,
이것을 마태복음 6:22에서는 ‘좋은 눈, 건강한 눈, 순전한 눈’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 좋은 눈과 나쁜 눈 :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1) 눈은 마음의 등불이니 네 눈이 성하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요(마 6:22)
눈이 나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니(23절)
22. 눈은 마음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네 눈이 순전하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눈이 악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 더하겠느냐?
사람은 눈을 통해 파악한 것을 마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분별합니다.
눈이 온전하면 마음 역시 앞에 있는 것을 바르게 분별하고
눈이 온전하지 못하면 마음 역시 바르게 분별할 수 없습니다.
눈이 온전하여 앞에 있는 위험물을 바르게 판단했다면 온몸이 평안해지고
눈이 온전하지 못하여 바르게 판단하지 못했다면 온몸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요즘에는 눈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여러 도구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만,
도구나 그 어떤 것을 이용하든 간에 앞에 있는 위험을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 좋은 눈과 나쁜 눈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의 영의 문제로 비유하셨습니다.
좋은 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순전함을 간직한 눈이고,
나쁜 눈은 세상의 탐욕으로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린 눈을 가리킵니다.
지금 내 앞에 닥친 이 일이 영적으로 위험한 것인지의 여부를 분별할
영적으로 건강한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여기에서 빛은 참과 거짓을 분별할 분별력과 지혜를 뜻합니다.
이 빛이 우리 인생의 등불 역할을 하여 삶을 바르고 건강하게 살게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욕심과 탐욕으로 그 분별력을 잃은 자, 그 빛을 잃은 자들은
어두운 것만 찾으려 할 것이니 더욱더 어두움 속으로 빠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그 어둠 속에서 나와야 하는데
분별력이 없으니 지금 어둠 속에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고,
또 자신의 상태를 안다 할지라도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니 답답한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의 영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합시다.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탄이 세상 욕망으로 나의 눈을 흐리게 할 틈을 주지 마십시오.
혹 욕망과 집착이 생겼더라도 주 앞에 내놓아 그것을 얼른 청소하는 자가 되십시오.
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가 영적으로 좋은 눈, 건강한 눈을 가진 자가 되어
내가 서 있는 이 땅과 나의 영적 현실을 바르게 진단하고 파악하면
염려하는 것이 달라지고 바라고 구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1) 염려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마 6:25~32)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내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에 나는 저 새들을 보라. 심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히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걱정을 한다고 해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이라도 늘일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염려는 지나친 근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마음이 찢기고 분열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잊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세상의 일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초조하고 안달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세상의 일로 근심하며 염려하는 자를
우상 숭배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다는 것은
아직 그의 눈이 세상에 속한 나쁘고 악한 눈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눈을 가졌으니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므로
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염려합니다.
하나님도 내 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실 수 없다는 의심에서 염려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염려도 우상숭배입니다.
2) 염려하는 동안 오늘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됩니다(34절).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내일 일은 내일에게 맡길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 겪는 것으로 충분하니라).”
염려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이유는
염려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염려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려 하셨던 일이 중단됩니다.
3)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 :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십시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실 터이니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➀ 내가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먼저 구하십시오.
➁ 그 일을 위하여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구하십시오.
➂ 나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기를 구하십시오.
➃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기도하십시오.
3) 하나님 나라의 일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먼저 되어야 합니다(33절)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와 같이 삶의 본질적인 것, 나를 영생으로 이끌어줄 만한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나의 삶을 이끄는 근본적인 열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 일에 매력을 느끼고 삶의 열정을 쏟아붓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좋아하는 자가 되고, 그 일을 구하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일을 구하는 것보다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하려 했던 그 모든 것을 주께서 이 일에 더하여 주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제 2 부 :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주께 충성하는 신실한 종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주께서 명하시는 그 일을 맡아 행하겠나이다.”
주께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가리켜
세상 사람들이 가지 않는 좁은 문, 생명의 길로 가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1. 좁은 문과 넓은 문(마 7:13~15)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비좁고 험해서)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인생에 두 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문은 좁은 문과 넓은 문입니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넓은 문은 영원한 파멸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문은
장차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참된 믿음의 길을 말하고,
파멸의 문은 장차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죄악의 길을 뜻합니다.
1) 좁고 그 길이 협착한 생명의 문
생명의 문으로 난 길은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파멸의 문으로 난 길은 그 길이 넓어
그 길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길이 좁고 협착하다는 것은 그 길이 험난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 길로 들어가려면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절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길은 험난한 길이고, 그래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2)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이가 많은 파멸의 문
파멸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넓은 길인 이유는
자기 욕심을 버릴 필요가 없고 욕심과 욕망을 절제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늘 사람이 북적거립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영원한 파멸의 심판이 있습니다.
2. 천국에 들어갈 자가 지극히 적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 7:14)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비좁고 험해서)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천국에 들어갈 자가 지극히 적은 이유는
천국을 바라고 소망하는 자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국에 대하여 아예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단지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영의 상태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인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의 영을 살피는 일을 하기 보다는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지지 않게 책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낫고,
돈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➀ 천국에 관심을 가진 이가 적고,
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에 들어갈 조건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➂ 그 조건에 자신이 합당한지의 여부를 점검하려 하지도 않고
➃ 날마다 주께로부터 영의 생명을 공급받는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갖지 않으니
천국에 들어갈 자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 묵상 :
당신은 천국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에 들어갈 자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조건에 자신이 합당한 자인지 늘 자신의 영적 상황을 점검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영의 상태는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자들은
장차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의 영을 점검하여
주님의 피로 씻어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3. 좋은 나무 나쁜 나무(마 7:15~20)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양의 털을 쓰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사나운 늑대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이 참된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 그 나무의 모양이 아니라 그 나무 자체가 어떤 나무냐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죽은 나무가 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 나무를 아름답게 꾸미면 살아있는 나무보다 더 멋지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게 꾸몄더라도 죽은 나무이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존재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돼지에게 리본을 다는 정도의 변화가 아닙니다.
늑대가 몇 년의 훈련과 수행을 통해 양의 말을 배우고 양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돼지와 늑대가 양으로 그 존재가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결코 수행의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2) 생명의 나무와 멸망의 나무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라 인정받은 자가 좋은 나무이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지 않은 자가 나쁜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는 그 나무 안에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새 생명을 가진 자, 거듭난 자가 좋은 나무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간절함과 섬김이 있는 자,
이런 아름다운 영의 열매를 맺는 자가 살아있는 영을 가진 좋은 나무입니다.
비록 초라하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가 있으면 좋은 나무이고
세상에서 성공하여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영 의 열매가 없으면 죽은 멸망의 나무입니다.
3) 가장 무서운 일 : 심판대 앞에 갈 때까지 자기가 좋은 나무인 줄 착각하는 것(22절)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쁜 나무라 평가를 받고 있는 자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는 좋은 나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날에 많은 사람이 주님 앞에서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대 앞에 갈 때까지 자기는 구원받는 좋은 나무라 착각하는 것,
이것만큼 두렵고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그때는 회개의 기회는 없고 오직 멸망의 길만 있기 때문입니다.
제 3 부 : 그의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기드온의 승리)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드리며 주께 충성하며 살 때
주께서 우리를 도우십니까?
주께서 도우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사사기의 기도온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70년 같은 7년의 학대
1) 미디안을 이스라엘을 치는 몽둥이로 사용하신 하나님(삿 6:1)
1. 이스라엘 자손이 또다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넘겨 주시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을 벌하시기 위해
이번에는 미디안을 몽둥이로 사용하십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할 때마다
8년, 18년, 20년으로 점점 그 기간을 늘려가셨으나,
이번에는 7년입니다.
숫자로만 보면 가장 짧은 기간인 것 같지만,
이번에 미디안에게 학대를 받는 7년은 70년 같은 7년입니다.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 7년이기 때문입니다.
2) 약탈자들의 무자비한 학대(3~5절)
3.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릴 때만 되면(혹은 추수할 때가 되면),
미디안 사람들은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을 데리고 치러 올라와서
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기까지 온 땅의 농산물을 다 망쳐 놓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 떼처럼 몰려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음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온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니)
미디안은 조금 특이하게 군대가 아니라 약탈자들이 와서 학대를 했습니다.
약탈자들이 추수할 때마다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서 이스라엘 진영에 장막까지 치고는
토지의 모든 소산물을 남김없이 완전히 약탈해 갔습니다.
한 번 휩쓸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면서 모든 것을 깡그리 휩쓸어 간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예 굶겨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2. 연약한 자 기드온을 큰 용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1) 미디안 사람이 두려워 몰래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기드온(삿 6:11)
11.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아비에셀의 후손 요아스의 땅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그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더니
이스라엘이 7년 동안 극심한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킬 것을 두려워하여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중이었습니다.
본래 밀은 넓은 마당에서 타작을 합니다만,
그렇게 하면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면 밀을 모두 다 빼앗기게 되므로
좁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는 것입니다.
2) 소심한 기드온을 큰 용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12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도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힘센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하매
그런데 이런 소심한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서 ‘큰 용사여’하고 말합니다.
그가 삼손처럼 힘이 장사라서 그리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그가 큰 용사라는 것입니다.
3)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이 네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라(삿 6:13~14)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어려움)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라고 한 그 모든 기적이 다 어디에 있나이까?
지금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기셨나이다” 하니
14.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너는 너에게 있는 이 네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너에게 있는 그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이 듣기에 이 말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자기는 지금 미디안 사람이 두려워
그 좁은 포도주 틀에서 참으로 불편하게 밀을 타작하고 있는데,
이런 소심한 사람을 보고 그가 가진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3. 기드온의 300명의 군사(삿 6:17~7:8 요약)
1)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
➀ 첫째 표징 : 바위에서 불이 나와 예물을 불사름
자신을 보고 큰 용사라고 한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기드온은
지금 자기 앞에서 말하시는 이가 주님이신 표징을 보여 달라고 구한 뒤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 끝을 그 예물에 대니 바위에서 불이 나와 예물들을 모두 살라버립니다.
기드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부릅니다.
➁ 둘째 표징 : 양털 뭉치와 이슬
추수 때가 되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한 것을 약탈하기 위해
큰 무리를 이끌고 이스라엘의 곡창지대인 이스르엘 평원에 진을 쳤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을 모읍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거든
양털 뭉치만 이슬에 젖고 땅은 마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하시니 그 이튿날에는 반대로
양털만 마르고 땅은 이슬에 젖게 해 달라고 요청하니 하나님께서 그대로 하십니다.
2) 기드온의 300명의 군사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백성들이 모이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모인 백성의 수가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혹 자기들의 힘으로 전쟁을 이겼다고 자랑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자는 모두 돌아가라 하니
22,000명이 돌아가고 1만 명만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도 많으니
개처럼 물을 핥아먹는 300명만 남기고 모두 돌려보내라 하시면서,
그들을 통하여 미디안을 이기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3) 더 큰 용기를 주시기 위해 작은 용기를 내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으로 공격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두려우면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고 명하시면서,
그러면 적을 공격할 용기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드온이 부하 한 명과 함께 적의 진영 끝으로 내려가니
미디안 병사 하나가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을 넘어뜨리는 꿈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던 친구가 그 보리떡이 기드온의 칼이라고 해몽하는 말을 듣고
기드온은 크게 용기를 얻습니다.
4. 친구들끼리 서로 칼로 찌르는 미디안의 군사들
1)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 보포병이 교대를 막 끝낸 이경 초(삿 7:19~20)
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있던 100명의 군사들이
이경 초(한밤중)에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른즉
미디안 군대의 보초병이 교대를 막 끝낸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부대가 모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며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하고
기드온과 그와 함께 있던 100명의 군사들은
한밤중에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나팔을 불고 그들의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그때는 이경 초(밤 10시경)이었고,
미디안의 보초병들이 근무 교대를 막 끝낸 후였습니다.
➠ 아주 절묘한 시간입니다.
미디안 진영은 새벽에 이스라엘 진영을 침략하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는지
밤 10시 경에 이미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보초병들의 근무 교대가 막 끝난 후였으므로
보초병들의 주의가 가장 흐트러질 때입니다.
그때 갑자기 100명의 군사들이 항아리를 깨뜨리고
왼손으로 횃불을 들고 오른손으로 나팔을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하고 외쳤습니다.
3) 소심하고 겁이 많던 기드온에게 이런 기가 막힌 전략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드온은 그 시간에 미디안의 군사들이 깊은 잠에 빠졌는지,
보초병들의 근무 교대가 막 끝이 났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기드온이 그런 훌륭한 군사 전략을 짤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한 기드온이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미디안 진영 가라 하시니 가까이 갔고, 나팔을 불라 하시니 나팔을 불었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들라 하시니 깨뜨리고 들었는데
그때가 바로 이런 절묘한 때였던 것입니다.
4) 기가 막힌 방법으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삿 7:21~22)
21. 그들이 각자 자기의 위치에 서서 적의 진영을 포위하고 있으매
미디안 진영의 모든 군사들이
온통 뛰고 부르짖으며(갈팡질팡 아우성치며) 도망하였는데
22. 기드온의 300명의 군사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미디안의 온 군대가 저희들끼리(친구들끼리) 서로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까지 이르고,
더러는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흘라의 경계선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 지파로부터 모여서
미디안 군사들을 추격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기드온과 100명의 군사들이 먼저 시작하자
세 부대로 나눈 다른 200명의 군사들도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미디안의 군사들은 자다가 느닷없는 항아리 깨지는 소리와 나팔 소리에 놀라서 깼다가,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횃불에 놀라 서로 동료들을 적군으로 오해하여
서로 친구들을 향하여 칼을 쳐서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이는 대혼란을 일으켰습니다.
300명의 군사들은 칼 하나 쓰지 않고 수많은 적군을 물리치게 된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주께 충성된 자를 이렇게 도우십니다.
주께서 도우시면 기드온의 승리보다 더한 일도 일어납니다.
요셉을 도우신 하나님, 모세를 도우신 하나님,
사무엘과 다윗과 다니엘을 도우신 하나님께서 당신도 도우십니다.
5. 사사기의 평가
1) 전쟁이 끝나갈 무렵 뒤늦게 참여한 사람들(삿 7:22~23)
(22~23절 성경구절 위에)
미디안 군사들이 자기 진영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칼을 찔러 죽인 후에
남은 자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하기 시작하자,
처음에 전쟁을 두려워하여 자기 장막으로 돌아갔던 납달리, 아셀, 므낫세 지파의 사람들이
다시 전쟁터에 나와 도망하는 미디안 군사들을 추격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기드온의 전령을 듣고 나와 요단강의 나루들을 점령한 후
도망하는 미디안의 두 장군을 사로잡아 그 머리를 베어 기드온에게 들고 갑니다.
➠ 전쟁에 참여한 자들에 대한 사사기의 평가를 주목해 보십시오.
이 세 지파의 사람들은 도망하는 미디안 군사들을 죽였고,
특히 에브라임 지파는 적군의 장군의 머리를 베었으므로
고대 전쟁의 관습으로 볼 때 그들이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들입니다.
하지만 사사기는 이 전쟁을 승리하게 한 자들을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라고 증거 합니다.
--------------------
우리는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에게 내리고 있는
사사기의 평가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모두가 두려워서 떠나고, 자기감정에만 몰두하다 떠날 때
그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전쟁을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먼저 시작한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은 가장 두렵고 힘든 때에 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의 13만 5천 명의 군사들이 그대로 있을 때,
가장 두렵고 힘든 바로 그 시간에 이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을 주목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를 주목하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은 자를 주목하십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은 끝까지 전쟁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 사명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서 떠나고,
혹은 자기감정에 몰두하느라 떠났을 때들은
그런 감정에 미혹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몸이 떨릴 만큼 두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은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을 주목하십니다.
➠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수고하여 다 이루어 놓은 곳에 가서 그 복만 누리려 합니다.
오늘날에는 남이 이루어 놓은 부흥의 결과만 누리려 합니다.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하며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편안히 앉아 그렇게 편안한 신앙생활만 하려 합니다.
마치 전쟁을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하게 한 것처럼
있는 대로 폼을 재는 뒤늦게 참여한 자들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결 론 :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마 7:24~29절)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가 하는 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홍수)가 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그 집에 부딪혀도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집의 기초를 단단한 바위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홍수)가 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가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의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율법학자)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1) 좋은 나무 나쁜 나무 :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
예수님은 좋은 눈을 가진 좋은 나무와 같은 자를 반석 위에 지은 집으로,
나쁜 눈을 가진 나쁜 나무와 같은 자를 모래 위에 지은 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지어진 집도 평소에는 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비와 홍수와 폭풍이 일어날 때 무너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큰 비와 홍수와 폭풍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격렬한 시험의 시간을 뜻합니다.
큰 비와 홍수와 세차게 부는 바람은 주께서 오시기 전
마지막 때에 있을 격렬한 시험의 때를 의미합니다.
그때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니면 그 격렬한 시련의 때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석 위에 세운 집 같은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그러므로 그 시험의 때를 이길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되십시오.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자이고,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자기 혼자 자기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자,
자기 편리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는 자기 편한 대로 사는 자이니
결단코 마지막 때의 그 격렬한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험을 이겨 바른 믿음을 가진 자로 합격된 자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늘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려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 묵상 :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16~20절에서 말씀하신 신앙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이 신앙의 열매를 바울은 ‘거듭남’,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고,
요한복음에서는 ‘영의 생명’이라 했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에게 주께서 주시는 하늘의 생명이 바로 신앙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항상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에게 주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늘 주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물질에 대한 소유욕과 탐욕을
버리게 하옵소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하옵소서.
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좋은 눈을 가진 자인지 나쁜 눈을 가진 자인지
늘 우리들 자신을 점검하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바르게 진단하고 분별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가애교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원문보기 글쓴이: 송호영